Rockstar RAW novel - Chapter 40
39화
우리가 만들어 내려는 연출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는 걱정을 이 감독이 단박에 해소시켜 주었다.
“단풍은 CG로 메우면 되지.”
“CG요? 그거 완전 노가다 아닌가요?”
이전에 상의한 바로, 이제 이 공원 무대에서 촬영할 합주 신은 첫 후렴이 시작되면서 나오며 꽤나 길게 이어질 부분이다.
게다가 이후 두 번째 후렴도, 아웃트로도 같은 촬영 분량에서 뽑은 컷을 사용할 텐데, 그 모든 길이를 부담하기에는 비용과 인력을 감당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런 내게 걱정하지 말라는 듯, 이 감독이 음침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갈아 넣을 인력은 충분하니까. 흐흐흐……. 그래픽 놈들 나 부려 먹을 땐 싸게 먹혔다고 좋아했겠지? 이제 빚 갚을 시간이다. 다 죽었어.”
그는 조용히 중얼거리며 자신과 같은 학교의 그래픽과 학우들을 부려 먹겠다며 실실 웃었다.
뭔가 나는 모르는 뒷사정 같은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어……. 일단 다행이네.’
나는 그저 차질 없이 일정이 진행되리라는 그의 말을 믿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크, 크흠. 감독님?”
“아, 그래. 세팅 다 됐나? 성호야! 카메라 두 대만 더 꺼내자!”
“네!”
다시 촬영을 위한 세팅이 시작되었다.
“더 띄워, 더!”
“화면 봐 주세요!”
“안 잡혀! 조명 끄고도 확인해 볼 테니까 위로 들어 봐!”
아까보다 더 많은 카메라 수, 그리고 조명과 마이크까지.
뭔가 본격적으로 일이 시작되는구나 싶은 광경이다.
“저기 뭐 하나 본데?”
“촬영인가?”
“오빠, 저기 공연 하나 봐.”
“가 보자.”
게다가 전과 달리 공원 이용객들이 소수 있어서 그 이목이 끌린다.
카메라가 잔뜩 늘어서 있고, 대여섯 명의 스태프들이 분주히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설치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곧 이용객들은 우리가 있는 곳으로 몰려와 구경꾼이 되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갑자기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는데.”
“어차피 관객은 전면에서만 보니까 그대로 진행해도 상관없지 않을까요?”
주변을 둘러보며 당황스럽다는 듯 말하는 이 감독에게 대수롭지 않게 답했으나, 그는 여전히 불안한 표정으로 재차 내게 물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괜찮겠어? 아까 보니까 라희는 긴장도 많이 하던데…….”
‘아하.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아무래도 그와 내가 상황을 보는 관점이 달랐던 모양이다.
나는 촬영을 물리적으로 진행할 수 있느냐를 봤고, 이 감독은 몰려든 사람들이 우리에게 프레셔가 되지 않을까 걱정한 것이다.
나는 웃으며 답했다.
“괜찮아요.”
걱정이 될 이유가 없었다.
“촬영이 아니라 공연이 됐으니까.”
* * *
곡이 처음부터 끝까지 쭉 연주된다.
필요한 부분은 후렴뿐이지만, 그냥 전부 이으며 그 감정을 살리기로 한 것이다.
게다가.
“이야…….”
“잘하네.”
어쩌다 보니 오늘의 마지막 스케줄은 촬영 겸 급조 버스킹이 되어 버렸다.
좌좌좌좡!
“둘이 함께 걸었던 시간들이 다시 흘러가네요!”
일정과 과정을 보면 참 좌충우돌도 이런 좌충우돌이 없었지만…….
“잘 가요, 잘 가요! 행복하세요! 이렇게 보내 줄게요!”
우리의 퍼포먼스만큼은 끝내준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와아아아!”
“잘한다…….”
“저거 무슨 노래야? 알아?”
“아니. 처음 들어.”
뭐라도 하고 있는 건가 싶어서 몰려든 구경꾼들이 감탄을 토할 정도로 말이다.
‘분위기 좋네.’
“보컬 빼고는 다들 학생들인 것 같은데, 굉장하네.”
“잘하는 거야?”
“그럼. 거의 프로 수준인데?”
“아마 어디 학원 선생님이 애들 데리고 나온 거겠지.”
‘저런 반응 빼고는.’
칭찬은 칭찬인데 상당히 거슬리는 칭찬들이 몇몇 들려왔지만 애써 무시하고, 나는 멘트를 날렸다.
“감사합니다. 저희는 밴드 럭키데이라고 합니다. 저희 오리지널 곡, 가을의 향기 함께하셨습니다.”
자연스럽게 버스킹 하듯 진행을 이어 간다.
“어……. 우선 말씀드릴 게, 금방은 미리 기획된 공연이 아니라 저희 너튜브 채널에 올릴 뮤직비디오 제작을 위한 촬영을 진행 중이었습니다. 최대한 관객 여러분의 얼굴이 잡히지 않게 촬영을 했으니, 너그러운 이해 부탁드리며…….”
우리의 원래 목적은 공연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촬영에 있다.
그렇기에 평범한 버스킹 공연 때처럼 여러 곡을 돌려 부르며 관객들을 만족시킬 수가 없다.
‘아마 이 노래만 몇 분 동안이나 계속 부를 예정이라고 공지하면 다들 떠나겠지? 아깝다, 아까워.’
그렇기 때문에 한 노래만 반복적으로 부를 것이라고 미리 말해 알려야 했다.
물론 그렇게 되면 당연히도 관객들은 금방 질리기 마련이고, 다들 자리를 떠나게 될 것이기에 아쉬움이 남았다.
점심시간 조금 지난 공원치고는 꽤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때, 이창화 감독이 내게 눈짓을 해 왔다.
그의 얘기를 다시 들으려 눈을 돌려 마주쳤는데, 뜻밖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다.
“네?”
“다른 노래 불러도 된다고.”
“엥?”
그냥 비슷한 분위기의 다른 곡들을 연주하며 버스킹을 쭉 진행해도 된다는 이창화 감독.
‘뭐지? 왜지?’
정해진 일이 있는데 다른 노래를 불러도 된다니?
의문이 들기는 했으나 감독의 디렉팅은 충실히 따라야 하는 법.
“아, 금방 감독님께서 공연 조금 더 진행해도 된다고 허락을 주셨네요. 그러면 저희가 구경해 주시는 여러분들을 위해서 몇 곡 정도만 간단하게…….”
절대 사람도 많겠다, 노래도 마렵겠다, 아싸리 좋다고 버스킹에 빠진 것은 아니다.
감독님이 하라니까. 응.
나 말고 멤버들도 준비가 필요했기에, 대충 상황을 이해시키기 위한 멘트를 던지며 잠깐 시간을 끌었다.
그리고 잠시 후.
“갤러거즈의 Don’t be angry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천천히 다음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 * *
‘황홀하다.’
이창화 감독은 젊지만 업계에서 평판이 좋은 감독이다.
3인조 보컬 그룹 V2V와 미드나잇보이즈의 데뷔곡 뮤직비디오 촬영을 맡으면서 업계에 슬슬 자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 후로는 중견 밴드인 마이비아와 로드니시퀀스 같은 걸 그룹 역시 다뤄 보며 이름값을 높였다.
실력도 있고 열정도 넘치는 만큼 많은 가수들을 만났고, 같이 작품을 만들었다.
그런데도 이처럼 그를 설레게 하는 가수는 럭키데이가 처음이었다.
‘어떻게 고등학생들이 이런 연주를 할 수 있을까?’
이것을 실력이라고 표현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으나, 럭키데이의 음악은 언제 들어도 특유의 기묘한 분위기를 이 감독에게 선사했다.
몰입감이 극도로 상승하고 보컬 김루치아노, 정확히는 그가 부르는 노래의 화자에 깊게 이입하게 되는 것이다.
‘이걸 감성이라고 하는 건가?’
하여튼 특이했다.
아무리 현재 대학생 신분이라고는 해도, 일을 하던 와중에 입학한지라 현역 프로이며 나름 훌륭한 성과를 내고 있는 자신을 매혹시키는 고등학생 밴드라니.
그것도 모든 멤버가 각각 프로에 한 발자국 정도는 걸치고 있는 실력자들이라니.
음악에 있어 조예가 그렇게 깊은 것은 아니지만 이미 프로라 불리며 활동하는 사람들을 여럿 만나 본 그였다.
그런데도 럭키데이의 매력은 정말이지 헤어 나올 수 없는 그런 것처럼만 느껴졌다.
작업할 맛이 나는 친구들이었다.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 줘야겠어.’
그래야 나중에 또 같이 일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승호야, 3번 줌 조금만 당겨 봐.”
“넵.”
이 감독이 눈빛을 반짝이며 스태프에게 조용히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 같았다.
* * *
“아하. 그래서 그냥 버스킹을 진행하라고 하신 거군요.”
“응. 노래가 듣기 좋기도 했고. 하하하. 사심이 조금 들어갔지. 계속 듣고 싶었거든.”
알고 보니 가사를 뱉는 입을 잡아야 할 장면은 첫 테이크에서 가져다 쓰고, 멀리 떨어뜨려서 잡아도 되는 장면은 어떤 노래였어도 상관없다는 모양이다.
능력 출중한 감독의 지휘 덕분에 우리는 다른 노래 두 곡을 더 부르고 기분 좋게 급조 버스킹을 진행할 수 있었다.
와중에 채널 홍보도 쏠쏠하게 했고 말이다.
‘단숨에 열 몇 명이나 구독을 눌러 줬네.’
버스킹을 마치고 확인해 보니 작게나마 채널 구독자 수가 올라 있었다.
적은 숫자였지만 그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어차피 싱크 잘 맞춰서 편집하면 되니까. 하하하.”
다만 합주의 분위기가 아예 가을의 향기와 어긋나면 안 되기에 최대한 비슷한 분위기의 곡으로 공연하기를 주문한 것.
덕분에 부드럽고 감미로운 락발라드만 세 곡을 연달아 불렀다.
“그러면 촬영은 여기서 아예 끝인가요?”
“그렇지. 원했던 장면은 다 뽑았고, 더 필요한 건 없을 것 같다.”
우리는 가을의 향기를 시작으로 외국곡 하나와 한국곡 하나, 마지막으로 가을의 향기를 한 번 더 부르며 촬영을 마쳤다.
잠시 모여서 쉬고 있을 때, 이 감독이 나에게 태블릿을 넘겼다.
“한번 볼래?”
촬영을 진행하면서 즉석에서 컷을 따다 붙여 만든 가편집본이었다.
“와……. 이게 무슨…….”
가편집본은 실로 엄청났다.
“심지어 이게 보정도 안 된 거잖아요? 지금.”
“그렇지. 하하.”
“왜? 뭔데? 뭔데?”
내 반응을 보고 궁금했는지 라희가 잽싸게 다가와 등 뒤에 매달려 영상을 함께 보았다.
그리고 곧 그녀도 감탄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우와…….”
아직 촬영을 하지 않은 부분, 나와 수현이의 개인 연주가 들어가야 하는 컷은 검정 화면으로 처리되어 아무것도 나오지 않고 라희와 재우의 개인 연주와 후렴의 합주, 그리고 이후 뿌옇게 기본 효과만 넣은 2절 이후가 화면에 나온다.
“이게 보이네? 스토리가? 그냥 우리끼리 드럼 두드리고 기타 치면서 노는 장면인데?”
“그러니까.”
길거리 촬영 형식이라 정해진 흐름 없이 연주 장면이 전부이고, 거기다가 즉석에서 만든 가편집본일 뿐인데도 몰입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하하하. 너무 띄워 주네.”
“아니에요. 진짜 이거……. 와…….”
여기에 나와 수현이의 분량이 들어가고, 추가로 화면 보정과 이런저런 효과가 들어간다면?
정말 끝내주는 영상이 나올 것 같았다.
‘어쩌면 이 감독님의 촬영 제안을 받아들인 게 지금까지 했던 선택 중 최고의 선택일지도…….’
어디 점집을 다녀온 적도 아닌데 귀인이 눈앞에 나타난 기분이었다.
“님, 물 안 필요함?”
“아. 맞다. 이리 줘.”
물을 가까이해서 그런가?
물가에 있으면 귀인이 온다, 뭐 그런 점궤들이 유명하던데…….
“좋아. 그럼 오늘 촬영은 여기까지!”
“고생하셨습니다!”
“장비 빠짐없이 챙겨! 다 반납해야 돼!”
“넵.”
“거기 저거 치우고! 쓰레기봉투 어디다 뒀어!”
이것으로 오늘 일은 모두 끝이다.
촬영 스태프들은 슬슬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까도 그랬듯,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다운 법!
“고생하셨습니다!”
“집게 저한테 주세요!”
“님 이거 일반임?”
“아니, 재활용. 저기 따로 모아 두면 돼.”
“오키.”
우리도 팔을 걷어붙이고 뒷정리를 도왔다.
이제 남은 것은 수현이와 나.
‘내일 바로 촬영 마치면 영상 나오기까지 얼마나 걸리려나?’
이미 예고된 CG 작업이나 후보정 등, 과정이 꽤 걸릴 것이다.
마음 편안히 먹고 기다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