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55
54화
“뭐, 그건 너희가 JH로 들어간다는 가정하에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래도 장단점이야 어찌 됐든, 얼굴을 알릴 기회는 중요한 거야.”
“네? 그거야 당연한 거지만…….”
선우 형은 프로그램 참가 쪽으로 상당히 기울어진 말을 이었다.
“너희는 프로페셔널……, 그러니까 이 연주하고 노래하는 짓을 하면서 벌어 먹고살기를 지향하는 거잖아. 그치?”
“네.”
“그러면 안정적인 수입원이 필요할 거 아니야.”
“그렇겠죠?”
“그럼 들어 봐. 밴드, 정확히는 가수든 마술사든 단발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돈을 버는 사람들의 수입원은 제각각 다르지만, 큰 갈래는 하나야. 대개는 공연이지.”
“아.”
그의 설명은 내가 명백히 놓치고 있던 부분이었다.
“대학 공연이든 축제 행사든, 어디든 다니려면 명성이 있어야 해. 어디라도 얼굴을 비춘 경험이 있든, 대박곡이 하나쯤 있든 말이야. 그래야 너희를 알고 부르게 되는 거지.”
“그렇겠죠…….”
일리 있는 말이다.
‘아무리 지금 당장 우리가 학생 밴드라고는 해도, 활동을 위한 돈은 계속해서 요구될 거야. 직전 앨범 제작 때는 대회 상금과 오늘 받을 공연비로 어떻게든 했다지만 앞으로는 모를 일이지…….’
앨범 제작비, 교통비, 장비 및 점검비 등등으로 활동비는 언제든 필요하며, 우리의 용돈은 무한하지 않다.
밴드 멤버들 모두 꽤나 유복한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살고는 있다지만, 나와 라희라는 시한폭탄이 섞여 있는 이상 등 비빌 언덕, 즉 부모님이 모르는 통장쯤은 있어야 할 것이다.
“뭐, 우리 스코프도 얼마 전에 다녀온 축제 중계 쪽 덕분에 그나마 행사가 조금 풀리고는 있지만, 한 방에 뻥 뜨지 않는 이상 정기적인 공연은 하늘의 별 따기야. 그러니까 얼굴 알릴 기회라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거야.”
“그렇네요…….”
“비단 수익 생각을 접어 두더라도, 밴드 입장에서 유명해질 기회를 버리기는 쉽지 않지. 다만…….”
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려던 때, 선우 형은 지금까지의 노선과는 다른 방향의 조언을 추가로 건넸다.
“명성이라는 게 항상 좋은 방향으로 쌓이는 건 아니니 그건 좀 조심해야겠네.”
“좋지 않은 명성이라…….”
“왜 있잖아, 그…….”
“알 것 같아요. 공중파 노출을 해서 대한민국 인디 락을 10년은 후퇴시킨 놈들이라거나, 마약 파문으로 방송계에는 발도 못 들이미는 사람들이라거나.”
“그렇지. 친하지도 않은데 방송에서 그런 놈들이랑 투 샷이라도 잡혀 봐. 곧바로 나락이야, 나락.”
결국 가라, 마라의 결론보다는 고려해야 할 점을 충분히 짚어 주는 것으로 상담은 마무리되었다.
“음, 물어본 거에 답은 해 줬는데 확실하게 길을 보여 줄 수가 없으니 답답하네.”
“아니에요. 충분히 도움이 됐어요.”
“그랬다면 다행이고. 너희 지금까지 해 온 일들을 보면 알아서 잘할 것 같긴 하다.”
“하하…….”
명확한 답이 서지는 않았지만 어느 방향으로 생각을 이어 나가야 할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럼 이제 회식 갈까?”
“넵.”
우리는 빠르게 다른 멤버들과 합류해 공연장을 정리했다.
배치를 바꾸어 놓았던 무대도 제자리로 돌리고,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도 치워야 했다.
“아니, 껌을 왜 뱉어, 껌을?”
“씹으면서 왔다가 공연 보면서 소리 지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튀어 나가고 그러는 거지, 뭐.”
“으윽! 더러워.”
“라희야! 여기 봉투 좀 가져와 줄래?”
“넹!”
관람 매너들이 좋은 관객들만 온 것인지 큰 쓰레기는 없었지만, 간간이 자잘하고 지저분한 것들이 있어 꽤 고생이었다.
“다 됐지?”
“넵.”
“짐 다 챙겼는지 확인하고.”
“했어요! 대기실 텅텅!”
“오케이! 그럼 조아 왕갈비로 이동! 차 있는 사람들은 내비 찍고 오세요! 주차장 있으니까 걱정 마시고!”
“와아아!”
공연에 참여한 모두가 열심히 모든 것을 발산했기에 힘이 쭉 빠진 상황.
고기로 배를 채우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여기서 가까워요?”
“응. 바로 저쪽이야.”
“오. 크다.”
아주 잠깐 걸어 도착한 고깃집은 생각보다 큰 규모의 가게였다.
‘돼지고기만 먹어도 돈 좀 깨지겠는데?’
보통 이런 곳은 식대가 조금 되는 편이기에 긴장이 되었다.
팀별로 돈을 걷는다 치면 아마 현역 고등학생인 우리 밴드가 가장 큰돈을 지불해야 하지 않을까…….
“인당 2만 원씩만 저한테 주세요! 남는 돈은 제가 다 메웁니다!”
“오오오! 갓선우!”
“킹선우!”
그때 다행히도 선우 형이 회식 골든벨을 울렸다.
“형 괜찮겠어요?”
“응? 괜찮아, 괜찮아. 걔 알지? 제우스.”
“네.”
“걔네 이모님이 하시는 가게거든. 미리 말해 두면 조금 깎아 주셔. 그리고 너희 성공적인 첫 공연 축하도 할 겸, 내 성공적인 첫 기획 공연 축하도 할 겸. 이럴 땐 써도 되지.”
“호오오……. 감사합니다.”
“많이 먹어, 많이.”
아아, 이것은 밀어주고 끌어 주기라는 우리네 아름다운 미풍양속이다.
특히나 앨범 제작으로 입은 손해를 오늘 공연비에서 떼어 메워야 하는 우리의 사정을 기억하고 챙겨 주려는 듯했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이모!”
“어이구, 찔찔이 왔어? 위로 올라가 앉아. 하나, 둘, 서이……. 많이도 왔다.”
“이모님 호주머니 탈탈 털러 왔습죠! 하하하!”
“이거 왜 이러십니까, 손님.”
“어…….”
제우스 형님과는 전혀 닮지 않은 이모님이 우리를 유쾌하게 맞아 주었다.
“농담이야, 이놈아. 일단 고기부터 올려 줄 테니 술이랑 음료는 알아서 꺼내 먹고. 더 필요한 거 있으면 벨 누르지 말고 밑에 와서 주문해.”
“넵! 감사합니다!”
“많이들 먹어요.”
“감사합니다!”
우리는 가게 2층으로 올라가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넓은 공간에 식탁을 다닥다닥 붙여 뭉쳤는데, 분위기가 퍽 나쁘지 않았다.
“잘해. 응. 멋있어.”
“가, 감사합니다.”
“그럼, 누구 동생인데.”
“오빠한테 배운 건 딱히…….”
“뭐? 야, 네가 지금 들고 있는 베이스! 네가 연주할 때 쓰는 스킬! 전부 오빠한테 나온 거야!”
“여, 연습은 내가 직접 하는 건데…….”
“푸하하핫!”
“와, 동생 키워 봤자…….”
“내가 알아서 컸는데…….”
“한 마디를 안 져 주네!”
어느새 훌쩍 성장해 자신과 같은 무대에 선 동생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수영 형과 그런 오빠가 부담스러운 수현이, 그리고 그 둘의 대화가 마냥 재밌는 선우 형과 스코프 멤버들.
“그렇지. 거기서 스윕 섞어 가면서.”
디링, 디딕! 스스슥! 디리릭!
“옳지. 슬라이딩 쭉 땡기면서…….”
고깃집에서 고기는 안 먹고 기타를 치고 있는 또라이, 아니, 기타리스트들.
“먹어, 먹어! 찢어진 근육을 돼지고기로 메우는 거야!”
“움! 움!”
“여기 판 좀 갈아 주세요!”
옹기종기 모여 격렬한 전투 식사를 벌이고 있는 드러머들.
‘개판이군.’
옳게 된 회식이란 원래 이렇게 소란스러운 법이다.
호로록!
나는 물로 입을 헹구고는 생각을 이어 나갔다.
‘지금 시점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대놓고 나갔다가 부모님에게 들키는 거겠지. 특히 나보다는 라희가.’
나 같은 경우에는 일단 저지르고 걸려서 일이 틀어진다 싶으면 집을 뛰쳐나올 생각으로 하면 된다.
실제로 이전에는 그런 식으로 달렸고 말이다.
당분간 사는 데에 있어 불편함이 많겠지만, 이미 지나온 길인지라 어떻게든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라희였다.
‘우선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다고 쳐도 주에 한 번씩은 공중파를 타야 하는데, 부모 된 사람들이 자식을 못 알아보지는 않을 거 아니야.’
부모님이 음악에 관심이 없어서 안 볼 수도 있지 않느냐는 기대는 너무 형편 좋은 생각이고, 사실 그렇게 되어도 곤란하다.
관심 없는 사람들이 볼 정도로 프로그램이 흥행해 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거기에 굳이 나갈 의미가 없어지니까.
하지만.
“나가야겠다.”
“응?”
“뭘?”
순간 내뱉은 내 말에 고기 씹다 말고 뭔 소리냐는 듯, 멤버들의 눈초리가 쏟아진다.
“방송. 오디션. 아무래도 얻으려면 구해야 한다고, 나가는 게 맞는 것 같아.”
“어……. 좋지?”
“응…….”
그런데 중대 발표에 대한 반응이 뭔가 찝찝하다.
“일단 고기나 드셈. 탐.”
“어……. 그래. 먹자.”
금방까지 기타나 띵가띵가 갈기던 놈이 고기 탄다고 얼른 먹으란다.
하지만 확 와닿는 점은 있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들킨다. 웸블리, 카네기에 설 때도 부모님께 내 음악을 한다는 사실을 숨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 순간을 위해 앨범도 준비한 거고, 각기 부모님들을 설득할 깡을 속에 비축해 온 거야.’
지금 고민을 이어 가 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
당장 필요한 것은 이리저리 계산하며 앞날을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빠르게 달릴 추진력이다.
들키면 들키는 대로 돌파할 구멍이 생길 것.
그렇게 믿고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어, 잠깐. 뭐야? 고기 다 어디 갔어?”
굳은 결심을 마치고 젓가락을 들어 앞으로 뻗으려는데 집을 게 없다.
“빨리 먹으라고 했잖음.”
“아, 맛있다.”
“루, 루치야, 더 시킬까?”
자기들도 놀고 있던 주제에 어느새 젓가락을 그리 매섭게들 움직였는지, 불판이 텅텅 비어 있다.
제일 열심히 놀던 재우가 나에게 핀잔을 주고, 라희는 입맛을 다시고, 수현이는 눈치를 보며 고기를 더 시킬까를 묻는다.
“고기 많이 먹었는데 냉면 없음?”
“냉면 좋다, 냉면.”
나는 깊은 고민에 잠겨 있었는데, 태평하게도 내가 먹을 몫의 고기까지 전부 해치운 이 녀석들의 모습에 긴장감이 확 풀리는 느낌이다.
‘얘네랑 같이하는 건데, 또 어떻게든 이겨 낼 수 있겠지.’
피식.
슬쩍 터지는 웃음과 함께 가슴속에 믿음이 가득 차오른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지만,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며 소설 속 먼치킨 캐릭터들처럼 난관을 넘어 우주 돌파를 해 대는 이 녀석들이 너무나 믿음직스럽다.
어쩌면 옛날의 나와 지금의 나를 구분 짓는 가장 큰 차이점은 든든한 동료의 존재 여부일지도.
“먹자, 먹어. 냉면.”
쓸데없는 생각들을 전부 치워 버리고 배나 채우기로 했다.
“난 비냉.”
“재우는 비냉……. 언니 오빠들은?”
“물!”
“물 셋, 비 하나!”
“잠깐만요, 잠깐만요. 좀 적을게요!”
수현이의 손이 바빠진다.
사장님의 발걸음도 바빠진다.
“후루루룩!”
“오, 면치기.”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확정을 지은 후, 희망찬 마음으로 회식을 즐길 수 있었다.
조금이나마 남은 돼지갈비의 참혹한 잔재들과, 달콤 맵싹한 비빔냉면을 힘차게 흡입했다.
후루룩거리는 소리가 예의에 어긋남은 알고 있지만, 쓸데없는 데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던 내게 더 이상 텅 빈 배 속을 참을 인내는 남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챙겨 먹어야 회식비가 아쉽지 않을 것이다.
“커어어……. 맛있네.”
회식은 꽤나 즐거웠다.
배를 잔뜩 채운 후, 우리는 다 함께 노래방에 갔다.
마이크 소리가 너무 가깝기도 하고, 정신줄을 놓고 놀게 되기에 노래하는 사람에게는 노래방이라는 공간이 소돔과 고모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이가 어린 우리 멤버들을 위해 아저씨들이 흡연을 참아 주었고, 중간중간 물도 자주 챙겨 마시게 하며 부상을 방지했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확정 지은 이후였기에, 그 즐거움 가운데 다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생겼다.
다음 날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너 요즘 뭐 하고 다니니?”
어머니가 나를 붙잡고 물어 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