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59
58화
아무튼 우리의 퍼포먼스에 감탄했다는 것은 좋은 일이기에, 우리는 그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어쨌든 본격적으로 방송에 나오는 첫 무대를 굉장히 잘 꾸민 것 같다.
황보문 드러머는 물론, 이태균 기타리스트와 김하늘 보컬도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박창희 베이시스트는 고개를 숙이고 종이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아마 심사 내용 같은 거겠지?’
우리는 잠시 심사를 기다렸고, 과연 평가는 기대 이상이었다.
“무조건 합격. 드디어 한 팀 건졌네요. 몇 시간이나 고난의 행군을 했는데……. 그래. 이게 오디션이지.”
“저도 합격이요.”
“정말로 듣기 좋은 아름다운 연주였습니다. 넷 모두 어린 학생들인데, 어떻게 이 노래를 할 생각을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 처절한 감성을 소화해 냈는지 궁금해질 정도로…….”
먼저 김하늘 보컬이 짧게 합격을 외치고, 뒤를 이어 김덕흥 키보디스트가 더 짧게 말한다.
그리고 이태균 기타리스트가 심사평을 읊었다.
나이에 맞지 않는 완성도.
애당초 목표로 했던 평가를 그대로 받을 수 있었다.
‘그러려고 곡도 일부러 바꿨지.’
원래 해외 팝송을 염두에 두었다가 이미 고인이 된 거장의 명곡으로 선곡을 돌린 이유.
우리 밴드의 가장 큰 개성인 어린 나이를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여러분들 덕분에 한국 락 음악의 미래는 밝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합격입니다.”
“감사합니다.”
자연스럽게 손이 떨려 오는 극찬이었다.
‘다섯 표 중 세 표. 합격은 받았고, 이제…….’
합격 자체보다는 만장일치로 통과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방송 분량은 물론, 사람들의 기대감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쭉 승승장구하는 것이 제일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사람의 평가는 우리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끝나고 명함이나 연락처 하나만 놓고 가요. 아니지. 말해 놓을 테니 내 명함 가져가. 곡이 술술 나오네.”
“거기 호랑이 학생, 우리 학교 올 생각 있나?”
연속된 두 사람의 심사평.
‘뭐야 이게?’
박창희 베이시스트가 갑자기 곡이 술술 나온다며 자기 명함을 가져가라고 제안한다.
황보문 드러머는 라희에게 자신이 교편을 잡고 있는 학교로 오라며 고래고래 소리친다.
혼란스러운 광경이다.
‘곡이라도 주겠다는 말인가, 혹시?’
박창희 심사 위원의 경우 곡이 술술 나온다는 그 말이 같이 노래 하나 해 보자는 뜻이 읽히는데, 콜라보레이션 제안인지, 그냥 곡만 주겠다는 건지 헷갈린다.
물론 박창희 역시 디밴드라는 유명 밴드에 소속된 인물. 밴드 둘이 콜라보를 진행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 아마 곡을 주고 싶다는 말 같았다.
‘같이 무대라도 서면 이목 좀 끌 수 있을 텐데. 아쉽네.’
물론 말로는 아쉽다고 해도, 곡 하나 써 준다는 그 말도 감지덕지다.
그는 뛰어난 베이시스트이기 이전에 디밴드의 유명 곡 새가 되자, 돌고래, 먼 곳에서 등의 작곡가였으니까.
반면 황보문 드러머는 오로지 라희를 향해서 쌍 따봉을 들어 올리고 있다.
대학교수다운 스카우트 제의를 연신 던지면서.
‘라희 연주가 꽤 마음에 든 것 같은데?’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테크닉 측면에서는 아직 냉정하게 말해 고등학생 전공자들의 평균 수준 정도인 라희이지만, 타고난 박자감과 그루브가 남달라 그 천재성이 보이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특히나 오랜 시간 교단에 서서 활동했던 황보문 교수의 눈에는 오래간만에 만난 반짝이는 원석처럼 보일지도.
그러니 저 모든 모습들이 말하는 것은 하나.
“이야, 극찬을 이런 식으로 하네.”
“그럴 수도 있지. 우리 여기 앉아서 몇 곡을 들었냐? 제대로 된 노래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아, 근데.”
어마어마한 극찬의 연속이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감사 인사를 올렸다.
예의 따박따박 잘 갖추는 모습을 보여야 방송에 나가기 좋다.
자유와 평화의 락이라지만 이곳은 성리학 500년의 유구한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
유교 메탈 정신으로 단단히 무장해야 한다.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편곡에서 곡의 해석이 아주 깊다는 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큰 점수를 주고 싶어요. 어려운 노래를 할 때는 편곡자도, 연주자도 부담을 느낄 수가 있는데, 이에 있어 배려가…….”
“박자가 흐트러지지 않는 드럼이 있으니 밴드 연주가 옹골차게 잘 뭉쳐 있을 수 있었다고 봐요. 이게 생각보다 중요하거든? 킥 찍는 타이밍에서 스네어 튈 때까지 일정한…….”
“이펙트 사용에서 연습량이 보이네요. 기타 많이 만져 보신 것 같아요. 곡에 잘 어울리는 이펙트를 고르는 것도 기타맨의 아주 큰 능력입니다. 허허허. 아르페지오에서 리프로 바뀌면서 디스토션이 묵직하게 들어갔는데, 전환이 갑작스러웠음에도…….”
인사를 올린 후, 상세한 심사평을 감상했다.
심사 위원들이 모두 유명한 연주자이며 거장 소리를 듣는 대단하신 분들이라, 한 마디 한 마디가 큰 도움이 되었다.
‘새겨듣자.’
청자의 입장에서 짚어 주는 강점은 극대화하고, 거슬리던 단점은 메울 기회다.
어디서 돈 주고도 배울 수 없는 교육의 장이 열렸다.
“괜찮네요. 또 짚어 줄 게…….”
“선생님들 잠깐만요. 학생들 옷 좀 만지고 갈게요!”
이어지던 심사평이 잠깐 끊겼다가 다시 시작하려고 하던 그때, PD가 갑자기 신호를 주며 난입했다.
‘옷을 만지고 간다고?’
무슨 뜻인지 몰라 잠시 얼을 타는데, 이태균 심사 위원이 껄껄 웃으며 PD에게 물었다.
“허허허. 뭐야, 분량 좀 잡아 주려나 보네?”
“혹시 몰라서요, 선생님. 하하하. 오늘 영 건진 게 없었잖습니까?”
“그렇긴 하지. 어여들 하시오.”
‘아하.’
아무래도 방송 분량을 주려다 보니 우리 외모를 좀 건드려야겠다 싶은 모양이었다.
‘운이 좋군.’
희소식이다.
분량을 얼마나 빼 줄지는 모르지만, 카메라에 예쁘게 잡히라는 직접적인 신호인데 받아먹지 못하면 바보 되는 거다.
곧 제작진들 중 두 사람이 나와서 우리의 옷매무새를 정돈하기 시작했다.
옷은 나름 꾸민답시고 잘 꾸민 건데, 정신력 소모해 가며 연주를 한 직후라 흐트러져 있었기에 그게 거슬렸던 것 같다.
“잠깐만 팔 좀 앞으로 내밀어 줄래요?”
한 여자 작가님이 재우에게 말하더니 그가 입은 옅은 색 청재킷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손목이 완전히 드러나고 전완근이 아주 살짝 보일 정도로 롤업을 하니 분위기가 한층 멀끔해진 것 같기도 하다.
‘잘 어울리네.’
패션에 관심이 많은 분인 듯했다.
“으응, 인물이 확 사네.”
“불편한데…….”
“참고 입어. 카메라에는 멋지게 나와야 되는 거야. 그게 예의지.”
불평하는 재우에게 툭 던지듯 말하자, 김하늘 심사 위원이 웃으며 첨언했다.
“덩치 큰 학생 말이 맞아. 언제나 어디서나 그러라고는 못 하겠지만, 프로라면 적어도 관객들 보는 자리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이어야 하지.”
재우는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납득은 되었는지, 고개를 꾸벅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재킷을 만져 준 작가님은 꺄르륵 웃으며 수현이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수현이의 화장을 만져 주고, 내 머리에 왁스를 발라 뒤로 넘긴 뒤, 그들은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멀끔하네.”
“이야. 이게 밴드야, 아이돌 그룹이야?”
“아, 그렇게 말하면 안 좋을 수도 있어요.”
“뭐야, 자네 아이돌 무시해?”
“크흠. 녹화 다시 가시죠?”
“네! 카메라 돌아갑니다! 큐!”
그리고 다시 촬영이 재개되었다.
직전과 비슷한 맥락의 감상평과 조언, 왜 이 곡을 골랐는지, 곡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바를 시원하게 다 얘기했는지 따위의 질의응답이 오고 갔다.
우리는 미리 맞춰 놓은 이야기대로 최대한 예의 바른 자세로 대꾸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심사 위원들이 잘 봐 준 덕분에 그림도 잘 뽑힐 것 같았다.
‘물론 방송국 사람들을 믿는 게 멍청한 짓이라는 건 기억해 두자.’
언제든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겠지만, 프로그램의 기둥인 심사 위원들이 우리를 좋게 보고 있는 이상 그런 일은 일어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고생하셨습니다.”
“전원 합격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꽤 길게 느껴지는 촬영이 끝나고, 우리는 무대 뒤로 돌아왔다.
그곳에도 연주와 심사를 마치고 돌아온 참가자들을 찍기 위한 카메라가 있었다.
“고생했어요. 이후 본선 촬영 일정이랑, 미션 내용 같은 건 신청서 메일을 통해 오늘 발송될 거예요.”
우리를 직접 섭외했던 김산하 작가가 따라붙으며 말을 걸었다.
합격자에게 필요한 공지 사항과 유의점 같은 것들이 주를 이뤘다.
“자, 이쪽으로 나가시고 리액션 하시면 됩니다.”
“넵.”
“가능하면 젊은 활기가 넘치게 환호성도 좀 질러 주시고, 방방 뛰는 쪽으로 해 줬으면 좋겠는데…….”
“네. 맡겨 두세요.”
“고맙습니다. 합격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그는 무대 뒤로 퇴장하는 우리를 안내하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자신이 데려온 밴드가 침체되어 있던 분위기를 살려 놓으니 동료들 앞에 면이 섰는지, 우리에게 아주 호의적인 눈빛이었다.
“문 연다?”
“기역기역.”
“하나, 둘…….”
복도로 통하는 문을 벌컥 열고, 우리는 함성을 지르며 뛰어나갔다.
“와아아아아!”
“합겨어억!”
“와……. 와……. 흐흫…….”
수현이는 나름 소리를 지르려다가 웃음을 터뜨렸고 재우 놈은 무표정하게 저벅저벅 조용히 걸어 나오기는 했지만, 떠들썩하게 자축을 벌였다.
오히려 대비되는 그 장면이 마음에 드는지, 김산하 작가와 카메라맨 아저씨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시킨 리액션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는데도 이런 호의라니.
‘이것이 젊음의 특권?’
어려서 봐준다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과분한 호감을 산 기분이다.
“야, 야, 야. 선생님 몰카? 떨어졌다고?”
“어우, 깜짝이야. 마스크……. 차 들어가면 벗자.
“아이, 그것보다 몰카!”
뒤에서 호랑이 가면을 여전히 쓰고 있는 라희가 나를 툭툭 건드려 부르더니, 우리를 여기까지 태워다 준 김하선 선생님을 속이자는 배은망덕한 제안을 던졌다.
이런 못된 녀석.
“그럴까? 선생님 한번 속여?”
“흐히히히힛. 가자, 가자.”
당연히 해야지.
우리의 승전보를 간절히 기도하며 정작 심사를 받는 우리보다 더 떠시던 선생님을 속일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 * *
“진짜 놀랐잖아 이 나쁜 놈들아! 하하하!”
“푸하하하하핫!”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기다리던 선생님은 침울해 보이는 우리 모습에 당황하셨다가, 합격을 알리는 공지 서류를 보고는 화와 웃음을 동시에 터뜨렸다.
“당연히 통과할 줄 알았는데! 얘들이 어른을 속여? 너희 걸어갈래? 앙?”
“아이, 죄송해요!”
“이거 다 들고 가면 저희 죽어요.”
“에이! 저녁으로 소고기 사 주려고 했는데 떡볶이로 강등이야!”
“으억!”
선생님의 작은 자가용에 악기와 이펙터 따위를 조심스럽게 실어 놓으며 우리는 쉬지도 않고 떠들었다.
‘선생님이 학생들이랑 정신 연령이 딱 맞으셔.’
젊은 선생님이라지만 학생들과 이렇게까지 공감대를 나누며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기도 했다.
“휴우우! 이제야 살겠네!”
“고생했다.”
“더워, 더워. 벗어야 하는 날씨야.”
“마스크 말이지? 응.”
짐을 모두 올려두고 드디어 마스크를 벗은 라희가 숨을 몰아쉰다.
따뜻한 날씨에 계속 얼굴을 덮고 있자니 진이 빠진 듯했다.
‘조금만 참아라.’
그 마스크 벗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꾹 눌러 참고, 나는 애들의 이목을 불러 모았다.
“이제 본선 준비해야지?”
“벌써?”
“쉬지도 않고?”
“왜들 그래? 우리가 언제는 연습 쉰 적 있는 것처럼?”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생방송 무대가 시작되는 본선 전, 팀 미션과 일대일 합주 미션이 있는 밴드 위크.
우리 앞길을 가로막을 똥덩어리들을 깔끔하게 치울 전략을 구상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