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77
76화
“전진! 전지이인…….”
분명 내 노래는 멀쩡하게 이어지고 있는데, 세계가 멈춘 것 같다.
멈춘 것은 아니고, 멈춘 것 같은 것이다.
음정과 박자는 귀에 선하고, 성대 역시 원하는 대로 붙었다 떨어졌다 잘만 움직이고 있다.
순간 등줄기에 소름이 쫙 피어올랐다.
‘뭐지?’
동시에 목구멍이 확 벌어지며 공기가 빠져나가며 좁게 모인 성대를 울리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하는 거야! 워어어어! 전지이인!”
마치 눈에 보이듯 그 모습이 인지되는 것은 상당히 기묘한 경험이었다.
이렇게 내 노래가 소리를 갖게 되는 것이구나, 소리는 이렇게 나오는구나 싶은.
더 나아가서 어떻게 불러야 목이 아프지 않을지, 어떻게 해야 더 예쁜 소리가 나올지도 이해의 단계를 넘어서 자연스럽게 체화되는 그런 경험이다.
“저언지이인!”
코러스의 소리가 멀리서 울리는데 오로지 나만 노래하는 기분이 든다.
내가 제일 높은 음을 찍고 있어서?
메인 마이크를 들고 제일 큰 소리를 받는 무대의 주인이라서?
아니, 겨우 그런 게 아니었다.
‘곡의 중심에 선다는 게 이런 건가?’
내 존재감이 모래에 물이 스며들듯 퍼져 이 무대를 내 것으로 만들고 있다.
오로지 나 혼자만 튀어 주인공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
‘기둥처럼, 이걸 중심으로 하나가 되듯…….’
내 목소리에서 시작되어 한 곡의 많은 요소들이 융화된다.
내가 두드리고 있는 리듬 기타, 재우의 멜로디 기타, 수현이의 베이스, 라희의 드럼, 태퍼 진 형의 발 구르는 탭 댄스 소리, 화음을 맞춰 주고 곡의 빈 곳을 메워 주는 코러스들까지.
선과 색이 섞여 완벽하게 하나의 그림으로 재탄생하듯, 노래 하나가 완성된다.
임대현 보컬의 연주에서 배웠던 존재감의 강조와 명확한 메시지 전달.
그것을 내 방식대로 해석한 결과물이 이렇게 나타나는 것이다.
‘아……. 이거구나.’
나는 언제나 감성이란 기술과 표현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고저의 분할을 뚜렷하게 하고 템포를 빠르게 잡아 경쾌한 이미지를 표현하고, 단조와 느린 템포, 늘어지는 선율로 우울감을 표현하는 등.
감정 표현 역시 기술의 영역 안에서 소화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이번 공연 역시 그런 표현 기술에 집중해 강약 조절과 템포 조절 등에 신경을 많이 쓰며 연습했으니까.
‘이게 감성 표출의 쾌감이었어.’
하지만 내가 느끼는 감성을 제대로 표현해 눈앞의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있다는 그 황홀감이 가슴속을 가득 채우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단지 기술을 통해 의도한 메시지를 표현하는 재미, 그것만이 아니다.
“와아아아!”
“달려!”
“와아아아아!”
내 소리에 집중해 노래에 담긴 뜻을 전달받은 사람들이 열광하며 발을 구르고 소리를 지르면, 또 그 열기에 내가 다시 전염되어 더욱 힘차게 노래를 부른다.
이것이 쌍방 소통의 매력. 표현하는 사람과 받아들이는 사람의 상호 작용이다.
언제나 그렇듯, 함께 노래를 즐기는 이 순간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전진! 전진! 전진! 하는 거야”
당장이라도 박차고 달려나갈 듯, 심장이 두근거린다.
‘전혀 피곤하지 않아. 아직 쌩쌩해.’
노래가 막바지에 다다른 것을 성대라는 놈이 알고는 있는 것인지, 접지력은 여전하고 피로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열심히 연구하고 연습해 익힌 내 기술로, 저기 사람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는 자부심.
나와 공감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음에 느껴지는 든든함.
그 모든 것이 마약처럼 혼을 끓게 만든다.
이런 열광의 감정을 제대로 표출하고자 마지막 한 마디를 준비하고.
“워어어어!”
뱉었다.
“전지이이인!”
길게 끄는 최후의 샤우팅과 함께, 이마에서 땀이 또르르 흘러내린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비유하자면 흡사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부처…….
‘아니, 그건 좀 아니고.’
아무튼 내가 평생을 들여 연구하고 노력해 온 기술적인 보컬링이라는 영역에서 한 걸음을 더 내디딜 수 있었다.
두두둥! 지이이잉!
모두가 신호에 맞춰 동시에 연주를 갈무리한다.
그러자.
“와아아아아!”
“휘이이익!”
환호하는 소리, 손뼉을 쳐서 칭찬해 주는 소리, 멋지다고, 여기 좀 봐 달라고 휘파람을 부는 소리.
금방까지 우리가 만들던 음악으로 꽉 찼던 공간이 조금은 다른 느낌으로 탈바꿈했다.
“감사합니다.”
이 열광에 감사하기 위해 허리 숙여 관객들에게 인사를 올렸다.
“멋지다!”
“와아아아아!”
그러자 관객들이 다시금 환호성과 박수를 선사한다.
내 감정에 끊임없이 공감하며 힘껏 소통을 해 준 관객들에게 무한한 감사가 솟았다.
“네! 세 번째 무대, 럭키데이의 전진이었습니다. 꽉 찬 무대 만들어 주신 우리 럭키데이에게 큰 박수 부탁…….”
사회자의 진행이 잠시 이어지고, 우리는 잠시 숨을 고르며 심사평을 기다릴 수 있었다.
‘전문 사회자가 큰돈 버는 이유가 있어.’
오늘 기묘한 경험과 함께 일종의 깨달음을 얻어 무대를 아주 날아다녔던 나와 달리, 다른 애들은 신경을 크게 썼는지 평소보다 더 지친 모습이었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사소한 부분 덕분에 모두가 편해지니, MC 역할을 맡는 사람들이 그 출연료를 받는 이유를 새삼 이해하게 되었다.
“그럼 럭키데이의 무대, 우리 심사 위원 여러분의 평가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정리의 시간을 가지고 심사평을 들었다.
“네, 우리 럭키데이. 과연 기대를 충족시키는 무대였던 것 같습니다.”
포문을 연 것은 우리의 멘토링 촬영을 맡았던 박창희 심사 위원.
“편곡 과정에서 많은 고민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는 좋은 무대였습니다. 무엇보다 탭 댄스를 시작부터 보여 주면서 전진의 그 이미지를 잘 표현했고, 그 소리에 맞춘 경쾌한 박자가 인상적이었어요.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할지 정말 기대되는 팀입니다.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일단은 칭찬으로 스타트를 끊었다.
출발이 좋다.
“다음은 황보문 심사 위원!”
“네, 저는 뭐……. 지라희 참가자의 파워 드럼이 너무 좋았고요, 앞에서 박 심사 위원이 말씀하신 것처럼 편곡에 힘을 쓴 느낌이 확 와닿네요. 비우고 메우는 그 메커니즘을 제대로 알고 있다는 뜻이거든요? 참 음악 잘하는 팀이다, 그런 생각이 드네요.”
은근히 드러머들에 집중한 평가와 예선 때부터 이어진 라희에 대한 고평가로 라희 아빠 소리도 심심치 않게 듣는 황보문 심사 위원.
그는 오늘도 라희의 연주에 극찬을 던지며 임팩트를 남겼다.
‘두 번째도 극찬. 아주 좋아.’
그 이후로도 이태균, 김하늘, 김덕흥 심사 위원으로부터 좋은 평가가 이어졌다.
“처음에 탭 댄스 소리로 시작하는 거 보면서 나는 멜로디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질 줄 알고 리듬에만 집중했는데, 이게 듣고 나니 그런 게 아니네.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하는 식으로 경연에 나서는 팀이 많은데, 이 팀은 욕심도 많아요. 근데 그러니까 무대가 좋고, 또 멋있고…….”
“기타면 기타, 베이스면 베이스, 보컬이면 보컬, 드럼까지. 빼놓을 수 없는 아름다운 소리입니다. 완벽한 무대였습니다.”
“뭘 해도 잘하는데, 우리가 어떤 미션을 던져 줘야 이 친구들이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고민이 되네요. 팔방미인이라고 하죠? 세부적인 장르, 중심이 되는 소리, 노래의 주제. 어디에 집중을 해도 다 소화해 버리니까 평가하기가 두려울 정도네요. 잘 들었어요.”
극찬과 극찬의 연속.
내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하하하. 얼굴 빨개지는 거 보니까, 이제야 그 나이답네요.”
“감사합니다.”
잘 꾸민 무대를 선보이고 칭찬을 받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나는 밝게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최근 음악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자주 드는 것에, 이 길로 쭉 밀고 나가도 된다는 확신을 줌에 더더욱 감사했다.
“네, 3번 무대. 럭키데이였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 소개와 함께 우리는 손가락 세 개를 쫙 펴서 카메라에 어필하며 무대 뒤로 내려갔다.
“끼요오오오오오오옷!”
“와아아아!”
“좋아, 좋아.”
들어올 때와 반대 방향에 있는 출구.
살짝 어둡고 서늘한 그곳에 우리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대박. 전에도 심사평은 좋긴 했는데, 오늘은 더 쩔었던 것 같아. 그치? 그치?”
“이응. 내용이 더 길었음.”
“심사 위원분들도 즐겼다는 뜻이겠지.”
“아, 아무래도 좋게 들릴 부분을 따로따로 많이 채우기도 했고…….”
“그것도 그렇지. 다들 노래에서 좋아하는 영역이 따로 있으니까.”
그냥 기쁨의 표출이라기엔 너무 분석적이고, 피드백이라기엔 소소하다.
어쨌든 좋은 무대를 마치고 내려온 후기이다.
“캬……. 너희 연습보다 실전파구나?”
“아, 형. 고생 많으셨어요.”
짜악!
심사평을 듣기 전에 먼저 정리를 마치고 내려와 우리를 기다리던 태퍼 진 형이 하이 파이브를 하며 말을 걸어왔다.
“오늘 너무 재밌었어. 다음에도 불러 줘.”
“기회 되면요. 하하. 저희 앨범 작업할 때 이번처럼 탭 댄스로 박자 세세하고 시원하게 쪼개는 거 한 번 더 해 봐도 재밌을 것 같은데…….”
“오오! 나야 좋지!”
진 형은 우리와 함께했던 무대가 마음에 들었는지 다음에도 불러 달라는 말을 건넸고, 우리는 구두로 피처링 약속을 받았다.
오늘처럼 주제에 맞는 곡을 만들었을 때 탭 댄스라는 세션은 그 특이성 이외에도 꽤나 경쾌하고 시원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좋은 느낌을 준다.
나중에 꼭 다시 만져 보고 싶은 소재였다.
‘우리 팀이랑 궁합도 잘 맞는 것 같고.’
일단은 댄서이지만 진 형의 음악성이라고 할지, 예술성이라고 할지, 사람의 성향 같은 것이 우리랑 굉장히 잘 맞았다.
음악에 있어서도, 관계에 있어서도.
“아 맞다. 오빠. 그 밑에 끼우는 거, 그거 만져 봐도 돼요?”
“탭 슈즈? 아, 아아. 이거. 신발에 끼워 볼래?”
“엥? 일체형이 아니구나, 이게.”
“보통 탭 슈즈는 일체형인데, 뭐 레크리에이션을 위해서 쓴다거나, 입문자들을 위해서는 이렇게 고무줄 장착식으로…….”
연습 때부터 지금까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지속되기도 했고, 교류를 이어 나갈 여지가 있었다.
‘달리는 느낌, 혹은 아예 춤을 소재로 삼아서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네.’
진 형과 같이 꾸밀 곡의 아이디어가 피어올랐다.
* * *
“더 밴드 코리아, 2라운드 준결승! 이렇게 다섯 밴드의 무대가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남은 공연이 모두 지나가고 이제 결과 발표의 시간이다.
관객들은 공연의 여운 때문에, 참가자들은 무대의 피로감 때문에, 그리고 시청자들은 길고 긴 광고 시간 때문에.
각각의 이유로 지치는 시간이지만, 많은 것이 걸린 중요한 순간이다.
‘근데 왜 걱정이 안 되지?’
“먼저 1위부터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전혀 걱정이 되지도 않고, 긴장감도 없었다.
“대망의 결승전에 진출할 첫 번째 팀!”
어쩌면 오늘 우리가 어떤 무대를 펼쳤는지 나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1위는 바로!”
당연히도.
“럭키데이입니다!”
우리는 1위라는 결과를 손에 쥐고 결승전에 올라갈 수 있었다.
“와아아아아!”
“럭키데이! 럭키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