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57
56화
“그, 그럼 진짜 열심히 해야겠네……. 부모님들이 인정하시도록…….”
“다 걸렸으면 이제 그냥 들킬 걱정 없이 연습만 하면 되겠네. 연습하실?”
“하……. 말이 쉽지…….”
지난 사건으로부터 이틀이 지난 월요일.
평소처럼 학교를 끝마치고 재우의 스튜디오에 모여 연습을 하기 전.
나는 멤버들에게 내 상황을 모두 설명했다.
“깊게 생각할 필요 있음? 어차피 지금 당장 뭐가 크게 바뀌는 것도 아니고. 음악만 하면 됨. 평소처럼.”
“그건 그렇지. 휴…….”
이미 대강의 배경을 알고 있었기에 부모님에게 들켰다는 새로운 정보를 반영해 앞으로의 일에 대한 구상을 어렴풋이나마 그리기 시작한 둘.
수현이는 다소 소극적이고 재우는 무한히 긍정적이라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나아갈 방향은 같다.
하던 음악 열심히 하는 것.
그런데 이런 둘과는 달리 유난히 말이 없는 한 녀석이 있다.
“라, 라희야?”
“응! 응? 응. 응? 왜?”
바로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라희였다.
“왜 그렇게 정신을 팔고 있음?”
“아, 아무것도 아니야. 응. 그냥…….”
“그냥?”
“여, 연습이나 하자고!”
“이응.”
수현이의 부름에도 얼빠진 모습을 보이던 그녀는 재우가 직설적으로 던지는 물음을 회피해 버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제 왼손에 드럼 스틱 두 자루를 들고서는 내 북채 어딨냐며 가방을 뒤적이는 꼴이 아무래도 멘탈이 많이 흔들린 듯했다.
“그거 있잖음, 그거. 이번에 라이브 대박 터진 거.”
“Don’t stop?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서 한 거?”
“이응. 그거. 그거 괜찮지 않음?”
“근데 국내 오디션 프로그램 예선 곡으로 괜찮으려나?”
“스파이시 펑크스는 대중성도 괜찮지 않음? 난 좋을 것 같은데.”
항상 마이페이스에 속 편하게 사는 재우가 빠르게 신경을 끊고 연습할 곡을 고르기 시작하자, 수현이도 어색한 분위기가 불편했는지 거기에 동조한다.
‘그래. 당장은 프로그램에 집중해야지.’
재우의 의견이 썩 틀린 말은 아니다.
지금 속 끓여 봤자 바뀌는 일도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노래뿐이니까.
“자작곡으로 가는 편이 낫지 않겠어?”
나도 그들 사이에 끼어들며 의견을 개진했다.
* * *
우리는 당장 다음 주에 올릴 너튜브 커버 곡부터 촬영하고, 겸사겸사 그 곡을 오디션 프로그램 예선에서 연주하기로 결정했다.
고른 곡은 스파이시 펑크스의 돈 스탑.
펑키한 리듬 안에 통통 튀는 각운의 조화가 인상적이며, 악기의 힘찬 진행이 살아 있다.
각운을 위해 가사가 어지럽게 퍼져 있는 느낌을 주긴 하지만, 쭉 이어지는 가창 안에서 그 메시지가 기타, 베이스의 쫄깃쫄깃한 연주와 어우러지는 순간 음악의 황홀함에 빠져드는 곡이다.
좋아하는 사람은 당연히 좋아하고, 처음 듣는 사람이라도 거부감 없이 고개를 흔들 수 있는 노래.
“편곡점은 어떻게?”
“일단 키만 살짝 높여서 해 보고 결정하자.”
다만 이 노래에 맞춰 꾸며 낸 내 가창에서 가장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음역이 중고음역대에 분포하기에, 원곡을 살짝 높이는 편곡이 필요할 것 같았다.
이렇게 긴 고민 끝에 이어진 연습은 썩 순탄치만은 않았다.
둥, 두둥, 둥, 짜르륵……. 텅!
“앗…….”
“왜 그럼?”
“미안, 손이 미끄러졌어.”
라희의 집중력이 좀처럼 올라오질 않는다.
아무래도 내가 한 이야기가 자신의 상황과 겹쳐 정신이 팔린 모양이다.
“잠깐 쉬고 할까?”
“어, 어. 그러자.”
“이응.”
보다 못한 내가 휴식을 제안했고, 모두들 악기를 내려 두고 물러나 앉았다.
다만…….
‘잠깐 쉬어서 해결될 문제 같지가 않은데.’
자기 일도 아니건만 우리의 공통점 탓에 와닿는 부분이 컸는지 멘탈이 무너진 모습이다.
연습 중간 휴식으로 금방 돌아올 일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라희야. 음료수 사러 갈 건데 같이 갈래?”
“어? 응…….”
나는 음료수를 핑계로 라희를 불러냈다.
멘탈 케어가 필요한 타이밍이다.
“뭐가 무서워?”
“응? 아…….”
근처 편의점으로 향하며 라희에게 살며시 물었다.
그녀가 품고 있는 두려움이 어디서 기인하는지는 충분히 알고 있지만, 속 시원하게 털어놓으면 그나마 조금 편해지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냥……. 네 말 들어 보니까 이게 참 쉽지 않구나 싶어서…….”
라희는 평소와 달리 의기소침한 말투로 속마음을 내비쳤다.
“허락 못 받을까 봐?”
“응. 사실 오늘 네 얘기도 반쯤 허락, 반쯤 불허지만 어쨌든 목숨 줄은 이어진 거잖아? 나는 짐작이 안 가.”
의기소침 디버프가 걸릴 만도 했다.
‘나랑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자신도 이렇게 불확실한 결과에 덮쳐질까 무서운 건가.’
말이 ‘성과를 보여라’지 상식적인 선에서 고등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는가?
그 성과물이라는 것을 보이고 싶어 만든 것이 앨범이고, 했던 것이 청소년 대회 대상 수상인데, 결국 더 큰 결과 가져오라는 것이 가혹하게도 느껴질 것이다.
하물며 이미 음악이라는 큰 틀 안에서는 공통점이 있는 우리 부모님이라 스스로 증명하라는 미션이 내려온 것이지, 아예 음악과 관련 없는 일을 하시는 라희의 부모님이라면 더욱 무서운 결과물로 돌아올까 걱정이 생길 수밖에 없으리라.
‘지난번에 보니 관심 가지고 파헤치진 않으시더라도 쉽게 허락하실 분은 아닌 것 같던데.’
라희가 농담처럼 던지는 차장님 소리에 가볍게 웃어넘기는 반응만 보일 뿐 심히 제지하지 않으시는 것으로 보아 권위에 대한 거부감은 없는 성격. 직업에 대한 프라이드는 덤.
여느 어른들이 그렇듯 교양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나누어, 딴따라니 음악은 배고프다느니 일탈은 그만두라느니 하며 거리낌을 느끼실 확률이 높긴 하다.
또한 검사 아버지보다 무서운 것은 무용수 출신 어머니인데…….
‘어머니의 경우 우리 부모님이랑 비슷하게 싫어하실지도…….’
낡은 선입견이기는 하지만, 클래식 영역에 닿은 분야에서 활동하시던 분들은 은근히 보수적인 구석이 많다.
특히나 대중문화에 대한 배타성의 경우 더더욱 그렇다.
평범한 어른들은 자식이 락 밴드에 들어가 음악을 하겠다고 얘기하면 곰팡내 퀴퀴한 반지하에서 악기나 두드리다가, 가끔 들어오는 밤무대에서 일당이나 받으며 들지 안 들지 모르는 빛을 기다리는 불나방 같은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더더욱 안타까운 건 그게 일정 부분 맞는 말이라는 사실이다.
‘인디 바닥에 처음 들어가면 보통 그렇게 시작하지.’
의지만 가지고 헤쳐 나가기에는 다소 어려운 상황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와 우리는 상황이 달랐다.
왜?
‘우리는 금방 이겨 낼 재능이 있어.’
조금 오그라드는 표현이지만 실로 압도적인 재능.
찬란하다 못해 눈이 부시는 재능들의 집합소가 럭키데이다.
구구절절 길게 설명할 것도 없이, 고작 열일곱 소년들이 학교에서 만나 결성한 밴드가 이미 성인 밴드들 사이에서 공연을 하고 환호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상품성, 음악성, 어느 부분에서도 떨어지지 않는 재능들이 있으니 보통이라면 쉬이 장담할 수 없는 성공에의 가능성을 맹신하고 전진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다만 그것을 판단하는 주체가 우리 스스로인지라 누구에게도 쉽게 동의를 받을 수 없다는 문제가 있지만.
‘어쩔 수 없지.
나는 아무것도 아닌 척 표정을 정돈하고, 퉁명스러운 말투로 슬쩍 라희의 신경을 긁었다.
“지라희 배짱 많이 죽었네.”
그러자 곧바로 반응이 돌아왔다.
“뭐라고?”
‘극약 처방이라도 해야지, 안 되겠어. 완전히 얼어서 아무것도 못 하는 것보다는 이게 나을 거야.’
다소 이기적인 해결책일 수도 있다.
어찌 됐건 진로라는 것을 자기 뜻대로만 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는데, 오히려 자극해서 기존의 기세를 이어 나가게끔 유도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아예 아무것도 못 하게 소극적으로 웅크리고 있는 것보다야 자존심을 계단 삼아 계속 나아갈 힘이라도 얻는 쪽이 나으리라.
가만히 두면 무너질 수도 있을 테니.
“무슨 뜻이야?”
“학원비 삥땅 쳐서 연습실 구하고 한 푼 두 푼 모아서 드럼 세트 구비하던 그 지라희가 이렇게 바짝 쫄아 붙어 있는데, 그득그득 차 있던 배짱은 다 어디에 팔았어?”
“끙…….”
내 대답을 들은 라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잠깐 침음을 내뱉었다.
본인 입장에서도 고민이 클 것이다.
“내가 그런가?”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본인 역시 지금까지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인지한 모양이었다.
“조금. 아니, 솔직히 많이.”
나는 가만히 답했다.
그녀를 밀어붙이고 싶지는 않지만, 가장 필요한 답을 내주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처음에 학원 다닌다고 돈 받아서 다른 짓 시작했을 땐 무슨 생각이었어?”
“음……. 별생각 없었던 것 같은데…….”
“생각이 없지는 않았을 거야. 너무 당연했거나, 지금에 와서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 그때는 분명 목적의식이 살아 있었을 거라고.”
“으흠…….”
내 질문에 라희는 잠깐 생각을 이어 나가다가 말했다.
“그냥 음악을 하고 싶었을 거야. 전에 말했지? 버스킹.”
“드러머가 너무 멋졌다고?”
“흐흐. 응. 지레짐작이지만, 내가 드럼을 치겠다고 했으면 부모님은 기겁을 하고 나를 뜯어말리셨을걸? 바이올린, 발레, 아. 그림도 그렸었다. 너무 별로라서 금방 그만뒀지만.”
“고풍스러운 공부들이네.”
“하하! 그렇지. 여자라서 안 된다, 학생이라서 안 된다, 그런 건 없었는데, 일반적인 기준에서 천박하다고 할지, 너무 대중적이라고 할지, 그런 취미는 가질 수 없었어. 무슨 말인지 알지?”
“당연.”
그녀의 문제에 심히 공감하는 바였다.
여자라서, 아이라서, 그런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다.
또한 그렇다고 해서 자식을 부모의 장식품 삼아 원하는 걸 가르치고 원하는 대로 키우고 싶은 것도 아니다.
차라리 그런 문제였다면 일을 풀어 나가기는 더 쉬웠을지도 모른다.
“날 사랑해서, 내가 더 인정받는 일을 했으면 해서 그런 건 알겠는데…….”
자식이 더욱 편안하고 아름다운 길로 걸었으면 좋겠다는 그 마음이 느껴지기에 더욱 고통스러운 것이다.
“하하. 돈은 파바로티보다 매카트니가 더 많이 벌지 않았을까?”
“그러게. 흐히히히……. 사람들한테 더 인정도 받았을 테고.”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
“하긴. 너희 부모님이나 우리 부모님한테는 역시 파바로티가 짱이겠지.”
자조적인 농담이 섞이긴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라희의 목소리에 잔뜩 섞여 있던 긴장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편의점에 들르고, 음료수를 사고, 연습실로 돌아올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에는 지금의 상황에 대한 회의감, 생각, 고민, 긴장 따위가 주였지만 천천히 음악, 유머, 일상에 대한 이야기로 바뀌어 갔다.
그리고 스튜디오에 도착했을 때.
“연습하자, 연습!”
라희의 불안감은 사라져 있었다.
‘미봉책이긴 해도 지금 당장은 음악에 집중할 수 있을 거야.’
제대로 된 사건 해결은 아니었다.
그저 옆에서 나를 보며 촉발되었던 불안을 꾹꾹 눌러 숨겼을 뿐이지, 아직도 음악 인생의 위험이란 남아 있었으니까.
‘생각을 좀 해 봐야겠어.’
나의 집안 존속과 라희의 음악 진로 유지.
이 두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것이 이번 활동의 목표가 될 것 같았다.
“음료수는?”
“지금 음료가 중요해? 빨리 기타 잡아!”
“이게 무슨…….”
우리는 평소처럼 연습을 이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