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72
71화
편한 동네 아저씨와 대화하듯, 우리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목소리가 워낙 좋기 때문일까? 내용이 귀에 쏙쏙 들어와 대화 자체가 막힘이 없었고, 대선배를 앞에 두고 이야기하는 것 같지 않게 편안한 자리였다.
“창희가 너네 얘기를 엄청 하더라고. 물건 하나 건졌다고. 그러더니 막 곡을 이렇게 가져오는데…….”
임대현 보컬이 어디선가 악보 뭉치를 한가득 꺼내 보여 주었다.
“이야, 이게 다 너희 연주 보고 쓴 곡들이라는 거 아니냐.”
나는 그것을 보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와……. 무슨 작업물이…….’
대충 봐도 오십 장은 가볍게 넘어갈 분량이다.
단순 스케치이든, 완성한 곡이든, 저만큼 썼다는 건 어지간히 작업에 매진했다는 뜻이다.
아무래도 내 생각보다 박창희 심사 위원이 우리를 훨씬 좋게 보는 모양이었다.
“대단하시네요…….”
“그치? 근데 이게 다 실패작이래. 하하하! 너희를 위한 곡은 따로 남겨 놨으니 기대하고.”
“말씀만 들어도 너무 기대됩니다. 오디션 끝나면 꼭…….”
나는 흔들리는 악보들을 보며 군침을 흘렸다.
분명 건질 것이 있으리라.
아니, 저게 다 실패작이고 완성본은 따로 있다고 했던가?
‘기대가 돼서 미칠 것 같아.’
빨리 곡을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자, 그러면 본격적으로 뭔가 카메라에 들어가기 좋은 생산적인 대화를 좀 해 볼까? 카메라 돌아가고 있죠?”
금방까지의 짧은 대화는 말하자면 인트로 부분에 들어가는 아이스브레이킹 타임이고, 슬슬 멘토 역할에 들어가겠다는 신호였다.
역시 경력도 길고 인기도 많아 방송 출연 경험이 많은 임대현은 침착하면서 활기찬 모습으로 촬영에 임했다.
“루치가 노래를 할 때를 보면 참 노련해. 경험 많은 가수 같아. 그래서 무대 적응도 빠르고, 긴장 없이 페이스 유지가 잘되더라고. 여기서 더 임팩트를 늘리려면…….”
“선곡? 좋았지. 그런데 조금은 메시지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더라고. 지난번 생방 때 보면 솔로 타임을 넣어서 테크닉을 보여 줄 공간을 만들기는 했지만…….”
“합은 무슨 조언을 할 필요가 없겠더라. 밴드 전체 멤버들의 궁합이 딱 맞는다고 해야 하나?”
그는 우리의 노래에 있어 꽤 많은 조언을 건넸다.
쉬운 설명, 간단한 예시, 부족한 점, 그리고 해결책.
순서대로 짚어 주는 그 조언들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조언은 비단 노래에 한정된 것만이 아니었다.
“캐스터네츠?”
“네. 조금 더 단단하게 박자를 박아 주는 느낌을 만들고 싶어서요…….”
“흠…….”
임대현은 우리의 미션 곡과 편곡 방향을 듣고 나름의 의견을 제시해 주었다.
“전진이라는 노래가 힘 있고, 앞으로 가는 느낌이긴 하지만 캐스터네츠 특유의 스페인 맛이 섞이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다소 끌리는 선택지는 아니야. 연주자 구해서 하려는 거지?”
“네.”
“그러면 이건 어때?”
그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영상 하나를 틀어 보여 주었다.
따다다다닥! 따다다닥! 따다닥! 따다다다닥!
금속이 바닥에 부딪히며 만들어지는 딱딱한 질감의 경쾌한 소리.
소리만 있는 게 아니라고 소리치는 듯 흥겹게 빨라 눈이 즐거운 발놀림.
“탭 댄스네요?”
탭 댄스였다.
“어때?”
“네? 어떤……. 탭 댄스…….”
처음 나와 수현이는 기분 좋게 감상만 했다뿐이지 그가 영상을 보여 준 이유를 읽어 내지 못하고 잠깐 고민했다.
그리고 잠시 후.
“아하.”
우리는 눈치챌 수 있었다.
“확실히 전문 연주자도 가뜩이나 적은데 임팩트는 크게 기대하기 힘든 캐스터네츠보다는, 기억에 제대로 남는 탭 댄스가 훨씬 유리할 것 같긴 해요.”
우리가 원하는 단단하면서도 시원하게 뻗는 소리가 빈틈없이 박자를 메워 주는 것.
멋들어지게 연주할 수 있는 전문 연주자도 부족하고, 비장의 무기답지 않게 임팩트도 적고, 심지어는 사람들에게 우습게 보일 가능성까지 있는 캐스터네츠보다 탭 댄스의 소리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이 더 좋을 수 있었다.
“그렇지? 무엇보다 너희 의도에 딱 들어맞는 소리를 만들 수 있는 데다가, 협연할 때 연주자끼리 합을 맞추는 게 아니라 음악과 춤의 조화라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훨씬 쉬울 거야.”
즉, 소리 맞추는 것이 쉽다는 뜻.
일단은 손으로 다루는 악기인지라 우리가 써 놓은 박자가 그 테크닉 아래서 구현이 가능할지, 또한 제대로 소리가 섞여 들어갈지 고민을 해야 하는 캐스터네츠보다 탭 댄스 쪽이 훨씬 좋을 수도 있다.
빠르게 딱딱거리는 소리를 디디는 부분이나 땅에 치는 방식으로 구분 가능하기도 하고, 심상을 춤으로 표현해 내며 눈과 귀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으니.
“말로 해서는 모를 텐데, 일단 섭외해서 합주 진행해 보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걸?”
“감사합니다. 눈이 트이는 느낌이네요.”
“저, 전진한다는 가사에 딱 맞는 이미지가 나올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구미가 당기는 조언이었다.
발을 디디며 만드는 음악이라는 점에서 이번 미션 곡과 어울려 더 끌렸다.
우리는 캐스터네츠 섭외를 취소하고 탭 댄서로 하여금 그 자리를 대체하기로 했다.
다행히 아직 연주자가 구해지지 않은 상태였기에 큰 문제는 없을 듯했다.
“음, 지금까지는 내가 해 주고 싶던 말들을 해 줬는데, 혹시 너희가 묻고 싶은 건 없나? 내가 아는 한에서는 다 말해 줄 수 있어.”
임대현 보컬은 자신이 해 주고 싶었던 조언들을 모두 마친 후, 우리에게 질문은 없냐 물었다.
우리는 하나씩 궁금했던 점들을 물었고 그는 성심성의껏 답해 주었는데, 특히 수현이가 제대로 몰입해서 질문을 쏟아 냈다.
“제, 제가 탭 댄스는 잘 몰라서 그러는데, 딱 정해진 소리대로 진행이 가능한 건가요?”
“당연하지. 치는 동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소리 종류가 바뀐다더라. 나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탭 댄서에게 원하는 진행과 뉘앙스, BPM 정도를 공유하면 라인을 만들어 올 거야.”
“드러머처럼요?”
“그렇지.”
“아하……. 그러면 볼륨 관리는…….”
대부분 지금 준비 중인 무대에 관한 질문이었고, 내가 신경 쓰지 않던 부분들을 상세하게 묻는 것이 꽤나 신이 난 느낌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답을 주는 임대현의 방대한 무대 지식은 경악스러울 정도였다.
“아마 댄서 있는 쪽에 마이크를 둘 거거든? 그러면 잊지 말고 미리 스피커 사운드를 체크해야 돼. 진동 때문에 펑 소리가 심할 수 있는데, 딱 들으면 어딜 깎아야 할지 미리 알 수 있어.”
“아하…….”
“그리고 위치. 카메라에 잘 잡히긴 하는데 너희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희에게 갈 주목을 끌어올 정도로 둬도 안 돼. 확인해서 사람 셋 들어갈 정도 공간 두고 본 다음, 부족한지 과한지 미리…….”
소소한 꿀팁들과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점들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온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미국 진출에 실패하고 돌아온 거지?’
야심차게 나갔던 미국 시장.
거나하게 실패의 쓴맛을 보고 돌아온 임대현과 디밴드의 소식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영어를 못하는 것도 아니고, 음악성도 뛰어난 밴드다.
당시 유행하던 트렌드를 놓쳤나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저 실력에, 저 정도 무대 관리 능력이 있으면 한자리 단단히 할 수 있었을 텐데 어째서 실패한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만큼 미국 시장이 거대하고 단단하다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걸까? 모르겠네.’
그렇다고 초면에 무례하게 미국에선 왜 돌아왔냐고 물을 수도 없는 노릇.
그저 속으로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냥 이렇게 얘기만 하기도 좀 그런데, 스튜디오 구경이라도 좀 할래? 어때?”
한참 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깐 찾아온 소강상태.
지켜보던 박창희 심사 위원이 제안했다.
“스튜디오요?”
“응. 여기 지하에.”
“오오. 좋죠! 저희는 무조건 좋아요.”
“드럼도 있어요?”
“당연하지!”
“오오오.”
그러고 보면 유난히 처음 보는 기계와 악기에 사족을 못 쓰는 우리 밴드다.
나도 그렇고 수현이도 그렇고 녹음 장비와 이펙터, 스피커 따위에 꽤나 관심이 많고, 재우는 악기 회사 아들이라 그런지 눈도 높은 주제에 다른 악기를 가지고 놀기를 즐긴다. 특히 기타.
또한 지금까지 부족했던 음악적 지식을 채우는 데에 맛이 들린 라희 역시 마찬가지.
그런 우리에게 디밴드가 작업을 하는 공간이란 최고의 놀이터와 같았다.
“좋아. 물론 데모 녹음만 하는 간이 스튜디오지만, 볼만한 게 조금 있을 거야.”
“데모 녹음만 한다는 건…….”
“보통은 회사에서 녹음실을 잡아 주지. 태희 형이랑 내가 전곡 프로듀싱할 때는 여기서 하기도 하는데, 프로듀서를 따로 부를 때는 그쪽 현장으로 가서 하는 게 편하거든.”
재우의 스튜디오가 있음에도 제우스 형님의 스튜디오로 가서 녹음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하. 저희도 그랬어요.”
임대현의 설명 덕에 순식간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면 설마 별로 볼 건 없는 거 아니야? 아쉬운데.’
평소 잘 쓰지 않는 공간이라면 구비된 장비도 다 그저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재우의 스튜디오 정도는 안 되는 소박한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은 실망감이 앞섰다.
“이쪽으로. 발 조심하고.”
하지만 곧 나는 어른과 학생의 재력이란 크게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물며 그게 그냥 어른이 아닌 성공한 어른임에야.
“와…….”
“지하인데 습기가 전혀 없네요?”
“아무래도 기계가 있으니까 환기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되지.”
닫혀 있던 문을 열고 지하실로 내려왔다.
그리고 내 예상과 달리 그곳은 별천지처럼 보였다.
“하얗고 까맣고…….”
“모노톤이 깔끔하고 좋지.”
검은색 프레임을 잡고, 집기와 가구는 흰색과 옅은 회색으로 비치해 상당히 깔끔한 인상이다.
관리도 잘되었는지 먼지 한 톨 보이지 않는 녹음실 안에는 드럼과 이펙터, 마이크 따위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역시 디밴드 정도 되면 이 정도 규모의 시설을 유지할 벌이가 되는구나…….’
애초에 오늘 촬영을 위해 온 이곳도 이름만 디밴드 사무실이라 짓고 홈짐, 녹음실, 여가 시설까지 갖춘 밴드 아지트 느낌이다.
무슨 스포츠 구단 클럽 하우스도 아니고, 이렇게 잘 갖춰진 곳을 밴드의 사무실 겸 연습실로 운영하고 있다니, 새삼 국민 밴드의 위상이 느껴졌다.
“와, 수현아 저거 봐. 저게 골드먼 네메시스 프리앰프야.”
“대박……. 사진으로만 봤던 건데…….”
우리는 ‘억’ 소리 절로 나는 하이엔드 장비들의 위엄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비싼 가격의 해외 제품들이 지천이었다.
“이거 만져 봐도 돼요?”
“저도, 저도.”
재우와 라희 역시 비치된 악기에 큰 흥미를 가지고 움직이는 모습이다.
“하하하. 써 봐. 몇억 들여서 장비 가져다 놔도 안 쓰면 무슨 의미겠어?”
“우리는 개인 장비만 쓰니까, 어쩌다 보니 이게 장식품처럼 되더라고. 너희가 써 주면 얘네도 좋아할 거야.”
“오오오!”
그 모습을 보던 박창희 심사 위원과 임대현 보컬이 껄껄 웃더니 우리에게 손짓해 만져 보라고 한다.
그것을 보고 정신이 퍼뜩 들었다.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어!’
사진으로만 보고 글로만 성능을 느꼈던 장비들을 직접 다룰 기회.
나는 애들을 불러 모으며 말했다.
“이러고 있을 게 아니야. 연주 한 곡 땡기자. 잼?”
“잼?”
“잼!”
퍼져 있던 멤버들이 옹기종기 모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