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58
57화
“연주는 좋은데, 지금 아예 보컬이랑 악기가 어울리지를 않거든요? 합주라는 걸 해 본 적 없는 것처럼 들려요.”
“이게 결국에는 연습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인데, 이렇게 해서 프로 소리 들을 수 있어요?”
“불합격 드리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심사 위원은 피로하고, 참가자는 가슴 아픈 혼돈스러운 장소.
가지각색의 개성을 가진 뮤지션들이 슬픔과 분노 일색의 마음을 안고 무대에서 내려간다.
“쓸 만한 참가자들이 없네, 이거.”
“그러게요. 맨 뮤지션 흉내만 내고, 쭉정이들만 몰려와서……. 어휴…….”
더 밴드 코리아 3차 예선 현장.
1차로 영상 예선, 2차로 제작진 심사를 통해 걸러 낸다고 걸러 낸 참가자들이지만 심사 위원들의 눈에는 들어차지 않는 듯했다.
그럴 만도 했다.
“우리 때는 저렇게 하려고 오면 바로 쫓아냈는데. 음악이 장난이냐고 막 소리를 지르면서.”
“허허허. 요즘엔 그렇게 하면 안 돼요. 덕담도 좀 주고, 고칠 점도 짚어 주고. 재떨이 던지고, 소리치던 옛날이랑은 다르죠.”
“약해, 약해.”
밴드 르네상스라 불렸던 80년대. 강렬하고 과격한 헤비메탈로 대중들의 귀를 사로잡으며 오랜 기간 인기를 유지했던 전설적인 밴드 까마귀의 기타리스트 이태균.
메탈, 얼터너티브, 재즈 락 등 많은 장르를 옷을 갈아입듯 시도하며 다양한 색깔을 보여 주었던 밴드 위로의 보컬 김하늘.
만능 작곡가이자 명실공히 한국 대표 락밴드인 디밴드의 베이시스트 박창희.
펑크 밴드의 혁명이라 불렸던 플런지펑크의 키보디스트 김덕흥.
그리고…….
“애들이 연주를 할 줄 몰라요. 무대 경험은 좀 있는데, 연주가 뭔지를 몰라.”
코리안 사운드, 재즈 피크 등의 밴드에서 드러머로 활동했으며, 한국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에서 드러머들을 가르치고 있는 황보문까지.
락이라는 장르를 아끼는 사람들이라면 눈이 돌아갈 초호화 심사 위원 캐스팅이다.
이런 거장들의 눈썰미니, 어설프게 구색만 갖춘 참가자들이 좋은 평을 들으려야 그럴 수가 없는 것이 당연했다.
“저기, 거 곽 PD. 이거 거르긴 한 거야? 그냥 귀찮다고 쭉 훑기만 하고 올려보낸 거 아니고?”
“아이고, 선생님. 그래도 저희가 본다고 봤는데…….”
“이거 첫날부터 이러면……. 어떻게 촬영 계속할 수 있겠어? 아무도 못 올라가고 프로그램 문 닫겠는데?”
“허허허. 고르고 골라야죠.”
“그 고를 사람이 없으니 그러지, 이 사람아.”
평소만 같았으면 음악 하는 후배들이 기특하다며 그들의 소리를 기쁘게도 들었을 사람들이다.
아마 기분 좋게 이것이 좋다, 저것은 별로다, 이런 걸 해 보면 어떻냐 하며 조언도 남겨 줄 수 있었으리라.
“방금 걔 있잖아. 조율도 멋대로 해 놓고 소리 이상한 건 아는지 자꾸 줄을 올려서 후리잖아. 그게 뭐 하는 거야.”
“기타만 그런가요? 보컬도 아주 멋대로던데. 밴드가 왜 밴드인지 이해를 못 하고 있어요.”
“저렇게 멋없기도 어렵다. 참.”
하지만 나름 빵빵하게 지원을 받아 만든다는 방송인데, 몇 팀을 떨어뜨려 집에 보내도 뒤에 나오는 놈들의 실력이 다 거기서 거기이니 도저히 심사할 맛이 안 나는 거장들이다.
‘이거 큰일인데…….’
지금까지 열 팀 남짓의 심사를 봤고, 이제 또 열 팀의 밴드가 뒤에 남아 있다.
만약 그중에서도 합격자가 나오지 않는다면, 오늘 거르고 내일 있을 촬영에서 모든 분량을 뽑아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곽준호 PD는 모공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것을 느꼈다.
“잠깐만……. 지금 우리가 몇 팀이나 봤지?”
“지금 열하나인가, 열둘인가 봤죠?”
“아이쿠. 오래도 했군. 우리 좀 쉬고 하지? 애들이 소리를 잘 잡지를 못하니까 귀가 울려, 귀가.”
고생스러운 심사에 진이 빠지는지 이태균 심사 위원이 휴식을 제안했고, 곽 PD가 크게 대답했다.
“아, 네. 그러시죠! 삼십 분만 휴식을 갖겠습니다. 김 작가님, 참가자분들 잠깐 대기하시라고 해 줘요.”
“네.”
심사 위원들은 저마다 자리를 뜨고, PD가 작가를 시켜 다음 순서의 참가자들을 무대 뒤에 대기시켰다.
계획되어 있던 쉬는 시간이었기에 별문제는 없었다.
‘제발 남은 참가자들 중에 물건이 있어야 하는데. 제발!’
곽 PD는 주변을 돌아다니는 사람들 사이에 홀로 우두커니 서서 자신의 모가지를 건 이번 기획이 성공하기만을 간절하게 기도했다.
* * *
“얼래? 이건 또 뭐야?”
화장실에 다녀오며 물 묻은 손을 바지에 쓱쓱 닦던 황보문은 촬영장으로 돌아오던 복도에서 특이한 것을 발견했다.
“아니, 밴드 오디션에 왜 레슬러가 왔어, 그래?”
살짝 더워 보이는 가죽 재킷에 찢어진 청바지로 올드한 불량 냄새가 나는 패션 연출.
그에 비해 길쭉길쭉한 팔다리와 곧게 뻗어 튼튼해 보이는 등허리가 매력적인 긴 머리의 여자.
그리고 얼굴에 덮어쓴 타이거 마스크.
“하하, 하하하하……. 안녕하세요…….”
이상한 사람이 무대 뒤에 있다.
‘이건 또 뭐야?’
황보문은 실소를 토했다.
아무리 방송이라지만 콘셉트가 과한 것처럼 보였다.
“여학생이네? 보컬? 기타?”
“드럼입니다…….”
“허, 참…….”
그것도 자신이 여기에 있는 이유인 드럼이란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지가지들 한다.’
방송 한 번 나오겠다고 별짓들을 다 한다 싶었다.
황보문은 체력, 박자감 등등 드러머에게 중요한 것들은 많다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음악에 진심인가, 얼마나 음악을 사랑하는가라고 생각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눈에 띄기 위한 전략이랍시고 가면을 뒤집어썼겠지만, 오히려 우스꽝스러울 뿐, 전혀 감명이 없었다.
‘하긴 저런 우스운 짓이나 하는 애들이 예선을 통과해서 3차씩이나 올라와 있으니…….’
그는 이 꼴을 보니 듣잘 것이 없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쯧.
그러고는 혀를 차며 다시 심사 위원석으로 복귀했다.
“똥 쌌어? 왜 이리 오래 걸려?”
“아, 시작이나 합시다. 얼른 끝내고 집에나 가게.”
“뭐야? 왜 그래?”
기분이 한층 나빠진 듯한 황보문의 모습에 다른 심사 위원들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카메라 돌아가요. 큐!”
“다음 팀 들어갑니다!”
그리고 곧 촬영이 재개되었다.
‘어? 아까 그 친구구먼.’
덩치 큰 보컬을 시작으로 상대적으로 작은 기타리스트와 베이시스트의 뒤를 이어 아까의 보컬만큼 커다란 드러머가 들어온다.
그런데 이제 호랑이 가면을 쓴.
“안녕하세요, 저희는 락 밴드 럭키데이입니다.”
“반갑습니다. 아주 젊은 뮤지션들이네요.”
지금까지 듣기 힘든 음악에 질려 하던 모습은 다 거짓이었다는 듯, 따뜻하게 그들을 맞이하는 이태균을 보며 황보문은 생각했다.
‘볼 것도 없이 얘들은 탈락이야.’
뻔하디뻔했다.
어떻게든 방송 카메라에 모습이나 한 번 더 잡히게 만든 후, 공연이나 다닐 것이 분명했다.
기왕이면 드러머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가면들 하나씩 뒤집어쓰고 할 것이지, 하나만 쓴 것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밴드라며 나왔던 다른 참가자들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 같았다.
그나마 방송 경험이 많은 다른 심사 위원들 덕에 기쁜 척, 좋은 척 토크는 안 해도 되니 다행일 뿐이었다.
“……그래요. 준비한 곡 들어 볼까요?”
“넵. 시작하겠습니다.”
아주 짧은 인터뷰가 지나가고, 곧 뜨내기들의 무대가 준비되었다.
전혀 기대가 되지 않아, 황보문은 턱을 괸 채 그들이 하는 꼴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큰 충격에 빠졌다.
“환하게 빛나는, 저 골목의 가로등을…….”
잔잔한 아르페지오 선율에 섞여드는 보컬의 목소리.
얼핏 벅차면서도 탄탄한 소리인데, 너무나 부드러운 진행에 전혀 거북함이 없이 귀에 꽂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김현수 노래를 골랐네.”
“크……. 이렇게까지 우울한 블루스 해석이라는 게 참……. 저 어린 나이에 하기 힘든 건데.”
“잘하네요. 전체적으로 수준이 딱 맞아요, 팀이 같이 잘해.”
심사 위원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감탄하는 평을 뱉었다.
곡은 90년대에 요절한 대중음악의 별, 김현수의 하소연.
금방 베이시스트 박창희가 말했듯, 회고적이고 처절한 그 가사는 물론, 2옥타브 중후반에서 유지되는 그 어두운 감정선과 거친 색깔이 표현하기 너무나 힘들다는 평을 듣는 노래였다.
때문에 몇 번이나 김현수를 기리는 추모 앨범 제작과 추모 행사가 있었음에도 다른 가수들이 부르기를 꺼리는, 아주 어려운 곡이다.
‘과감하네.’
자신감인지, 무모함인지 그 선곡부터 젊은 패기가 느껴졌다.
황보문은 슬쩍 자세를 고쳐 앉았다.
자신들을 럭키데이라고 소개한 밴드의 연주를 더 자세히 감상하고 싶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하고 그들이 만들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저 멀리 떠나는 당신의 뒷모습은……. 하룻밤 꿈이었을까…….”
쨍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연주에 녹아드는 보컬의 솜씨가 아주 인상적이다.
하지만 황보문의 귀를 간질간질 즐겁게 만드는 것은 따로 있었다.
‘허. 박자감이 무슨…….’
잔잔하게 절망과 애달픔을 노래하는 곡이라 최대한 끊기는 느낌 없이 진행하는 쪽이 표현에 유리하다.
“가려면 가라지! 그렇게 힘들다면! 가다가 힘이 든다면 또 일어서겠지!”
그러기 위해서 이들은 하나씩 찍히는 노트 사이에 있는 빈 부분이 너무 허망하게만 보이지 않도록 박자를 자잘하게 가져가다가, 분위기 반전이 필요할 때는 오히려 그 공백을 제대로 강조해 이용하며 잔잔하던 분위기에 머물던 곡을 공허한 하소연으로 못 박아 버렸다.
죽어 가는 사내의 절규가 언제인지도 모르게 가슴팍에 꽂혀 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 일련의 상황은 분명 드러머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아예 단 한 박도 놓치지 않으니 다른 악기들이 선 위에 멜로디를 안개처럼 흩뿌려도 절제미가 살아. 테크닉은 조금 거칠지만, 오히려 그래서 곡과 어울리는 것 같군.’
그런 의미에서 저 멀리 보이는 호랑이 가면의 드러머는 그야말로 완벽한 소울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 봤던 팀들 중, 아니, 최근 보았던 그 어떤 드러머들보다 잘하는 드러머다.
찍을 때 찍어 주는 파워, 단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박자감, 투박해도 거친 맛이 살아 있는 테크닉.
그야말로 보물 같은 연주자였다.
다른 누구보다 황보문이 가장 잘 알 수 있었다.
얼핏 쉽게 들리는 이 소리가 보통의 재능으로는 만들 수 없는 귀한 것이라는 사실을.
‘겉만 보고 판단하다니. 나도 멀었군.’
직전까지의 참가자들이 너무 형편없었다는 이유로 지레짐작해 판단한 것이 속으로 미안해진 황보문이었다.
이렇게 홀릴 정도로 잘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럭키데이의 무대가 끝났을 때.
“너! 드러머! 잘하네! 이게 연주지! 이게 드럼이야!”
그는 직전까지 실력 없는 참가자들 탓에 고통받았던 귀가 보상받는 느낌이라며, 침을 튀기며 칭찬을 연발했다.
* * *
‘저 아저씨 왜 저래?’
나중에야 예능도 자주 나오고 하며 웃기는 아저씨 소리도 듣게 되지만, 지금 시기에는 카리스마 넘치는 드러머이자 유능한 교수로 끗발 좀 있는 황보문이다.
그런 그가 왜 이렇게 경박하게 방방 뛰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너 저 아저씨 알아?”
“아니. 아까 복도에서 보긴 했는데.”
“이상하네…….”
우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년 드러머의 난데없는 고성방가에 의문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