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71
70화
전진.
80년대 최고의 락 밴드 국화꽃의 수많은 대표곡 중 하나.
어쿠스틱과 하드의 경계선을 오가는 국화꽃의 강렬한 넘버들 가운데서도, 빠른 템포와 강렬한 인상, 진취적인 가사로 많은 사랑을 받는 노래이다.
“전진 좋지.”
“명곡이지.”
한국 대중음악 부흥의 시초, 한국 대중음악사 최고의 명반이 이 노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앨범, <전진>이다.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명곡들이 수록된 앨범들인 만큼 우리의 고개도 절로 끄덕여졌다.
“가사도 좋고, 사람들 많이 알고.”
“좋은 노래지. 편곡 시도할 부분이 은근히 많기도 하고…….”
나와 수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곡 자체가 워낙 좋기도 하고, 템포 업, 키 업, 세션 추가나 제거처럼 편곡을 시도할 법한 요소가 많다.
하지만.
“근데 이게 제일 부담스럽지 않음? 아예 모르는 사람이 없는 노랜데.”
재우의 말이 맞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이자 누구나 알 수밖에 없는 노래, 누구나 들어 본 노래이며 너무나 위대한 영향력을 가진 노래라 그 어떤 노래보다 커버에 있어 부담이 심했다.
노래가 가진 위상이 우리의 인기보다 더 높은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전진이라는 곡은 지금까지 거론되었던 그 어떤 노래보다 심했다.
“하……. 힘드네…….”
나는 고민에 잠겨 머리를 긁적였다.
하필 미션을 만들어도 이런 걸로 만들어서 고생을 시키는 제작진이 원망스러웠다.
그때.
“어……. 우리가 남의 노래 부른다고 해서 부담까지 가져야 해? 지금까지 커버 많이 했잖아? 우리 채널에.”
“음. 그거랑은 느낌이 조금 다르긴 한데.”
라희의 물음에 나는 조심스럽게 답했다.
정확히 어떤 부분이 다르다고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콘텐츠라고 찍어서 너튜브 채널에 올리는 것과 대형 방송사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 생방송으로 커버하는 것은 다소 다른 느낌이다.
다만 완전히 틀린 말은 또 아닌 것이…….
“그러고 보니……. 우리 예선 때도 절대 부르면 안 되는 노래 불렀지?”
“하소연?”
“응. 지금 생각해 보면 엄청 무서운 일이야.”
수많은 선배 가수들이 좋아하는 곡이지만 커버를 꺼리는 노래.
그들이 노래를 못해서인가? 아니면 곡에 대한 애정이 적어서? 아니다.
그 노래 특유의 감성과 가치를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고민이 생기고, 그것이 부담을 더더욱 커지게 만들기에 그렇다.
이 노래에서 사람들이 어떤 메시지를 얻었을까를 진중하게 탐구하고, 그들이 느꼈던 감성을 내가 부활시킬 수 있을지, 혹은 그와 비등한 가치를 선사할 수 있을지 고민한 후에 안 될 것 같으면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했다.
“그 곡도 불렀는데 전진이라고 못 부를 건 없지 않나?”
생각해 보니 그렇다.
딱히 못 할 것도 없다.
“해석 잘해서 잘 치고 잘 부르면 칭찬도 좀 받고, 만약 못하면 시원하게 욕 한 바가지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 욕 좀 먹는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애초에 그 정도 비판 좀 받는다고 무너질 만큼 우리가 큰 밴드도 아니잖아? 아직 하꼬 신세라고.”
우리는 잃어버릴 명성이 없다!
“루, 루치야?”
“어차피 시청자들 눈에 우리는 운 좋게 올라온 신예, 그것도 아니면 예상치 못한 깜짝 실력자 정도야. 실망할 것도 없어.”
이건 내가 하는 말이 아닌 시청자 반응이다.
“이응. 내 채널 댓글에 그런 말 많이 달림.”
“뭐라고?”
“레이어즈 잘하는 줄은 알았는데 거기까지 올라갈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너무하네.”
“신경 안 씀.”
우리 중 유일하게 마니아들의 레이더망에 걸려 있던 재우에 대한 평가도 저럴진대 하물며 밴드 전체야 어떻겠는가?
지금까지 하던 고민이 전혀 의미 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애초에 그런 강박에 시달렸다는 것 자체가 조금 부끄러웠다.
‘내가 뭐라도 된 것처럼 들떠 가지고…….’
방송국 오디션 프로그램 본선 진출?
기껏해야 몇 달짜리 명성이다.
이후로 꾸준히 대중들에게 얼굴을 비추며 좋은 작업물로 그들의 마음을 사야 되는 것이지, 지금 단박에 스타가 되었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이렇게 고민했다는 것은 스타병 초기 증상일지도 모른다.
자기 위치를 자각하자.
그렇게 생각하며 한구석에는 유교 보이로서의 겸손을, 한구석에는 신인으로서의 패기를 단단히 품기로 했다.
“그, 그건 그런데……. 그래도…….”
“앞부분 메워 줄 키보드 세션 부르고, 템포 조금 올려서 우리 식대로 더 경쾌하게 풀어 낸다고 하면 뭘 더 바꿔야 할까?”
“아, 아마 방법은 많을 거야. 캐스터네츠 같은 악기로 딱딱하게 끊는 부분을 만들어 준다든지…….”
“오케이. 됐네.”
“이, 이래도 돼? 정말로?”
아직도 겁을 먹은 눈치였지만 편곡점을 찾으려는 질문에는 또박또박 잘도 답하는 수현이다.
이미 반쯤 넘어온 것이다.
나는 씩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이상하잖아. 원래 이런 거에 겁먹는 밴드가 아닌데, 우리가.”
“맞음. 애초에 얼어붙을 이유가 어딨음? 나는 잘할 거고, 만약 무대 망해서 욕먹으면 듣는 사람이 이상한 거임. 나는 잘했을 테니까.”
“쟤 봐라. 얼마나 당당해. 우린 코뿔소처럼 간다.”
“코뿔소?”
그간 생각 없이 달리고 달리며 전진하던 우리답게 가자고.
“응. 사람은 발이 두 개지만, 코뿔소는 넷이라고.”
나는 그녀의 말에 답하며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어, 어?”
“빠꾸는 없다. 전진하는 거야.”
“어어?”
아직도 불안해하는 수현이를 제외하고는, 아니 정확히는 수현이도 전진이라는 곡이 마음에 들은 눈치다.
그러면 인생 뭐 있겠는가?
지르는 거지.
미션 곡 전진의 가사처럼, 비를 맞으며, 눈을 맞으며 전진하는 거다.
빠르게 손가락을 놀렸다.
“문자 송신!”
“어엇! 자, 잠깐만!”
김산하 작가에게 곡을 골랐다며 문자를 보냈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
“그럼 편곡 시작해 보자. 의견들 받습니다.”
절망적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수현이에게 말하니 그녀가 털썩 주저앉는다.
“너무해…….”
그렇게 지루한 편곡 과정이 시작되었다.
“템포 빠르게 갈 거면 기본 박자를 더 쪼개 주는 게 좋지 않음?”
“오케이. 더 쪼개는 박자. 라희 생각은 어때?”
“흠……. 되기는 될 텐데 원곡 드럼처럼 강하게 이어 가는 게 힘들 것 같아. 인트로에서 진입하는 부분 들어 보면 너희도 알 거야. 이거 진짜 파워에 온 신경 다 쏟아야 돼.”
“그러면 세션을 추가하자. 피아노에 더해서 아까 말한 캐스터네츠 같은 걸로…….”
보통 우리의 1차 편곡은 재우와 라희가 단편적인 아이디어를 던지고, 내가 정리하고, 수현이와 내가 함께 구체화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이후에는 나와 수현이가 따로 의견을 나누며 더 깔끔하게 다듬는 것이 2차 편곡이다.
대개 수현이가 악보를 그리면 내가 가상 악기를 만져 제대로 된 소리를 제안하고 확인하는 것을 반복하는 식이다.
“그러면 키보드는 여기 앞부분 인트로에만 복잡하게 넣고, 뒤부터는 계속 코드만 잡아 주면 될 것 같고……. 재우가 말하는 것처럼 완전히 화려하게 가려면 아예 사이키델릭 느낌을…….”
이것을 실제 연주로 소화해 보고 다시 수정의 과정을 거친다.
만약 세션이 추가되어 우리끼리 할 수 없을 때는 기계의 힘을 빌려 가상 악기로 소리를 넣는다.
라이브보다야 질이 떨어질 테지만, 뉘앙스를 확인해 고칠 점을 찾을 때는 그리 나쁘지 않다.
“힝……. 이런 곡……. 차라리 꽉 찬 질감을 가져가고 싶은데, 마라카스 같은 악기로 더 가득 찬 리듬을 만든다든지 하면…….”
울먹거리지만 할 일은 다 하는 수현이다.
‘겉으로는 불안해하지만, 내면의 음악가는 더 완벽한 연주를 위해 혼을 불태우고 있겠지.’
어쩌면 우리 중에 가장 긴장에 강한 멤버가 수현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도 떨고 몸도 떨고 눈동자도 떨지만, 적어도 그 긴장감 아래에서 제 할 일을 다 하는 녀석이다.
언제나 자기 컨디션을 유지하고, 언제든 일정한 퀄리티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인력은 참 귀중하다.
이런 멤버와 함께 음악을 할 수 있다니.
나는 참 복 받은 보컬임이 틀림없다.
“키보드 세션, 마라카스, 그리고 캐스터네츠……. 전문 연주자를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제작진이 알아서 해 주지 않을까?”
“가능하겠지?”
곧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적어 나열했다.
무대 구성을 위해 직접 발로 뛰어 필요한 것을 구할 수도 있지만, 어지간한 것은 제작진에 요청하면 섭외부터 금전적 지원까지 맡아 도와준다.
이건 우리가 자체적으로 꾸미는 무대가 아니라 방송국 무대이니 되는 것.
지금 당장 여러 방향의 무대 경험이 필요한 우리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키보드 세션, 마라카스, 그리고 캐스터네츠.
지원이 필요한 것들을 적어 발송했다.
“조금만 더 고쳐 보자.”
“응.”
우리는 전쟁에서 승리할 준비를 시작했다.
* * *
그날이 왔다.
“으으으. 떨려…….”
“내, 내가 그분들을 실제로 보게 될 줄은…….”
“들어가면 됨?”
“응.”
최근에 들어서야 국내 밴드들에 대한 눈을 뜨고 있는 라희도, 천재성으로 단단히 무장해 다른 뮤지션들을 부러워할 필요가 있나 싶은 수현이도, 언제나 자기가 최고라는 재우도 기대감으로 떨고 있다.
오늘은 라이브에 붙여 내보낼 분량을 얻기 위한 추가 촬영일.
“들어간다? 문 연다?”
“이응.”
“으으으…….”
“가자, 가자, 가자…….”
함께 모여서 토크를 하듯 진행되었던 지난번 촬영과는 다르게 다섯 팀이 따로 일정을 잡아 각기 다른 곳에서 촬영을 하게 되었다.
그 방식은 어떤 의미로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필수 관문 같은 것.
끼이익.
멘토와의 대면과 조언이다.
“이야, 우리 럭키데이! 어서 오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 더 밴드 코리아의 심사 위원 박창희 베이시스트가 우리를 반긴다.
그렇다.
오늘 우리의 멘토 역할을 맡아 줄 사람.
“루치아노 씨는 실물이 훨씬 크네.”
“앗, 루치라고 불러 주시면 됩니다.”
“그래요. 나 알지?”
“한국에서 대현 형님 모르면 간첩이죠.”
“하하하!”
가히 국민밴드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한국 대표 락 밴드이자, 박창희 심사 위원이 소속된 그 디밴드.
디밴드의 프론트맨이자 보컬 임대현이다.
‘맙소사. 개멋있어. 그냥 말하는 목소리도 좋아. 와…….’
임대현이라는 최고의 보컬과 대화를 나누게 될 날이 올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했다.
당연했다.
언더 생활도 오래 했고, 나름 메이저 무대에도 몇 번 정도는 서 본 경력이 있다지만, 나 같은 B급 가수는 그와 같은 A급 스타와 눈도 못 마주치는 게 정상.
가끔 락페에서 오며 가며 멀리서 얼굴 정도나 보는 게 전부였다.
“이번에 미션 곡 고르면서 디밴드 노래를 고를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아무래도 고르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아니, 왜?”
“어릴 때부터 너무 많이 듣던 노래인데, 제가 부르기보다는 계속 즐겁게 듣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하하…….”
“이야……. 이 친구 말 좀 봐. 달콤해.”
짤막하게 들어갈 촬영 분량이니 지금만큼은 오디션 참가자와 단발성 출연자, 음악 후배와 선배 같은 것보다는 소년 팬과 우상의 구도를 보여도 괜찮을 듯싶다.
‘이따가 사인해 달라고 해야지.’
애초에 진짜 팬심을 숨기기도 힘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