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85
84화
사무실이 번잡스럽다.
오늘은 JH 뮤직과의 계약 면담 날.
그리 좁지 않은 공간임에도 꽤나 붐비는 느낌이다.
계약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도장을 찍기 위해 온 이 자리가 이토록 붐비는 이유?
“반갑습니다. 김우성입니다. 루치아노 아비 됩니다.”
“TV로만 뵈었는데 실제 목소리는 훨씬 좋으시군요. 여기 라희 아빠 되는 지성훈이라고 합니다.”
미성년자 계약이라 보호자 동의를 위해 법정 대리인으로 따라온 보호자들 때문이었다.
“허허허. 복작복작해서 좋네요.”
평소에는 느낄 수 없는 신선한 분위기라며 김주헌 대표가 허허 웃었다.
아무튼 우리는 더 밴드 코리아가 끝난 즉시 다른 일정을 잡거나 지금까지의 여정을 정리할 시간도 없이, 계약을 위해 움직여야 했다.
“자, 계약서를 우선 살펴보겠습니다.”
각자 소개를 위해 인사를 나누고, 큰 탁상에 둘러앉아 계약서 검토를 시작했다.
사실 현장에 도착하기 전부터 우리는 어지간하면 JH와 계약을 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마쳤다.
우선 밴드의 결성에 지대한 역할을 하신 권 선생님의 추천이 첫 번째 이유였고, 혹사나 강압, 여타 안 좋은 기획사의 전형 같은 이야기는 전혀 찾을 수 없다는 점이 두 번째 이유였다.
“그날 스카우트를 위해 공연에 갔을 때는 신인 중 최고의 대우를 해 드리겠다고 내심 생각하고 제안을 드렸는데, 얼마 지나지도 않은 지금은 겨우 신인 대우로는 모실 수도 없게 됐어요. 하하.”
김 대표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우리의 가치가 더 커졌음을 미리 언급하고 계약에 관한 설명에 돌입했다.
일반적으로 기대받는 신인들이 받는 평균적인 계약서와 우리에게 제시될 계약서의 비교. 정산 비율과 비율 산정 이유. 계약금과 계약 기간 등.
당연히 진행비, 제작비, 홍보비 등의 공제는 없고, 작품 활동에 관한 지원 역시 명시되어 있었다.
‘더 밴드 코리아가 도움이 참 크게 되네.’
우리 경력에 우승이라는 큼직한 한 줄이 생기니 아예 시작부터 대우가 다르게 되었다.
정산 비율도 아주 좋았고, 덕지덕지 붙은 계약 조건 역시 마음에 들었다.
사실 더 밴드 코리아 출연 이전에 계약을 하고 촬영에 들어갔다면 편집이나 분량에 대한 조마조마함 없이 방송에 임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경력 없이 계약을 하러 들어왔다면 지금처럼 훌륭한 조건은 받아 내지 못했을 터.
리스크를 짊어진 만큼 큰 리턴으로 돌아왔으니, 결론만 따지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물론 그런 내 생각과는 관계없이 부모님들의 점검이 이어졌다.
전문성 있는 어른의 시선이란 마냥 좋게만 바라보는 나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비율, 기간……. 여기는 보장 관련 항목…….”
나의 아버지 김우성 테너님께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계약서를 살핀다.
아버지는 평소부터 자신의 가치는 아티스트 본인이 가장 잘 알아야 한다며 계산에 밝은 모습을 보이셨다.
그런 성향대로 그는 나름 지표를 가져와 김 대표와 협상에 임했다.
“오디션 프로그램 시청률 지표가 꽤 괜찮았던 걸로 아는데, 아이들에게 조금 더 유리해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이미 우승 경력과 너튜브 활동 등을 통한 인지도 등을 고려한 계약 사항이긴 합니다만…….”
“여기 보시면 인터넷 반응도 호의적이고…….”
아버지는 직접 인쇄해 온 종이를 김주헌 대표에게 내밀었다.
파파로티 : 야 근데 얘네 아직 인디던데 소속사는 어디로 감?
ㄴ 재우스엑스마키나 : 대형 기획사들 몸 엄청 달았을 것 같은데 ㅋㅋ 재우좌 애초에 너튜브 연주자들 사이에서도 유명했어서 몸값 좀 될듯?
ㄴ 핑핑핑 : 중요한 건 럭키데이 아직 미성년이라 부모님 허락 받아야 된다는 거 ㅋㅋㅋㅋㅋ
ㄴ 않이외요 : ??? 루치좌 저 덩치 저 얼굴로 미성년이라고?
ㄴ 핑핑핑 : ㅇㅇ 넷 다 고1임. 루치랑 라희는 성인 같은데 다른 둘 보면 알잖음 ㅋㅋㅋ
ㄴ 파파로티 : 세월이 오면 좀 피하고 그러지 왜 혼자 다 맞았냐…….
조금 애매한 내용들이긴 했지만 목적을 드러내기엔 충분했다.
실질적이고 명확한 지표인 오디션 프로그램 시청률에 더해, 다소 모호한 지표인 인터넷 댓글 예시를 통해 우리의 가치를 고평가하는 것.
‘하필 가져오셔도 저런 글을…….’
다만 내용이 너무 인터넷 문화의 향취가 강해서 어떻게 먹힐지는 미지수로 보였다.
“확실히 그렇기는 합니다.”
아니, 먹혔다.
“럭키데이라는 밴드가 가진 상품성을 일반적인 신인의 수준에서 볼 수는 없게 되었죠. 이미 프로 수준의 인지도가 생겼고, 영향력도 충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주헌 대표는 우리의 가치를 입 밖으로 내뱉어 인정했다.
물론 뒤에 자신이 판단한 우리의 가치를 설명하기 위한 추가 발언이 따라붙겠지만, 어찌 됐건 아버지의 의견에 동의하는 말이 나온 것이다.
그 말인즉슨.
“그러면 신인 계약이 아니라 기성 가수들 중 비슷한 경력을 가진 아티스트들의 사례를 보면서 초안을 다듬어 보는 게 좋겠군요.”
“예? 아니…….”
사실 비약이 심한 발언이다.
신인 수준이 아니라고는 해도 우리가 신인이지, 기성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우리 아버지가 너무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잠시 후, 이어진 제안이 이것을 현실로 만들었다.
“장비 지원 같은 건 저희 우영 쪽에서 스폰서 개념으로 맡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애들 계약서에 끼울 게 아니라 회사 대 회사로 다른 계약서를 꾸미는 쪽이 좋겠지요?”
“아, 하하하……. 그건 우선 아이들 계약부터 마무리 지은 뒤에 천천히 논의를 해 보시면…….”
“아니, 계약이야 따로 하겠지만, 두 일이 완전히 떨어진 일은 아니지요. 없는 말이 아니고, 우리 아들이 JH에 들어간다니 지원금을 넣는 모양새가 되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국내 굴지의 악기 제조사 우영 뮤직의 형지훈 사장님.
우리의 기타리스트 형재우 군의 부친 되시겠다.
“너희 아버지 너무 돈으로 밀어 버리시는 거 아니야?”
“냅두셈. 본인이 좋아하시면 됐음.”
라희가 소곤소곤 떠들고, 재우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평소에도 자주 저런 모습을 보여 주시는 건가 싶었다.
“돈 많으신가 봐.”
“아냐. 사실 우영 쪽은 재우 밀어주는 김에 광고비 썼다고 치면 돼.”
효과는 그렇게 크지 않겠지만, JH 정도 되는 기획사라면 스폰서십이 그렇게 큰 손해도 아닐 것이었다.
‘오히려 몇 년 지나면 광고 효과 제대로 뽑아 먹을 수 있지.’
다만 미래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우영 쪽이 남는 장사다.
지금도 JH 소속으로 활동 중인 뷰마스터와 유레나를 필두로 젊은 가수들의 포텐이 터지기 시작할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야말로 한국 음악 시장을 한 손에 쥐고 흔들 인재풀이 구성될 테니, 그때가 되면 되려 우영 뮤직이 아쉬운 소리를 하게 될 수도 있다.
누가 어떤 장비를 사용하느냐는 몰입력 좋은 리스너들에게 있어서는 꺼내기 딱 좋은 화두일 테니, 우영 역시 광고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을 터.
‘단, 그때가 되면 후광 효과도 없어진다는 뜻이니까 우리도 발맞춰서 성장해야 해.’
물론 그렇게 되기 전에 우리 역시 JH의 일각을 제대로 구성해 쉽게 끊어 낼 수 없는 부품이 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논의가 그렇게 돌아가면 계약서에 고칠 점이 많겠군요. 여기 장비 지원, 제작 지원 관련 사항 같은 경우, 스폰서십이 있으면 관련 비용도 없다는 뜻인데…….”
라희 아버지는 계약서를 다시 살피며 조항들을 살피는 한편 은근슬쩍 압박을 넣었다.
사실상 스폰서십 체결을 확정 짓도록 강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티키타카 끝내주네.’
우리의 가치를 올려치고, 상대가 가져온 제안을 반으로 쪼개고, 새로운 틀을 형성하는.
사회적 영향력이 큰 어른 셋이 만들어 내는 기묘한 협상이었다.
“원래 신인 계약이라는 게 이런 느낌이야?”
“안 해 봐서 모름.”
“나도.”
“그냥 지켜나 보자. 괜히 머리 굴릴 필요 없이 알아서 길 깔아 주시는데, 뭐.”
우리는 가만히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되는 상황.
적당히 앉아서 조용히 계약서가 실시간으로 수정되는 것을 구경하며 앉아 있었다.
“사탕 줄까?”
“아, 엄마…….”
“배 안 고프니?”
“안 먹어도 돼요……. 가만히 좀…….”
수현이 어머니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사탕을 건네셨고, 그것을 감사히 받았다.
“오, 누룽지 맛. 저 이거 좋아해요. 감사합니다.”
“착해라. 우리 수현이 잘 챙겨 줘서 고맙다.”
“같은 밴드 멤버인데요.”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곧 계약서 정리가 마무리에 들어가는 듯했다.
“장비 지원 스폰서 같은 건 우영 쪽이랑 따로 계약서를 꾸미는 쪽으로 하고……. 애들 계약서는 이쯤에서 마무리 지으면 되겠지요?”
“아, 하하하……. 네. 스폰서십은 천천히 시간을 두고 논의해 보시지요.”
“일단 그럽시다. 얘들아, 너희도 계약서 한 번씩은 훑어봐야지?”
“앗, 네.”
우리는 라희 아버지의 부름을 받아 공기가 매우 무거운 협상 테이블로 다가갔다.
‘전속 계약 기간은 7년에서 3년으로 줄었고…….’
우선 전속 계약 기간이 대폭 줄어들었고, JH를 우선 계약 대상으로 고려한다는 추상적인 문장이 추가되었다.
거기에 너튜브 채널을 통한 소통과 홍보 활동의 자유, 그리고 해당 활동으로 얻는 수익이 전부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이 명시되었다.
“연습실, 작업실, 장비 지원은 저희가 알아서 해 줄 수 있을 테니 인력 지원이 가장…….”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창작자들에게 필요한 노동력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지요.”
또한 계약금 역시 전의 두 배까지 올랐으며, 장비 지원, 제작 지원 같은 물질적인 지원 항목은 전부 삭제되었다.
대신 회사에서 제공하는 스폰서십의 공유와 아티스트의 창작에 대한 자율 관련 항목이 추가되었다.
소속사 쪽에서 돈을 들이지 않는 대신, 부모님들의 자율적인 지원으로 물질적인 부족 따위는 애초에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스케일이 무슨…….’
덕분에 애초부터 우리에게 유리하게 잘되어 있던 계약서는 사상 초유의 가수 우대 계약서가 되어 있었다.
너튜브 채널 수익은 회사와 분배하지 않는다거나, 앨범 제작에 있어 외압이 없어야 한다는 명확한 조항 삽입 등.
사실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세상 어떤 대중문화예술 계약서가 이런 식으로 꾸려진다는 말인가?
하지만.
“아, 그렇지. 혹시 회사 사무실이 조금 좁으면 지금 공실이 있는 곳이 있는데 혹시 필요하시면 제가…….”
“엄마…….”
“아뇨, 아뇨. 지금도 충분히 괜찮습니다.”
이분들은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가능케 만들었다.
‘오오, 갓물주. 오오…….’
심지어 수현이 어머니는 회사를 더 넓은 곳으로 옮겨 주겠다는 제안까지 김주헌 대표에게 건넸다.
물론 이미 회사에서 사용하기에 충분한 공간이 있기에 거절하기는 했지만, 그 스케일 탓에 압박감이 매우 컸을 것 같았다.
“오빠 때는 안 그랬으면서…….”
그러고 보니 스코프는 반지하 연습실에서 아기자기하게 꾸려 나가고 있는데, 수현이가 있는 우리에게는 회사 사무실을 얻어 주신다는 얘기가 쉽게 나오는 것이 이상하기는 했다.
“너희 오빠는 그게 좋다잖니. 엄마가 안 해 주려는 게 아니야. 제가 싫다는데 어떡해?”
아무래도 헝그리 정신을 품기 위한 나름의 행동 양식인 것 같았다.
“다들 살펴봤니?”
“네.”
“넵.”
언제나 그렇듯 라희와 재우의 정신은 이미 콩밭에 가 있었고, 나와 수현이는 계약서 내용을 꼼꼼히 살폈다.
이 이상 확인할 것은 없는 듯했다.
“그러면…….”
아버지가 모두를 대표하는 듯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