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47
46화
널찍하고 깨끗하고, 비싼 음향 장비들로 꽉 들어찬 실내가 우리의 환호와 감탄사를 유도한다.
‘장비가 무슨…….’
말 그대로 대형 스튜디오에서나 볼 법한 물건들이 꽤나 압도적이다.
이 정도까지 기대한 것은 아니었는데, 확실히 인맥을 타고 들어온 곳이라 크게 놀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서 옵쇼. 예약은…….”
“나야, 인마.”
“아. 왔냐. 커피는?”
“여기.”
“크으……. 들어와, 들어와.”
대머리 근육질 거한이 한쪽 구석의 사무실에서 나와 우리를 반긴다.
정확히는 선우 형이 들고 온 커피를 반기는 것 같았지만, 뭐, 상관할 바는 아니다.
“이 친구들이 오늘?”
“엉. 이번에 우리 밴드랑 같이 공연 나갈 동생들이야. 럭키데이.”
“크……. 반갑다, 친구들. 나는 제우스 리라고 한다. 편하게 제우스라고 부르도록.”
대머리 근육 아재, 아니, 제우스 형님이 큰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아주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참 인상적인 사람이다.
“여기 퍼니츠 스튜디오에서 엔지니어 겸 사장으로 일하고 있지. 회사 규모는 영세해도 장비와 실력은 대형 업체 못지않으니 걱정하지 말고.”
그때, 선우 형이 툭 튀어나와 한마디를 던진다.
“제우스는 무슨. 덕순이라고 부르면 돼. 이덕순.”
“야, 예명 놔두고 왜 본명을 말해?”
“왜? 덕순이 좋잖아. 친밀하고. 부모님께서 지어 주신 좋은 이름 놔두고, 뭐? 제우스? 제우스으으?”
“에라이…….”
둘은 꽤 오래 알아 온 관계인지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였다.
스코프 연습실에서 수영 형이랑 보여 주는 모습과 비슷했다.
“이래서 고등학교 친구들은…….”
“푸흐흐흐흐. 개명을 하라니까?”
“아버지가 그것만큼은 절대 안 된다는데 어떡하냐, 그럼? 쯧……. 수영이는? 안 왔어?”
“엉. 어제, 그제 연속으로 밤새우더니 피곤해서 안 되겠대.”
“걔도 참 약해졌어.”
같은 학교를 다니던 친구 사이에 흔히 나오는 근황 토크가 이어진다.
잠깐 그들의 대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우리도 인사를 나눴다.
“김루치아노입니다.”
“오, 너도 예명이야?”
“아뇨, 본명입니다.”
“앗, 아아…….”
특이한 이름을 가진 사람의 고생을 잘 알겠다는 듯, 시선이 짠해진다.
나는 그와 악수를 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루치라고 불러 주세요.”
“그래, 반갑다.”
“저, 저는 진수현이라고 합…….”
“지라희데스! 잘 부탁드립니데스!”
“…….”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재우 녀석은 혼자 딴 곳을 보며 조용하다.
그런 녀석에게 제우스 형님이 먼저 말을 걸었다.
“친구는 이름이?”
“형재우요.”
“응. 반가워. 수현이, 라희, 재우, 그리고 루치.”
제우스 형님은 소란스러운 우리 멤버들과, 정확히는 소란스러운 둘에 과하게 조용한 하나와, 대화를 마치고 스튜디오 안쪽으로 안내했다.
“잠깐 둘러봐 봐. 혹시 세팅이 필요할 것 같으면 말해 주고.”
“넵.”
“넹!”
내부 시설과 장비들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앰프와 스피커, 믹서, 마이크는 물론, 연주자를 위한 드럼도 세 대나 구비되어 있다는 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런 좋은 환경은 우리 애들의 호기심을 제대로 자극했다.
“이건 뭐예요? 페달인가?”
“그거? 보조용 페달이야. 거기 선 끌어와서 여기 끼워 봐. 그러면 메인 페달 따로 두고 이거에는 아예 새 세팅을…….”
“이건요?”
“압전소자 마이크인데, 그냥 장식용이야. 녹음할 때는 안 써.”
“왜요?”
“소리를 너무 잘 잡아서 30km 밖에서 코 고는 송아지 소리도 잡거든. 잡음이 너무 심해.”
“푸핰핰핰핰!”
우리는 이것저것을 만져 보며 궁금증을 토해 냈다.
처음 보는 장비는 물어보기도 하고, 직접 다뤄 보기도 하면서 대충 감을 잡았고, 실제로 재우는 보조용 페달을 넣어서, 사용하는 이펙트 가짓수를 늘리기로 했다.
“괜찮네.”
“별빛 계단이랑 오 마이 앤젤에는 써먹기 좋겠다.”
“오 마이 앤젤이 뭐야. 그 노래 제목은 나의 천사라니까.”
“아니, 세 곡이나 제목이 너무 두 단어로 딱딱 떨어지는 느낌 아니야? 하나쯤은 변화를 줘도 좋잖아. 영어를 쓴다든지.”
“흠……. 나중에 고민해 보자.”
한참 동안 스튜디오 안의 이것저것을 전부 살펴보며 떠든 후에야, 우리는 본격적인 앨범 제작 회의에 들어갈 수 있었다.
“세 곡 들어간다고 했지?”
“반주까지 여섯 곡이죠. 정확히는.”
“그래. 일정은 이틀로 빼면 빡빡하게 가져갈 수 있을 거고, 이용비랑 녹음비는 들었어?”
“넵. 오늘 입금할게요.”
“결제를 미루지 않는 자세, 아주 좋아.”
스튜디오 이용료와 녹음비, 그리고 믹싱 비용까지 얼마나 정산되는지를 다루고, 이후에는 곡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믹싱은 어떤 스타일로 했으면 좋겠다, 그런 방향 있어?”
“가녹음본을 가져오기는 했는데, 필요하세요?”
“있으면 좋지. 미리 방향을 잡아 놓고 가면 좋으니까. 줘 봐.”
나는 스마트폰으로 가을의 향기 뮤비 영상과 나머지 두 곡의 가녹음본을 제우스 형님에게 건넸다.
그는 세 곡을 연달아 들으며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야……. 이게 너희 곡이라고?”
“네.”
“호오……. 와…….”
제우스 형은 꽤나 집중한 듯한 모습이었고, 그의 자세가 마치 우리 음악을 인정해 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가 입을 열었다.
“노래도 좋고 믹싱도 잘됐는데? 직접 한 거야?”
“녹음은 여기 재우네 연습실에서 했고, 소리는 저희 너튜브 채널 운영자 겸 채널 소속사 사장 형이 조금 만져 줬어요.”
“오호……. 이 정도면 거의 프로 수준이신데? 뭐, 그래도 음악만 다루는 전문가랑은 다르니까. 일단 오케이. 지금 넘겨준 버전들이랑 비슷한 느낌으로 살리면 될까? 아니면 따로 생각해 둔 방향이라도?”
“우선 신나는 곡 두 개는…….”
우리는 꽤 오래 대화를 나누었다.
준비해 온 곡들의 제작 의도며 표현 방향과 원하는 분위기 등이 오고 갔고, 어떤 기술을 적용할 수 있을지, 혹은 현실적으로 포기해야 하는 부분은 무엇이 있을지 따위.
녹음 전에 세워야 할 기본적인 계획들이 딱딱 들어서기 시작했다.
녹음 순서는 드럼, 베이스, 세컨드 기타, 퍼스트 기타, 보컬 순. 보컬의 경우 메인 멜로디를 먼저 녹음하고, 화음을 덧입힌다.
녹음을 하는 중간중간에 제우스 형님이 디렉팅을 봐주기로 했고, 우리는 이에 동의했다.
잠시 나눈 대화를 통해 그의 듣는 귀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리듬 악기가 먼저 들어가는 게 아무래도 편하지? 나중에 연주 얹기도 쉽고.”
“넵, 넵.”
“라희는 귀에 이거 꽂고. 나머지는 이쪽으로 들어와라. 드럼에 뭐 더 필요한 건 없지? 부품이든 스틱이든.”
“넵넵!”
“좋아. 가 봅시다.”
녹음실에 우리의 든든한 타이거 드러머 마스크 어쩌고……, 라희만 남겨 두고 모두 컨트롤 룸으로 이동했다.
드르륵!
다 함께 의자를 끌어다 두고 앉아 유리창 너머의 모습을 바라보는데, 꽤나 여유가 넘쳤다.
전에 뮤직비디오를 찍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아, 아. 들리는가, 타이거?”
끄덕끄덕!
제우스 형이 마이크에 대고 부르자 라희가 손을 높이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쌍방향 통신의 확인을 마치고, 곧 녹음이 시작되었다.
딱! 딱! 딱! 딱!
헤드폰을 통해 들리는 메트로놈 박자에 맞춰 라희가 가볍게 스틱을 맞대 소리를 내고는 연주에 돌입했다.
둥……. 둥……. 칫!
부드럽게 톡 터지는 킥과 최대한 가까이 붙여 짧게 울리는 하이햇 소리.
잔잔하고 시리게 진행되는 가을의 향기에 딱 어울리는 드럼 연주다.
적당한 템포의 부드러운 곡인 만큼 감각도 살려 두고 손도 풀 겸 첫 녹음 곡으로 골랐는데, 라희가 가진 특유의 박자 감각이라면 사실 어떤 곡으로 시작했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었다.
“라희 잘하네. 음악 쪽으로 제대로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다면서?”
“네. 스틱 잡은 건 몇 년 되지도 않았고, 아예 전공으로 삼은 것도 이제 1개월이에요.”
“이야……. 상당한데? 당장이라도 세션으로 뛰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제우스 형은 라희의 연주 솜씨를 극찬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녹음의 스타트를 끊는 드러머가 어떤 실수도 없이 테이크도 끊지 않고 쭉 연주를 진행하고 있으니, 전문 엔지니어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보배처럼 보일 것이다.
나는 그런 제우스 형님에게 첨언했다.
“북은 잘 치는데 아직 악보를 제대로 못 봐요.”
“그것도 그렇네. 그래도 지식이야 쌓으면 되니까.”
“그렇죠. 경험 좀 쌓으면 다들 뒤집어질걸요.”
“크……. 이거 기대되네. 오늘 작품 한번 제대로 찍어 내려나?”
제우스 형의 눈이 기대감으로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물론 나도 비슷한 심정이었다.
‘오늘은 별 탈 없이 빠르게 끝낼 수 있겠는데?’
예상치 못한 라희의 선전이다.
아무래도 오늘은 일이 잘 풀리려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런 내 생각은 잠시 후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이야……. 이거 안 좋은데?”
제우스 형이 미묘한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따로 놀잖아. 연주가. 너희 호흡 잘 안 맞는 편이니? 아닌데. 가녹음 파일 틀어 봤을 때는 이 정도가 아니었거든?”
라희의 녹음이 수월하게 풀리고, 다소 삐걱거렸던 수현이의 연주가 어찌어찌 수많은 디렉팅과 피드백에 힘입어 겨우 마무리된 후 재우의 차례까지 왔다.
그리고 녹음은 몇 시간째 지지부진했다.
“호흡이 자꾸 밀려. 리듬 악기 두 개가 박자를 잡고 있는데 혼자 앞서 나가잖아. 그러면 곧장 박자가 동떨어져서 따로 놀게 되고. 결국엔 어떻게든 잘 섞어 놓은 드럼이랑 베이스까지 뭉개지면서 서로 자기주장만 하게 되거든.”
문제점은 세 가지.
무슨 이유인지 평소 잘만 하던 재우가 자꾸만 연주 호흡을 조절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연주의 박자가 혼자 앞서 나가며 동떨어지게 들리게 된다.
결국 그 효과로 세 세션이 각자 자기주장만 과하게 밀게 되어 밸런스라는 것이 아예 사라져 버린다.
작은 문제에서 시작되어 서로 연계되는 문제점들이다.
“드럼에 잘 맞춰서 다시 해 보자. 오케이?”
“네.”
재우 녀석도 뭔가 이상을 느끼고 있는지 표정이 굳은 상태.
평소처럼 자신감만큼은 충만하겠지만,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음에 짜증이 오른 것으로 보였다.
지이잉, 지이이이잉…….
내가 연주한 세컨드 기타의 코드 위로 재우가 솔로 리프가 얹어 준다.
아니, 얹어 주는 게 아니라 방향도, 위치도 잡지 않고 덮어씌운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 같았다.
“스톱, 스톱. 잠깐만.”
제우스 형이 마이크로 신호를 주며 녹음을 끊었다.
아까보다 더욱 심각한 연주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재우 잠깐만 컨트롤 룸으로 들어와 볼래?”
“…….”
재우는 말없이 헤드폰을 벗어 의자 위에 두고는 기타를 가지고 돌아왔다.
“내가 봤을 때는 왜 이렇게 연주가 망가지는지를 먼저 알고 녹음을 해야 할 것 같아. 너희는 어때?”
제우스 형은 내 생각보다 훨씬 뛰어난 디렉터였다.
정확히는 엔지니어가 본업이지만, 많은 음악인들의 녹음을 돕고 지도하며 얻은 짬이 있다고 해야 할까?
쉽지 않은 상황에도 침착하게 문제를 짚고 넘어가는 방법을 안다.
“네.”
“네…….”
“넵.”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녹음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되짚으며 무언가 어긋나는 부분이 있었는지를 살폈다.
그럼에도 제대로 눈에 띄는 부분이 없자 재우의 스튜디오에서 찍었던 가녹음본 겸 너튜브 업로드용 영상들과 폐기한 B컷들까지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하하……”
“아이고. 참.”
“이거구나……. 이걸 못 잡아내고 있었다니.”
그리고 곧, 우리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원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