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49
48화
“이것이……. 앨범……!”
드디어 럭키데이의 첫 데모 앨범이 완성되었다.
“의외로 그림이 너무 화려하지 않게 잘 붙은 것 같아.”
“이쁨.”
“그러게.”
앨범의 첫인상이란 먼저 우리의 눈을 자극하는 패키징이다.
중간중간이 희게 비어 있으면서도 테두리 선 없이 색으로만 꽉 채운 그림.
“진짜 칫솔로 이걸 그리네.”
“내가 말했지? 수진이 잘한다니까? 걔가 미술 전공의 김루치아노야.”
“그런 듯.”
표지 디자인을 맡아 준 사람은 라희의 친구이자 우리 학교 미술 전공의 희망, 강수진 학생.
그녀는 라희를 통해 제작 의뢰를 받자마자 사흘 정도 연락이 없더니, 곧장 단 두 장의 그림을 보내왔다.
“이게 너고, 이게 난가?”
“그, 그런 것 같지? 가운데 커다란 게…….”
“루치지 뭐.”
“헤헤헤…….”
강수진의 말에 따르면 펜 터치 없이 물감으로만 럭키데이 멤버 4인의 형상을 만들어 냈고, 각각 기타, 드럼, 베이스, 마이크의 모습이 연상되도록 배치와 색감 조절에 힘을 기울였다고.
제작 도구는 편의점에서 산 일회용 칫솔과 수채화 물감.
꽤 이상한 방식이긴 했지만, 추상적이면서도 담백한 맛이 참 중독성 있는 표지가 나왔다.
‘표지 퀄리티도 예상보다 훨씬 좋고, 내용물도 아주 만족스러워. 잘됐어.’
내용물은 표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는데 과연 전문가는 전문가인 것이라, 세 곡만 담아 두고 연속 재생을 아무리 돌려도 질리지 않는다는 강수진 학생의 평가가 있었다.
‘믹싱도 완벽하고 마스터링 역시 흠잡을 곳 없으니까 귀가 피로하지 않지. 오래 듣기 좋아.’
또한 전반적인 작곡과 프로듀싱을 맡은 나 역시 곡 배치와 강약 조절에 힘을 기울였으니, 어정쩡한 미니 데모들과는 차원이 다른 작업물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 맞다. 루치, 어젯밤에 네 통장으로 녹음비 입금했어.”
“응, 확인.”
“이제 돈 계산은 다 끝이야?”
“엉. 녹음 비용이랑 엔지니어링 비용 같은 건 녹음 첫날에 바로 당일 계산 때려서 넣을 곳도 없어.”
“크으으……. 좋구먼!”
제우스 형의 도움으로 CD 제작비를 상당히 절약할 수 있었고, 그는 녹음비나 믹싱비 등등 녹음과 엔지니어링에 들어가는 비용도 상당히 싸게 받아 주었다.
덕분에 우리는 제작비를 굉장히 적게 들일 수 있었다.
“총액 250에 이렇게 퀄리티 좋은 앨범 뽑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데.”
“싸, 싼 거야?”
“응? 응. 그렇지. 우리가 밴드라서 그렇지, 솔로였으면 세션비도 필요했을 거고, 자작곡이 아니면 작곡료도 들어가고, 아는 사람 소개로 가지 않았으면 녹음비도 더 비쌌을 거야.”
“으아……. 60만 원도 큰돈이었는데…….”
지출액은 멤버당 60만 원에 나 혼자 70만 원으로 합이 250만 원.
하지만 저렴하게 제작했다는 말이 그 퀄리티가 떨어진다는 뜻은 아니다.
“어지간한 프로들 음원보다 훨씬 잘 뽑혔어.”
“이응.”
“응, 응.”
물론 작업물의 퀄리티와 판매량의 관계가 썩 유의미하다고만 볼 수는 없겠지만, 기분이 좋은 것을 애써 참을 이유는 없다.
애초부터 목적은 눈에 보이는 업적 만들기로 진로에 관한 확고한 의지 표명은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거 보고 막 MQ 뮤직이나 위피 엔터 같은 대형 기획사에서 연락이라도 오면 어떡하지? 우리 밴드 전원 스카우트겠지? 나 아이돌은 싫은데, 설마 아이돌 그룹으로 묶지는…….”
“잘도 그러겠음.”
관계자에게 어필할 수단으로는 아주 훌륭했다.
“아, 왜! 그럴 수도 있지!”
“메이저 회사들이 인디 공연을 왜 옴. 그리고 우리 앨범을 왜 삼.”
“그냥! 놀러 왔다가! 응! 오, 얘네 싹수가 있군! 하면서!”
“아예 가능성 없는 얘기는 아니야.”
나는 악쓰는 라희와 비웃는 재우를 멀리 떨어뜨리며 말했다.
“의외로 기획사 관계자들은 인디 공연에 많이 찾아가는 편이야.”
“엥? 왜?”
궁금해하는 재우.
나는 뭘 그런 걸 묻느냐는 듯 답했다.
“당연히 뭐라도 주워 먹을 게 있는지 보러 가는 거지.”
“잉.”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혹시라도 건질 원석은 있는지, 돈을 주고 구입할 만한 노래는 없을지, 그리고 밴드 공연에서 참고할 것은 없는지 따위를 살피기 위해서다.
대부분의 기획사가 아티스트를 구하는 방법에는 알려진 아티스트와 직접 접촉, 오디션, 그리고 무명 신인 발굴 등이 있다.
“그럴 확률이 높지는 않겠지만, 혹시 오디션 같은 곳은 잘 찾아다니지 않는 무명 실력자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아하.”
그런 실력자들의 비율이 높지 않고, 그렇게 현장을 뛰어다니는 기획사 관계자들 중 건실한 이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확실히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당장 TV만 틀었다 하면 나오는 유명 가수 베놈케이도 인디 가수 출신으로 기획사 관계자의 눈에 띄어 OST 스타가 되었고, 몇 년 뒤면 해외에서 대성공을 거둘 아이돌 리릭스터 역시 언더 래퍼였으니까.
‘그리고 나도 첫 계약을 라이브 공연하다가 했었고.’
비록 그 계약한 회사라는 곳이 빌어먹을 사기꾼 놈들 본거지였지만 말이다.
“으으…….”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니야.”
갑자기 내 첫 기획사 사장 김상승, 그 사기꾼 놈의 얼굴이 떠올라 속이 안 좋아졌다.
나는 왜 그러냐며 몸이라도 안 좋은지 걱정하는 수현이에게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하고, 깨지려는 멘탈을 붙잡았다.
‘이제 그놈들은 만날 일은 없어. 다시 만나더라도 속지 않을 거고.’
갑자기 트라우마가 도지려고 한다.
어쩌면 내 생각보다 그 당시의 기억이 내게 큰 상처였을지도.
“크흠. 아무튼 이걸로 전부 끝. 이제 연습 열심히 해서 무대 잘 꾸미는 것밖에 안 남았어.”
“그거야 뭐.”
“자신 있다, 이거지?”
“당근!”
아무래도 녹음 과정을 거치면서 라이브에 대한 그리움이 커졌던 것은 비단 재우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래. 역시 녹음보다는 공연이지. 그니까 연습하러 가자.”
“재우 스튜디오로?”
“아니. 오랜만에 학교 연습실.”
“좋지!”
“아, 맞아. 그 전에…….”
짐을 싸고 계단을 올라가려던 때, 나는 잠깐 멈춰서 가방에서 CD 몇 장을 꺼냈다.
“왜? 뭔데?”
그런 내 모습에 호기심이 일었는지 애들이 날 쳐다본다.
나는 덤덤하게 답했다.
“선생님들 드려야지. 앨범 만들었다고.”
“아하.”
일단 우리 담임 윤영현 선생님, 그리고 옆 반 담임 겸 밴드 실습 담당 김하선 선생님, 그리고 교양 음악의 권인찬 선생님이다.
“세 분만 드리면 되나?”
“응. 들려드리고 싶은 분이 더 있으면 가져다드리고.”
“난 딱히.”
“나, 나도.”
“니은.”
윤 선생님은 담임이신 데다가 여러모로 내 편의를 봐주셨으니 제자의 작업물 정도는 보여 드려야 당연한 일이고.
김하선 선생님은 밴드 실습 수업 담당이신 건 물론이고, 우리 밴드에게 일감을 물어다 주시거나 가끔 야식까지 사 주시는 등, 든든한 후원자시니까.
‘코피 자주 흘리시는 게 조금 걱정되는데, 연근 즙이라도 따로 해서 팩으로 가져다드리면 좋으려나?’
그리고 권인찬 선생님은 지라희라는 걸출한 드러머를 내게 간접적으로 연결시켜 주신, 어찌 보면 창업의 기틀을 다지게끔 도와주신 분이다.
“재밌게 잘 들어 주시겠지?”
“글쎄.”
“잘 못 들을 수 없는 앨범임.”
“푸하하하!”
아마 자신들이 도움을 준 밴드가 처음 찍어 낸 작업물에 기꺼워하시리라.
“오호. 그동안 팀 만들고, 같이 음악 한다고 돌아다니는 애들은 꽤 있었지만, CD까지 찍어 온 녀석들은 너희가 처음이다.”
“그러게요. 추진력이 보통이 아닌데?”
“하하하……. 열심히 만들어 봤어요.”
우리는 연습실에 올라가기 전, 교무실에 들러 윤영현 선생님과 김하선 선생님에게 앨범 CD를 건넸다.
“고맙다. 이따가 들어 보마.”
“넵.”
“난 지금 들어 봐야지…….”
“어딜. 교재 신청서 마무리할 때까진 딴짓 못 할 줄 아십시오, 1반 담임 선생님.”
“아아아…….”
선생님들은 역시 제자들의 선물에 꽤나 기뻐해 주셨다.
‘드리는 나도 기분이 좋네.’
뭔가 수업 외 영역에서 주도적으로 자신들의 전공 학습을 끊임없이 해 나가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게 만드는 반응이다.
“아, 맞다.”
CD를 드리고 떠나려던 차에 김하선 선생님이 우리에게 말했다.
“너희 연습실은 드럼도 옮겨야 하고 불편할 테니까 음악실 A에서 연습할래? 선생님이 일 끝내고 나서 맛있는 거 사 줄게.”
“오!”
“아, 그래도 될까요?”
“그럼. 대신 끝나고 청소 좀 같이하자. 어때?”
“아하. 저희는 좋아요.”
“열쇠 가져가.”
안 그래도 교실과 다른 건물에 있는 음악실 B에 들러 권인찬 선생님을 뵈어야 했는데, 같은 건물의 음악실이라면 땡큐다.
비록 음악실 사용과 맛있는 저녁을 위해 청소라는 대가를 치러야 하기는 해도, 선생님 부탁이니까.
우리 교실이 있는 별관의 연습실보다 더 넓기도 하고, 시설도 좋고.
“자. 가자, 가자.”
“근데 이상하지 않아? 별관 음악실은 제1 음악실, 제2 음악실로 해 놓고, 왜 동관 음악실은 A, B로 구분해?”
“모름.”
“그, 글쎄?”
“이건 음모가 있어. 분명 더럽고 음습하고 어두컴컴한 음모가…….”
“잠깐. 음모는 뭔 음모…….”
“미술실도 그런가?”
“별관에는 미술실 하나밖에 없고, 동관은 A, B더라.”
“수상해, 수상해.”
우리는 쓸데없는 소리들을 읊어 대며 동관으로 향했다.
대부분 떡밥을 던져 대는 것은 라희였지만, 우리도 나름 그녀의 헛소리에 즐겁게 어울렸다.
* * *
“이런……. 벌써 앨범까지……. 고생이 많았겠네요.”
“아, 아뇨. 그냥 저희끼리 활동을 하다 보니까 점점 욕심이 나서 일을 키우다 보니…….”
“그래도 세 곡짜리나마 앨범이라는 것을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럭키데이는 학생 밴드답지 않게 활동에 심지가 있는 것 같아요. 잘하고 있어요.”
권 선생님도 역시 마찬가지.
우리의 활동력과 추진력에 칭찬을 해 오셨다.
다만 곰곰이 생각하면 앨범의 내용은 아직 평가받지도 못했는데, 학생 밴드라는 이유 하나로 그저 그럴싸한 활동을 한 것 자체를 칭찬받는 느낌이라 썩 온전한 칭찬은 아닌 듯 느껴졌다.
그때 나의 인정 욕구가 불쑥 가슴에서 솟아올라 목구멍으로 튀어나왔다.
“그, 선생님.”
“네?”
“혹시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앨범 들어 보시고 감평을 조금……. 요청드려도 될까요?”
단지 학생 밴드라서 으레 들을 법한 칭찬 외에 다른 것도 원한다는 가벼운 마음만은 아니다.
업계에서 거목으로 인정받는 A급 프로듀서인 권 선생님의 감상평은 어떨까? 그런 궁금함과 기대 역시 있었고, 그의 냉철한 평가를 통해 우리의 성장 동력을 불태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호오…….”
선생님의 눈빛이 반짝였다.
“감평이라……. 좋지요. 그런데…….”
꿀꺽.
온화하고 인자한 노선생의 눈이 날카롭고 무게 있는 프로듀서의 눈으로 바뀌었다.
“조금은 날카로울 수 있는데, 괜찮을까요?”
긴장감이 등줄기를 타고 확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