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53
52화
오늘 우리 공연의 마지막 곡은 별빛 계단.
우리 럭키데이의 노래 중 2옥타브 레에서 시까지 음이 정신없이 이어지며 지옥의 연속 고음을 요구하는 최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곡이다.
한 번씩 2옥타브 초반까지 음을 떨궜다가 급격하게 라, 시로 올려 버리며 리듬을 살리는데, 부를 수 있는 것은 당연해도 예쁜 소리를 내고자 유지하려면 이게 호흡과 체력 소모가 엄청나다.
게다가 노래의 대부분의 음정이 2옥타브 중후반에 편성되어 파사지오 구간을 계속해서 유지해야 하는데, 빠르게 달리는 노래의 맛을 살리려면 중간중간 비강 스크래치도 맛깔나게 긁어 줘야 한다.
원래 쓰려고 한 곡은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차라리 3옥타브로 지르게 해 달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그야말로 2옥타브의 악몽 같은 노래가 되어 버렸다.
2옥타브가 호구로 보였지? 어디 오늘 죽어 봐라. 이런 느낌.
‘나는 죽을 맛이긴 한데……. 다들 신나 보이네.’
그래도 고음의 시원함이 잘 살아 있는 후렴과 빠른 템포의 베이스 배킹는 그야말로 미칠 듯이 신나서 관객들이 분위기를 불태우는 데에는 최고의 노래다.
부르는 사람이 고통스러워서 그렇지.
리듬과 멜로디 전반에 걸쳐 베이스의 역할이 매우 큰 실험적인 편곡을 곡의 특징으로 삼았는데, 결과물로 나온 것은 연주자는 힘들어 죽겠고 관객들은 신이 나 죽겠는 노래였다.
“저 하! 늘의! 별이! 되어! 너의 곁에 빛을 내려 줄게!”
무대 위에서 방방 뛰며 소리를 지른다.
속 편하게 내지르는 것같이 보여도 은근히 스크래치의 세기나 멜로디 조절에 신경이 많이 가는 노래라, 평소에는 그냥 스탠드에 마이크를 꽂아 둔 채 제자리에서 노래하는 편이다.
하지만 오늘은 왜인지 그러고 싶지 않다.
‘오늘따라 노래가 묘하게 쉽게 느껴지기도 하고 말이야.’
컨디션은 최상이다.
미친 듯 놀아도 노래를 놓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저 하늘의! 별이 되어! 언제나 너와 함께!”
둥둥둥둥! 둥둥둥둥! 둥둥둥둥! 둥둥둥둥!
후렴 마지막 부분에 들어서자 기타와 베이스의 소리가 모두 사라지고 아주 정확한 박자로 울리는 드럼 소리만 남는다.
“저 하! 늘의! 별이 되어!”
둥둥둥둥! 둥둥둥둥! 둥둥둥둥! 둥둥둥둥!
“너의 곁에! 빛을 내려 줄게!”
노래를 이루던 세션이 세 개나 사라졌는데도 오히려 풍성한 느낌이다.
우리가 완급 조절에 제대로 성공했다는 뜻이다.
“저 하늘의! 별이 되어!”
3분 남짓의 짧은 시간이나마 이 노래가 듣는 사람들에게 환한 별빛의 계단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하며 마지막 소절을 뱉었다.
“언제나 너와 함께!”
지지징, 징징! 지지징, 징징!
동시에 사라졌던 기타와 베이스가 돌아오며 비어 있던 마디를 채운다.
지이이잉!
딱 두 마디를 연주한 후.
두두둥!
깔끔하게 우리 무대가 마무리되었다.
“감사합니다. 럭키데이였습니다.”
짝짝짝짝짝짝!
사방이 어둡고 간간이 별빛이 반짝인다.
‘와. 다 쏟았네, 진짜.’
몸에서 힘이 쭉 빠지는데, 억지로 발걸음을 옮긴다.
용케 제정신으로 인사를 한 후 천천히 장비를 정리해 무대 뒤로 빠져나가는 우리에게 함성과 박수가 쏟아진다.
“훌륭한 무대 보여 준 럭키데이에게 다시 한번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와아아아!”
“잘했다, 애기들!”
“앨범 사 줄게!”
선우 형이 묘하게 기뻐 보이는 톤으로 환호를 유도하고, 관객들도 그 장단에 맞춰 준다.
그것이 마치 우리의 무대가 티켓값을 충분히 했다는 인정처럼 들렸다.
“고생했어요!”
“잘하네, 학생들!”
“감사합니다…….”
무대 뒤로 빠져나와서 대기실로 들어가 앉으니, 지난 순서 자기 무대들을 마친 밴드 아저씨들이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우리는 피곤한 몸으로 연신 고개를 꾸벅이고 비치된 생수를 각자 하나씩 집어 깠다.
“야, 잠깐만 쉬다가 가판 보러 가자.”
“응…….”
“피곤하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눈앞이 핑핑 돈다.
분명 금방까지 집중해 뛰었건만 앞선 무대에서 내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쉽사리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내가 최선을 다했다는 뜻일 것이다.
“너희도 잘 놀았지?”
“응?”
“갑자기?”
“어, 응…….”
“됐다.”
감성적인 공감 따위는 참 받아 줄 줄 모르는 우리 멤버 녀석들을 두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손에는 기타 가방을, 한 손에는 생수병을 든 채였다.
“나 먼저 가판에 가 있을 테니까, 잠깐 쉬다가 와. 알았지?”
“이응.”
“금방 갈게.”
“응…….”
나는 애들을 그 자리에 쉬라고 두고 혼자 밖으로 향했다.
아직 스코프의 러닝 타임이 조금 남아 시간이 널널했지만, 그래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쪽이 좋을 것 같았다.
털썩.
공연장 밖에 놓인 의자와 길쭉한 책상, 그리고 그 위에 잔뜩 올라가 있는 CD들.
‘다 팔 수 있겠지? 오늘 나름 잘한 것 같은데.’
오늘 전부 판매해야 할 약 200장의 럭키데이 데모 앨범이다.
“루치야아아!”
그때, 공연장 문을 열고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쌤 완전 감동했잖아! 너희 되게 멋있었어!”
김하선 선생님이다.
“아, 쌤. 보셨어요?”
“당연히 봤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는데 너희가 제일 잘하더라. 스코프 공연 아직 남았는데, 앨범 판매 도와주려고 나왔어. 고맙지?”
“넵. 감사합니다.”
그녀는 처음부터 쭉 공연을 지켜보다가 우리 무대가 끝나자 앨범 판매를 도와주기 위해 자리를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더 앉아 있다가 모든 무대가 끝나면 나왔어도 괜찮았을 텐데, 참 고마운 사람이다.
“뭐 도와줄까? 꺼내 올 건 없니?”
“아뇨. 아까 공연 시작 전에 전부 여기에 뒀어요. 아, 이거 열 장씩 나눠서 놓는 것 좀 도와주실래요? 팔다 보면 재고량이 안 보일 테니까…….”
“오케이. 반 나눠서 넘겨.”
나는 김하선 선생님과 함께 앨범 CD를 열 장씩 나눠 책상에 올려 두었다.
총 열아홉 덩이.
백구십 장이 오늘 다 팔아야 할 CD의 숫자였다.
‘다 팔아도 오히려 손해 보는 가격이지만, 홍보비라고 생각하면 싼값이고, 공연비도 받을 테니 엄밀히 말하면 이득이다.’
아예 이문이 남지 않는 가격을 책정했고, 심지어 처음 찍어 낸 물량 중 몇 장을 선물용과 보관용 등으로 챙겨 놓다 보니 우리에게 남는 돈이 없다.
다만 오늘 공연을 보고 이 앨범을 구입한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우리 럭키데이의 행보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고, 그런 관심은 지금 운영 중인 채널의 성장과 더불어 앞으로의 활동에 큰 힘이 될 것이다.
또한 이 앨범 판매로 인해 생기는 금전적인 손해는 오늘 공연이 끝나고 받을 정산으로 메울 수 있으니 오히려 남는 장사다
공연장이 꽉꽉 들어찬 것을 보면 아마 수익도 꽤 있을 것으로 보였다.
“음……. 시간 됐다. 이제…….”
“곧 고객님들 나오시겠네요.”
“고, 고객님? 그냥 관객들 아니고?”
“오늘 공연을 봤으면 앨범을 안 살 수가 없으니까요.”
“와……. 이 자신감. 내 학생이지만 멋있어.”
정리를 마치고 나니 스코프의 마지막 곡이 문 안쪽에서 새어 나오는 것이 들린다.
이제 앨범을 팔아 치울 시간이 왔다는 뜻.
겉으로는 센 척을 하면서 사실 나도 조금은 긴장이 되었다.
‘공연보다 이게 더 무섭네.’
물론 어느 정도는 자신이 있었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원래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보니…….
“안녕하세요. 앨범은 여기서 구입하면 되겠습니까?”
“앗, 네. 어서 오세요.”
그때 가만히 서서 기다리던 나에게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첫 손님이다.
“만 원이라고 했죠?”
“넵.”
“두 장 사고 싶은데……. 인당 한 장 제한이겠죠?”
“네, 아무래도 다 못 팔더라도 최대한…….”
현실적으로는 돈 많이 주는 사람에게 싸그리 떠넘기고 재고를 남기지 않는 쪽이 편하겠지만, 그렇게 한다면 주객전도가 된다.
우리의 이번 앨범 발매가 눈에 띄는 업적 남기기와 동시에 홍보라는 점을 생각했을 때, 가능하면 한 장씩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가져가서 우리 팬이 되는 쪽이 훨씬 이득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 장만 주세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공연이 다 끝나기도 전에 먼저 나온 첫 손님 아저씨에게 앨범을 넘기고 돈을 받았다.
마수걸이다.
“응?”
그런데 건네받은 지폐에 뭔가 작은 종이가 끼어 있었다.
“오늘 공연 정말 잘 봤습니다. 저는 JH 뮤직이라는 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이주헌이라고 합니다.”
눈앞의 손님의 명함이었다.
그런데 이 아저씨 예사 인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 어……. JH 뮤직이라면…….”
“지백 밴드, 뷰마스터, 유레나 씨가 있는 회사인데, 혹시 들어 보신 적 있을까요?”
“아, 네.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들어 봤을 수밖에 없다.
지금은 알 사람은 아는 실력파 뮤지션 집합소, 훗날에는 앨범만 나왔다 하면 리스너들이 들썩이는 괴물들의 마굴이 되는 JH 뮤직이다.
그중에서도 뷰마스터는 지금은 포스트 레전드, 10년만 지나면 락 덕후들의 메시아. 유레나는 앨범이면 앨범, 뮤지컬이면 뮤지컬, 못 하는 것이 없는 만능 뮤지션으로 유명한 아티스트들이고, 미래에는 더 많은 A급 스타들이 속속 들어오고 데뷔할 회사.
뮤지션에게 큰 자유를 부여하고 그 활동에 있어 어려움이 없도록 보조하기로 유명한, 가수라면 누구나 꿈에 그릴 법한 그 회사.
그런 곳의 대표라는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뭐지? 개꿀잼 몰카인가?’
나도 모르게 미래의 드립이 입에서 튀어나올 사건이다.
이제 보니 언뜻언뜻 봤던 미래의 모습과 비슷하다.
이주헌 대표.
JH 뮤직의 상장 이후 상당한 부자가 되었으면서도 기획과 매니징을 지속한 열정적인 인물이다.
“태양고 권인찬 선생님이 제 은사라서요. 하하. 제자들 자랑을 아주 장문으로 보내시기에 어떤 음악이기에 그렇게 신이 나셨나 궁금해서 와 봤더니, 어우, 과연 선생님 안목은 틀림이 없더군요.”
“아, 감사합니다.”
그리고 내 의문은 금방 풀리게 되었다.
‘선생님이 소문을 내 주셨구나.’
아마 우리 노래를 좋게 들어 주신 권인찬 선생님이 여기저기 연락을 돌리신 모양이다.
본인 스스로도 이름 있는 프로듀서이자 가수시니, 그런 인맥도 많을 터.
지금 당장 명성이 절실한 초보 밴드인 우리에게 아주 큰 도움이었다.
그리고 그 인맥이 가입비를 내고서라도 들어가고 싶은 회사의 대장님이라니. 감동 그 자체였다.
“시간 괜찮으시면 저랑 잠깐…….”
그 김주헌 대표가 내게 대화를 청해 온다.
‘컨택인가? 영입 제안? 연습생? 아니면 바로 데뷔? 와, 대박.’
인맥으로 소개받는 느낌이 크지만, 좋은 기회.
그 손을 붙잡지 않으면 바보다.
당연히 따로 얘기를 나누자 대답을 하려던 순간.
“저, 아까 공연하신 럭키데이 보컬분 되시죠?”
누군가가 또 끼어들었다.
‘아, 이런.’
생각해 보니 나는 지금 앨범 팔겠다고 밖에 서 있는 것.
다른 손님이 없을 수가 없었다.
“아, 혹시 대화 중이셨나요? 그럼 나중에…….”
“아닙니다. 저는 명함 드렸으니 나중에 시간 되실 때 연락 한번 주세요. 편하게 만나서 식사나 하고, 얘기도 나누면 좋을 것 같네요.”
“네, 감사합니다.”
“그럼 앨범 완판 기원합니다.”
불청객 덕에 귀인이 총총 떠나갔다.
다소 원망스럽지만 이 사람도 귀한 만 원을 선사하실 손님.
나는 밝게 웃으며 손님을 맞이했다.
“럭키데이 보컬 김루치아노 맞습니다. 어쩐 일로…….”
“혹시 캐스팅 받는 중이셨다면 죄송스럽네요……. 일단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그가 내 인사를 받으며 명함을 건넨다.
오늘만 두 번째 명함이다.
‘K뮤직넷 작가, 김산하? 방송작가님이야?’
기획사 대표에 이어 이번에는 작가 양반이다.
“작가님이시구나…….”
“하하, 네.”
“그런데 작가님이 무슨 일로…….”
아무래도 그냥 앨범만 사러 온 눈치는 아니었다.
분명 원하는 게 있는 듯한 모습.
그런 의문이 가득한 내 눈빛에 그는 멋쩍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그, 이미 앨범도 직접 만들고 공연도 하시는 분들께 실례일 수도 있는데……. 제안을 좀 드리고 싶어서요.”
“제안요?”
김산하 작가는 정말이지 어색한 표정, 어색한 톤으로 꽤나 거창한 제안을 건넸다.
어쩌면 앞으로 우리 밴드의 미래를 결정할 수도 있는, 중대한 제안을.
“혹시 오디션 프로그램 나가 보실 생각 있으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