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73
72화
우리는 보이는 악기들 중 하나씩을 고르고 대충 자리를 찾아 섰다.
오랜만에 만지는 일렉 기타의 서늘함이 꽤 마음에 들었다.
‘조금 놀려 볼까?’
그리고 잼을 시작하려는데 갑자기 장난기가 차오른다.
뭔가 장난질을 좀 쳐도 괜찮을 것 같았다.
‘평범하게 가면 재미없으니까.’
속으로 무슨 짓을 해서 애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나부터 한다?”
“응? 그래.”
“빨리 하셈.”
정했다.
‘대처에 실패하면 내가 이기는 거고, 성공하면 너희가 이기는 건데……. 어떻게 되든 재미만 있으면 오케이야. 흐흐.’
먼저 코드를 잡고 연주를 시작했다.
두우웅, 투웅!
피크를 자리에 두고 손가락으로 기타 줄을 잡아 튕긴다.
엄지로 한 번, 다른 손가락들로 한 번.
일정한 리듬으로.
이윽고 규칙적인 패턴이 그려 내는 경쾌함이 뒤따른다.
쿵, 짝, 쿵, 짝, 쿵, 짜작, 쿵, 짝.
“어?”
모두에게 익숙할 수밖에 없는 리듬이다.
Am, Dm, E7, 다시 Am.
1도 4도 5도를 돌아 다시 오는 순서로 진행되는 3개의 코드.
그리고 여기서 느껴지는 익숙한 뽕삘…….
“푸하하하하!”
“잼에서 갑자기 트로트를?”
트로트다.
쿵, 짝, 쿵, 짝, 쿵, 짜작, 쿵, 짝.
단조롭지만 통통 튀는 듀플메트 패턴의 리듬에 어깨가 들썩인다.
마이너 스케일을 잡고 있는데도 어쩐지 흥겹다.
자연스럽게 웃음이 새어 나온다.
“흐흐흐…….”
트로트 특유의 그 신나고 구성진 색채가 의도대로 잔뜩 묻어난다.
위아래를 많이 깎고 컴프레서로 소리를 압축시켜 밀도 있고 단단하게 맞춘 기타의 톤 역시 한몫했으리라.
“하…….”
그 소리를 듣고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 재우.
그는 금방 정신을 차리고 다른 아이들과 동시에 진입했다.
지이이이잉! 디리리링, 디리리리링……. 디이이잉!
음을 길게 끌고, 일부러 슬라이드를 하며 깔끔하게 음 사이를 잇고, 줄을 위아래로 당겨 벤딩을 하며 끈적하게 붙인다.
내 장단에 맞춰 트로트 가수의 구성진 꺾기를 따라 하듯 선율을 떨어 대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재우랑 처음 만났을 때도 이런 느낌이었지, 아마?’
불현듯 녀석이 나를 처음 만났을 때 내가 대충 지어 부르던 노래를 따라 치며 도발하던 것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면 어떤 소리를 듣고 패턴을 파악해 연주하는 것에는 도가 트인 녀석이다.
이렇듯 당황스러우라고 던져 놓은 상황에도 빠르게 대처하는 그의 모습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었다.
‘호오…….’
수현과 라희도 튀지 않게 그 뒤를 받쳐 주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다.
소리가 자연스럽게 섞인다.
동시에 내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잘하네.’
하다못해 흔하디흔한 머니 코드라도 깔며 시작했다면 쉽게 쉽게 갔을 것이다.
그런데 뜬금없는 트로트 쓰리 코드 리듬을 후려 버리니 당황했을 만도 한데, 빠른 속도로 달라붙어 소화하는 것을 보니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럼 좀 더 가 볼까?’
‘님 진짜…….’
재우와 눈을 마주치니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씩 웃고 코드 진행을 바꿀 준비를 했다.
다만 하나는 확실하다.
‘벌써 읽었을 거야.’
내가 어떤 방향으로 전환할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샘솟았다.
스으윽.
그대로 한 마디를 진행 후, 곧장 다음 구성으로 전환한다.
‘원래 한 패턴으로 쭉 가야 하는 건데……. 괜찮겠지.’
잼을 할 때는 그냥 한 패턴을 정해서 쭉 이어 나가는 게 편하기에 보통 그렇게 하지만, 나는 우리 멤버들을 놀리는 것이 목표.
물론 내가 바꾸는 대로 곧장 눈치를 채고 따라올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고 말이다.
보통 노래라면 딱 패턴이 바뀔 타이밍.
나는 코드를 바꿨다.
쿵짝쿵짝, 쿵짝쿵짝, 쿵짜작쿵짝, 쿵짝쿵짝.
G, C, Dm, E7. 마디를 건너 Dm, Am, Dm, E7 아까의 코드.
거기에 리듬도 살짝 변환해 조금 더 채우는 느낌이다.
“하하하하! 정윤희 노래 코드지, 저거?”
“응. 같은 코드야.”
많이 쓰이는 코드 진행인데, 곡 특유의 리듬감에서 트로트 가수 정윤희의 냄새가 나는 모양인지 박창희 베이시스트와 임대현 보컬이 그것을 보며 웃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그리고 잠시 멈칫하나 싶었던 재우의 손이 다시 움직인다.
지이이잉, 징징징징징, 지이이잉…….
코드가 바뀌자마자 구성진 가락으로 따라붙는다.
다른 멤버들 역시 흐트러짐 없이 연주를 이어 나간다.
특히 화려한 것 좋아하는 수현이가 안정적으로 받쳐 주고 있는데, 베이스 기타가 가진 리듬 악기 역할을 확실히 보여 주는 느낌이다.
‘오. 그러면 이렇게…….’
내친김에 다시 코드를 전환했다.
E7, Am, Dm.
순서만 바꾼 처음과 같은 코드.
이번엔 신호 없이 돌려 버리는 것이라 어떻게 될지 몰라 더욱 즐거웠다.
쿵짜작, 쿵짝, 쿵짝쿵짝, 쿵짜작, 쿵짝, 쿵짝쿵짝……. 지지징, 지이이잉, 지징.
그런데 내 슬라이드만 듣고도 코드 진행이 어떻게 바뀔지 예측이라도 하는 듯, 잘도 받쳐 주는 멤버들.
“크…….”
자연스럽게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잘하네.”
“재우 저 친구는 지금 당장 앨범 내도 되겠는데?”
“응. 그거 생각난다. 짐 헨드릭스.”
결국 내 장난질에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연주 퀄리티도 제대로 유지하는 재우의 모습에, 역사상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손꼽히는 사람의 이름까지 거론된다.
“미국 국가 연주?”
“응. 연주에 소울이 들었잖아. 잘해.”
“그렇지. 슬픔을 경쾌하게 표현하는 한편, 이상한 짓거리나 하고 있다고 자기 밴드 멤버한테 욕하는 느낌도 드네.”
“하하하!”
뜬금없는 트로트 한마당이 고수들의 마음에 쏙 든 듯했다.
잠시 후.
잼이 적당한 선에서 끝나고.
“님 진짜 미친놈임?”
고생한 친구의 타박이 날아들었다.
“푸하하하하하!”
“까, 깜짝 놀랐잖아…….”
“하하하! 대박! 나 트로트는 처음 해 봐!”
연습과 편곡, 무대 준비로 힘들었던 것이 싹 씻기는 느낌.
오랜만에 재밌게 놀았다 싶었다.
“휴, 오래간만에 양껏 웃었다.”
“너희 재밌게 노는구나?”
“평소엔 그냥 평범해요.”
우리가 보여 준 잼이 상당히 우스웠는지 임대현 보컬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그럴 만도 했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냥 미친놈들 뛰어노는 장면이었을 수도…….’
물론 나는 마음껏 신나게 즐겼으니 상관없다.
멤버들이야 고생 좀 했겠지만, 평소에 잡일 하던 스트레스를 이런 식으로라도 풀어야지.
“뭐야, 그러면 촬영 모드야? 억지 텐션?”
“그건 아니고……. 연습은 매일 하고, 놀기도 잘 놀긴 하지만 이 정도로 신이 나 있지는 않아요. 오늘은 그냥 연습하면서 쌓였던 스트레스도 풀 겸, 분량도 뽑을 겸 겸사겸사…….”
“하하하하.”
임대현 보컬이 내 답을 듣더니 다시 한번 껄껄 웃는다.
“확실히 얘네가 재능이 있어.”
“재능보다는 스타성이지.”
“응. 스타성.”
원래부터 우리를 높게 쳐 주던 박창희 베이시스트는 그렇다고 쳐도 존경하는 보컬인 임대현까지 그렇게 좋게 봐 주니 너무나 기뻤다.
‘오늘이 내 인생 최고의 날이야.’
노래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아, 근데 말이야.”
“네?”
임대현 보컬이 별안간 고개를 들며 말했다.
“너희 노래. 그, 그냥 너희가 부른 노래라는 뜻이 아니라 너희 앨범에 쓰는……. 음……. 이걸 뭐라고 하지?”
“자작곡이라거나.”
“뭐, 남한테 받는다고 자기 노래가 아닌 게 아니긴 해서리……. 아무튼. 너희 오리지널 노래를 좀 듣고 싶은데. 괜찮을까?”
우리의 노래 들어 보고 싶다는 그의 말.
너튜브에서 듣긴 했는데 하나밖에 없어서 아쉽다고. 다른 곡도 있지 않냐고 묻는 말에 얼굴이 화륵 달아올랐다.
‘와…….’
커버 곡만 잔뜩 있는 채널, 남의 노래만 불렀던 오디션 방송.
우리 오리지널을 찾아 듣기에는 부족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요상했다.
‘별빛 계단이랑 오 마이 앤젤도 곧 올라가긴 할 텐데……. 진즉 신경을 좀 쓸 걸 그랬네.’
데모 앨범 제작 이후 음원을 내면서 홍보 겸 업로드하려 했는데, 방송 출연 건으로 바빠 만들어 두었던 커버만 올리며 신경을 쓰지 못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자작곡으로 채널을 더 채워 놨을 것이다.
우리 채널을 그 임대현이 보다니!
그런데 볼 게 없어서 직접 만나 연주를 요청하다니!
‘누추한 집에서 귀한 손님 맞는 기분이 이런 느낌일까…….’
영광 또 영광이면서 부끄러움이 앞섰다.
“괜찮습니다. 괜찮고 말고요. 꼭 하게 해 주십시오.”
나는 급하게 답했다.
내 노래를 우상에게 들려줄 기회였다.
“아하하하. 그럼 한번 들어 볼까?”
“넵!”
나는 멤버들을 다시 한번 모았다.
“뭐 부르지?”
“뭐가 좋지?”
“글쎄.”
잠깐 고민의 시간을 가진 끝에 한 노래를 골랐다.
신이 난 지금의 기분으로 가장 표현하기 쉬울 것이라 생각되는 노래.
“오오오오, 나만의 천사님이여! 날 구해 주소서! 그대만을 사랑할게, 나난난나!”
오 마이 앤젤.
우리 데모의 2번 트랙이다.
“오호…….”
“이야…….”
노래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박창희 심사 위원과 임대현 보컬의 눈빛이 빛나는 것이 보였다.
가슴속에서 뭔가 꽉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좋아, 너무 좋아.’
보고 있는 관객은 딱 두 명에 촬영 중인 스태프를 합쳐도 열 명 남짓.
그런데도 수백, 수천의 관중들 앞에서 연주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만의 천사님이여! 행복하게 해 줄게! 너만을 바라볼게!”
지이이잉! 징징징! 지잉, 지이이이잉!
내 후렴이 지나고 곡의 백미인 위풍당당 행진곡 라인이 흐른다.
자연스럽게 즐거움을 해소하려 리듬 기타를 치며 박자에 맞춰 나도 고개를 흔들었다.
흥이 차올랐다.
“한 번뿐인 인생이니까! 너를 포기하진 않을 거라고!”
아쉽게도 확성기는 챙겨 오지 않아 원래 의도했던 사운드는 아니지만, 보컬 오버드라이브 이펙터를 이용해 비슷한 느낌을 맞춰 아웃트로를 불렀다.
찢어지고 과장되는 소리가 나름 맛이 있었다.
“사랑하는 너에게로, 나의 손을 뻗는다!”
징징, 징징, 두두둥! 채애애앵!
깔끔한 마무리.
시원하게 달렸기에 살짝 땀이 났지만, 그래도 즐거운 기분이다.
“호오오…….”
노래를 다 듣고 침을 꿀꺽 삼키며 반응을 기다렸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임대현 보컬의 모습에 자연스럽게 긴장감이 넘치던 흥의 자리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그의 입이 열렸다.
“창희가 왜 너희한테 홀딱 빠져서 곡 줘야 한다고 노래를 부르는지 알 것 같다. 이야……. 너희 잘하는구나?”
“가, 감사합니다!”
너무나 기쁘고, 너무나 감사한 반응이었다.
“잘 들었어. 확실히 너희는 프로의 계단에 이미 올라서 있는 것 같다.”
“아…….”
“직접 만든 곡이라 했지?”
“네.”
“멤버들 간의 합이 잘 맞도록 설계한 곡이다 싶네. 누구 한 명 놓치는 박자 없이 완벽하게 이어지고, 무엇보다 메시지에 집중한 노래인데 보컬만 띄우는 게 아니라 더 좋아.”
우상의 입에서 극찬이 쏟아져 나온다.
어쩔 줄을 모르겠다.
회귀하고 나서 나름 열심히 해 왔던 내게 하늘이 보상을 내리고 있나 싶었다.
항상 선망해 왔고 닮고 싶은 보컬이 자신을 프로로 대우하며 평가하고 있다.
처음 회사를 만나 계약했을 때도, 내 이름을 올린 앨범이 나왔을 때도, 간신히 만들어 발표한 곡이 입소문을 타고 차트 등반을 시작했을 때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다.
오늘 같은 생각을 두 번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딱 그런 말이 어울렸다.
‘음악 하길 잘했다.’
음악 인생 최고의 날이다.
이후에도 임대현 보컬은 우리에게 몇 가지 질문과 조언을 더 던져 주었고, 우리는 경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