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65
64화
‘하긴. 학생 딱지 떼고 보면 그냥 키 큰 거한이니까.’
189cm의 거한이 눈앞에 다가와 눈을 부릅뜨고 있는 상황인데 계속 시비를 걸 수 있을 리가 없기도 하겠지만, 먼저 시비를 걸어온 주제에 곧장 쫄아 붙는 모습이 조금 한심하기도 했다.
“조, 조심해라.”
한마디 경고 아닌 경고를 남기고 후다닥 뒤로 돌아 나가는 임영수.
“쯧…….”
그저 어이가 없어 혀를 차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같은 밴드의 기타리스트, 실질적으로는 웨이스티드의 전부나 마찬가지인 김상욱이 한숨을 내쉬며 다가왔다.
“하아……. 미안하다. 저놈이 원래 다혈질이야. 아니, 다혈질이라기보다는 시비충이지, 시비충. 남들 대하는 법을 몰라, 사회생활을 제대로 안 해 봐서. 내가 대신 사과할게.”
그가 부끄러워하며 사과를 건넸다.
애써 다혈질이라 포장하려 했으나 그것도 민망한 듯, 외려 자기 친구를 욕하는 모습이다.
“괜찮습니다. 딱히 깊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스타일도 아닌 것 같고요.”
나는 웃으며 그에게 인사했다.
그에게는 악감정이 없었다.
대체로 문제를 일으키는 건 보컬과 다른 멤버들인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자기 팀원의 잘못에 대신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딱히 미워할 이유도 없었다.
“너희 잘하더라. 무대 재밌게 봤어. 특히 기타 친구. 오늘 재능이라는 게 뭔지 제대로 안 것 같아.”
꾸벅.
뜬금없는 칭찬에 재우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다.
그러자 그가 손을 살짝 흔들어 답했다.
대체 이런 멀쩡한 사람이 왜 인성 파탄자 집합소인 웨이스티드에 있는지 의문이었다.
“내 몫까지 잘해.”
김상욱이 웃음과 함께 응원을 남기고 돌아갔다.
이제 그의 오디션도 모두 끝이다.
“후우우……. 피곤하네.”
드디어 밴드 위크의 모든 미션이 종료되었다.
원하던 것들을 모두 이룬 행복감이 노곤노곤한 몸에 가득했다.
“두 종류의 미션을 통과한 열다섯 팀의 참가자 여러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합격자 여러분은 오늘 주최 측에서 준비한 숙소에서 밤 동안 푹 쉬시고, 내일 최종 심사를 통해 탑텐 합류와 최종 탈락을…….”
카메라도 모두 꺼지고, 제작진 중 한 사람이 나와 마이크를 잡고 공지한다.
장소가 서울인지라 어차피 집에 가서 자면 되는 거지만, 이것도 기분이라고 그냥 숙소에 가기로 한다.
“으아아아! 얼른 씻고 자고 싶다!”
“고, 고생했어. 덥겠다.”
마스크 때문에 세수도 못 하고 있는 라희가 칭얼거리기 시작하고, 수현이가 토닥거렸다.
합격의 기쁨 때문인지 숙소로 이동하는 버스는 은근히 소란스러웠다.
“야.”
“왜?”
숙소에 도착하고 짐을 푼 다음 옷을 갈아입으려다가, 나는 어느새 이불을 펴고 드러누운 라희를 툭 차며 말했다.
“왜는 무슨 왜야?”
“뭐가?”
얘는 진짜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건가?
“남자 방이잖아 미친놈아.”
남녀 참가자 따로 방 잡아 줬는데 대체 왜 우리 방에 들어와서 눕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허, 설마 부끄러워, 지금? 이리 와. 눈나랑 코 자자.”
“미친. 가서 씻고 자라 얼른.”
“이힉힉힉! 간다! 얼른 자라! 어두워서 무서우면 전화하고!”
“하……. 미친 사람…….”
잠시 소란이 있었지만 잠자리를 되찾았다.
‘혹시나 누구한테 걸려서 문제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위험한 장난이었다.
대충 씻고 자리에 누워 생각했다.
‘남은 밴드는 열다섯. 탈락 확률은 3분의 1.’
TOP 10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최후의 관문인 면접만 남은 상황이다.
최종 심사라고 공식적으로 이름 붙은 이 면접 과정에서 남은 밴드 중 다섯 팀이 떨어지고, 오로지 열 팀만 남게 된다.
다만 나는 결코 떨어질 것이라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제작진들끼리 입 맞춰 뒀을 텐데 뭐.’
최종 심사라는 것은 인기 있을 법한 출연자는 살리고, 그렇지 않은 참가자들을 떨어뜨리기 위한 장치일 뿐.
이미 강팀 둘과 맞붙어 직접 승리를 쟁취하며 실력을 증명했음은 물론, 최연소 참가자라는 캐릭터까지 확보한 우리를 떨어뜨릴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래도 준비해서 나쁠 건 없겠지.’
물론 우리보다 더 좋은 캐릭터성을 보여 준 팀도 있을 것이고, 제작진 차원에서 애정을 품은 참가자도 있을 것이다.
그 숫자가 열이 되지 않을 것이라 반쯤 확신하고는 있지만 변수는 언제나 존재하는 법.
나는 머릿속으로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았다.
‘더 밴드 코리아를 통해 이뤄 내고 싶은 것. 참가 계기. 보여 주고자 하는 모습…….’
천천히 어둠이 깊게 내려앉았다.
중간에 자기 팔을 뒤로 꺾어 깔고 자려는 재우를 바른 자세로 돌려놓은 것만 제외하면 평화로운 밤이었다.
* * *
“럭키데이, 안으로 들어가실게요.”
“넵.”
꿀 같은 휴식을 취하고 새 아침이 밝았다.
다시 어제의 장소로 돌아와 한참을 기다리다가 스태프의 부름을 받는다.
우리는 다소 떨리는 발걸음으로 심사 위원들이 밴드 위크 최종 심사를 위해 대기 중인 면접실로 입장했다.
‘긴장이 아예 없을 순 없구먼.’
쉽게 생각하려고 노력했지만 앞날이 달린 일에서 초연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살짝 떨림이 느껴졌다.
“어서들 와요.”
“우리의 천재 소년 밴드, 럭키데이 입장합니다.”
심사 위원들의 과분한 환대가 우릴 맞았다.
오히려 놀림 섞인 그 환영 덕에 긴장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이 노련한 사람들이 어린 참가자들의 긴장을 풀어 주고자 최선을 다해 맞춰 주고 있었다.
“거, 연락 달라니까……. 명함 안 가져갔어요?”
“아, 맞다…….”
“맞다?”
예선 직후 곡을 주겠다며 연락 달라고 했는데 왜 안 했느냐며 타박하는 박창희 심사 위원.
나는 애써 웃으며 변명했다.
“앗! 그게 아니라……. 저희가 밴드 위크도 준비해야 했고, 또 본선 진출하게 되면 또 바쁠 테고 심사 위원님이랑 개인 연락을 주고받으면 안 되니까……. 하하……. 다 끝나고 연락드리려고 했습니다. 하하…….”
“스읍……. 일단 오케이…….”
미심쩍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물러나는 박창희 베이시스트.
‘어우. 깜빡했다.’
너무 바빠서 과분한 제안을 기억 저편에 묻어 두었다.
디밴드의 음악은 나도 즐겨 듣는 만큼 기대되는 일이지만, 당장 프로그램 안에서 이뤄야 할 것들이 많았으니까.
나는 이 오디션 프로그램만 다 끝내고 연락을 드리겠다며 유야무야 화제를 벗어났다.
“일단 여기 앉고.”
“음료수들 마시면서 얘기합시다. 안 잡아먹으니까 긴장들 풀고.”
그렇게 편한 분위기에서 면접이 시작되었다.
우리 밴드가 최종적으로 노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지부터 좋아하는 밴드, 음악 취향, 역사상 최고라고 생각하는 뮤지션 같은 사소한 질문이 오고 갔다.
그러다가 황보문 심사 위원이 라희를 가리키며 개인 질문을 던졌다.
“그, 타이거 더 드러머……. 뭐야, 이름……. 어쨌든 타이거 마스크 씨. 그 가면은 계속 쓰고 있을 예정인가요?”
당연히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마스크에 대한 질문이었다.
라희가 움찔 놀라며 대답했다.
“앗, 네…….”
다소 주눅이 든 모습이다.
본선 진출이 걸린 면담인지라 긴장도 긴장대로 했고, 얼굴을 가리기 위한 방편일 뿐인 마스크를 썩 좋아하는 것도 아닌지라, 이미 준비된 질문임에도 굉장히 소극적이었다.
“혹시 그거 왜 썼는지 물어봐도 될까?”
“그래. 나도 궁금했는데.”
“혹시 상처라도 있는 건가 싶은데, 혹시 그런 거라면 미안합니다.”
황보문 심사 위원이 드러머이자 심사 위원의 모습이 아닌, 교육자의 눈빛을 보이며 질문을 던졌고, 다른 심사 위원들도 거기에 동조했다.
아무래도 라희가 쓰고 있는 호랑이 가면이 조금 튀기는 했다.
아니, 많이 튀었다.
궁금증이 생길 만도 하다.
“아, 그런 건 아니고…….”
라희는 그녀답지 않은 작은 목소리로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다소 엄격한 가풍, 실용음악이라는 것이 가지는 전형적인 이미지, 희망 진로를 밝히는 것에 있어 생기는 두려움.
심사 위원 모두가 뮤지션이자 누군가의 스승이었던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기에 쉽게 공감해 주었다.
“크……. 이게 또 그렇지. 락이라는 게…….”
“반항아 문화라는 이미지가 쉽게 벗겨지질 않거든. 실제로 그렇기도 하지만.”
“고난과 역경이지, 고난과 역경. 그게 롸큰롤 정신 아니겠어? 대견해, 아주.”
심사 위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저마다 한마디씩을 보탰다.
그때 황보문 심사 위원이 PD를 향해 손짓했다.
“곽 PD. 잠깐 스포일러 좀 해도 되나? 카메라 꺼 두고.”
“네? 아하. 그러시죠.”
뭔가 짐작 가는 바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PD.
“이거 이렇게 말해도 되나 싶은데……. 우리 본선 무대에 그게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한테 보여 주고 싶은 무대 미션.”
“아…….”
순간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말해 준다는 건 우리의 본선 진출은 확정이라는 뜻이겠군.’
아마 심사 위원들과 제작진이 상의해 본선 진출자 명단을 얼추 맞췄을 것이라 추측되었다.
그런 게 아니라면 이렇게 다음 무대에 최선을 다할 환경을 만들어 주려는 상담이나, 미션 스포일러 같은 걸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합격 발표 직후 미션은 공개되겠지만, 탈락자한테 말해 주기는 꺼려지는 정보니까.’
확신이 든다.
덕분에 약간이나마 남아 있던 긴장감이 모두 사라졌다.
“가능하면 가족들을 초대해서 무대를 보여 주고, 마스크를 벗을 계기로 삼으면 어떨까 싶은데 나는. 응? 계속 가면 쓰고서 활동할 수도 없잖아.”
“아아…….”
“더 밴드 코리아라는 이 프로그램에 지원한 사람들이 꽤 많아요. 럭키데이랑 비슷한 또래의 청소년 밴드도 상당했지만, 어른들이 더 많았지. 타이거를 포함한 당신들이 그 쟁쟁한 사람들 제치고 올라왔고. 충분히 칭찬받을 만한 재능이야. 인정받아야 할 실력이고.”
‘이미 내가 계획하고 있던 거긴 한데.’
라희의 진로 문제를 해결할 방안.
사랑하는 사람한테 보여 주고 싶은 무대를 테마로 삼은 첫 생방에 가족을 초대하는 것.
그리고 그곳에서 라희 스스로 자신이 어떤 재능을 가졌는지, 자신이 선택한 진로에서 얼마나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것이다.
‘확실히 교육자는 달라.’
진지한 얼굴로 상담을 하는 황보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떠올린 계획인데, 잠깐 상담을 하고는 사전 정보와 맞붙여 라희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려고 하다니.
확실히 경력이란 무시할 것이 못 된다.
“응. 그러면 잘 생각해 보고, 주변에 상담할 수 있는 사람들 있으면 물어도 보고. 혹시 그럴 기회가 없으면 내 전화번호 남겨 줄 테니까 연락 줘요.”
“감사합니다…….”
잠시 동안 이어지던 상담이 끝나고, 라희가 살짝 목 매이는 소리로 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도움도 도움이고 심적으로 꽤 힘든 처지에 몰려 있던 그녀에게 꽤나 위로가 된 것 같았다.
“옛날 생각 많이 나네. 나도 처음 음악 시작할 때 고생 많이 했지.”
“저는 가르치던 애 하나가 생각나네요. 그 친구 아버지가 장사를 크게 하시는 분이었는데, 자식이 가수 되고 싶다니까 몽둥이 들고 쫓아다니면서 말렸잖아요.”
“걔는 어떻게 됐어?”
“걔가 걔예요. 정문식이.”
“아, 폴라로이드 메모리 걔? 대단하네.”
라희의 사정을 듣고 각기 비슷한 기억을 떠올리며 추억하는 심사 위원들.
어느새 근엄한 심사 위원 이미지는 저 멀리 던져 두고 모두들 동네 아저씨 모드로 들어가 있었다.
“다른 학생들은 뭐 그런 문제 없어요?”
황보문 심사 위원이 다른 멤버들에게도 질문을 던졌다.
기왕 얘기가 나온 김에 다른 학생들에게도 트라우마나 고민 같은 건 없는지 상담을 지속하려는 듯했다.
“저는 본가가 악기 만드는 집이라 괜찮아요.”
“저, 저도 오빠가 베이시스트라서…….”
“베이시스트? 누구?”
“스코프의 김수영이라고…….”
“아아아. 그 친구들 요즘 잘하지. 우리 오디션은 안 나왔대?”
“네……. 시간이 안 될 것 같다고 해서…….”
그 큰 회사를 그냥 악기 만드는 집이라고 하는 재우 탓에 웃음이 터질 뻔했다.
수현이 역시 친오빠의 명성이 있어 관심이 집중되었다.
지금 한창 뜨기 직전의 그 선에 걸쳐 있는 스코프였기에 모두들 수현이의 오빠가 누구인지 아는 듯했다.
그리고 곧 나에게도 시선이 몰렸다.
“루치아노 학생은?”
“저도 라……, 아니, 타이거랑 비슷한 상황입니다. 그래도 이번 오디션에서 성과를 거두면 어느 정도는 용인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크……. 부모님께서 음악을 별로 안 좋아하시나 봐요?”
“아……. 하하…….”
음악은 좋아하신다.
‘음악은 말이지.’
그게 락이 아니라서 문제였지만.
물론 그런 것들을 다 떠벌릴 생각은 없어서 그냥 웃음으로 얼버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