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69
68화
“우리 멤버들이 화려한 자기 어필을 들려드리면, 여러분은 열정적으로, 격렬하게, 아주 오늘 집에 가서 곧장 드러누워 곯아떨어질 기세로 환호성을 들려주시면 되겠습니다.”
“와아아아아!”
얼핏 들으면 평범하게 말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부담스럽지 않게, 그리고 집중해서 들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꾸민 톤이다.
박자 역시 마찬가지.
그저 멤버들의 반주가 흐르는 동안 떠드는 것처럼 들릴 수 있지만, 준비한 멘트들이 정확한 시간에 딱 떨어지도록 계산해 준비했다.
듣기 편안한 멘트를 넘어 내가 가리키는 곳으로 집중력을 돌리고, 내가 요구하는 관심과 호응을 유도하기 위한 설계가 밑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면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딱 떨어지는 박자에 맞춰 첫 솔로 타임을 준비했다.
스타트를 끊을 멤버는 재우.
나는 적절한 타이밍에 재우를 가리키며 크게 소리쳤다.
“최고의 기타맨, 레이어즈 형재우!”
지이이잉! 디잉, 지지지징, 지이이이잉…….
기타 줄이 꿈틀꿈틀 요동치는 것이 멀리서도 보인다.
재우는 화려하고 날카로운 평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끈적하고 섹시한 분위기의 솔로를 보여 주었다.
슬라이드, 피킹, 밴딩.
아슬아슬하게 늘어지는 음, 장단이 제대로 살아 있는 연주가 간질간질하게 흥을 돋우었다.
그렇게 관객들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다가 마지막으로 양손을 넥까지 올리더니…….
다라란, 디리리링, 다라라라란.
프랫을 짚어 때리듯이 소리를 내는 태핑을 응용한 속주로 자신에게 주어진 솔로 타임을 마무리했다.
“여러분 박수!”
“와아아아아아!”
짝짝짝짝짝짝!
미리 분위기를 내 입맛에 맞추어 두기도 했고 재우가 스타트를 워낙 잘 끊기도 했기에, 관객 호응은 제대로였다.
소나기 내리듯 박수갈채가 무대를 뒤덮었다.
이 분위기를 이어 가기 위해서는 곧바로 다음 순서를 알려야 했다.
“다음은 럭키데이의 베이스이자 편곡가. 자타가 공인하는 천재 뮤지션!”
슬쩍 보니 수현이는 미리부터 박자에 맞춰 발을 톡톡 구르고 있다.
아무래도 우리 중 긴장감을 제일 먼저 해소한 것이 수현이가 아닐까 싶었다.
“진수현!”
딴 딴딴, 딴딴 따라라란, 딴 딴딴, 딴딴 따라라라라라란!
다섯 줄짜리 베이스가 일정한 박자 아래서 흥쾌한 소리를 쏟아 낸다.
그녀의 살짝 움켜쥔 오른손 검지와 중지 사이에 하늘색 베이스 피크가 반짝인다.
엄지로 슬랩을 하고 싶은데 피크를 쥐면 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한 수현이는 피크를 살짝 편 주먹에 중지와 검지를 이용해 잡고 손목을 살짝 위아래로 움직이며 돌리는 식으로 피킹을 하고, 자유로워진 엄지를 마음껏 사용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두우웅, 두두두둥, 두두두둥, 지징, 두두두두두두두!
그 결과물이 이것.
피킹과 슬래핑, 가끔 손을 펴서 오른손 지문으로 태핑까지.
빠른 속주와 안정적인 근음 안내, 리듬 악기 역할까지 모두 수행할 수 있다.
화려하고 싶은 베이스라는 이상한 정체성 아래에서 당장 그녀가 낼 수 있는 최고의 결과물이었다.
‘악력 운동으로 고생 좀 하더니, 이제 눈도 깜짝 안 하네.’
유난히 두껍고 억센 베이스 현을 후려치다 보면 힘이 꽤나 많이 들어가기에, 여러 곡을 연주하면서 피크를 단단하게 잡으려면 악력이 필요했다.
때문에 쉬는 시간에도 손가락 악력기를 놓지 않을 정도로 훈련했고, 이제는 힘든 기색 없이 안정적으로 연주를 이어 나갈 수 있게 된 듯하다.
‘어떻게 된 게 기타가 리듬 위주의 끈적한 솔로를 하고, 베이스가 속주 위주 화려한 솔로를 하냐…….’
보통은 반대인데, 뭐든 좋아하는 걸 하는 게 좋긴 좋다고 사람들 반응도 나쁘지 않으니 되었다.
사람들이 쉬이 볼 수 없는 베이스 슬랩 속주가 이어지는데, 흔히 들을 수 없는 사운드이긴 해도 그것이 수현의 장기라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게 그 완성도가 훌륭했다.
베이스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도 자연스럽게 고개를 까딱이게 만드는 리드미컬하고 화려한 연주였다.
딩, 디디딩, 디리리리링……. 찌이잉!
마지막에는 정확하게 짚어 주는 지판에 이어 부드러운 하모닉스까지.
수현이에게 주어진 15초가 깔끔하게 끝났다.
“그리고!”
이제 오늘의 진짜 주인공이 등장할 시간이다.
내 소개에 맞춰 연주 소리가 서서히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부스럭, 부스럭.
드럼 솔로에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재우와 수현이는 코드만 살짝살짝 잘 들리지 않게 짚어 줄 뿐,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있었다.
라희는 드럼 스틱을 한 손에 쥐고, 발만 굴러 킥 소리만 내고 있다.
빈손으로 가면 뒤쪽의 벨크로를 잡아 뜯는 라희.
‘떨리겠지.’
괜찮겠지 수십 번을 되묻고도 아직 확신이 들지 않는 것인지, 시선이 마구 떨리고 있었다.
그래도 와중에 한 번씩 때려 주는 킥의 박자가 정확해서 조금은 웃긴 기분이다.
‘기호지세야, 기호지세.’
이미 우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탔으니,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우리 럭키데이의 드러머! 인간 메트로놈! 와일드 비스트으으으!”
과장 섞은 소개와 함께 그녀에게 씩 웃어 줬다.
나와 마주친 그녀의 눈도 살짝 곡선을 그린다.
그래. 그거다.
재밌게 가자.
“지! 라! 희!”
파아앗!
내 소개가 끝나자마자 조그만 천 조각이 무대 뒤로 날아간다.
그간 얼굴 숨겨 주느라 고생이 많았던 타이거 마스크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자기 박자가 돌아오자마자 라희가 탐탐을 쪼개 버릴 기세로 두드리며 예열 없이 달려 나간다.
다만 그렇게 급박하지는 않다.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은 30초.
느린 박자, 빠른 박자, 기본기, 화려한 테크닉. 보여 주고 싶은 어떤 것이든 선보이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둥둥, 퍼퍼퍼펑!
천천히 마디를 쪼개는 햇과 탐탐의 소리가 늘어난다.
한 마디가 지나면 4박에서 8박으로, 또 한 마디가 지나면 8박에서 16박으로.
분명 한 마디가 지나가는 속도는 아까와 똑같은데 라희의 손은 훨씬 빨라진다.
두두두두두두두!
아주 미약하게 깔리는 수현이의 베이스와 재우의 기타 소리에는 신경이 쓰일 틈도 없다.
강할 때 강하게, 화려할 때 화려하게 터져 주는 드럼이 굉장히 압도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호랑이 가면은 저 멀리 날아갔는데, 무대 위에서 웬 짐승 한 마리가 거칠게 뛰놀고 있다.
두두둥, 채재재쟁! 두두두두두두두두!
격렬한 연주에도 지칠 기색이 보이지 않는 그녀를 보며 관객들이 감탄하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와…….”
“어린 학생인데 힘이 좋네.”
“대박이다.”
저 멀리 황보문 심사 위원도 흐뭇한 표정으로 연주를 지켜본다.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게 된 라희는 이 모든 찬사하는 분위기를 누릴 자격이 있었다.
두둥, 두두둥, 두둥……. 채애애애앵! 차르르르륵…….
연주를 멋지게 마무리하는 햇 소리.
걱정이 컸던 라희의 솔로 연주가 끝났다.
‘잘했다.’
하지만 그 사실에 안도할 시간도 없이 나는 마이크에 붙었다.
텅 비어 버린 공간에 내 목소리가 울린다.
“그리고 저는 김루치아노입니다.”
“와아아아아아!”
라희의 열정과 패기가 아직도 남아 있는 듯, 관객들의 환호성이 이 무대 전체를 뒤덮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면 섭섭하다.
‘노래 아직 안 끝났다고.’
더 뜨겁게 달굴 시간이다.
“오오오, 엄마! 나는 계속 노래할래요! 세상 누가 뭐라고 해도 노래할래요!”
아무런 신호도 없이 다시 시작된 노래.
하지만 다른 멤버들은 마치 한마음이 된 것처럼 동시에 연주에 진입했다.
두두둥! 지이이이잉! 두둥, 둥, 두둥.
“오오, 엄마! 나는 계속 노래할래요! 아름다운 꿈을 꾸면서 노래할래요!”
2절과 3절을 과감하게 잘라 내고 훅을 반복한다.
다른 멤버들의 연주가 워낙 꽉꽉 들어차 있어 이것만으로도 달아오른 열을 유지하기에는 충분했다.
“오오, 엄마! 나는 계속 노래할래요! 세상 누가 뭐라고 해도 노래할래요!”
신나게, 리드미컬하게, 하지만 과한 폭발은 필요 없으니 적당히 절제해서.
보컬에 못지않게, 그보다 더 신경을 기울여 기타를 치고 박자를 탄다.
노래의 끝이 다가온다.
“세상 누가 뭐라고 해도! 오오오오!”
쭉 이어지던 반주가 살짝 늘어지며 공간을 남긴다.
그와 동시에 퍼지는 정적.
이 침묵이 너무나 좋다.
우리가 만들어 낸 음악이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조종하는 느낌.
잘 즐기던 음악이 끊어졌는데도 집중력이 유지되고 있다는 그 신호.
전율이 등허리를 타고 오른다.
“노래! 에에에에!”
가벼운 애드리브가 단어 끝에 섞인다.
굴곡진 느낌.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듯 숨을 불어넣어 음을 길게 끈다.
연주자들의 솔로 타임이 만들어 준 화끈하게 즐기는 분위기가 쌓이고 쌓이는 것이 느껴진다.
두둥!
드럼 신호에 맞춰 마지막을 장식한다.
“할래요! 워어어어어……. 예에에!”
지지지지지징! 지이이이잉!
4분 동안의 흥겨움이 길게 남는 후주와 함께 사라진다.
그리고 그간 쌓여 온 즐거움은 다른 모습으로 폭발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감사합니다!”
환호와 손뼉이 쏟아진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내 감사 인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컸다.
‘첫 순서였는데…….’
본래 관객들이 무대에 적응하기 전인 첫 순서는 큰 반응을 이끌어 내기보다는 이후의 경쟁 상대들에 비교되는 평가 잣대가 되기 마련인데, 우리는 그런 상식 따위는 다 밟아 버린 듯 큰 반응을 이끌어 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사람들의 찬사는 심사평을 위해 사회자가 그들을 만류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 * *
언제 끝난 지도 모르게 연주가 다 끝났다.
정신을 차려 보니 이미 인사까지 다 하고 무대 뒤로 내려왔다.
용케도 여기까지 잘 걸어온 자신이 신기하다 생각하며 라희는 벽에 기대 주저앉았다.
듣자 하니 심사 위원들의 평가에 감사하다고 인사도 꾸벅꾸벅 잘했단다.
“와…….”
알게 모르게 웨이트도 하고 러닝도 하면서 체력을 단련해 온 자신이건만, 진이 다 빠진 느낌이다.
‘루치가 무대 끝나고 엎어질 때마다 약골이라고 놀렸는데……. 이제 못 하겠네.’
이제 자신이 놀림을 당할 차례라는 생각보다는 앞으로 그를 놀리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 웃음이 나오는 그녀였다.
‘제대로였지. 오늘 연주.’
중간부터는 그냥 본능에 맡기고 움직이느라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처음 솔로가 시작할 때, 연습했던 모든 것이 딱 맞아떨어지며 진행되리라는 것을 느꼈다.
손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발이 멋대로 굴러지는 것처럼 그저 정신줄을 놓고 드럼 소리를 즐기다 보니 모든 것이 끝나 있었다.
라희는 참 신기한 느낌이라고 생각하며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그때 누군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딸?”
“으앗?”
깜짝 일어나 고개를 드니 그녀의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보였다.
참가자 가족이라고 말하고 무대 뒤까지 뛰어온 듯했다.
“뭐야? 이런 공연이었어? 그것도 네가 참가한?”
“아, 그게…….”
살짝 높은 톤으로 묻는 어머니의 말에 라희는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흔들리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루치아노에게 도움을 청하려는 라희.
그러나 그녀의 기대와는 달리 루치는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그녀와 눈을 마주치고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꿀꺽.
하지만 이상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오히려 용기가 샘솟는 것이 느껴졌다.
라희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엄마…….”
“…….”
어머니는 대답이 없었지만, 그녀는 굴하지 않고 천천히 말했다.
“나……. 음악 하면 안 돼?”
잠시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가만히 답을 기다리는 라희는 속이 타오르는 기분과 전부 털어놓아 뭔가 후련한 기분을 동시에 느꼈다.
이윽고 어머니의 입이 열렸다.
“하아아……. 돼, 돼.”
“어, 어?”
의외의 말에 라희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허락을 안 하면 엄마가 얼마나 밉겠어. 그렇지 않아? 방송국 오디션 본선까지 간 거면 우리 딸이 얼마나 노력했을지 뻔한데.”
예상과는 다른 반응이었다.
좀 산다는 집에서 태어나 능력 있는 상대를 만나 결혼해서 교양 있는 삶을 살아온 어머니인데, 드럼을 치고 싶다는 것을 허락하다니.
중학교 때까지 애 혼자 돌아다니는 것이 불안하다며 기사를 붙이고, 교양과 소양을 쌓아야 한다며 발레와 바이올린을 가르치던 어머니가.
묘한 느낌이었다.
“네가 하는 걸 못 봤으면……. 어쩌면 허락 안 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런데…….”
라희의 어머니가 천천히 조곤조곤 말했다.
“우리 딸이 이렇게 멋지게 해내는 걸 봤는데 어떻게 반대하겠니?”
“엄마…….”
“이리 와.”
어머니가 딸을 껴안고 토닥인다.
“열심히 해야 해. 엄마 아빠한테 말 안 하고 배우고 결정하고 그런 건 괘씸한데, 그래도 좋아하는 일이니까.”
“응, 응…….”
잠깐 그러고 있는데 어머니의 어깨너머로 루치가 벽에 기대서 웃고 있는 것이 그녀의 눈에 들어온다.
“헤…….”
마주 웃어 주고 싶은데 눈물이 자꾸 나온다.
라희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이제 계속 드럼 쳐도 되는 거야.’
자기 손에 들린 드럼 스틱을 잘그락대기도 했다가, 들어 올려서 쳐다도 봤다가, 다시 루치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그녀는 생각했다.
‘나 되게 좋아하는구나.’
뜨겁고, 시원하고, 눈물도 나고, 웃음도 나는.
기묘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