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63
62화
언제나 인생에는 계획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에 뒤따르는 불의의 사고라는 것도 있는 법이다.
나는 최선을 다해 준비를 했으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그것들이 날아갈 수 있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합주가 아니라 배틀이라고?”
“아니, 다 정해 놓고 이제 와서 바꾸는 건 또 뭐야?”
“몰라. 분량이라도 더 뽑고 싶은 모양이지. 합주에서 배틀로 바뀌면 단순 계산으로 분량 두 배잖아.”
“……사전 공지와 다르게 진행되는 점 다시 한번 양해 부탁드리며, 자세한 사항은 나눠 드린 서면을 통해 확인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잠시 후 촬영 재개합니다.”
일대일 미션이 합주가 아닌 배틀로 바뀌면서, 시간 들이고 품 들여서 계획했던 꼼수들 절반 이상이 물거품이 되었다는 뜻이다.
“에라이.”
아쉽게 됐다.
저쪽에 유리할 듯 불리한 방향으로 교묘하게 편곡점을 잡는 것부터 시작해 다소 비열한 수단까지 공을 들여 만들어 놨거늘, 전부 쓸모없는 짓이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바뀐 건 바뀐 거고, 한탄할 시간에 이전에 계획했던 것에서 아직도 쓸모가 있을 법한 것들을 골라내고, 새 계획을 짜내는 것이 합리적이다.
나는 원래의 역사에서는 없었던 이번 일에 대처하기 위해 제작진의 공지에 집중했다.
“이전과 큰 갈래는 같지만, 두 밴드가 합주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곡을 따로 불러 심사를 받게 된다는 점에서 달라집니다. 한 곡을 두 팀이 고르게 되며…….”
바뀐 방식 자체는 꽤나 심플했다.
한 곡을 두 팀이 고르고, 따로 노래를 준비해 순서대로 심사를 받는다.
그리고 점수가 더 높은 쪽이 승리. 다음 라운드로 진출한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마주치지?’
순서대로 준비된 곡 중 하나를 고르고 매칭된 밴드들끼리 배틀을 한다는 건데, 이렇게 되면 웨이스티드를 직접적으로 지목하는 것이 불가능하니 그들과 마주칠 수 없을 수도 있다.
혹여나 원래 탑텐에 올라갈 것이 확실한 다른 밴드를 만나기라도 하면, 그 미안함을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웨이스티드랑 붙을 수 있을까…….’
나는 이번 미션을 위해 준비된 곡들이 발표되는 짧은 시간 동안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그들이 앨범에 어떤 곡을 만들어 올렸고, 어떤 특징을 가진 곡들이었는지.
이기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무엇인지.
예선에서 웨이스티드가 무슨 노래를 불렀고, 팀 미션에서는 뭘 골랐는지 등.
떠올릴 수 있는 정보란 정보는 모두 살폈다.
그리고 너무나 느닷없이 생각난 기사 하나.
정말이지 뜬금없이 떠오른 정보라 나도 크게 놀랐다.
번뜩!
‘그 인터뷰!’
예전에 읽은 적이 있다.
소문난 악당들만 골라서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진행하는 블로거가 있었다.
그리고 하루는 인디에서 가장 유명한 악동들, 웨이스티드를 취재했던 기사가 올라왔다.
“처음에는 알카트라즈 제트 짝퉁으로 시작했어요. 하하. 보컬인 영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다른 멤버들까지 전부 알카트라즈 제트 광팬이었거든요. 시작이 커버 밴드였다 보니 밴드 음악 스타일에 그게 묻어나더라고요.”
웨이스티드라는 밴드의 멤버 전체가 해외 유명 밴드 알카트라즈 제트의 광팬이라며 웃던 기타리스트 김상욱.
씩.
그들이 무슨 곡을 고를지 짐작이 갔다.
다행히 선점권은 우리에게 있으니, 그들이 따라 들어오는 것을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저 멀리 단상 위에 보이는 패널, 저곳에 쓰인 곡들 중 단 한 곡.
알카트라즈 제트의 곡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 * *
“다음, 알카트라즈 제트의 hurt me로 맞붙게 될 두 팀은…….”
예지연 아나운서의 낭랑한 목소리가 강당에 가득 울린다.
내 선택이 옳았는지 확인할 시간이다.
“럭키데이와 웨이스티드입니다.”
“오케이.”
예상이 적중했다.
광팬, 카피 밴드를 자처하던 웨이스티드는 정말로 알카트라즈 제트의 곡을 골랐다.
hurt me.
구슬픈 분위기의 흐름에 기타리스트 잉위 맘스틴 특유의 속주가 가미되어 기묘한 감정선이 인상적인 노래다.
“생각해 둔 대로 가면 되겠다.”
“이응.”
“오케이!”
일대일 미션의 방식이 변경되기 전부터 이미 준비해 둔 전략이 있었다.
기타리스트가 팀의 에이스인 웨이스티드를 저격하기 위해 우리 역시 재우의 연주를 최대한으로 살리는 편곡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맘스틴이라는 희대의 기타리스트가 몸담았던 알카트라즈 제트의 노래를 하게 된 만큼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다만 보컬이 고음역대에서 머물고, ‘지르는 노래’인 만큼 집중력을 어마무시하게 요구할 테니 긴장이 필요했다.
“우리는 넷. 저기는 다섯. 고전적인 구성에 키보드가 더해진 조합이야.”
“아, 아마도 세컨드 기타의 부담이 조금 덜할 것 같아…….”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런 만큼 보컬에 집중할 수도 있을 테고. 하지만 기타를 메인에 내세울 게 분명해. 그렇게 신경 쓸 이점은 아닐 거야.”
“응.”
우리는 보컬 겸 기타, 전문 기타, 베이스, 드럼의 네 명. 웨이스티드는 보컬 겸 기타, 전문 기타, 베이스, 드럼, 그리고 키보드의 다섯 명이다.
편곡에서 차이를 만들 수 있는 점은 세컨드 멜로디에 키보드의 연주가 가미될 수 있다는 것 정도.
기타를 잡음과 동시에 노래까지 해야 하는 보컬의 부담을 덜고 무게를 실어 줄 기회가 있지만, 어차피 웨이스티드의 기타리스트 김상욱이 중심이 되어 곡을 이끌어 나간다면 유의미한 차이는 없다.
상대가 만에 하나라도 보컬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밀고 나간다면 평가 포인트가 다소 갈리겠지만, 자기가 잘하는 것에 매달리는 것은 본능이다.
기타를 중심으로 편곡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신경 쓰이는 부분은 아니었다.
“믿는다, 재우.”
“이응.”
우리는 기타 대 기타의 접전을 예상한 채 편곡을 진행했고…….
“허……. 엄청난 속주네요. 보는 내내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프로그램에 국보급 기타리스트 하나 나왔네. 아니, 이런 실력자가 왜 아직 언더에 있어?”
이 예상은 보란 듯이 적중했다.
‘확실히 기타 하나만큼은 여기 있는 모든 밴드 중에서 최고라고 봐도 무방하겠어.’
웨이스티드의 무대를 본 모두가 감탄을 터뜨렸다.
‘그래도……. 이길 수 있어. 충분히.’
하지만 우리가 이길 수 있는 포인트가 정확히 보였다.
팀워크.
팀이 얼마나 끈끈하냐 따위를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보컬이 잘 안 어울리지?”
“오. 라희 귀 좀 열렸는데?”
“후후. 넓은 가슴으로 음악을 듣게 되었지. 어때? 멋있어?”
“응, 그래.”
웨이스티드의 보컬은 너무나 뛰어난 기타에 비해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이 노래는 기본적으로 우울한 분위기와 느린 템포의 곡에 빠른 기타 멜로디가 이어지고, 그 기묘한 조화를 끝까지 가져가야 어색한 간극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고음을 소화하기 위해 꺽꺽대는 샤우팅을 지속하고, 어설프게 늘여 부르는 습관 탓에 좋은 기타를 망치고 있다.
보컬과 기타의 융화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이 잘 듣던 청자들의 몰입감을 깨는 것이다.
“이길 수 있겠어.”
분명 좋은 무대였다.
관련 클립이 인터넷에 올라간다면 꽤 높은 조회 수를 얻겠지.
하지만 이상하게도 긴장감보다는 자신감이 샘솟는다.
“응!”
“으, 응…….”
“이응.”
멤버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다음. 럭키데이 준비해 주세요.”
“넵!”
“네에!”
스태프의 호명이 들렸고, 우리는 각자의 무기를 챙겼다.
‘가자. 이기고 오자.’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재우가 빌려준 카본 기타의 옆면을 슬슬 쓸어 보았다.
천천히 냉정함을 유지한 채, 우리는 무대에 올랐다.
“반갑습니다, 럭키데이.”
“천재 소년들!”
“안녕하세요.”
톤을 맞추고, 자리를 정돈하고, 각자에게 들리는 소리를 점검하는 동안 짤막한 토크가 이어졌다.
나는 최대한 예의 바른 자세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문답을 나눴다.
“곡 준비하는 동안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저녁 식사가 조금 모자랐던 것 외에는 없었습니다.”
“하하하하! 하긴, 덩치 보니 도시락 하나로는 안 될 것 같아.”
유머러스하게, 하지만 건방져 보이지는 않게 신중한 답을 골라 뱉었다.
심사 위원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어린 나이라는 방패로 이미지를 챙길 수 있을 듯했다.
“올라오기 전에 상대 팀인 웨이스티드의 무대를 먼저 봤을 텐데 어땠어요? 이길 수 있겠어요?”
그리고 날아온 김덕흥 심사 위원의 질문.
나는 당당하게 답했다.
“스타일 차이는 있겠지만, 이번 곡은 저희 럭키데이의 해석이 듣는 사람들에게 더 와닿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준비했습니다.”
“이기겠다는 거네.”
“하하하…….”
예의 갖춘 답변의 속을 굳이 끄집어내는 황보문 심사 위원의 말에는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굳이 악역처럼 비치고 싶진 않았으니까.
띠이잉, 딩. 딩딩.
끄덕.
어느새 팀원들 모두 준비를 마치고 대기했다.
그것을 본 이태균 심사 위원이 말했다.
“얼추 다 된 것 같은데, 시작할까요?”
“넵. 들어가겠습니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크게 내쉰 후, 멤버들과 눈을 마주쳤다.
끄덕.
이제 우리의 시간이다.
무대 위가 전부 우리의 것이라는 고양감을 지닌 채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띠리링, 치직, 띠리리링…….
재우의 클린톤 연주로 곡이 시작되었다.
중반부터 속주가 나올 것임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그 청명함과 정갈한 사운드에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다.
그때, 오로지 깨끗했던 그 소리에 이펙트가 난입한다.
위이잉, 위잉, 위이이잉!
짙게 트레몰로 이펙트가 먹혀 크게 떨리는 기타 소리가 마치 이것이 기계의 미학이라는 듯 귀를 간지럽혔다.
곡이 시작되고 짧은 시간에 터진 반전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카아아아앙!
그리고 비명처럼 울리는 피킹 하모닉스.
‘끝내주네.’
신들린 연주에 순간 홀릴 뻔한 정신을 깨우는 강렬한 일격이다.
뒤에 이어질 화려한 음표들에 비하면 잔잔한 전주일 뿐인데도 몰입감이 너무나 높았던 것이다.
‘집중력도 좋고.’
자신의 좋은 연주에 달아오를 만도 한데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 연주에만 집중하는 재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야말로 엄청난 집중력이다.
‘하기사 매일이 연습이고 인생이 연습이었으니까 당연한가.’
재우는 마냥 재능만 믿고 있는 연주자가 아니다.
공부 시간이 음악이고 쉬는 시간이 음악인 음악에 미친놈.
그간 나와 함께한 모든 시간이 연습, 공연, 음악 공부로 물들어 있던 만큼, 그 재능에 불이 붙은 듯 성장한 실력을 침착하게 선보이고 있었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나 역시 정신을 차리고 연주에 집중했다.
오늘 내 역할은 재우를 위해 비단길을 깔아 주는 것.
딩딩딩딩 딩딩딩딩, 딩딩딩딩 딩딩딩딩.
카본 기타에서 먹먹한 배킹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쉬운 패턴의 아르페지오.
어쿠스틱 냄새가 짙은 톤 세팅이 몽환적으로 흔들리는 재우의 연주에 섞여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