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48
47화
“재우가 합주에 너무 익숙하네, 이거.”
“네. 정확히는 맞춰 주는 방식에 맛이 들려 버렸어요. 쿠세랄 것도 아니긴 한데, 이게 이렇게 문제가 되네요…….”
합주에 너무 익숙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것이 우리가 내린 결론이다.
“합주에 익숙해서라니? 그게 무슨 뜻이야? 그러면 좋은 거 아닌가?”
와중에 유일하게 감을 잡지 못한 라희가 물어 왔고, 재우가 짜증이 잔뜩 묻은 표정으로 그녀에게 답했다.
“내가 툭 하고 끊어 주면 루치가 슥 따라붙어야 되는데 그게 없음.”
“어……. 어?”
“아니면 내가 지이잉 하고 끌어 줄 때 수현이 두둥 둥 하면서 끊어 주거나 해야 되는데 멈추지를 못함.”
“어……. 그래?”
너무 감각적인 설명에 라희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지만, 나머지는 모두 알고 있다.
멍한 표정을 짓는 그녀에게 내가 대신 설명을 이었다.
“그러니까, 라이브가 아니라 녹음이라서 동료 연주자의 배려가 없어 힘들단 얘기야.”
“아하?”
“라이브 합주 때는 우리가 끊거나 늘여 주면서 박자를 맞춰 줄 수도 있고, 혹시 우리 힘이 빠지면 자기가 덮어서 가려 주고 했는데, 녹음은 그런 사소한 배려나 오차가 하나도 없어서 오히려 마음대로 연주하면 더 망가진다는 말이지.”
“오호…….”
라희는 내 설명을 모두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강물의 빠른 유속에 너무 익숙한 물고기가 평화로운 어항에서 적응을 못 하고 죽는다는 뜻이군!”
“어……. 그래…….”
비유가 이상하기는 했지만, 아무튼 대충 알아들은 것 같았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이걸…….”
원인은 발견했으니, 이제 대안과 해결책을 마련할 시간이다.
다만 이전에 뮤직비디오 촬영을 할 때처럼, 마치 합주하듯 함께 연주를 해 주는 식으로 녹음을 진행하기에는 너무나 난해한 상황이다.
“한 번에 녹음을 진행하게 되면 소리 관리가 까다로워. 아무리 앰프 없이 같이 연주를 한데도 잡음이 섞일 수밖에 없고, 믹싱도 어려워지고…….”
예전과 같은 쉬운 해결은 현실적으로 힘들 것으로 보였다.
“차라리 녹음 순서를 바꿔 보는 건 어때?”
제우스 형이 제안했다.
“재우가 드럼 박자에만 맞춰서 먼저 녹음을 하고, 수현이랑 루치 부분을 재녹음하는 방향으로 가면 더 쉽게…….”
재우가 먼저 녹음을 하고 수현이와 내가 그에 맞춘 연주를 덧입히는 방법이다.
곰곰이 생각해 봐도 더 좋은 방책이 없을 것 같았고, 큰 문제가 될 부분도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작은 문제가 단 하나.
“니은.”
“응?”
재우의 자존심이었다.
“바꿀 필요 없음.”
내가 제우스 형의 제안대로 녹음 순서를 바꾸는 것을 수락하려 하는 순간, 재우가 우리를 만류했다.
“일단 퍼스트는 미디로 대충 찍어 놓고 보컬 먼저 하셈. 나 잠깐 연습 좀 하고 옴.”
“그거 잠깐 두드려 본다고 되겠어? 차라리…….”
“형, 여기 연습할 곳 있어요?”
“어……. 있긴 있지. 저기 부스 쓰면 되는데…….”
재우는 자신의 기타와 핸드폰을 들고 컨트롤 룸을 빠져나갔다.
곧 연습용 방음 부스의 문이 닫히고, 우리가 있던 컨트롤 룸이 정적에 휩싸였다.
“허어……. 그렇게 금방 해결될 일이 아닌데…….”
재우가 나가는 모습을 보며 제우스 형이 중얼거렸다.
“어떻게든 연습으로 이겨 내겠다는 생각 같은데, 그런다고 이 짧은 시간에 안 되던 것이 갑자기 되겠어?”
그러나 나와 라희, 수현 세 사람은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녹음 계속 진행하죠.”
“응? 괜찮겠어? 진짜로? 이거 빠르게 해결 안 되면 너희 재우 연주 지우고 세션 불러야 할 수도 있어.”
“네.”
이러니저러니 해도 우리 사이에는 절대로 무너질 수 없는 신뢰의 선이라는 것이 있다.
퀄리티를 생각하면 재우의 연주를 없애고 세션을 따로 불러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이 불안할 만도 했으나, 그 누구도 그의 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아무리 큰 문제가 터졌다고 해도, 쟤가 진짜배기 천재라는 사실이 사라지지는 않아요.”
다시 녹음이 개시되었다.
* * *
천재란 무엇인가?
“제발 가지 마요! 라고 외치고 싶어도!”
보컬 파트를 녹음하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드는 생각이다.
글자의 의미는 하늘 천과 재주 재를 써서 하늘이 내린 재능쯤.
사전의 정의로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남들보다 훨씬 뛰어난 재주.
“떠나가는 그대 모습을 바람에 실어 보낼게요, 워어허…….”
“오케이. 끝마디 다시 한 번만 가자. 조금 늘어지는 것 같으니까 약간만 더 힘줘서 톡톡 끊어 봐.”
“넵!”
그리고 나는 천재를 이렇게 생각했다.
‘평범한 사람이 오랜 시간을 들여 얻을 실력을 단시간에 쟁취할 수 있는 사람. 남들이 만들 수 없는 새로운 길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사람.’
그리고 그런 생각 안에서 재우는, 자신에게 닥쳐온 위기를 단시간의 노력만으로, 새로운 길을 만들어 훌륭히 극복할 수 있는, 천재적인 연주자가 맞았다.
끼이익!
두 시간이 채 되지 않아 연습을 끝마친 듯, 연습용 방음 부스의 문을 열고 돌아오는 저 모습을 보면 말이다.
“오. 연습은 끝냈어?”
“이응.”
비어 있던 멜로디 기타 연주자가 돌아왔으니, 보컬 세션은 잠깐 접어 두고 녹음 순서를 다시 뒤집어도 괜찮다.
“지금 바로 할 거야?”
“이응.”
그는 바로 녹음을 진행하겠냐는 내 물음에,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루치 녹음은 여기서 끊고, 재우 들어가.”
“네.”
우리는 컨트롤 룸에, 그리고 재우는 녹음실로.
한 손에 기타 한 대 움켜쥐고 걸어가는 모습이 무슨 전쟁터 나가는 병사 같다.
“준비됐어?”
끄덕.
“오케이. 처음부터 끊지 말고 쭉 가 보자.”
제우스 형이 마이크를 통해 헤드폰을 쓴 재우에게 말했고 재우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약 두 시간에 걸친 연습의 결과물을 증명할 차례였다.
지이이이잉! 지징, 지이잉…….
아주 멋지게 말이다.
“와…….”
“역시.”
“믿고 있었다구!”
우리 셋은 컨트롤 룸 너머에서 재우의 모습과 그가 만들어 내는 소리를 들으며 감탄을 토했다.
감상할 맛이 나는 깔끔한 연주.
선율을 자유자재로 풀었다 조였다 하는 그 완급 조절이 아주 황홀한 느낌이다.
지잉, 지지징, 디리링!
“허……. 안 틀리네.”
그 전부터 계속해서 문제가 되던 과도한 레이백이나 후진입도 없었다.
오히려 전반에 깔려 있는 드럼, 세컨드 기타, 베이스라는 자갈이 깔린 돌밭에 액체처럼 스며들어 존재감을 잃지 않는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어떻게 한 거지?”
재우는 정말로 그 짧은 시간 안에 자신에게 닥쳤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돌아왔다.
아니, 오히려 더욱 발전된 것도 같았다.
“흐흐흐…….”
이래서 팀플이라는 건 능력 있는 놈들과 해야 한다.
“휴우우……. 괜찮아요?”
어느새 3분 남짓의 러닝타임이 모두 지나가고, 재우가 왼손을 기타에서 떼고 꼼지락거리며 물었다.
제우스 형은 아무 말 없이 엄지를 들어 올렸다.
위기는 허무하리만치 간단하게 극복되었다.
* * *
“세션? 연주를 못 해서? 굳이?”
“엥?”
“완전히 갈아엎게 될 수도 있을 줄만 알고…….”
“그건 그냥 겁주는 거지. 어떻게 밴드 앨범을 내는데 멤버 연주를 빼 버리냐? 허허허.”
제우스 형은 혹시나 밴드 해체 각이 서는 것은 아닌지 불안했다며 칭얼대는 우리 멤버들에게 껄껄 웃으며 말했다.
“야, 야. 연주 허접하고 노래 못하는 밴드들이 한둘인 줄 아냐? 얘들아. 너희는 말이다. 좋은 음악을 만들고 들려주는 사람들이지, 노래 잘하고 연주 잘하는 사람이 아니야.”
맞는 말이다.
밴드의 실력, 그것은 고작 연주 솜씨와 보컬 능력 같은 걸로 평가될 수 없는, 꽤나 다각적이고 복합적인 평가 영역이니까.
국내 인디신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하는 밴드들 중에는 형편없는 연주 실력에도 좋은 노래와 훌륭한 작곡 능력으로 마니아들의 지지를 듬뿍 받는 이들도 꽤나 있었다.
“그냥 잘하기만 해서 락스타가 될 수 있으면 그게 서커스지, 음악이냐?”
“그것도 그런데…….”
“노, 농담이라도 그건 너무 무서웠어요…….”
“그래. 미안하다, 미안해. 그것보다…….”
농담이 너무 무서웠다는 수현이에게 가볍게 사과한 후, 제우스 형은 재우를 바라봤다.
“도대체 연습실에서 뭘 하다 왔기에 그 짧은 시간 안에 쿠세를 다 고치고 온 거야?”
아무래도 진심으로 궁금한 듯한 모습이었다.
‘하긴.’
나도 그의 마음을 한껏 이해할 수 있었다.
치명적인 문제가 여러 차례에 걸쳐 나타났고, 그 원인을 찾아 당장 극복하기 힘들 것이라는 진단을 내린 것이 고작해야 두 시간 전이다.
그런데 연주자가 기타 한 대 들고 구석에 처박히더니, 잠시 후 돌아왔다. 모든 문제를 고친 채로 말이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이다.
“연습하고 왔어요.”
“어……. 그러니까 어떻게?”
“그냥…….”
재우는 설명을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만약 그에게 기타를 어떻게 치는지를 묻는다면, 왼손으로는 코드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피크로 기타 줄을 때리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로봇 같은 녀석에게 질문이 있으면 최대한 자세히 물어야 한다.
“아, 안에서 그냥 악보 보고 연주만 했어?”
“니은.”
“그럼? 연습 내용이 뭐였어?”
의외로 소통 능력 0레벨로 같은 속성을 공유하는 수현이가 제우스 형의 의문을 풀어 주기 위해서인지 자세히 캐물었다.
“님들 세션 먼저 녹음한 거 들으면서 내가 맞췄음.”
“아……. 그러니까 상호 보완이 불가능한 연주에 익숙해지고 싶었다는 얘기지?”
“이응.”
“근데 그게 그렇게 쉽게 돼?”
“그냥. 필 오는 대로 치면 됨.”
“어…….”
그나마 진전된 얘기도 불친절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웬일로 본인 역시 답답하다는 듯, 재우가 설명을 더 길게 잇는다.
“같이 할 때는 내 필을 님들이 받아서 따라 하면 되고, 님들이 필로 연주하면 내가 따라가도 됨. 근데 녹음은 그게 안 됨.”
“그렇지.”
“응.”
나와 수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합주할 때는 드럼 박자를 주어진 환경이라고 생각하고 맞춰서 후렸다면, 녹음할 때는 다른 세션들도 드럼 박자처럼 커다란 환경이라고 보면 됨. 오키?”
“어…….”
“어…….”
“그리고 거기에 맞춰서 후리면 됨.”
“아…….”
역시 이해할 수 없었다.
‘어쨌든 잘 해결했다, 그 뜻이네.’
나는 곧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일은 잘 풀리게 되었으니까.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 방법이야 어찌 됐든, 재능충이 난관을 넘어서는 방법을 머리로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스으읍……. 난 또 이런 애들은 처음 보네.”
그런 우리를 보며 제우스 형이 중얼거렸다.
“녹음이 아예 안 될 정도로 이상한 쿠세가 있었는데, 그걸 눈 감았다 뜰 시간에 고쳐 오고, 다른 애들은 무슨 만질 필요가 안 느껴질 만큼 연주가 능숙하고……. 학생 밴드 수준이 아닌데?”
“선우 형이 괜히 소개해 준 게 아니죠. 흐흐흐.”
“네 똥 굵다.”
그는 이런 녹음은 처음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잠시 장비를 좀 만지겠다며 쉬는 시간을 제안했다.
“이러면 리듬 다 깔아 놓고 퍼스트, 보컬 순으로 가야 할 테니까, 다음 곡부터도 그렇게 진행하는 걸로 하자. 형 잠깐 선 좀 정리하고 올게. 저거 드럼 의자에 밟히겠다.”
“넵.”
“목마르면 냉장고 안에 있는 거 꺼내 먹고.”
제우스 형이 자리를 비우고, 우리는 음료수 하나씩을 꺼내 들고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눴다.
“님. 수현이 들어올 때 조건 달기로 했었지?”
“응?”
뜬금없이 재우가 예전에 수현이를 스카우트했을 때를 언급했다.
“앨범에 꼭 한 곡은 베이스 솔로 넣기.”
“아, 맞아. 이번 앨범이야 데모니까 정식으로 발매할 때가 되면 넣는 쪽으로 합의를 봤지.”
그리고 말했다.
“나도 조건 하나 달고 싶음.”
“응?”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 녀석이 뭘 요구할지 기다렸다.
그리고.
“녹음보다 라이브에 더 힘을 쏟고 싶음. 이거 별로임.”
“아하.”
정말 그답다면 그다운 말이었다.
“당연히 콜이지.”
물론 라이브 공연은 언제나 옳기에, 나는 선뜻 그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애초에 라이브보다 녹음을 더 많이 할 수는 없잖아.’
라이브보다 녹음을 더 많이 하려면 앨범을 도대체 몇 장이나 찍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