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83
82화
“잘했어.”
“고생 많았어.”
“고생.”
객관적으로 봐도 굉장히 좋은 무대였고, 평가 역시 좋았다.
칭찬을 잔뜩 받으니 자기만족도 역시 높았다.
‘해냈다.’
무엇보다도 한 밴드 ‘럭키데이’로서 관객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우리들을 보여 줄 수 있었으니, 태호가 몇 번이고 지적했던 ‘김루치와 아이들’스러운 모습을 탈피하는 것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큰 기쁨을 느꼈다.
“엉, 너희도.”
무대 뒤로 돌아가며 멤버들과 서로 수고했다고 새삼 인사를 나눴다.
그런 우리에게 스태프들이 다가와 인이어 같은 장비들을 받아 가며 말했다.
“고생했어요, 럭키데이!”
“고생 많았어요! 좋은 결과 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격려와 축하가 겹겹이 쌓였다.
특히 김산하 작가가 가까이 다가오며 우리에게 밝은 미소를 선사했다.
“고생했어요, 정말 고생했어요.”
두 눈에서 꿀에서 뚝뚝 떨어뜨리며 함박웃음을 지은 것이 우리의 섭외로 꽤 이득을 얻은 듯, 우리에게 무한한 호의를 보이는 김 작가였다.
“감사합니다.”
“더 밴드 코리아 끝나면 저도 메인 달고 넘어갈 것 같아요. 허허. 이게 다 럭키데이가 출연해 준 덕입니다.”
“아이고, 작가님께서 잘하신 거죠.”
본선 진출 때부터 우리에게 매번 감사하다며 립 서비스를 하기는 했지만, 우리의 출연 덕에 자신이 어떤 이득을 얻었는지 말을 하니 그건 또 다른 기분이다.
‘인맥 제대로 쌓았네.’
이제 곧 메인 작가 타이틀을 달고 자기 프로그램을 만들게 된다는데, 역시 더 밴드 코리아 출연 이후 최대의 수확 중 하나는 김산하 작가와의 친분이 아닐까 싶었다.
“나중에 도움 필요한 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저랑 이것저것 프로그램도 같이하고. 아시죠?”
“하하. 네.”
우리는 잠시 복도에 선 채 의례적인 덕담보다 나아가서, 조금 더 깊은 친분을 다졌다.
김산하 작가가 차후 상호 간에 도움을 나누고 싶어 하는 모양에 기꺼운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인맥 타고 올라가서 음악 프로그램에 자리 하나 거저 얻게 될지도.
“아차. 제가 너무 오래 붙잡았군요. 잠깐 대기하다가 발표 기다릴 텐데, 열기 좀 식히면서 기다려도 될 거예요. 축하 무대와 방송 분량이 조금 남았거든요.”
“네. 고생하세요.”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대기실로 돌아왔다.
“어서 왔다.”
“어서 오고.”
태호 녀석이 무심한 듯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한 손을 까딱이는데,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것이 너무 잘 보였다.
“미친놈아, 관심 없는 척을 할 거면 웃음이나 좀 참든가.”
“아, 보이냐? 하하하!”
“그럼 보이지, 안 보이냐? 이렇게 가까운데.”
“잘했다. 대박이었어.”
놈은 곧 모른 척 돌렸던 시선을 다시 우리에게 향하며 칭찬을 건넸다.
“보통은 연습 때 100 정도 한다고 치면 실전에서는 80 정도 뽑는 게 정상인데, 너희는 어떻게 된 게 실전에서 더 잘하는 것 같다?”
“숫자로 치면?”
“120 정도?”
“푸흐흐흐. 그만큼 열심히 해서 손에 완전히 익혔다는 뜻이지.”
“그런가?”
태호는 연습 때보다 무대 공연에서 더 퀄리티 좋은 연주를 보여 준 우리가 이해되지 않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뭐, 짐작이 안 가는 것도 아니지.’
연습을 열심히 하기도 했고, 애들의 재능이 뛰어난 것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애들이 무대에 서서 공연하는 걸 너무나 좋아한다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라고 했다.”
“뭔데.”
“모르면 검색해라.”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했다.
무대를 즐기는 우리는 언제든 100퍼센트의 힘을 발휘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즐기는 자 모드, 온!”
“뭐라는 거야 또……. 정신 차려…….”
우리는 대기실에서 잠시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죽였다.
“어? 축하 공연으로 잉그램 나오네?”
“이응. 몰랐음?”
“어. 게스트 대박이네.”
우리를 마지막으로 본선 경연은 다 끝이 났고, 초청 가수들의 축하 공연과 촬영 비하인드 스토리, 인터뷰 등이 송출되었다.
“여기저기로! 꿈틀대는! 살찐 뱀의 입에!”
잉그램 보컬 장현우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짱짱하게 채운다.
“와…….”
“박력 장난 아니다.”
고음역 진행에도 타이트하고 날카로운 음색을 잃지 않는 탄탄한 발성.
그야말로 파워 보컬의 정수가 담긴 무대에 우리는 넋을 놓고 화면을 바라봤다.
“어, 언젠가 우리도 오디션 참가자가 아니라 초청 가수로 무대에 설 수 있겠지?”
입을 헤 벌리고 멍하니 지켜보던 수현이가 조용히 중얼거리는 것이 들렸다.
재우가 눈을 감은 채 박자에 맞춰 고개를 까딱거리고 손가락을 두드리며 조용히 대답했다.
“이응.”
참 사람이라는 것이 같은 장면을 보면서도 떠올리는 건 다르다는 게 확 느껴졌다.
나는 기술적인 분석을 하고 있고, 재우는 음악 자체를 즐기고 있으며, 수현이는 멋진 밴드들의 모습에 미래의 자신을 투영하고, 라희는…….
“커어어어……. 커르릉…….”
자고 있다.
피곤했는지 코까지 골면서.
“깨워야 되나?”
“내버려 둬. 아직 시간 좀 남았으니까.”
나는 깨울까 하는 태호에게 그냥 내버려 두라고 손을 내저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밴드의 편곡이 드러머를 꽤나 혹사시키는 편이었으니, 피곤할 만도 했다.
‘이것도 돼? 이것도 돼? 하다가 아주 팔 네 개 달린 괴물이나 칠 수 있는 곡을 만들어 버렸지…….’
태생이 장군감에 워낙 튼튼한 친구여서 고난도의 난타를 연달아 연주해도 무리가 없었지만, 사람의 체력이라는 것이 무한하지는 않은지라 피로가 잔뜩 쌓인 듯했다.
어차피 결과 발표까지는 시간이 꽤 남아 있으니 잠시 눈을 좀 붙이며 쉬어도 괜찮을 것이었다.
축하 공연이 끝나고.
“어? 비비플라이다.”
“하노시스도 있음.”
“아. 탈락자 인터뷰 같은 건가?”
잠시 화면을 계속 지켜보자 지난 경연에서 탈락했던 밴드들의 인터뷰 영상이 흘러나왔다.
반가운 얼굴들이다.
자기소개 시간이 잠깐 있었다가 일곱 팀의 밴드에게 사회자의 질문이 쏟아졌다.
“이번 결승전! 우승자는 어떤 팀이 될 것 같으신가요?”
의견이 상당히 갈리는 화두였다.
“저희는 펩카콜라가 아무래도…….”
“리즈홀의 성장세가 무서웠기 때문에 리즈홀의 우승을 조심스럽게…….”
“펩카콜라의 화끈한 무대가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라 생각…….”
취향에 따라 갈리는 부분이 있었지만 결국 결과는 한군데로 모였다.
“럭키데이죠.”
“아무래도 우승 후보를 꼽으라면 럭키데이가…….”
“럭키데이.”
“럭키데이 애들이 잘하더라고요. 걔네는 어쩜 그렇게 잘해?”
펩카콜라 두 표, 리즈홀 한 표, 그리고 우리 럭키데이가 세 표를 받았다.
“크……. 아저씨들…….”
“평가 좋네.”
함께 경쟁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큰 인정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절로 어깨가 들썩였다.
“저분들은 아직 무대 안 본 상태지?”
“응? 응. 사전 촬영이지.”
“무대 다 봤으면 일곱 표 전부 너희가 받았을걸?”
옆에서 지켜보던 태호가 무심한 듯 칭찬을 툭 뱉는다.
고맙고도 과분한 평가다.
“허허허. 그랬으면 좋겠네.”
체감하기로는 5분 정도나 되었을까 싶었지만, 시간은 금방 지나가 벌써 끝자락이 다가왔다.
“참가자분들 올라가겠습니다!”
“넵!”
스태프 한 명이 대기실을 돌며 참가자들을 부른다고 돌아다녔다.
더 밴드 코리아, 최종 결과 발표 시간이 찾아왔다.
“라희 깨워라.”
“이응. 님, 님. 가야 됨.”
“흐억? 뭐야? 끝났어?”
“이제 결과 발표.”
늘어져 있던 라희가 후다닥 일어나 거울을 확인하고는 뻗친 머리를 정리했다.
“음. 스르릅, 스릅! 침은 안 흘렸군!”
“자랑이다.”
당당하게 헛소리를 하는 것을 보니 푹 쉬고 정신을 좀 차린 모양이었다.
“가자, 상 받으러!”
“벌써 확정인 것처럼…….”
제일 늦게 일어난 주제에 우리를 이끌고 앞장서는 라희.
나는 그저 피식 웃으며 그녀를 뒤따랐다.
“순서대로 가실게요! 잠깐 대기해 주세요!”
무대 뒤.
펩카콜라와 리즈홀 아저씨들이 먼저 와서 우리를 반긴다.
“고생했어.”
“이제 진짜 끝이네요.”
이제 공연도 다 끝났고 발표만 남았으니 신경전 같은 건 없다.
“후……. 열심히 하기는 했는데……. 떨리네.”
“그러게요. 루치가 저렇게 멀쩡하게 서 있어서 형이 돼 가지고 떠는 게 쪽팔리긴 한데……. 이게 사람이 참 그래.”
“뭐 어때요? 좀 떨 수도 있지.”
눈앞까지 다가온 결과 앞에서 모두 같은 심정이었기에 오히려 서로의 마음이 훤히 읽히는 느낌이었다.
서로 공감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자 투표에 현장 관객 투표…….”
“청자들 손가락질 한 번에 우리 미래가 달렸군.”
“어……. 생각해 보면 다 그렇죠, 뭐. 앨범을 내든 무대를 서든 귀중한 고객님들이고.”
“아, 그런가?”
지난 몇 달 달려온 긴 시간이 지금 마무리된다.
누군가의 평가로, 지금껏 해 온 모든 일들의 가치가 결정된다.
‘조금 무서운가?’
내가 잘 해 왔을까? 내 노력이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 비쳤을까?
다른 의미로 두려움이 이는 것도 당연했다.
“펩카콜라 올라가실게요!”
“먼저 간다.”
공연을 진행했던 순서대로 무대에 복귀하기로 되어 있다.
당연히 첫 타자는 펩카콜라.
“와아아아!”
상하의 가죽 세트로 단단히 무장한 아저씨들이 무대로 오르니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끝내주네.”
“공연 때 반응 그대론데?”
“엄청 떨리네요, 이거.”
아직 공연 당시의 열기가 식지 않은 듯 열광적인 반응에 땀이 났다.
해결할 수 없는 긴장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 결과는 어차피 내 손을 떠난 건데……. 떨리네.’
공연은 성공적으로 마쳤고, 이제 지켜본 사람들의 평가만이 남은 상황이다.
사실 투표나 집계 역시 다 끝났으니 결과는 정해진 셈.
그래도 묘하게 피어오르는 긴장감을 어쩔 수 없었다.
툭.
그때.
“풀릴 방향으로 풀리겠지. 너무 긴장하지 마라.”
상혁 형이 내게 말을 건넸다.
“아…….”
“1등을 하든, 2등을 하든……. 상금 받고, 앨범 내고, 공연 다니면 그만이잖아. 응?”
가볍게 웃는 그 모습에 마음이 한결 편해짐을 느꼈다.
자연스럽게 내 입꼬리도 위로 올라갔다.
피식.
“그렇네요.”
“리즈홀 올라가실게요!”
“우리도 간다.”
“이따 봬요.”
리즈홀도 무대로 올라가고, 무대 뒤에는 우리만 남게 되었다.
“이제 진짜 끝이네.”
“우리의 최종 우승으로 말이지!”
“자신감 뭐임.”
“그럼 우리가 우승이 아니라는 말?”
“당연히 우승이지.”
떨리던 가슴도 진정되었고, 당당하게 우승은 우리 차지일 것이라며 농담도 나눌 수 있었다.
천천히, 자연스럽게 결과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기 시작했다.
“럭키데이!”
곧 스태프의 부름이 귓가에 들렸다.
“올라가실게요!”
“가자.”
멤버들과 눈빛을 교환하고 무대 위로 향했다.
그리고 마주할 수 있었다.
“우리의 세 번째 우승 후보! 럭키데이 올라옵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럭키데이! 럭키데이!”
“멋지다아아아!”
가득 찬 관객석에서 몰려오는 환호와 격려.
너희는 받을 자격이 있다는 듯 강당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올리는 그 소리에 저절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꾸벅.
허리 숙여 인사하며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진짜 우승할 수도.’
승리가 목전에 있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