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7
6화
“자격증은 각종 1급 혹은 10% 이내 성적에 한해 30점. 국제 대회 대상급 수상이 100, 2위, 3위급은 70, 50. 국내 대회 대상급이 70…….”
“뭐하냐?”
“학교 포인트 장학금 세부 기준 보는 중.”
“오. 나도 보여 줘.”
“링크 보내 줄게.”
전공 수업이 모두 끝나고 종례를 앞둔 시간.
잠깐 짬을 내서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장학 제도 기준을 살펴봤다.
1포인트가 1만 원으로 계산되는 포인트 장학 시스템은 생각보다는 짠 느낌이 없잖아 있었지만, 대회 입상으로 쌓는 포인트 외에 봉사활동이나 외국어 시험, 자격증 취득 따위로 받을 수 있는 걸 고려하면 나쁘지 않은 편이다.
“괜찮네?”
“그치? 공통 과목 성적도 다 챙겨 먹는다고 치면 이론상 한 학기에 돈 500은 당길 수 있을 것 같아.”
“되겠냐?”
“설마.”
원체 공부에는 자신이 없는 터라 성적 장학금을 뺀다고 쳐도 200만 원 정도의 소득은 얻을 수 있다.
국제 대회는 미뤄 두고, 국내 대회나 지역구 대회 정도는 돌아다닐 여력이 충분하고, 외국어 자격증도 잠깐만 공부하면 금방이니까.
‘영어부터 올해 안에 따 두고, 불어, 독어, 이태리어는 복습 좀 해야겠는데…….’
언어라는 게 원래 한번 익혀 두면 오래가는 것인지라 소싯적 배웠던 것들이 꽤나 남아 있다.
거기다 수십 년 걸친 세월 동안 했던 락 덕질 덕분에 영어는 당연히 익숙했고, 보컬 트레이너 시절 자격증도 따고 해외 자료도 수집하느라 시험용 외국어에도 꽤 능숙한 편이다.
당장 회화를 하라고 외국에 던져 두면 그건 또 얘기가 다르겠지만, 시험 정도야 2년쯤 빡세게 준비하면 어느 정도 성과를 볼 수 있으리라.
이러면 대강 100만 원 안팎의 장학금은 확보한 셈.
훗날 큰돈으로 만들 시드 머니로는 충분했다.
“자. 다들 들어왔냐?”
“네.”
“네엡.”
어느새 반으로 돌아온 담임, 윤영현 선생님이 아이들의 주목을 모았다.
“어……. 수업 열심히 들었냐고 물어봤자 매년 그렇듯 그럴 리가 없고.”
“흐흐흐흐.”
“흐헤헤…….”
“이놈들아, 너희가 아무리 예체능 학과라고는 해도 공통 과목에 너무 소홀하면 안 되는 거야. 최소한의 교양은 갖추고 살자, 우리.”
물론 진심이 담긴 선생님의 조언 따위는 예술가 뽕이 한껏 가득 찬 새내기 고등학생들에게 전혀 먹히지 않았다.
“어휴……. 아무튼.”
선생님은 조언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애들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고는 종례를 시작했다.
“지금부터 종이 몇 장 나눠 줄 건데, 잘 챙겨서 부모님께 보여 드리도록 해라. 앞에서부터 뒤로 넘겨.”
담임이 제일 앞자리에 앉은 학생에게 통신문을 넘기고, 그 친구는 그것들을 뒤로 돌렸다.
대강 시간표, 중식 식단표 같은 것들이었는데 조금 특이한 점이라면 외부 레슨 확인서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쌤, 외부 레슨 확인서는 뭐예요?”
“일단 다 나눠 주고……. 줬구나. 그래, 이제 설명한다.”
첫 세 장은 그저 학교생활에 필요한 일정이나 대략의 정보들. 그리고 뒤의 두 장은 부모님께 전달드려야 할 통신문이다.
하나는 학비 영수와 예산 집행에 관한 공고 페이지를 개설했다는 알림.
남은 하나는 외부 레슨 확인서라는 다소 생소한 신청서다.
“네 장은 너희가 읽어 보면 알 테고, 마지막 거. 외부 레슨 확인서 봐 봐.”
윤 선생님이 다른 것들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빠르게 설명해 주었다.
외부 레슨 확인서라는 것은 월, 수, 금에 진행되는 7교시 개인 레슨 수업을 외부에서 진행하도록 해 주는 장치 같은 것이다.
우리 학교에도 실력 있는 선생님들이 많이 있지만, 예전부터 사제 관계를 이어 오던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혹은 더 많은 돈을 들여 레슨을 받는 애들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개인 레슨 시간을 외부로 돌리고 종례 없이 하교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서류인 것이다.
“아마 막 입학한 1학년인 너희 중에는 없을 테지만, 2학기 시작되고부터는 다른 학교에서 위탁 수업을 받는 경우도 있고, 학교 수업 끝나자마자 학원에서 살다시피 하는 애들도 있을 거다. 특히 악기! 너희들.”
생각해 보니 그랬던 것도 같다.
아무리 예체능에 인생 몰빵 녀석들만 있다고는 해도 종례 때마다 교실의 몇몇 자리가 띄엄띄엄 비어 있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게 매일인지 이틀에 한 번인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이 외부 레슨 확인서 어쩌고를 보아하니 월, 수, 금 개인 레슨이 있는 날마다인 듯했다.
‘학교를 금방 그만둬서 잘 기억이 안 나기는 하지만…….’
아무튼 나는 지금 당장은 외부 레슨을 받을 예정이 없으니 별로 상관없는 내용이었다.
그 외에도 윤 선생님은 동아리며 연습실 이용처럼 막 입학한 학생들이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준 후 종례를 마쳤다.
“아, 그리고 우리 반 개별 상담 있으니까 1번부터 5번까지 남으면 된다. 하루에 다섯 명씩. 오케이?”
“네.”
“그러면 출석 번호 1번이 임시 반장 하자. 인사.”
“차렷! 선생님께 경례.”
“감사합니다.”
“5번까지만 남고 나머지는 해산!”
“오웅! 야 혁진! 피방 가자!”
“고! 고!”
임시 반장인 출석 번호 1번 고두희의 인사를 끝으로 종례가 마무리되었다.
“루치쓰 상담이네?”
“아오, 연습실 둘러보려 했는데…….”
“흐흐흐. 나 먼저 간다?”
“그래라.”
상담 첫 순서에 걸린 출석 번호 3번 나를 두고 태호가 펄렁펄렁 뛰어 올라갔다.
시간도 남겠다, 자기 자취방보다는 훨씬 시설이 잘 갖추어진 학교 연습실에서 기타라도 후릴 생각으로 가득한 모습이었다.
“에휴…….”
담임 면담이라니.
어쩐지 갓 고등학교에 입학한 학생이 되었다는 자각이 확 드는 느낌이다.
“3번 고.”
“엉. 땡큐.”
앞 순서의 반 친구들 상담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내 차례가 왔다.
가벼운 책가방을 챙겨 교무실이 위치한 2층으로 올라간다.
“교호오무우시히이일이……. 어디에헤이…….”
왜인지 모르겠지만 시골 아저씨 바이브가 가슴 깊은 곳에서 꽉 차올라 정체불명의 멜로디를 붙인 막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계단을 올라가는 길에 몇몇 학생들이 이상한 놈 보듯 쳐다보기는 했지만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 * *
“어……. 김루치아노야.”
“루치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그래, 루치야.”
담임 윤영현 선생님은 잠깐 내 이름에 어색해하다가 상담을 이어 나갔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세부 전공 말이다…….”
“실용음악 하러 온 것 맞아요.”
“아, 그래. 그렇구나. 난 또 지원할 때 헷갈린 줄 알았지. 아무래도 네가 원래……. 응.”
아무래도 예체능 덕후 양성 고등학교인 태양고 짬이 있어서인지, 선생님은 내가 중학교 때부터 성악 쪽에서 나름 성과를 거둬 온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중학교 레벨의 성악 시장에서는 나름 실력 자랑도 할 수 있을 정도였던 나이기에, 어째서 어디 유명한 예고 성악과도 아닌 태양고 실용음악과에 왔는지 의문이 생긴 것.
그러고 보니 전생에 고등학교 입학 후에도 성악 콩쿠르 같은 다른 성과를 들고 오지 않는 나를 이상하게 여긴 부모님이 학교에 찾아와 선생님을 만났을 때도 별로 당황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내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면 아버지 어머니 얼굴을 확인하고 펄쩍펄쩍 뛰었겠지. 동네방네 김우성이랑 오수미 만났다고 소문도 내고.’
깜짝 놀라는 대신 침착하게 우리 부모님을 상대해 내가 실용음악 전공으로 나름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는 설득을 하려 하셨던 걸 보면 내가 누구인지, 어떤 집안 자식인지 따위를 모두 알면서도 내가 정한 진로를 존중해 주신 게 아닐까 싶었다.
“부모님께서 성악으로 최고의 명성을 가진 거랑 제 진로는 별개죠. 제 꿈은 성악가가 아니니까요.”
“중학교까지는 잘했잖아?”
“보고 자란 것이 그것뿐이니까요. 그때는 음악이란 것은 성악이 전부인 줄 알았거든요. 물론 그것도 제가 진로를 확실히 정하기 전까지지만요.”
“흠…….”
“제가 하고 싶은 것은 클래식이 아니라 대중음악입니다.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성악으로 음악을 시작하기는 했지만요.”
어찌 됐건 내 상황과 포부 정도는 담임에게 알려 두는 편이 좋다.
나는 온 가족이 성악계에서 종사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아직 중학생인 동생마저 성악을 하고 있다는 사실과 관계없이 락스타가 되고자 하는 뜻을 그에게 알렸다.
“그래……. 뭐, 그런 일이 학기 초 상담을 오래 이어 나갈 건덕지는 아니고. 여기 오는 애들이 다들 그렇잖냐. 스스로 생각해서 나는 이걸 해야겠다, 그런 목표를 고정하는? 응.”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한 제스처를 보였다.
딱히 내 목표에 제동을 걸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는 뜻인 것 같았다.
‘아니, 존중 같은 게 아니라 깊게 엮이지 않으려는 제3자 마인드인가? 교직원 스타일?’
아니, 어쩌면 내 뜻을 존중한다거나 스스로 선택한 진로를 가로막지 않겠다는 열혈 교사 마인드보다는 굳이 바쁜 교직 생활에 학생의 가정사 따위로 풍파를 일으키고 싶지 않다는 뜻일지도 몰랐다.
뭐, 어떤 의도이든 너는 한국 성악계의 보물이니 지금 당장이라도 전과를 해야 한다는 식의 오지랖은 없을 테니 좋은 일이다.
“어쨌든 행정 착오나 지원 실수는 아니라니까 다행이구나. 장르에 대한 열정도 충분한 것 같고. 앞으로 네가 실용음악과 학생으로서 학업을 이어 나가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마.”
“감사합니다.”
“그래. 뭐, 나한테 따로 하고 싶은 말이나 부탁하고 싶은 건 없고?”
이제 상담을 마무리하려는지 선생님이 끝을 맺으려는 것이 느껴졌다.
‘하고 싶은 말이나 부탁하고 싶은 거라…. 당연히 있지.’
나는 그에게 빙긋 웃어 보이며 말했다.
“1학년 대상 성악 콩쿠르 목록 좀 살펴 주실 수 있을까요?”
“?”
순간 ‘너 클래식 말고 대중음악 한다며.’라는 말이 선생님의 눈빛에서 읽혔다.
뭐요.
장학금은 받아야지.
* * *
“연스흐으읍……. 시히이일이이이……. 어허디헤에에에……. 아 쓰읍……. 입에 착 붙네, 이거.”
나는 한 손에는 선생님이 뽑아 주신 콩쿠르 목록을 팔랑거리고, 입으로는 정체불명의 막노래를 흥얼거리며 별관 연습실 7호를 찾았다.
‘7호, 7호…….’
상담 시간이 꽤 오래 걸렸기에 자리가 아예 없을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개인 연습실이 딱 한 자리 비어 있었다.
교무실에서 나오자마자 다급하게 스마트폰을 꺼내 학교 앱부터 켠 보람이 있었다.
‘오늘은 연습실 시설 대충 살펴보고, 잠깐 연습 조진 다음에 참가할 만한 콩쿠르 좀 살펴봐야지.’
선생님은 성악은 완전히 그만뒀고,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실용음악이라는 듯 떠들었던 놈이 대체 무슨 말이냐 싶었겠지만, 나한테는 꼭 필요한 과정이다.
‘학기 말에 성적표가 나오기 전까지 부모님의 이목을 돌릴 성과물이 필요해.’
언젠가 부모님께도 떳떳하게 나는 락스타가 될 것이다, 나는 성악을 하지 않을 것이다 말할 필요가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다.
‘부모님의 따뜻한 품이 더 이상 필요 없을 때, 혹은 부모님마저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결과물을 만들어 냈을 때.’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일 필요가 있다.
거기다가 콩쿠르 상금에 포인트 장학금 누적은 덤.
차곡차곡 시드 머니를 모아 제 손으로는 동전 한 푼 못 버는 학생의 가난한 통장을 배불려야 한다.
“오, 여기다.”
하필 3층 연습실의 끝이 6호인지라 복도 끝까지 갔다가 돌아와 한 층을 더 올라오는 바람에 귀찮음이 턱밑까지 올라왔다.
4층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개인 연습실 7호의 문이 천국의 문처럼 보인다.
끼이익.
나는 잠겨 있지 않은 천국의 문을 활짝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빨리 가방부터 두고 가상 악기부터 세팅해 보려는 나를 맞이해 준 것은.
좌좌아아앙!
시뻘건 일렉 기타를 이빨로 물어뜯고 있는 짐승 한 마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