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80
79화
태호가 중학교 때 처음 작곡해서 지금까지 수정에 수정을 반복해 온 연주곡, <돈키호테>.
“근데 네가 쓸 곡 아니냐? 우리한테 줘도 돼?”
“엉. 아무리 해도 나 혼자서는 못하겠더라.”
기타로 시작해서 드럼, 베이스, 보컬까지 전부 하는 녀석이지만, 연주 실력 자체는 너무 어중간하다는 자기 평가가 있다.
하다못해 같이 연주할 동료라도 있으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아니니 차라리 곡을 넘기겠다는 말이다.
“고등학교에 와서 이걸 소화해 보려고 나 나름 원 맨 밴드 같은 걸 생각해 보긴 했는데……. 어렵더라고.”
나름의 타개책을 강구해 봤지만 역시 곡의 난이도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고.
“확실히 음표가 무슨……. 이게 나비야, 파리야?”
꽃 위에 날아다니는 곤충처럼 이리저리 춤추는 악보 위의 음표들을 보면 확실히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무리 음악이라는 게 듣기 좋으면 장땡이라지만, 이건 어려워도 너무 어려운 곡이 아닌가…….’
솔직히 남 주고 싶어도 못 주는 곡이다, 이거.
결국 그가 어떻게든 살려 보려고 거의 3년을 넘게 수정에 매달린 곡은 우리에게 오게 되었다.
‘꺼억.’
절친한 친구가 인생 갈아 넣어 만든 노래.
달다, 달아.
“아무튼 여러 버전 중에 너희가 소화하기 제일 편한 버전으로 골랐으니까 연습 들어가 보자.”
“그래.”
그렇게 결승 무대를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다.
“템포, 템포! 멜로디 기타 혼자 앞서 나가면 곡은 전부 무너지는 거야.”
“굳이 거기서 당기면서 때려야 해? 뒤에 화려하게 치고 나갈 수 있는데 앞에서 미리 해서 기대감을 떨어뜨릴 필요는 없어.”
“힘 빼고. 너무 세게만 가면 귀가 피로해. 릴랙스. 늙은 말이 달려가듯이.”
태호는 우리의 연주를 감독하며 곳곳을 지적했다.
“열정, 이상, 정의. 그걸 표현하기 위해 늘였다 줄였다의 경계선에 신경 써야 해. 무슨 말인지 알겠지?”
“이렇게?”
디이잉, 디리리링, 디리리리링…….
“거기서 조금 더 소프트하게 되려나?”
“이렇게.”
디이이잉, 디이이잉, 디리리리링…….
“완벽해.”
다른 연습 때보다 편하고 좋은 점은 무엇보다 태호가 나름 연주 경력이 있어 기술적인 지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본인이 시범은 못 보이지만.’
사실 시범을 보일 수 있는 연주자였으면 이 곡이 우리에게 돌아오지도 않았을 테니 오히려 그게 나았다.
추상적이지 않은 기술 묘사 자체가 큰 도움이었으니까.
“루치는 뭐……. 고생해라.”
나에게도 몇몇 지적 사항이 있었지만 다른 멤버들만큼은 아니었다.
“응.”
물론 그게 내가 잘하고 있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쉽긴 한데, 이거 너무 묻어 가는 거 아닌가?’
아주 가끔 나오는 보컬 코러스를 제외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하이 코드를 잡고 스트로킹만 하면 되는 것이 이번 곡에서의 내 역할.
말 그대로 리듬 기타 역에만 충실하면 된다.
맡은 바 소임이 딱히 크지 않기 때문에 지적할 것도 적을 뿐, 내 실력이 뛰어나 지적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게 맞는가 싶네.’
솔직히 결승 무대에서 연주곡을 선보인다는 것도 그렇고, 내 비중을 극단적으로 줄인 것도 그렇고, 이게 맞나 싶은 느낌이 든다.
‘일단 따르기는 하겠지만…….’
하지만 일단은 믿어 보기로 했으니 조용히 수긍한다.
‘피드백하는 걸 보면, 적어도 즉흥적으로 떠올린 생각은 아닐 거야.’
아마 전부터 우리 무대를 연구하며 생각한 계획일 터.
여러 무대를 즉석에서 보며 피드백을 하던 것을 보면, 한참 우리 무대를 분석했고 어떤 전략을 세우면 좋을지를 나름대로 구상해 봤을 것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프로듀서의 눈이 필요하다며 도움을 구한 것은 우리이니, 그의 말을 따르는 게 좋을 것이다.
지지징, 지지지징…….
“내가 주도적으로 뭔가를 안 하는 게 처음이라 그런가……. 묘하네.”
기타를 두드리며 생각하는데 다소 어색한 느낌이다.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일들을 내가 우선해서 계획하고 멤버들의 동의와 도움을 구해 처리해 왔기에, 처음으로 남의 손에서 일이 시작되어 큰 고민 없이 따르기만 하고 있자니 좀이 쑤신다.
적당히 리듬 맞추는 것에만 집중해 연습을 계속했다.
신경 쓸 것이 적으니 당연히 연습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어, 은근히 연주가 잘되는 기분이었다.
“루치 너…….”
“으엉?”
그때, 태호가 나를 보며 말했다.
“은근히 기타 좀 친다?”
“……응?”
갑자기 분위기 칭찬.
당황스러웠다.
“내가?”
“응. 전보다 훨씬 나은데? 기계적인 스트로킹에서 나름 리듬감이 나오는 연주로 바뀌었잖아. 많이 늘었네.”
“이응……. 연주에 소울이 담기기 시작했음.”
“어라? 그런가?”
“드, 듣고 보니까…….”
태호의 말에 이어 재우까지 조심스럽게 맞장구를 치니 당황스러움이 배가 되었다.
다른 녀석들도 생각지도 못했는데 듣고 보니 그렇다는 듯 내뱉는데, 본인들도 뭔가 이상한 느낌인 모양이다.
‘내가? 기타를?’
누군가 기타를 칠 줄 아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그렇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잘 치냐고 묻는다면 절대 그렇다고 할 수 없는 것이 내 실력.
보컬치고는 적당히 할 줄 아는 수준이지, 나는 내가 기타를 잘 다룬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실제로도 그렇고.’
그런데 내 기타 실력이 늘었다니.
연주에 소울이 담기기 시작했다니?
회귀 전부터 수십 년을 다뤄도 성장할 기미가 보이지 않던 그것이 늘었다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러면 더 쉬워지겠는데?”
그런 나를 보며 태호가 중얼거린다.
“쉬워져? 뭐가?”
“응. 리듬 기타에 할애할 시간을 줄여도 되니까.”
“오호.”
“그건 그렇군.”
별 기대 없었던 인원이 예상치 못하게 나름 선방을 해 주면 일이 쉽게 풀리는 법이다.
이번에는 내가 팀의 유일한 하수였으니, 내게 주어져야 했던 시간을 줄이고 팀을 위해 그것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찜찜하면서도 그럭저럭 좋은 해프닝이다.
“그러면 스케줄을 조금…….”
태호는 내 리듬을 애들에게 동기화시키는 과정을 아예 빼 버리고, 전체적인 사운드 조절 시간의 비율을 늘렸다.
“여기서 퍼스트에 살짝 못 미치게 볼륨 조절해 주고.”
자자장……. 자장……. 자자장…….
“됴흐디, 됴흐디, 그거디. 이제 수현이 리듬감에 맞춰서 좀 올려 보자. 우선…….”
태호의 연주 피드백은 의외로 훌륭했다.
‘본인이 연주를 잘 못하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듣고 고쳐 주는 건 수준급인데?’
배워서 체화시키는 과정이 오래 걸려 실력이 썩 좋지 않을 뿐, 이론에 상당히 빠삭하고 전방위로 넓은 지식 덕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려 주는 솜씨가 좋다.
‘하긴, 재능이란 게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으니까.’
재능 있는 사람이라면 하루에 익힐 것을 재능 없는 사람은 한 주, 한 달에 걸쳐 배워야만 한다.
그 성장 격차는 어마어마할 터.
언젠가 벽에 막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을 때까지는 영원히 뒤꽁무니만 보고 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태호는 재능 없는 연주자였다.
“루치, 조금 더 스트로크 간격을 타이트하게 가져가 보자. 아니, 정확히는 그냥 빠르게 내리꽂는다는 느낌으로.”
쟈앙!
“오오. 좋아, 좋아.”
하지만 반대로 프로듀서로는 두말할 것 없는 A급.
‘이게 되네.’
짧은 그의 말을 듣고 팔을 조금 강하게 후렸더니 확실히 소리가 좋아진 것이 느껴졌다.
‘아니, 진짜로?’
그냥 시키는 대로 빠르고 강하게 쳤을 뿐인데, 어화둥둥 잘한다며 칭찬 세례가 쏟아진다.
그저 기분 좋게 연습하라고 밀어주는 건가 싶지만, 그렇지도 않다.
‘이게 왜 되지? 피드백이 좋아서 그런가?’
실제로 소리가 좋아지는 것이 귀에 잡히니 부정할 수도 없다.
이건 비단 나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 역시 마찬가지다.
모두들 사소한 실수가 점차 줄어들고, 필요한 테크닉을 태호의 피드백에 따라 절도 있게 구사하게 된다.
유능한 프로듀서의 도움을 받아 전혀 계산에 없던 연주곡을 제대로 소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슬슬 체감되기 시작했다.
물론 내 기타 실력의 성장 역시 마찬가지로, 연습을 이어 나가며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 거기서 일부러 긁듯이 움직여서 잡음을 넣어 줘!”
끼익! 쟈쟝, 쟝쟈쟝, 자자장…….
“오케이! 좋다!”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
이거 일이 너무 잘 풀리고 있으니 되려 위화감이 든다.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까지 기타를 깔끔하게 칠 수 있다니.’
아무리 역할이 한정되어 튀지 않게 실수만 없으면 잘 소화할 수 있는 파트를 맡았다고는 해도, 원래 없던 연주 실력이 이렇게 살아날 수가 있나 싶었다.
그냥 실력이 늘었으니 좋다고만 생각해도 되지만, 그것도 썩 납득이 가는 이해는 아니다.
‘왜? 연습을 안 하는데 대체 어떻게?’
그동안 노래도 만들고, 보컬 연습도 하고, 음악 공부도 꽤 했지만 기타 연습에 시간을 많이 할애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집에선 연습도 못 하고, 기껏해야 다 같이 합주할 때 리듬만 맞춘 것뿐이었으니까.
아예 내 능력을 키우고자 투자한 시간이 없는데 어떻게 실력이 는다는 말인가?
전혀 짐작도 가지 않는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또한 실력에 대해 제대로 된 인지가 없는 상태에서 계속 연주를 이어 나가 봐야 혼란만 가중될 터.
아무래도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멈춤 없이 한번 쭉 가 볼까?”
“벌써? 괜찮겠어? 다 외웠어?”
틀린 부분을 찾아 고치고, 개선점을 찾기 위해 아직 실전 같은 합주는 안 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간중간 멈춰 가며 맥을 끊다 보면 어째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어째서 내가 기타 연주에 있어 무리 없이 제대로 된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실전처럼 쭉 이어서 연습을 한다고 해서 알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슬슬 분위기를 환기할 필요도 있고, 연습 방향을 조금 바꿔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응. 가 보자.”
“오케이. 얘들아! 톤 맞추고 실전 한번 가 보자! 너희 촬영하는 것처럼…….”
실전 무대와 같은 끊임없는 연주가 시작되었다.
“세팅 완료. 신호 주고 시작해.”
“라희 레디요!”
“오케이. 고.”
평소처럼 촬영과 녹음도 역시 준비되어 있다.
“간다!”
딱! 딱! 딱! 따악!
라희의 신호에 맞춰 연주가 시작되었다.
부우우웅……. 두둥!
베이스의 묵직한 시동을 타고 모두의 소리가 섞여든다.
자자장, 끼익! 쟈자자장!
나는 힘 있게 다른 멤버들의 연주에 맞춰 내 파트를 소화하며 생각했다.
‘요소는 꽤 많아. 무대 경험이 상당히 많이 쌓이기도 했고, 보컬 없이 가다 보니까 연주에만 집중할 수 있기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대충 감은 잡힌다.
내 연주가 갑자기 퀄리티를 칭찬받는 이유.
‘재우처럼 치고 있어……. 내가.’
누군가의 영향을 잔뜩 받은 테크닉.
주변에 있는 고수의 실력을 모방해 체화한 기술.
‘재능의 전염성? 그런 건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보다 더 뛰어난 연주자인 재우와 함께 연주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의 기술을 체득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