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54
53화
“만 원입니다! 감사해용!”
“저도 한 장만 주세요.”
“만 원입니당!”
들뜬 라희의 목소리가 울리고, 김하선 선생님이 어디선가 챙겨 온 봉투에 앨범 CD를 주섬주섬 담는다.
나?
나는 뒤에 앉아 쉬는 중이다.
“너는 일 안 하냐?”
“아까까지 저 혼자 팔고 있었거든요.”
“아하. 어쩐지 길게 쉬더라.”
쉬라고 두고 나왔더니 이것들이 한참을 안 오기에 전화를 걸었다.
그나마 그 통화라도 받은 것이 라희 하나고, 나머지 둘은 늘어져 잔다기에 부를 수도 없었다.
심지어 김 선생님도 중간에 전화를 받으러 밖에 나가셨고, 덕분에 한참이나 피곤한 몸으로 혼자 앨범을 팔다가 결국 나온 라희에게 매대를 맡긴 것이다.
“감사합니다! 럭키데이 앨범 완판! 다 털었어요! 이제 없어요!”
“엇? 나까지만 팔면 안 돼요?”
“끝! CD가 없습니다!”
“아이고, 딱 네 명 남기고 다 팔렸네.”
“그러니까 일찍 나오자니까.”
“아니 선우 님이 사진을 찍어 주신다는데 어떻게 그냥 가?”
“그건 그래. 그냥 너튜브로 들어야겠다. 어쩔 수 없지.”
완판.
전부 팔았다는 뜻.
“오, 진짜 다 팔았어?”
“엉!”
“대박.”
집에 들고 갈 재고란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뜻!
우리의 데모 앨범 프로젝트가 성공했다는 말이다.
“예아! 애들 불러!”
“잘걸?”
“안 잠.”
“미, 미안……. 지금 눈 떠서 급하게 왔는데, 다 끝났네…….”
“뭐야! 뭐야, 뭐야! 다 파니까 이렇게 나타나는 거 뭐야!”
“미안…….”
마침 판매가 끝난 타이밍에 대기실에서 뻗어 있던 재우와 수현이도 밖으로 나왔다.
“뭐, 피곤했을 테니까. 됐으니 일단 모여 봐. 얘기 좀 하자.”
나는 그들에게 중요한 사항을 알리고 같이 논의하고자 했다.
공연을 마치고 뻗었다가 다시 돌아와 앨범 완판이라는 희소식을 들은 직후 너무 큰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 미안하긴 했지만.
“공연도 성공적으로 잘 끝냈고, 데모 앨범도 다 팔았어.”
“예후!”
“조용히 들어 봐.”
“넵.”
“너희가 오기 전에 앨범을 팔면서 명함을 두 장 받았어.”
“명함?”
재우, 수현이, 그리고 라희까지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아니 잠깐. 저건 그냥 눈빛을 빛내는 게 아닌데?’
정확히는 라희의 눈빛이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어떻게 미리 와 있던 나한테까지 말을 안 할 수가 있어?’라고 묻는 듯한…….
‘아니 말했으면 거기에 정신 파느라 매대도 제대로 못 지켰을 거면서…….’
나는 혀를 한번 차고 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일단 하나는 기획사 명함.”
“오.”
“어딘데? 어딘데! MS? PJY? GY?”
“아, 아이돌 회사는 아니지 않을까…….”
“JH 뮤직이라는 곳이야.”
“JH?”
“처음 들음.”
멤버들은 생소한 이름에 의문을 표했고, 나는 간단하게 설명했다.
“중소형 기획사지만 나름 실력 있는 아티스트들이 있는 회사야. 김주헌 대표가 프로듀서 출신이라 음악적인 도움을 주는 데에 아낌없다는 말도 있고.”
“잘 아네?”
“관심 있는 회사였으니까.”
“오호…….”
나는 김주헌 대표가 권인찬 선생님의 제자이며 그의 추천을 받아 우리의 공연을 지켜봤고, 추후 연락을 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애들에게 알렸다.
“그러면 우리 회사 들어가는 거임?”
“아직은 잘 모르겠어. 사실 우리가 아직 미성년자라 계약을 하려면 법정 대리인 동의가 필요하기도 하고…….”
움찔!
눈에 띄게 당황하는 한 놈.
“그, 그……. 법정 대리인 동의라는 건…….”
“아마 부모님 동행하에 계약서에 도장을 찍게 되겠지.”
“아…….”
부모님께 음악을 한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는 우리의 드러머, 라희였다.
“아직 계약하겠다, 어디 회사에 들어가겠다 확정된 게 아니니까 그건 일단 나중에 생각하고.”
“응…….”
“명함 두 장 받았다고 했잖아.”
“이응.”
“남은 하나는?”
“이거야.”
불안에 떠는 라희를 짧은 말로 진정시키고 명함 한 장을 더 꺼내 보여 줬다.
“케이뮤직넷?”
“응. 방송 작가래.”
“으, 음악 방송국이지? 우리 캐스팅 당한 거야?”
나름 국내에선 가장 큰 케이블 채널 중 하나이기도 하고, 음악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채널이 많이 없기 때문에 K뮤직넷의 이름 정도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나는 놀라며 말하는 수현이에게 설명을 더했다.
“캐스팅은 캐스팅인데…….”
캐스팅은 캐스팅인데 일반적인 음악 프로그램이 아니라 오디션, 경연 프로그램이다.
김산하 작가가 소개한 그 프로그램의 제목은 더 밴드 코리아.
‘전생에선 폭삭 망했던 프로그램인데…….’
유력 우승 후보였던 출연자들 중 마약 논란이 터진 것을 시작으로, 버스킹 미션을 줬더니 길거리에서 술을 마시질 않나, 생방송 무대에서 미션곡을 마음대로 개사해 욕설을 잔뜩 섞어 소리를 내보낼 수 없게 하지를 않나…….
‘물론 직접적인 망조 요인은 써커펀치, 웨이스티드 두 팀이었지만.’
그 수많은 논란을 만들어 낸 것이 더 놀랍기는 했다.
하여튼 방송 내외로 문제가 많았던 프로그램이고, 나가 봤자 큰 이득이 없을 방송이다.
“오오오오!”
“그러니까 본선 진출은 보장해 준다는 뜻임? 그게 됨?”
“들어 보니까 그렇게들 한다더라. 핍스타 K나, K 슈퍼스타 같은 방송도 대부분 뽑아 올릴 보험들을 반 이상 들여놓는다더라고. 그리고 정확히는 TOP 10에 올려 준다거나, 무조건 방송 무대에 세워 준다는 게 아니라, 예선 심사 분량을 줄 거고, 1차 예선 없이 2차 방송 예선부터 본다는 거야.”
“아하…….”
“괜찮은데? 진행시켜!”
그러나 그것들을 제외하면 무명에 경력 짧은 우리에겐 아주 매력적인 도전임에 틀림없었다.
그것들을 제외하면 말이다.
‘이거 반응들이 너무 좋은데…….’
내게는 좋지 않은 좋은 반응이다.
“조금 더 생각을 좀…….”
“난 무조건 찬성!”
“나, 나도…….”
“괜찮을 것 같음. 우승 상금도 많고.”
“벌써 우승 생각이냐…….”
사실 나는 이 방송에 아예 나갈 생각이 없었으니까.
‘미쳤다고 거길 가냐. 괜히 약쟁이들이랑 엮이면 창창한 나이 열일곱에 나락 가는 거 순식간이라고.’
하지만 잔뜩 흥분해서 벌써 우승 상금 1억을 어디다 쓸지 고민하는 이 웬수들의 모습을 보니 강하게 반대하기도 힘들다.
무엇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이 우려되어 나가기 싫다고 하면 내가 미친놈이 될 것이 분명했고 말이다.
그때, 퍼뜩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 그러면 걔네만 쳐 내면 괜찮지 않을까?’
전생에 더 밴드 코리아가 망했던 이유는 마약 밴드로 공중파 뉴스를 장식했던 써커펀치와, 음주 공연, 생방송 중 욕설 등의 태도 논란이 있던 웨이스티드, 단 두 밴드.
그 둘만 없으면 더 밴드 코리아가 망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가능성 있어.’
나는 살짝 머리를 굴려 보았다.
나 역시 밴드 음악 마니아의 입장에서 더 밴드 코리아를 관심 있게 지켜봤던 시청자 중 하나.
당시의 기억이 약간씩 떠올랐다.
‘팀 미션, 그리고 1대1 합주 미션.’
본선에 올라가기 전 TOP 10을 골라내기 위한 관문인 밴드 위크.
조금만 신경 쓰면 거기서 실행되는 팀 미션과 1대1 합주 미션에서 놈들을 떨어뜨릴 수 있다.
“아 잠깐. 그 방송 가면 쓰고 나갈 수 있으려나?”
“그, 글쎄?”
그때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목소리.
역시나 라희다.
“괜찮지 않을까? 방송사 입장에선 특이한 캐릭터 하나 있다고 오히려 좋아할 것 같은데.”
“그러려나…….”
다행히 방송에 나가고 싶다는 욕구인지, 상금에 대한 욕심인지가 정체를 들킬까 하는 불안감보다 큰 것 같았다.
다만 나는 여전히 확신이 없었다.
“일단 조금 신중하고 싶다, 나는.”
“엥? 왜?”
“루, 루치, 네가?”
애들은 깜짝 놀란 듯 나를 바라봤다.
마치 지금까지 말도 안 되는 짓거리는 제일 열심히 하던 네놈이 어쩐 일로 안전한 길을 입에 올리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니, 왜들 그렇게 쳐다봐?”
“어, 아니야. 응…….”
누군가에겐 무리한 활동에 계속해서 머리를 들이민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것만 시도했고, 실력으로 쟁취했다고.
‘다만 이번 방송 출현 건 같은 경우에는 태풍이 몰아치는 밤, 오징어 회를 굳이 산지에서 먹어 보겠다고 통통배를 끌고 저 넓은 바다로 나아가는 관광객이 떠올라 불안하단 말이지.’
더 밴드 코리아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있는 부분이 작가가 약속한 2차 예선 우선 진출 건뿐이기도 하고, 그마저도 조작 논란이라도 생기면 타격이 크다.
물론 조작 논란이 터진 적은 없고, 지금 시기에 터져 봤자 그 반향이 크진 않겠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지.
“요! 다 팔았어들?”
“아, 선우 형.”
그렇게 고민에 잠겨 있을 때, 공연장 문을 열고 선우 형과 수영 형, 그리고 다른 스코프 멤버들이 나왔다.
“고생했어, 고생했어.”
“이야. 반응 좋더니 진짜 완판이네?”
“그럴 줄 알았지.”
스코프 형들이 제각각 고개를 끄덕이며 완판에 대한 감상을 내놓았다.
리허설 때부터 곡이 좋아 관객들이 열광할 것을 알았다며 앨범도 다 팔리는 게 당연하다고 우리에게 칭찬을 던진다.
“어? 잠깐만. 야, 루치야. 그럼 형 줄 건 안 남겨 놨어?”
연신 침을 튀기며 우리를 칭찬하던 선우 형이 말했다.
“하하, 선물용으로 따로 몇 장 빼 놨어요. 이따가 챙겨 드릴게요.”
“오오! 감사! 나도 우리 앨범 줄게. 갈 때 가져가.”
“넵.”
그렇게 영광의 앨범 교환식을 약속하고 회식을 위해 짐을 챙기기 전, 나는 선우 형을 불러 따로 대화를 나누었다.
아무래도 이 바닥에서 인디로 생존한 경력이 더 오래된, 그리고 그것을 쭉 밀고 나가 성공을 쟁취할 인물의 조언이 필요할 것 같았다.
전생의 나 역시 인디 신에서 음악을 오래 했지만, 꽤나 일찍 회사에 들어가 메인스트림에 휩쓸렸다 보니 선우 형만큼 긴 경력은 없었으니까.
“상담하고 싶다는 건?”
“그게…….”
나는 그에게 K뮤직넷의 작가가 찾아와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를 제안했고, 다른 멤버들이 어느 정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나는 방송 경연의 위험성 탓에 꺼려진다는 상황을 설명했다.
“으흠……. 고민이 조금 되겠네?”
“네.”
“일단 장단을 나눠 보자. 내가 장점, 네가 단점. 나갔을 때의 장점. 방송에 얼굴을 띄우게 되니 명성 획득에 좋다.”
“얼굴을 보이는 게 좋지 않은 상황인 저랑 라희에게는 동시에 단점도 되죠.”
“두 번째 장점. 작가의 편의를 보장받았으니 머리 빠개지는 스트레스 없이 경연 준비에 집중해도 된다.”
“그건 확신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말로는 2차부터 시작해서 여러모로 신경 써 주겠다지만, 편집 각이 나오면 언제든 저희를 나락으로 보낼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
“그건 그렇군. 그러면 세 번째…….”
나와 선우 형은 브레인스토밍의 형태를 빌어 더 밴드 코리아라는 프로그램에 나갔을 때의 장단을 살피며 득실을 계산했다.
다만 장점이자 단점인 것, 장점이 될지 단점이 될지 불확실한 사안이 많았기에 그리 쉽지만은 않은 과정이었다.
“오케이. 그러면 이렇게 해 보자. 지금까지 나온 단점을 해소할 방법이 있는가.”
“해소요?”
“응. 아까 JH에서 명함 주고 갔댔지?”
“아.”
별안간 선우 형의 날카로운 지적이 튀어나왔다.
“적어도 보장한 편의가 비수로 꽂히는 일이 없도록 방패 역할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중소 규모 회사라도 나름 방귀 좀 뀌는 대표가 있는데.”
눈이 확 트이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