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42
41화
“클럽 공연요?”
“그래. 작은 소극장 라이브 기획이 있는데, 너희가 자리 좀 채워 주면 좋을 것 같아서 말이지.”
선우 형은 내게, 정확히는 럭키데이에게 공연을 제안했다.
호스트를 스코프가 맡고, 그들을 중심으로 몇몇 인디 밴드가 공연을 진행한다.
공연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약 15분 남짓.
조금 널널하게는 세 곡, 빡빡하게 하면 네 곡 정도를 부르면 딱 들어맞는 시간이다.
“수익은 기본적으로 엔빵인데 대관이나 이런저런 일들을 내가 다 하거든? 그래서 조금 떼고…….”
공연비를 따로 주지는 않고, 티켓 판매 매출 전부를 러닝타임에 맞춰 나눠 가지는 식이다.
‘좋은데?’
소극장에서 진행하는 작은 규모의 기획 공연이기는 했지만, 우리에게는 좋은 제안이었다.
스코프는 이미 잘 알려진 밴드고, 참가하기로 한 밴드 세 팀 역시 알음알음 실력 있는 팀으로 이름이 있는 이들이다.
겨우 스쿨 밴드인 우리에게 주어지기엔 아주 귀한 기회였다.
“너희 혹시 공연……. 응, 그래. 다 좋다는 뜻이겠지.”
이런 중요한 일을 혼자 마구 결정할 수는 없으니 애들의 의견을 들어 보려고 했으나, 모두 나를 바라보며 눈빛을 반짝이는 것이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던 모양이다.
“할게요. 저희야 좋죠.”
“오케이. 참여 확정. 프흐흐. 사실 할 줄 알고 있었어.”
선우 형은 웃음을 터뜨리며 그럴 줄 알았다고 내 어깨를 두드렸다.
음악 열심히 하는 사람이 갑자기 찾아온 공연 기회를 마다할 리 없다나.
‘그건 그렇지.’
나도 같은 생각이다.
연습하다가 심심하다고 거리 공연을 나가고, 밥 먹다가 노래하고 싶다고 공연을 다니는 사람들이 넘쳐 나는데, 이렇게 떠먹여 주려는 기회도 잘 챙겨 먹지 못하면 락쟁이가 아니지.
“그러면 너희까지 들어가는 거로 하고……. 네 팀이 한 시간 반이면 그럭저럭 괜찮겠네.”
“저희는 15분으로 땡인 거죠?”
“나중에 따로 조율해야겠지만 일단 그렇게 알고 있으면 될 거야. 너희 오리지널 곡은 방금 들려준 별빛 계단 하나지?”
“아 저희…….”
“아니. 가을의 향기라고 또 있어.”
“응?”
선우 형의 물음에 답하려는데 굵직한 목소리가 옆에서 끼어든다.
스코프의 베이스 수영 형이었다.
“너는 어떻게 알아?”
“럭키데이 채널 구독, 좋아요 눌러라.”
“미친. 난 왜 안 알려 줬어? 그것 좀 틀어 줘 봐.”
우리 밴드의 베이스 수현이의 친오빠이기에 소식을 미리 알고 있었던 수영 형이 선우 형에게서 폰을 받아 럭키데이 너튜브 채널을 구독해 주었다.
선우 형은 잠시 우리의 첫 번째 노래 가을의 향기를 감상하고, 수영 형과 수현이가 뒤에서 투닥인다.
“오, 오빠가 우리 채널을 왜 봐!”
“그것 좀 볼 수도 있지. 비밀 채널도 아니고…….”
“그, 그래도…….”
“아, 루치야. 저거 영상 혹시 보내 줄 수 있냐? 소장하고 싶은데.”
“이따가 보내 드릴게요.”
“고맙다.”
“오빠!”
부끄러워하는 수현이와 그저 동생이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했다는 사실에 좋아 죽는 수영 형의 만담이 잠시 계속되었다. 선우 형이 뮤직비디오 감상을 마칠 때까지.
“캬……. 별빛 계단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감성적이고 몽환적인 사운드도 만들 줄 아는구나?”
“괜찮았어요?”
“끝내주던데? 라이브에서 하려면 두 곡 사이에 분위기를 이어 줄 곡이 필요할 것 같기는 해도, 곡 완성도가 워낙 높아서 말이지. 이건 안 하면 관객 우롱이야, 우롱.”
아무래도 우리 노래를 꽤나 만족스럽게 들은 것 같았다.
“오호…….”
공연 전체의 분위기를 살피려면 작정하고 라인업과 선곡 목록을 보며 짜 맞춰야 할 텐데, 그런 제약은 딱히 없는 모양이다.
오히려 노래가 너무 좋다며 어떻게든 신나는 템포와 연속적인 고음의 별빛 계단과 몽환적인 분위기에 감성적인 진행을 가진 가을의 향기 둘 다 무대에서 선보이자고 안달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실 별빛 계단은 이번에 두 번째로 맞춰 본 거라 손에 안 익는 맛이 있어요. 가을의 향기처럼 익숙한 곡이 플레이 리스트에 올라가기는 해야…….”
그러자 선우 형이 또 놀란 척 묻는다.
“이번이 두 번째 합주였다고?”
“진짜로?”
아니, 놀란 척이 아니라 진짜 놀란 분위기다.
‘뭐지?’
나는 잠깐 의아함을 느꼈다.
합주 두 번 해 봤다는 말이 그렇게 놀랄 이야기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시 후, 나는 내 생각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친.”
“맞춰 볼 시간도 없이 그렇게 호흡 조절이 이뤄진다고? 진짜로?”
‘어라?’
생각해 보니 내가 이상한 게 맞았다.
‘아니 그러고 보니까 두 번 맞춰 보고 템포나 타이밍 관리가 이렇게 잘되는 게 말이 되나?’
그동안 동고동락하며 익숙해졌을 뿐. 우리 밴드 연주자들의 곡 습득 속도와 성장 속도는 상식을 벗어나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을 항상 겪으며 지내다 보니, 나까지도 이 괴물들의 말도 안 되는 천재성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게 된 것이다.
‘이럴 수가. 내가 바보라니.’
한쪽에서 멍하니 서 있는 밴드의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나만은 알고 있었어야 했다.
지금의 가파른 성장세는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혹시나 너무 빠른 발전 탓에 성장 원동력을 잃기라도 한다면…….
“아, 님들 데이그린 신보 들어 봄? 타이틀곡 드럼 미쳤던데.”
“오? 들려줘, 들려줘.”
“드, 들어 봤어.”
“이건 팔이 네 개쯤 되는 것 같음.”
“돌아가서 연습해 볼까?”
“편곡해 볼게……. 펑크 음악이라 크게 만져서 변주를 주기는 쉽지 않겠지만…….”
‘아닌가?’
물론 여전히 음악에 대한 흥미를 잃을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현황과 페이스 파악 정도는 해야 한다.
밴드의 대소사를 실질적으로 모두 결정하는 나로서는 말이다.
“하하……. 그렇게 말하니까 조금 이상하긴 하네요.”
“조금? 조금?”
“허허허. 어디서 딱 똑같은 놈들만 잘도 모였다.”
“캬……. 너희 중 한 놈만 우리 밴드에 왔어도 벌써 공중파 진출 성공했겠다.”
“왜 너는 아닌 것처럼 말하냐? 너 대신 루치 들어오면 우리 벌써 카네기홀 공연하고 있었어. 소극장 라이브가 아니라.”
“뭐, 인마?”
스스로에게 조금 더 엄격해지자는 생각이 들어 살짝 긴장하며 답했는데, 어째서인지 형들이 싸움을 시작했다.
혼란스러웠다.
“크, 크흠! 아무튼 리스트부터 고민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음.”
“아, 그래야죠.”
그렇게 투닥거리기를 한참, 이제 서로를 비난할 소스가 다 떨어졌는지 본제로 돌아오는 형님들이다.
“별빛 계단이랑 가을의 향기는 꼭 들어가야 할 거야. 일단은 밴드의 오리지널리티를 보여 주기는 해야 하거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시트를 봐야겠지만, 별빛 계단, 이어 주는 커버 곡 하나, 가을의 향기 순서로 가면 될 것 같은데…….”
“차례는 아마 끝에서 두 번째로 가게 될 거야.”
“그러면 생각했던 대로 하면 되겠네요.”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어떤 곡을 골라야 두 곡이 자연스럽게 이어질지 고민했고, 결국 니르바나의 Smells like highteen spirit을 선곡했다.
“펑크, 그런지, 발라드……. 뒤, 뒤에 공연할 팀이 조금 부담스럽지 않을까?”
“걱정 마. 오빠네 밴드가 그렇게 쉽게 잡아 먹힐 사이즈는 아니야.”
“아, 오빠네였어? 그럼 됐네.”
“걱정 좀 더 해 줘도 되는데…….”
처음에는 타이밍 가리지 않고 잘 먹힐 수 있는 신나는 음악 별빛 계단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하드하고 음울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의 그런지 Smells like highteen spirit으로 분위기를 살짝 돌리고, 마지막으로 서정적인 락발라드 가을의 향기로 이어 가는 식이다.
중간에 멘트가 들어갈 수도 있고, 15분 내외를 맞추기에 딱 맞는 시간이다.
“괜찮겠다. 전에 부르는 거 들어 본 적도 있고.”
“하하. 학기 시작하기 전이었죠?”
“응. 두 번째였나? 멘토링 나오고 얼마 안 됐을 땐데 단기간에 실력이 확 늘어서 오더라고. 그때 엄청 놀랐어.”
“지금은 어때요?”
“놀랐을 때보다 더 놀랐다. 이제 큰물에서 놀아도 될 정도로 늘었더라. 만약 이번 라이브에 기획사 관계자라도 오면 바로 데려가려고 데굴데굴 구를걸?”
“에이, 설마요.”
“진짜라니까?”
조금 낯부끄러운 칭찬이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아무튼 나중에 뒤집어야 할 수도 있겠지만 대충 얼개는 맞췄으니까 됐다. 피곤할 텐데 얼른 들어가.”
“들어가긴요. 바로 스튜디오로 돌아가야죠. 별빛 계단도 더 다듬어야 하고……. 바쁠 것 같아요.”
“쉬엄쉬엄해. 컨디션 무너뜨리지 말고.”
“넵.”
우리의 용건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연습실의 소란은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저도 공연 나가고 싶어요.”
“뭐? 갑자기? 세영이 네가?”
연습실을 나가려 짐을 챙기고 있는 우리에게 함께 멘토링을 듣는 세영이라는 여학생의 말소리가 들렸다.
자신도 소극장 라이브에 참여하고 싶다는 이야기였는데, 그런 것은 전혀 생각에 없었던 선우 형의 당혹스러움이 대화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멘토링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쟤네도 공연에 나가는데, 저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니……. 하…….”
세영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선우 형에게 생떼를 부렸고, 선우 형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그녀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형은 손을 들어 올려 그녀의 말을 멈추고 그 요청을 거절했다.
“달라. 달라도 한참 달라. 세영아, 네가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네, 네?”
평소의 자상하면서도 쾌활하던 모습과 달리 가라앉은 톤으로 말하는 선우 형의 모습이 낯설어서인지, 세영은 살짝 경직된 채 그의 설명을 들었다.
“럭키데이는 오늘 우리한테 만족스러운 음악을 들려줬고, 관객들 앞에서 자기 음악을 상품으로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어. 그러니까, 나는 이 친구들을 내 멘토링 수업을 듣는 학생이 아니라 뮤지션으로서 초대한 거라고.”
“그, 그런…….”
우리 팀을 향한 존중이 가득 묻어 나오는 그의 지적에 세영이 움찔하며 뭔가 반박을 하려 했지만, 선우 형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게다가 너는 지금 당장 함께 공연할 밴드도 없잖아?”
“그래. 지난번에 청소년 대회 나갔다 오면서 다른 멤버들이랑 싸우고는 박차고 나왔다 들었는데?”
이어지는 지적에 수영 형도 옆에서 맞장구를 친다.
뭔가 또 나는 모르는 스토리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 그건……. 무대에선 MR 틀고 부르면…….”
“안 돼. 밴드 라이브잖아? 콘셉트라는 게 정해져 있다고. 보컬 혼자 반주 틀어 놓고 노래만 하는 공연은 전체적인 분위기를 망칠 거야.”
“그래도…….”
설명해 주고 반박하는 과정이 지지부진하긴 했지만 밖에서 듣는 바를 요약하자면 단호한 거절. 그뿐이다.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지 이세영은 자기도 우리처럼, 혹은 우리보다 더욱 좋은 라이브를 할 수 있다고 연신 주장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이세영. 그렇게 우긴다고 될 일이 아니잖아? 얘가 오늘 이상하네?”
사적으로 동네 오빠 동생이고, 따로는 멘토링 스승과 제자 관계라 끈끈했던 관계가 무색하게도 분위기가 확 망가져 있었다.
“안 감?”
“아, 가야지.”
뭐, 저 친구야 어떻게 됐건 우리는 우리 할 일을 하러 갈 시간이다.
우리는 안에서 대화하는 이들을 두고 짐을 챙겨 연습실을 나가 스튜디오로 돌아가려 했다.
덜컹!
그때, 이세영이 연습실 안쪽 문을 박차고 나와 우리와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