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86
85화
“그러면 이쯤에서 마무리 짓고, 도장 찍는 걸로 하겠습니다. 더 수정할 건 없을 것 같군요.”
“감사합니다. 럭키데이 여러분,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오오, 계약!”
그렇게 신인 주제에 풍족하기로는 어지간한 톱스타 못지않은 기묘한 밴드가 JH 뮤직에 합류하게 되었다.
장장 세 시간에 걸친 수정 사항 마라톤이 끝난 것이다.
“제가 생각했던 모양새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러분이 음악을 계속하는 데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준비되어 있던 것들이 죄다 뒤집혔고 시종일관 아버지들에 의해 끌려다니는 협상을 해야 했던 김주헌 대표였지만, 표정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국내 최대의 악기사인 우영 뮤직과의 스폰서십 체결도 했고, 여러 의미로 도움이 될 인맥망 구축을 해낼 수 있었으니, 김주헌 대표도 마냥 손해만 본 것은 아니었다.
물론 신인을 데려다 키우는 맛은 조금 떨어지겠지만 말이다.
도장을 모두 찍고, 계약서 원본을 한 부씩 나눠 가진 뒤.
“그러면 오신 김에 회사 구경을 조금 시켜 드리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김주헌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우리에게 제안했다.
“오.”
“좋아요!”
우리의 새 둥지가 될 JH 뮤직의 설비와 시스템을 살펴볼 시간이었다.
“우선 직원들부터 만나 보실까요?”
우리는 김주헌 대표의 안내를 따라 회의실에서 나와 한 층을 내려갔다.
뭔가 분주한 느낌의 공간.
“팀장님, 저희 SBC 쪽에서 새울 씨한테 오퍼 넣은 거 없죠?”
“네.”
“아, 씨……. 그럼 뭐지?”
“장우 씨! 레나 사진 어디에 올려놨어요?”
대표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싸움이 한창인 전쟁터를 보는 느낌이다.
그때 김 대표가 큰 소리로 말했다.
“바쁘지 않은 분들만 여기 좀 봐 주세요!”
그러자 사람들의 이목이 한순간 우리에게 집중되었다.
“어?”
“럭키데이다.”
“와, 키 엄청 크네?”
“두 명은 작고 두 명은 커서 대비가 좀 있는데?”
“그래도 큰 사람들이 하나는 보컬, 하나는 드럼이라 사진 구도 만들기는 쉬울 것 같다.”
“크흠, 크흠!”
우리의 등장을 두고 떠드는 것을 헛기침으로 막아 낸 후, 김 대표가 말을 이었다.
“오늘부로 우리 JH 식구가 되어 한솥밥을 먹게 된 럭키데이입니다. 모두 큰 박수로, 에에, 환영을 해 주시길 바랍니다.”
“와아아아!”
“반가워요!”
짝짝짝짝짝!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환대에 감사하며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를 남겼다.
앞으로 같이 일을 하게 될 사람들이 환영을 해 주니 즐겁게 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자, 그러면 일들 보시고……. 장 팀장이랑 조유성 매니저만 괜찮으면 같이 다닐까?”
“예, 대표님.”
“넵!”
우리 쪽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금세 업무로 돌아가고, 그사이에서 두 사람이 우리와 합류했다.
“이쪽은 우리 매니지먼트 파트 장혁우 실장입니다. 스케줄 관리, 진행, 방송사와의 업무 진행, 홍보팀과의 소통. 아티스트들이 창작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귀찮은 뒷작업은 전부 맡아서 한다고 보면 됩니다.”
“반갑습니다, 우리 가수님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깔끔한 세미 정장을 입은 비즈니스맨 이미지의 장 실장이 우리에게 악수를 건넸다.
듬직하고 깔끔한 인상이 뭔가 든든해 보였다.
“그리고 이쪽은 올해로 2년 차 되는 조유성 매니저. 흔히 로드라고 하죠? 함께 스케줄 관리, 활동 보조 등등. 전반적인 케어를 도와줄 겁니다.”
그리고 장 실장의 뒤를 이어 우리에게 기합 넘치는 인사를 건네는 매니저를 보며 나는 깜짝 놀랐다.
‘유성 형?”
대충 몇 년 후, 김 사장 그 개 같은 인간 밑에서 함께 개처럼 구르다가 내 실패와 함께 연예계 일은 때려치우게 되는.
못난 가수가 행사 스케줄 돌기가 너무 힘들다고 이미 은퇴한 사람에게 로드 좀 봐 달래서 운전대를 잡았더니, 옆구리에 트럭이 쳐들어와 인사를 나누게 되는.
“안녕하십니까. 매니저 조유성입니다.”
내가 회귀를 하던 그날, 나와 함께 불의의 사고를 당했던 그 유성 형이었다.
‘설마?’
순간 나는 유성 형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 나를 아는 기색은 없는지, 반가워하는 눈치는 아닌지.
하지만 그렇지는 않아 보였다.
‘그건……, 아니구나.‘
맥이 풀렸다.
그러면 반갑고 또 반가운 이 친밀감과 감정들은 나 혼자만 갖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물론 과거 회귀라는 상식을 벗어난 사건을 겪는다는 게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겠지만, 조금은 아쉬웠다.
같은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의 존재는 소중하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주 외로운 사람이니까.
‘근데 김 사장 밑에서 일하기 전에는 JH에 있었던 건가? 그런 얘기는 못 들었던 것 같은데.’
훗날 김 사장이라는 사기꾼 놈의 밑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유성 형인데, 내가 그쪽과 계약을 하기 전에는 여기 JH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뭔가 나 때문에 사건이 뒤틀려서 경력을 다른 곳에서 시작했다거나, 더 일찍 시작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유성 형이라면 그 일솜씨는 믿음직하기에 참 든든한 업무 파트너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김 대표의 소개에 나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매니저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여기 조 매니저는 일 잘하기로 유명한 사람이니까 믿고 의지해도 될 겁니다. 힘도 세고, 체력도 좋고, 세심하고, 운전도 잘하죠. 우리 에이스예요.”
“아아……. 아하…….”
능력 있는 2년 차 매니저.
힘도 세고, 체력도 좋아 잡무에 능숙하고, 세심한 성격에 운전도 잘하는 에이스라고.
‘힘이 세? 체력이 좋아?’
운전이야 원래 잘하는 사람임을 알고 있었고, 세심하고 기억력도 좋아서 일을 반복하지 않는 좋은 매니저라는 것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힘이 세고 체력이 좋다는 말에 나는 의아함이 앞섰다.
“조 매니저가 저래 보여도 속이 꽉 찬 알근육이에요. 전에 사무실 옮길 때 그 무거운 박스들을 번쩍번쩍 드는데…….”
“사람이 지치질 않으니까 담당 가수들 케어 마치고 회사 돌아와서 늦게까지 일하고 다시 운전하러 가고…….”
사람들의 묘사와 달리 내 기억 속 유성 형은 힘이 약하고 비실비실하지만 근성이 뛰어나고 센스가 좋아 어떻게든 담당 가수들을 케어해 내는 매니저였기 때문이다.
‘뭐지? 버근가?’
희한한 일이다.
아무리 좋게 말해도 신체 능력이 좋은 사람은 아니었고, 대놓고 말하자면 약골이었던 유성 형이 튼튼하고 힘 좋다는 칭찬을 받으며 살고 있다니.
“허허허. 처음 입사했을 때는 체력 모자라서 골골대더니, 적응 좀 하니까 힘 좀 쓰더라니까.”
“이래서 신입은 만기 전역자로 뽑아야 돼요.”
“하하……. 군대에 있을 때도 지금처럼 건강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럼 회사 다니면서 운동을 한 거야? 그 바쁜 와중에? 자기 관리 철저하네.”
“아뇨, 딱히 챙겨서 관리하지는…….”
그의 말을 들어 보면 딱히 따로 관리나 단련 같은 것도 하지 않은 모양인데, 갑자기 체력이 좋아졌단다.
다른 것은 잘 모르겠어도 하나 정도 마음에 딱 걸리는 것이 있었다.
‘내 회귀 시점이랑 비슷해.’
어쩌면 내가 회귀를 하던 그 순간 유성 형에게도 뭔가 초자연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닐까 싶었다.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초자연이 괜히 초자연이겠는가?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려요.”
참 희한한 일이지만 아예 수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회귀를 한 나를 생각하면 힘 좀 세진 것 정도는 별일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겪은 일이 일이다 보니 앞으로 뭔가 신비한 일에 대한 감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자, 그러면 아래층도 살펴보실까요?”
“네에.”
매니지먼트 본부의 매니저들 및 홍보팀 직원들과 얼굴을 익힌 후, 우리는 다시 한번 층을 내려갔다.
“아이고, 반갑습니다. A&R팀 정성우입니다.”
“앞으로 얘기 나눌 일이 많을 겁니다.”
“경영지원본부 재무팀 최선혜예요. 반가워요.”
“이쪽은 우리 모두의 통장을 책임지는 재무팀의…….”
신인개발팀, 제작본부와 A&R팀, 경영지원본부 등. 다양한 부서의 사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중에서도 A&R팀의 인물들이 우리를 유달리 반기는 분위기였다.
“오디션 다 끝났으니 이제 앨범 준비가 필요할 겁니다. 뷰마스터 미니 앨범이 나온 지 얼마 안 돼서 락 장르 곡이 좀 쌓여 있는데, 럭키데이에게 딱 맞는 노래가 꽤……. 아, 자작곡이 아닌 곡도 앨범에 수록할 의향이 있으시죠? 데모를 들어 봤는데 외부 곡이 하나…….”
“앗, 아아…….”
“아차차. 데모 앨범을 다듬어서 미니를 먼저 내는 방향도 고려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세 곡짜리였으니 한두 곡을 추가해도 되고, 아니면 리마스터링을 하는 방향으로도……. 저희 쪽 리스트를 살펴보면…….”
“아아아…….”
생각할 틈도 없이 다다다다 쏟아지는 아이디어에 당황한 내 얼굴이 A&R팀 정성우 팀장의 뱅글이 안경에 비쳐 보인다.
‘이 일을 정말 좋아하시는구나…….’
잔뜩 흥분한 모습이 그야말로 넘쳐나는 아이디어를 주체할 수 없다는 것처럼 보여 묘하게 신뢰감이 일었다.
좋은 인재다.
아무래도 김 대표의 말처럼 이야기 나눌 일이 많을 것 같았다.
‘잔뜩 뽑아먹어야지!’
안 그래도 나와 수현이 두 사람의 손으로는 벌여 놓은 일감을 다 쳐 내기 힘들었던 상황이다.
새로운 아이디어 뱅크는 언제나 환영이니 자주 대화하며 골수까지 뽑아먹어야 할 것 같았다.
그 이후로도 너무 바빠서 눈코 뜰 새 없이 움직이고 있는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 여러 부서를 돌아다니며 인사를 했고, 회사의 시설도 원 없이 구경했다.
“음향 확인할 때 와서 기계 좀 만져 봐도 될까요?”
“당연하지요. 그러라고 꾸려 둔 사운드룸인데요.”
특히나 사운드 체크를 하기에 최적화된 음향 장비가 마음에 쏙 들었다.
녹음 장비나 연주 장비 같은 것이야 재우의 스튜디오에서 사용하거나 외부 녹음실을 이용해도 된다지만, JH 오디오룸 정도로 좋은 환경은 찾기 힘들다.
오디오, 스피커, 헤드폰 따위가 기기 특성에 따라 종류별로 정리되어 여러 환경에서 소리를 점검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구축된 잘 만든 공간이다.
“흡음재도 좋고……. 국내에서는 잘 찾을 수 없는 장비들이 꽤 있군요.”
“하하. 다 그렇지만 특히 저기 있는 튜너 세트와 혼 스피커는 구하느라 고생 좀 했죠. 우영 사장님 보시기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훌륭합니다. 음악에 집중하기에 아주 좋아요.”
장비에 관한 눈은 이 중 제일일 수밖에 없는 재우 아버지도 인정한다는 듯 말씀하셨고, 우리 아버지도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악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이라…….’
마치 너희에게 쉴 틈이란 없으니 열심히 노동해서 앨범을 찍어 내라는 소리처럼 들려 잠시 소름이 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