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82
81화
“우리 럭키데이.”
“오늘은 마지막 순서군요.”
무대 정비를 마치고 화면이 무대로 돌아왔다.
평소와 달리 바로 연주를 시작하지 않고 심사 위원들과 가볍게 대화를 나누었다.
결승전다운 긴장감을 조성하려는 장치.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부담스러운 면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질문을 기다렸다.
“오늘이 더 밴드 코리아 마지막 날입니다. 추가 촬영이 있겠지만, 경연은 오늘까지예요.”
“시간 참 빨라요.”
“우리 럭키데이는 긴장 안 되나요? 결승인데.”
황보문 심사 위원으로부터 당연한 질문이 날아온다.
“긴장은 당연히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완성도 높은 무대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으니까, 저희가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예정입니다.”
“좋군요.”
“아주 모범적인 답변입니다.”
나는 자연스럽게 예의를 갖추면서도 패기 있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대화에서 나오는 말 하나하나가 팬들에게 비치는 콘셉트의 기반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준비한 곡이 오늘 보니까, 보컬 없는 연주곡을 가져왔어요.”
“새로운 느낌이거든요?”
“네. 저희가 운이 좋게도 결승까지 올라올 수 있었는데, 저희의 독창적인 면에 대해서 고민을 좀…….”
침착하게 질의응답을 이어 나갔다.
긴장은 안 되는지, 준비한 곡은 무엇인지 등.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하나하나 신경 쓰며 이미지를 지키는 동시에 다음 무대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감을 올린다.
진행의 구조 자체가 그렇게 되어, 내가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좋아졌다.
“좋습니다. 그러면 마지막 무대, 럭키데이의 돈키호테 들어 보겠습니다.”
질문 답변이 전부 깔끔하게 종료되고 드디어 시간이 되었다.
“다 됐지?”
“이응.”
모두를 둘러보며 준비가 끝났는지 확인한다.
평소에는 서서 연주를 했는데, 다들 의자에 앉아 있으니 또 묘한 기분이다.
“편하네, 이거. 나 사무실 체질인가 봐.”
몸이 편해서 그런지 긴장감까지 싹 가라앉는 느낌이다.
다음 공연을 할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앉아서 무대를 꾸며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신나게 뛰어노는 곡이 있으면 안 되겠지만 말이다.
“가자.”
신호를 주고받으며 천천히 곡의 스타트를 끊었다.
둥둥, 착! 둥둥, 차작!
베이스로 묵직한 소리를 주며 힘차게 시작되는 서막.
하나, 둘, 셋, 넷을 세며 딱딱 끊어지는 박자가 딱 두 마디 진행되고, 모두가 동시에 선율에 달라붙는다.
두둥, 둥, 두둥! 두두두둥, 두우웅! 두둥, 둥, 둥, 둥, 둥…….
달리듯 당당하게 시작해 박자를 빠르게 쪼갠다.
테마는 초원을 향해 달리는 노기사 돈키호테.
‘땃, 따닷, 땃땃땃, 따닷. 땃, 따닷, 땃땃땃, 따닷…….’
리듬 기타인 내게 과한 기교 따위는 필요 없다.
오직 정확하게 노트를 찍는다는 생각으로 박자를 맞춘다.
그러면 알아서 해 줄 것이다.
지이잉, 지지지징! 디리리리링, 디링, 디리리링!
우리의 천재 기타리스트가 말이다.
“호오…….”
“속주가 엄청 깨끗하네.”
“그때처럼 있잖아, 그 밴드 위크 때도 잘했잖아.”
재우의 광기 어린 속주가 찬사를 이끌어 낸다.
하지만 감탄 포인트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두웅, 두둥, 차자작! 두둥! 착! 두두두두둥!
“오, 베이스.”
“이야……. 곡 전개가 정신이 없네.”
기타 속주의 꽁무니를 쫓아 들어오는 베이스의 슬랩 속주.
나와 라희가 깔아 놓는 판 위에서 기타와 베이스가 서로 뒤엉키기 시작한다.
태호의 말을 빌리자면, 초반부터 전속력으로 달려 모두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것.
꿈을 좇는 자는 돌아볼 시간도 없이 바쁘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정신없이 달리는 멜로디가 귀를 어지럽혔다.
‘다음, 확 꺾으면서……. 하나, 둘, 셋, 넷!’
지이이잉!
시동을 걸듯 슬라이드를 넣으며 줄을 쭉 당겨 소리를 냈다.
곡은 초반부를 넘어 중반부에 진입하며 조금 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두두두둥!
내 신호에 맞춰 따라 들어오는 강력한 킥.
두둥, 둥둥! 채애앵! 두둥, 둥둥!
연주의 메인 향이 기타와 베이스에서 드럼으로 옮겨 간다.
큰 힘을 내세우며 달려가는 기사의 말처럼, 육중하게 찍어 내는 파워 드럼이 심장을 뛰게 만든다.
지잉, 지지지징, 징, 지지징!
물론 기타와 베이스도 뒤처지거나 존재감을 잃지는 않는다.
곧바로 힘 있게 따라붙으며 속도를 붙이는 둘이다.
묵직하게 가열, 고무되는 분위기.
후반의 클라이맥스로 향해 가는 길이 쭉 펼쳐진다.
‘편하게 가자, 편하게.’
동료들과 합을 맞추기 위해 집중해서 신경을 기울이고 있지만, 힘이 크게 들지 않는다.
어디서 뭐가 나올지, 어떻게 해야 일치된 박자가 만들어지는지 저절로 머리에 떠오르고, 손이 곧장 움직여 완벽한 연주를 만들어 낸다.
곡은 자연스럽게 중후반의 좌절 파트로 넘어갔다.
지이잉, 디잉, 디이잉……. 다라라란…….
달리던 기세가 확 꺾이며 템포가 느려진다.
“우, 우우우……. 후우우…….”
코드는 마이너로 전환되어 분위기가 다운되고, 가성으로 엷게 깔리는 코러스가 더더욱 우울하다.
웅성대던 관객들 역시 소리가 흐르는 것을 조용히 감상한다.
디리링, 디이잉! 딩, 디이잉…….
무적의 기사를 자칭하던 돈키호테의 꿈이 꺾인 순간이다.
희망찬 미래를 보며 달리던 광기가 사라진 후 죽음만을 기다리듯, 꿈이 꺾여 허망하게 누운 노인을 표현하는 파트.
길게 꺾이며 흔들리는 기타의 비브라토가 야속하게 느껴진다.
‘하나, 둘, 셋, 둘, 둘, 둘, 셋, 둘…….’
조금이라도 몰입하면 나까지 우울한 분위기에 먹혀 템포가 느려질 수 있는 잘 설계된 구조.
다른 곳에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박자에만 집중한다.
그렇게 해도 모두가 딱 맞게 연주를 펼칠 것을 알고 있었으니, 크게 두려울 것은 없었다.
그리고 한순간.
지이이이잉!
끝음을 길게 끌며 동시에 손을 멈추는 나와 재우, 수현.
그 뒤에 강렬한 북소리가 무대를 혼자 채우기 시작했다.
두둥! 채재재쟁! 둥! 두두둥! 둥! 두두둥!
속주는 기타와 베이스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듯, 강하고 빠르게 두드리는 드럼 솔로.
칼 같은 박자와 정신없이 꽂히는 킥과 스네어가 듣는 이의 혼을 쏙 빼놓는다.
두두두두두두두! 채애앵! 타당! 탕! 두두두두두!
“와…….”
점점 빨라지는 템포, 더더욱 잘게 쪼개지는 박자.
채애애앵!
“와아아아!”
우리가 스스로 무너뜨려 암울하게 바꾸어 놨던 정열적인 분위기가 다시 타오른다.
이에 맞춰 드럼 외의 셋도 천천히 음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디이잉……. 지징……. 지지징…….
아주 작은 소리로 시작해서 페이드인 효과를 넣듯 서서히 소리가 커진다.
템포도 자연스럽게 빨라지고, 초반과 같은 힘찬 선율이 이어진다.
‘맞는다, 맞는다……. 맞았다.’
꿈을 좇다 꺾였음에도 다시 일어나 달려 나가는 인간이 우리의 손끝에서 묘사된다.
‘원래는 없는 내용이지만.’
곡의 모티브가 된 돈 키호테라는 소설은 돈 키호테가 깨져 버린 꿈을 뒤로하고 씁쓸하게 눈을 감는 결말을 그린다.
꿈도 희망도 없이.
하지만 그것은 너무 슬프지 않은가?
이 곡의 작곡가도, 연주하는 우리도 그런 결말은 원치 않았다.
부우웅!
기타 줄을 거칠게 후려치고, 지저분하지만 정열적인 소리를 연출하는 것에 온 힘을 기울였다.
나와 재우, 수현이의 톤이 어우러지고, 라희가 만들어 내는 기반 위에서 자연스럽게 합이 맞는다.
관객들의 눈이 확 뜨이며 연주에 감탄하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의 연주에 감탄하는 모습이 설레고 기뻐 연주에 더욱 힘이 붙었다.
그 순간 눈앞에 푸른빛이 일렁인다.
‘아…….’
마음껏 달려도 끝이 나지 않을 것처럼 시원하게 뚫린 광활한 들판이 보이고, 불어오는 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 찾아온 꿈.
죽어 가는 와중에도 잊을 수 없는 그런 꿈을 그려 낸다.
무대 전체가 우리가 만들어 내는 그 꿈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빛이다…….’
환하게 플래시 라이트를 켜고 박자에 맞춰 손을 흔들고 있는 관객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결승까지 달려오느라 고생했다며 위로하는 듯, 혹은 꿈을 손에 쥐려는 우리의 모습을 응원하는 듯,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다.
지이잉!
그에 화답하듯 열과 성을 다해 연주에 집중했다.
“아아, 아아아! 아아아, 아아아…….”
부드러운 가성으로 넣는 코러스가 노래에 어우러지고, 달리는 말이 허공으로 뛰어오르듯 드럼이 폭발하는 소리가 무대에 가득 찬다.
나와 동료들이 만들어 내는 음악이 그토록 넓게만 보였던 무대를 좁다는 듯 뒤덮고 관객석 끝까지 뻗어 나간다.
튕기고 뜯고 긁는 소리가 엉키고 부딪히고 섞여 댄다.
고조된 분위기를 타고 클라이맥스를 넘어 천천히, 조심스럽게 소리가 줄어든다.
두우우웅! 다라라라란…….
그리고 곧 부드럽게 흘리는 하모니와 함께 연주가 종료되었다.
“후우우…….”
등짝이 축축한 것이 땀이 줄줄 흐른 것 같다.
폐부 깊숙한 곳까지 열기가 가득 찼으니 당연하긴 하지만.
‘중반까지는 멀쩡했는데.’
그냥 편하게 연주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보니 곡에 깊게 몰입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내가 어떻게 연주를 했는지는 다 생생하게 기억이 나고, 곡 중간중간 들었던 감정들까지 죄다 느껴져서 또 신기한 느낌이다.
“와아아아아아아!”
“럭키데이 최고!”
한 박자 늦은 환호성이 이미 사라진 연주의 뒤를 따른다.
쏟아지는 함성 덕에 곡이 끝난 여운이 깊게 느껴진다.
충분히 만족스러웠던 무대였고, 관객들의 반응 역시 훌륭해 그 보람이 컸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 성장했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 기뻤다.
“끝이다.”
“휴우…….”
“와…….”
연습 합주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온몸에서 힘이 쭉 빠지는 느낌.
모든 것을 하얗게 불태운 그 쾌감과 무력감이 동시에 몸을 덮는다.
“네, 마지막 무대! 럭키데이의 돈키호테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깊게 되새길 시간도 없이, 사회자의 진행이 이어졌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일정은 심사평뿐.
‘이것만 마치면 쉴 수 있겠어.’
곧 심사 위원들의 심사평이 시작되었다.
“잘 들었습니다. 럭키데이는 결승까지의 여정을 지속하면서 그야말로 밴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 주네요.”
“감사합니다.”
적당한 칭찬으로 시작된 심사평은 이내 분석과 최상의 칭찬으로 이어졌다.
“우선 파트 분배입니다. 루치 씨의 보컬 파트를 아예 삭제하고 리듬 기타에만 집중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역할을 잊지 않고…….”
“중간중간 비는 부분을 완전히 메우는 코러스가…….”
“네 명이서 만들 수 있는 소리로는 더할 나위 없는 최고였습니다.”
국내 최고의 연주자들에게 어화둥둥 칭찬을 받는 것은 몇 번이나 반복되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다.
더 이상 아마추어 학생 밴드가 아닌, 인정받는 연주자가 된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심사 위원들의 평가는 아주 좋았다.
‘됐어.’
우리가 충분히 좋은 무대를 만들어 낸 듯했다.
‘관객들 반응도 좋았고.’
남은 것은 심사 위원 점수와 관객 평가의 합산.
충분히 승리를 노릴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