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66
65화
다음 날 우리는 재우의 스튜디오에 모였다.
“아니 그만 좀 쫄아 있으라니까? 너희가 쫄면이야?”
모인 지 한참 지났는데도 무슨 움직임이랄 것이 없다.
모두가 내 스마트폰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문자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문자?
“그렇게 걱정 안 해도 우린 백 퍼센트 합격이야. 이제 연습 좀 하자. 응?”
“근데 왜 아직도 합격 문자가 안 오냐고!”
지난번 면담 이후, 발송되기로 한 TOP 10 선발 합불합 공지 문자.
“호, 혹시 우리 떨어진 거 아니야? 합격자한테 먼저 연락하느라 늦는 거면?”
“님 신청서 쓸 때 번호 제대로 넣은 거 맞음?”
“아니라고! 아직 시간 한참 남았다고! 지난번 공지도 내 폰으로 받았고! 연습이나 하자, 제발!”
“으으……. 심장 닥콩거려서 못 하겠어. 이것 때문에 드럼 소리도 안 들릴걸? 만져 봐.”
“뭐를, 미친놈아!”
문자를 기다리며 바들바들 떠는 놈들에게 타박을 주었지만, 상황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합격 여부는 떨어지든 붙든 문자로 오게 되어 있으니 연습이나 하며 조금 여유를 두고 기다리면 될걸, 괜히 조바심내며 평소 좋아서들 하자고 보채는 연습도 제쳐 두고 내 핸드폰만 뺏어다 앉아서 기다리고 있다.
참 보기 드문 광경이다.
지이이잉.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왔다, 왔다!”
“빨리 보셈. 빨리.”
“아, 알았어, 알았어. 야단들 참…….”
저들도 가까이 있으면서 나에게 보라고 재촉한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전화를 집어 들어 문자를 확인했다.
“자, 보자.”
“뭐래? 뭐래?”
“케이뮤직넷 락 밴드 오디션 더 밴드 코리아 작가 김산하입니다. 밴드 럭키데이의 합격을 알리며, 차후 일정에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이메일을 통해…….”
“와아아아아!”
“예에에! 합격!”
“오. 됐음? 될 줄 알았음.”
채 반도 읽기 전에 환호성들을 질러 댄다.
“야, 야. 다 읽지도 않았거든?”
“대박, 대박!”
“하……. 일정과 무대 관련 자료 꼭 확인해 주시길 바랍니다. 첫 무대 준비 기간 동안 두 차례 연습 및 준비 과정 촬영이 있을 예정이며…….”
“오케에에에이! 연습하자!”
“하……. 내가 읽고 나중에 따로 알려 줄게.”
“그게 바람직한 리더의 자세지!”
“응, 응.”
어차피 듣지도 않을 거 왜 읽어 달라 한 것일까?
그래도 합격일지 불합격일지 예상들을 하며 시간만 죽이는 것보다는 연습에 진입할 수 있게나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흐흐흐! 다 죽었어! 본선 진출이다, 이 말이야!”
“와, 우리가 방송 무대 본선이라니. 꿈같아.”
“난 될 줄 알았음.”
아, 아직은 시간이 좀 걸릴 듯싶다.
‘에휴……. 입꼬리가 천장에 닿겠다.’
이제 슬슬 연습을 시작하고 싶은데 기뻐하는 환호성을 질러 대는 통에 여전히 올 스톱 상태다.
그 와중에 자기도 기뻐 죽겠다는 듯 입꼬리를 움찔거리며 잔뜩 끌어 올려 놓고 될 줄 알았다며 너스레 떠는 재우가 우스웠다.
“이제 기뻐하는 건 다 끝났지? 연습 시작하자.”
“오케이!”
한참이 지나서야 소란스러웠던 공간이 조금씩 잠잠해지기 시작했고, 나는 애들을 이끌어 연습에 돌입했다.
“우선 악보부터.”
미리 상의한바, 합격되었을 때 연주할 노래는 정해져 있었다.
김한결의 노래할래요.
“소울 풍이 강하기는 한데, 리듬감이 잘 산 곡이라 재밌게 뽑을 수 있었어.”
“수정은 더 해야겠지만.”
“응! 그래도 곡 구조가 쉬워서 중간에 솔로 넣기도 편했고, 더 변주를 주기도 쉬울 거야. 로큰롤 스타일에 접목했을 때 훨씬 재밌기도 하고. 흑인 음악이 확실히 대중을 의식한 편곡을 하기 편한 느낌…….”
원래는 너튜브에 올릴까 싶어 수현이와 편곡을 해 놨던 곡 중 하나였는데, 이번 경연 주제와 잘 어울릴 것 같아 골랐다.
방향성을 조금 틀어 고치는 정도는 학교 수업 시간이면 충분했고, 나름 메시지를 강조하기도 쉬워 좋았다.
“곡 진행은……. 아마 4분 안쪽으로 나올 것 같아. 꽉 채워서.”
“근데 4분씩 가져갈 수 있어? 열 팀이나 되는데 방송 시간 안 모자라려나?”
“나도 몰라. 근데 자유롭게 가져오라고 하더라.”
공연을 할 팀의 수가 많은 만큼 3분 안쪽의 짧은 편곡이 필요할 줄 알았는데, 조금 긴 러닝타임도 허락하는 듯해 자유롭게 곡을 만졌다.
덕분에 중간에 연주만 담당하는 재우, 수현, 라희의 솔로 파트까지 만들어 줄 수 있었을 정도로 자유로운 곡 구성이 가능했다.
“편성 시간이 좀 되는 모양이야. 아마 한 시간 반 정도는 쭉 이어서 하지 않을까?”
“케이블 채널이라서 가능한 거겠지?”
“아무래도 그렇겠지.”
제작진이 나름 방송사에서 기대를 받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폐지되는 프로그램의 타임을 그대로 흡수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길게 끌고 간다는 점은 마음에 들었다.
연주 시간 외의 비는 시간은 제작진들이 알아서 메울 것이고, 우리는 음악에만 집중해도 된다.
최소한 짧게 만든답시고 우리 표현의 한계를 줄이고 아쉬움을 남길 일은 없을 것이다.
“루치야 저거, 저것 좀 들어 줘.”
“오케이.”
우리는 잠깐 방송에 대해 떠들다가 각자 악기를 챙겨 방음 부스로 향했다.
“순서는 기억하지? 솔로.”
가는 도중 나는 라희에게 물었다.
“기타 15초, 베이스 15초, 그리고 드럼 30초.”
“맞아. 정확해.”
밴드 음악을 하다 보면 보컬에 관심이 쏠려 연주자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그렇게 되면 실력 있는 연주자가 온당한 관심과 대우를 받지 못할 수도 있고, 밴드라는 이름 아래 하나의 정체성을 가진 음악을 만들어야 하는데, 동기와 합을 잃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원치 않았다.
“제대로 소화만 하면 반응 어마어마할 거야.”
특히나 이번 퍼포먼스의 경우 라희가 부모님에게 자신의 재능을 증명하고 진로 선택을 허락받기 위한 첫걸음.
30초의 드럼 솔로 타임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라희를 단 30초 동안이나마 무대의 주인공으로 만들 것이다.
“후우우……. 내가 할 수 있을까?”
“응?”
그때 라희가 한숨 쉬며 말했다.
“그게…….”
자신감이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아, 그렇지. 아직 객관적으로 네 테크닉이 솔로를 30초씩이나 가져가기엔 부족하긴 해.”
“어. 야. 아파. 팩트도 폭력이야.”
내 말을 들은 라희는 과장스럽게 상처받았다며 가슴을 움켜쥐고 우는 척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래서 준비한 게 있어.”
“준비한 거?”
“인사드려. 선생님!”
내가 소리치자 연습실 방음 부스 안쪽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오우. 이제 방방 뛰는 거 끝난 거야?”
“네. 시간 끌어서 죄송해요. 모셔 놓고 숨어만 계시게 만들었네요.”
“아니야. 공중파 오디션 프로 본선 진출에 성공했는데, 그 정도 들뜨는 건 괜찮지. 특히 너희 나이엔. 네가 라희구나? 반갑다.”
“아, 네……. 근데 누구…….”
거의 나와 비슷한 키의 거구를 가진 남자가 라희에게 악수를 건넸다.
손을 받아 맞잡으며 내게 의문 섞인 눈빛을 던지는 라희에게 소개했다.
“스코프 1대 드러머이자 LSM 실용음악 드럼 담당 조상준 선생님이야.”
“으어?”
라희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익숙한 밴드 이름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조 선생님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여기 뭐 수영이 동생도 있고, 선우한테 음악도 배웠다고 했던가? 지금은 생활고 때문에 실용음악 학원에서 선생질이나 하고 있지만, 스코프 초대 드러머였던 조상준이라고 해.”
“어, 어어……. 반갑습니다…….”
락 밴드 스코프의 창립 멤버이자 초대 드러머 조상준.
그는 스코프의 2대 드러머 정세윤이 들어오기 전 실질적으로 밴드의 모든 사운드를 홀로 만지던 음악적 지주였다.
유일하게 음악을 전공하며 다른 밴드 멤버들이 지식을 쌓는 것을 도와주었고, 그들이 기본적인 실력을 쌓아 본격적인 밴드의 행색을 갖추게 된 데에는 조상준의 역할이 지대했다.
또한 리더인 선우 형보다 네 살 많은 나이로 사뭇 다른 느낌의 리더십을 보여 주며 밴드를 이끌던 또 하나의 리더.
다만 길었던 무명 시절을 버티기에는 짊어진 것들이 많았던 사람으로, 지금은 자신의 전공을 버리지 않는 선에서 현실적인 직업을 찾은 사람이다.
“하필 앨범 제작 직전에 집안에 일이 생겨서 밴드는 그만둬야 했지만, 요즘에는 작곡료가 용돈 할 정도로는 들어오더라고. 하하. 곡은 쓰고 볼 일이야.”
웃는 조상준의 모습이 썩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았다.
그런 그를 잠시 보다가 다시 내게 의문 섞인 눈빛을 보내는 라희.
나는 그에 응답하듯 말했다.
“오늘 라희 너는 딱 세 시간. 조상준 선생님에게 지옥의 솔로 테크닉 훈련을 받게 될 거야.”
“엑?”
“조금 상처일 수도 있지만 지금 너는 혼자 역량으로 솔로 드럼 라인을 길게 지속할 여력이 없어. 그러니까 몸에 완전히 주입하는 거야. 제대로 계산된 30초를.”
“으엑?”
“조 선생님은 지금의 스코프를 만든 드러머이기도 하지만, 한국에선 손에 꼽히는 명강사야. 본업은 입시 전문이지만 대중의 입맛에 맞는 짜임 역시 잘 만드는 작곡가이시기도 하고. 선생님이 만들어 준 박자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기억해서 재현할 수 있도록.”
“으에엑?”
기겁하는 라희.
씩 웃는 조상준 선생님.
두 얼굴이 묘하게 대비되었다.
“하하하.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래도 쌤이 단기 속성 과외는 좀 하는 편이거든. 어디 빡세게 굴러 볼까?”
지옥의 연습이 시작되었다.
* * *
지옥의 연습이란 건 빈말이 아니었다.
조 선생님은 라희가 유난히 약한 부분을 조목조목 짚어 가며 반드시 손에 익혀야 할 테크닉들을 하나씩 주입했고, 라희는 그것을 빠르게 흡수하며 그가 만들어 준 드럼 라인을 따라 하며 적용했다.
긴 시간 동안 많은 대화와 연습이 오고 갔고, 그것은 지옥의 강행군, 지옥의 연습이라고 부르기에 충분했다.
“팔 아픔.”
다만 문제라고 한다면 그 지옥의 강행군을 하는 사람들에 라희뿐만 아니라 우리 역시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조금만 참아. 라희가 슬슬 감을 잡는 것 같으니까.”
솔로 퍼포먼스에 있어 칼같이 정확한 진입 타이밍은 생명.
그렇기에 솔로 연주의 시작점과 진행 양상을 완전히 귀에 익게 만들어야 한다며, 조 선생님은 우리가 라희의 솔로 파트 직전까지를 반복해서 연주하도록 했다.
“이야. 호리호리한 체격인데 의외로 근지구력이 좋구나? 심지어 심벌 타점도 정확하게 딱딱 때려 주네. 테크닉이 없는 게 아니야. 정석을 모르고, 연속 구사에 익숙하지 않은 거지.”
“어, 그런가요?”
“응. 확실히 재능이 있어. 박자 감각? 소울? 그런 건 다 집어치우고, 지금 한 시간이나 과격한 연주를 했는데도 지치지 않는 그 지구력이 네가 가진 가장 큰 재능이야. 드러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게 피지컬이라고.”
연습은 힘들고 가르침은 과격하지만 칭찬만큼은 묘하게 따뜻한 조상준 선생님이다.
그는 특히나 오랜 시간 동안 격하게 연습을 했는데도 크게 지치지 않은 라희의 체력을 칭찬했다.
타고난 체격이 좋은 데다가, 무용을 전문적으로, 그것도 꽤 오래 했었고, 지금도 꾸준히 운동을 하며 관리하고 있는 그녀였기에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좋아. BPM은 건드리지 말고 박자를 더 쪼개서 마치 빨라지는 식으로 가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니? 그냥 햇만 늘리는 게 아니야. 정박이든 엇박이든 상관없지만, 일관적으로…….”
신이 난 선생님의 수업에 불이 붙었다.
처음에는 꼭 한두 번씩 손발이 꼬이던 라희는 점차 적응해 완벽에 가까운 연주를 하게 되었다.
레벨 1에서 2로, 2에서 3으로.
경험치 이벤트 빵빵하게 받아 레벨 업을 하는 게이머처럼, 눈을 감았다 뜨면 실력이 늘어 있는 모습이 생생히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