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52
51화
“둘이 함께 걸었던 시간들이 다시 흘러가네요!”
그런 날이 있다.
뭐를 해도 잘되고, 평소 잘하던 일은 더 잘되는.
세간에서는 ‘시험 기간’이라고도 부르는 그런 마법의 날이.
‘노래가 너무 쉽다.’
흔히 날 잡았다고, 혹은 감각 터지는 타이밍이 왔다고도 하는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아도 호흡 분배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며, 고음 파트에 진입할 때도 성구 전환이 마치 손발 움직이듯 편안했다.
“잘 가요! 잘 가요! 행복하세요, 이렇게 보내 줄게요!”
리듬 기타 스트로킹에 맞춰 보컬 끝에 살짝 기교도 넣어 주며 즐겁게 노래를 불렀다.
사실 이렇듯 노래가 편해질 만도 한 게, 그간 대회다, 녹음이다, 피드백이다 하며 노력도 참 많이 했다.
당연히 포텐 터지는 날이 올 수밖에 없는 시기이기도 했고, 멤버들과의 합도, 나 개인의 실력도 자연스럽게 성장할 때가 된 것이다.
“제발 가지 마요! 라고 외치고 싶어도!”
신기한 일이다.
기술적인 완성도가 더 올라갈 줄은 알았지만, 알고 있던 지식들을 체화하는 과정을 통해 이렇게 실력이 늘어날 줄은…….
“떠나가는 그대 모습을 바람에 실어 보낼게요! 워, 후우우…….”
덕분에 첫 스타트를 기분 좋게 끊을 수 있게 되었다.
“아…….”
저 멀리 분명 악심을 가득 품고 들어온 것이 분명할 세영이라는 친구가 입을 헤 벌리고 우리를 보고 있는 것만 봐도 그랬다.
‘터졌다. 운빨.’
엉망진창인 내 인생에도 대운이라는 것이 드는 날이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단 한 번이라도! 돌아보려면 가지 마요! 그대 뒤에서 눈물 감춘 채로…….”
자연스럽게 곡이 흐르는 대로 내 몸을 맡기듯 노래를 이어 나갔다.
편한 마음가짐 탓에 흐트러질 만도 했는데, 첫 곡은 너무나 완벽하게 끝났다.
“후…….”
살짝 가쁜 숨을 정돈하며 객석을 훑었다.
원래 신나게 시작해 잔잔하게 끝내는 순서를 생각했지만, 중간 분위기의 곡이었던 Smells like highteen spirit을 빼 버리고 새로 만든 신나는 곡 오 마이 앤젤을 넣는 바람에 거꾸로 가을의 향기를 제일 앞에 배치하게 되었다.
생각해 두었던 순서와 달라져 감정 조절이 잘되었을지 조금 걱정스러운 마음이 있었는데…….
짝짝짝짝짝!
“잘한다, 쟤네.”
“럭키데이라고 했나?”
다행히 반응은 아주 좋았다.
“반갑습니다, 저희는 럭키데이라고 합니다.”
“와아아아!”
“멋있다!”
“잘생겼다!”
“하하. 사실적인 거짓말 감사합니다.”
“하하하!”
첫 노래 이후 인사와 소개.
딱히 이 순서에 큰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내 취향일 뿐이다.
‘노래를 먼저 시작하고 소개하면 관객들의 집중력이 올라가는 것 같단 말이지.’
집중력이라는 것을 누가 측정해 통계를 낸 것도 아니니 감각의 영역이지만, 일단 내 경우엔 그 분위기가 더 좋아서 첫 노래를 부르고 나서 인사를 하는 쪽을 선호하는 편이다.
물론 그 분위기라는 것은 공연에 있어 아주 큰 영향을 끼친다.
“아무튼 저는 이 럭키데이라는 밴드에서 비주얼 담당 겸 세컨드 기타 겸 보컬을 맡고 있는 김루치아노라고 합니다. 참고로 본명입니다.”
“하하하하!”
나는 공연이란 연주자와 관람객의 상호 소통, 그것도 서로의 감정을 줄로 삼아 치열하게 밀고 당기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초장에 분위기를 내가 원하는 대로 잡고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큰 메리트가 된다.
“첫 곡으로 저희 밴드의 첫 번째 오리지널 곡 가을의 향기 들려드렸는데, 어떻게 여름 되기 전에 듣기에 괜찮으셨을지 모르겠네요.”
“하하하…….”
썰렁한 농담을 조금씩 섞은 멘트에도 슬쩍슬쩍 맥이 끊기지 않도록 반응이 새어 나온다.
이게 전부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감성을 미리 설득력 있게 공유한 결과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만약 첫 노래가 구렸거나, 집중력이 뚝뚝 끊기는 설득력 없는 공연이었다면 이렇게 화기애애한 장면은 만들 수 없었겠지.’
그것이 공연 후 멘트라는 간단한 배치에 따른 결과물인지는 입증하기 힘들지만 말이다.
“저희 멤버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우선 이쪽에서 묵묵하게 기타만 만지고 있는 친구가…….”
나는 간단하게 멤버 소개를 이어 나갔다.
“기타리스트 레이어즈, 형재우입니다.”
지이이잉! 지지지지징! 지잉!
“다음은 베이스 기타, 진수현입니다.”
두둥, 디이잉! 투둑! 디잉!
“마지막으로 드러머, 블랙 더 드러머 타이거!”
두두두두두두둥! 채애앵!
“무슨 타이거?”
“블랙 더 드러머 타이거래.”
“푸하하! 그게 뭐야?”
소개에 맞춰 아주 짧게 손 풀기를 보여 주는데 반응이 썩 나쁘지만은 않다가 라희의 소개에서 몰입도가 살짝 깨진다.
‘어쩔 수 없지.’
그래도 크게 문제가 될 수준은 아니고, 오히려 유머러스한 분위기 안에서 웃음이 나오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여긴 채 넘어갈 수 있다.
다만 오늘의 경우 점점 신나는 음악으로 넘어가는 세트 리스트를 꾸려 괜찮을지 몰라도, 잔잔하게 발라드로만 무대를 채워야 할 때가 오면 분위기 조성에 방해가 될지 모른다.
‘그건 나중에 결정하고, 우선은 지금 공연에 충실하자.’
언젠가 라희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자고 다짐을 한 후, 나는 진행을 이어 갔다.
“그럼 저희 다음 곡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목은 오 마이 앤젤이고, 방금 곡과 달리 뛰면서 즐길 수 있는 신나는 곡이니까 즐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갑시다!”
지이이잉! 둥둥! 둥둥! 둥둥! 둥둥!
재우의 기타가 한차례 기타 줄을 훑는 슬라이딩으로 분위기를 전환하고 드럼이 그 뒤를 받친다.
부우웅, 두웅! 두둥! 두둥! 좌좌좡!
그렇게 두 마디를 흘려 보낸 후 베이스, 세컨드가 따라붙는다.
징, 징징! 지징 징징!
거칠게, 신나게.
정박에 딱딱 꽂아 넣는 정직한 세컨드의 코드 위에 기교 넘치는 기타 멜로디와, 날카로운 선율 사이를 채우는 그루브감 있는 베이스 소리가 섞여든다.
에너제틱, 다이내믹.
곡의 테마를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완성판 오 마이 앤젤이다.
“말을 할 수 없었지, 너를 사랑한다고. 맘속에만 숨겨 두다 놓쳐 버릴까.”
모두의 의견을 모아 만든 노래이지만 나에겐 훨씬 각별한 맛이 있는 곡이다.
‘무대다. 무대야.’
무명 시절의 고생, 소속사 사장의 사기, 갑작스러운 부상, 그리고 죽음까지.
그 많은 일들을 겪고도 난 여전히 무대에서 노래를 하고 있다.
“이젠 놓치지 않아. 붙잡고야 말 거야. 다신 헤어지지 않을 거야.”
음악이라는 것이 참 그렇다.
‘중독이지. 이것도.’
한번 그 맛을 본 사람은 빠져나올 수 없다.
작게 흥얼거리는 콧노래든,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나도 모르게 치게 되는 손뼉이든.
그 마성에 사로잡힌 이들은 언제고 다시 음악을 찾게 된다.
내가 그랬다.
“힘들고, 지치고, 다시 사랑을 하고.”
그만둘 때는 한참 전에 있었다.
그때 멈췄으면 처참하게 구덩이 속에 박혀 있다가 기어 올라올 때까지의 그 힘든 여정을 거치지 않았어도 먹고살기엔 충분했으리라.
“힘든 시간, 힘든 세상! 하! 지! 만 너밖에는!”
그래도 멈출 수가 없었다.
“나만의 천사님이여! 날 구해 주소서! 그대만을! 사랑할게, 나난난나!”
내 얘기를 전할 수 있는 가장 감동적인 수단인 노래를, 그리고 이 노래가 가져다주는 소통의 쾌락을.
“나만의 천사님이여! 행복하게 해 줄게! 너만을 바라볼게!”
지이잉! 지지징! 지이이이잉! 지잉!
어느새 두 번째 후렴이 지나가고 통통 튀는 멜로디 사이로 위엄 행진곡이 난입한다.
디스토션을 넣어 왜곡을 심하게 준 힘찬 기타 소리.
즐겁고 활기찼던 직전까지의 보컬과의 그 대비가 아주 재밌는 차이를 만들어 주면서 곡에 대한 관심도를 늘려 주었다.
두두두둥! 둥둥! 두두두둥! 둥둥!
그리고 그 밑에 늘였다 줄였다 하며 그루브 생성에 한참이던 베이스가 급격히 정박을 잡아 주는 리듬을 눌러 그 웅장한 느낌을 더욱 살렸다.
변주 속에서 피어나는 화합.
몇 차례나 시행착오를 겪어 가며 연습에 매진한 결과물이다.
성장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는 뜻이다.
“힘들고, 지치고, 다시 사랑을 하고. 힘든 시간, 힘든 세상! 하! 지! 만 너밖에는! 나! 에겐 너밖에는! 나만의 천사님이여…….”
곧이어 돌아온 후렴구에서 한 차례 전조.
본격적인 고음역대로 올라타서 다시 후렴을 한 바퀴 돌린다.
“나만의 천사님이여! 행복하게 해 줄게! 너만을 바라볼게!”
이게 마지막 후렴.
그리고 남은 것은 아웃트로이자 이 노래의 클라이맥스뿐이다.
나는 준비해 두었던 비장의 무기를 허리춤에서 꺼내 들고 내 입과 스탠딩 마이크 사이에 놓았다.
“어?”
“저거!”
확성기였다.
“한 번뿐인 인생이니까!”
확성기, 메가폰.
정격 이상의 신호 입력으로 출력음이 뒤틀려 나간다.
“너를 포기하진 않을 거라고!”
디스토션이나 보컬 오버드라이브 같은 이펙터를 사용해도 되겠지만, 훨씬 아날로그 냄새가 짙고, 더 거친 날것의 소리가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이것이 집중력이 최고조로 올라야 할 두 번째 곡 마지막에 끼워 넣은 나의 비장의 무기였다.
“사랑하는 너에게로! 나의 손을 뻗는다!”
징징, 징징, 두두둥!
길지 않게 딱 한 마디에 떨어지는 후주를 끝으로 노래가 마무리된다.
“와아아아아!”
“멋지다!”
“잘한다!”
“럭키데이!”
언제나 생각하는 것이지만…….
‘아. 지린다.’
한 곡을 마칠 때마다 차오르는 공연의 쾌감은 그 어떤 재미에도 비할 수 없는 것 같다.
* * *
‘대……. 대단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원한이 있는 사람들의 무대이건만, 자연스럽게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저 정도로 해야 하는 거구나. 저만큼 합을 맞출 수 있어야, 저렇게 노래할 수 있어야 밴드라고 할 수 있는 거구나…….’
세영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부끄러웠다.
‘난 대체…….’
적의가 사그라들고 부끄러움이 몰려든다.
무한하게 태우던 화는 사실 무대 위의 루치아노가 아니라 자신을 향해야 했던 것이다.
실력 차이를 직시하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음악을 하는 것에 순수히 기뻐하는 듯 보이는 밴드의 멤버들.
“저희 두 번째 곡 오 마이 앤젤 들려드렸습니다. 어떻게 괜찮으셨어요?”
“네!”
“확성기!”
“하하하. 확성기 이거 나름 비장의 한 수로 준비했던 건데 마음에 드십니까?”
“네에에!”
관객들과의 유동성 있는 소통.
“이제 마지막 곡 하나 남았는데, 시간이 정해진 공연이라 아쉽네요. 참고로 저희 너튜브 채널에서 뮤직비디오 버전 가을의 향기와 저희 밴드의 커버곡들을 만나 보실 수 있으니까요, 괜찮으시면 구독 꼭 눌러 주시고, 오늘 나가실 때 저희 노래가 괜찮았다 싶으신 분들은 럭키데이 데모 앨범 한 장 구매해 주시면, 저희가 공연 다 끝내고 마음 편하게 회식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하!”
“저렴한 가격 만 원에 모시고 있습니다. 완전 거저다, 거저. 저희 손해 보고 파는 겁니다.”
이미 자신들의 열정을 증명하기에 충분한 작업물까지.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그들은 처음부터 자신의 적이 아니라 목표가 되기에 충분한 팀이었다.
‘다음 주에 학교에 가면……. 애들이랑 다시 얘기를 해 봐야지.’
그녀는 다시 한번 밴드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마음에 맞는 멤버들을 모으고, 같이 곡을 만들고 합을 맞추며 자신에게 부족했던 것을 차근차근 채워 나가기로.
그리고 나서.
‘그다음에 공연을 세워 달라고 부탁할 거야. 우리 앨범을 건네면서.’
지금 저들이 즐겁게 웃고 있는 저 무대는 어떤 기분일지 느껴 보고 싶었다.
세영은 금방까지와는 다른 느낌의 경쟁심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경쟁심이 뻗어 나가는 방향이 조금 다를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