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87
86화
회사 구경을 모두 마친 후.
해산을 할 시간이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음에 애들하고 같이 한번…….”
“예, 다음에 뵙죠.”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구경 시간이 길어져 저녁 시간이 거의 다 되어 간다.
아이 하나에 보호자 하나.
일행은 그렇게 따로따로 나눠져 각자 집으로 떠났다.
“차 안 가져오셨어요?”
“너희 엄마가 가져갔어.”
“아하. 왜 아버지가 오셨나 했네.”
“너희 엄마 바빠, 요즘.”
둘만 남은 아버지와 나는 꽤나 어색한 침묵 속에서 계속 걸었다.
그냥 택시라도 잡아타고 돌아가면 될 텐데, 아무 말도 없이 계속해서.
그리고 잠시 뒤.
“커피라도 한잔하고 들어갈 테냐?”
“밥은요?”
“너희 엄마 늦는다.”
“호세는요?”
“걔도 늦어.”
“흠…….”
아버지가 카페라도 들렀다가 집에 가자고 제안했다.
계속 말없이 걷는 것도 지치겠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럼.”
“근처에 괜찮은 곳 있는지 찾아봐라.”
“네.”
스마트폰으로 근처 카페를 검색해 들어갔다.
아이스티 한 잔씩을 시키고 앉는데 딱히 할 말이 없다.
‘전에는 무슨 대화를 했더라…….’
회귀 이후에도 아버지와 이야기는 꽤 나눴던 것 같은데, 묘하게 어색한 분위기만 이어져 답답했다.
“나는…….”
그때, 아버지가 먼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사실은 아직 네가 이쪽 음악에 전념하겠다는 게……. 마음이 편하진 않다.”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곧 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미 계약서에 도장 찍고 나오는 길인데 당장 때려치우라고 하시진 않을 테니까.
나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전 이 음악이 좋아요.”
“그래.”
한다는 말이 고작 그 정도다.
하긴, 엇갈렸던 배경이 한순간 맞춰질 리도 없고, 지금까지 설명을 못 했던 일들도 많다.
나중에라도 대화를 하며 천천히 풀어 나가야 할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후로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아버지가 혀를 한 번 차시더니 내게 물었다.
“너 만약에 오디션 우승 이후에도 내가 허락 안 한다고 그랬으면 어쩌려고 했냐?”
자신에게는 일언반구도 없이 중대사를 멋대로 결정한 나에게 서운함이나 화가 날 수도 있으나, 어머니가 중간에 끼어 메신저 역할을 했기에 어떻게 역정을 내기도 애매했다.
결국 아버지 역시 기획사 계약에 동행하고 나와 대화를 나누는 형태로, 간접적인 허락의 뜻을 밝힌 셈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뭐……. 상금이 억인데 고시원 방 한 칸 못 얻었을까요?”
“에라이 이놈아…….”
내 대답을 들은 아버지가 피식 웃으며 웃음기 어린 면박을 주었다.
그리고 일어나며 그가 한마디를 툭 던졌다.
“잘하더만. 열심히 해라.”
“아…….”
그리고 카페 밖으로 혼자 사라지셨다.
맥이 풀렸다.
‘됐구나.’
나의 성과와 재능을 인정하는 분위기로 대화가 종료되었다.
“후우우…….”
한숨을 내쉬는 사이 컵에서 물방울이 또르르 흘렀다.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고 있었는지 아이스티는 시켜 놓고 한 모금도 먹지 않고 있었다.
‘드디어.’
인정받았다.
이제 가족들의 지지와 관심을 받으며 음악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이 차올랐다.
전폭적인 도움까지는 아니더라도, 앞으로는 그저 내가 하는 일을 적의 어린 시선으로 보지 않아 준다는 사실이 너무나 좋았다.
‘이제 더 열심히 해야겠지.’
가족들에게 실망감을 안기지 않기 위해.
그들에게 내가 이 음악을 해야만 행복하다고, 나는 이것을 잘한다고 알리기 위해.
더더욱 노력해서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라 다짐했다.
* * *
“합주 안 함?”
“아아! 드럼 치고 싶다!”
“나, 나 오빠한테 악보 받아 왔는데……. 이거 같이 연습해 보면 좋을 것 같아서…….”
어김없이 찾아온 회의 시간.
역시나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 집중력이란 찾아볼 수 없는 스튜디오.
나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부여잡고 놈들에게 말했다.
“자, 자, 자……. 잠깐만 집중 좀 해 보자. 합주는 끝나고 하면 되니까, 회의부터. 응? 괜찮지?”
그러자 각기 딴소리에 열심이었던 녀석들이 내게 시선을 돌리며 한마디씩을 던진다.
“이응.”
“거 빨리빨리 좀 합시다.”
“어, 회의 내용이 뭐였더라…….”
탁!
시간이란 시간은 자기들끼리 딴짓하느라 다 잡아먹고, 나에게 면박을 준다.
“내 잘못이네. 응. 그래.”
놀려댈 핑곗거리라도 찾던 전과 달리 이제는 맥락도 없이 내 탓이다.
“어휴…….”
이끄는 자의 고달픔은 이리도 무겁고 쓰린 법.
무리의 행선지를 정하는 큰 책무를 받았으니 이토록 힘든 나날도 버텨야만 하……, 기는 개뿔, 힘들어 죽을 맛이다.
“오케이 시작하자.”
그래도 회의는 시작해야 하니, 나는 아이들에게 안건을 설명했다.
“일단 우리가 준비해야 할 일은 두 개가 있어. 우선 첫 번째로 앨범 발매.”
더 밴드 코리아 우승 이후 그 효과로 우리 밴드의 주가는 연일 상승하고 있다.
검색량도 많고, 너튜브 채널 조회 수와 구독자 수도 많이 늘고 있어, 인지도의 우상향이 확 체감될 정도였다.
“뽑아 먹을 수 있는 만큼 뽑아 먹어야겠지.”
“이그잭틀리. 맞아. 오디션 효과는 그리 길지 않아. 적어도 1년 안에는 가시적인 성과가 있어야 좋겠지.”
본격적으로 계약 사실을 알리고 홍보에 돌입한 JH 측으로 연일 행사 관련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
지역 축제, 학교 축제, 케이블 출연 등.
당장 수익을 올리려면 바쁘게 돌아다녀도 괜찮지만, 사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는 정식으로 발매한 음원이 더 밴드 코리아 쪽에서 했던 경연 곡들밖에 없잖아?”
음원 수익 구조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우리에게는 우선 음원 출시 그 자체가 절실한 상황이다.
데모 앨범은 만들어 판 적이 있지만 그건 소량이었고 찾아 들을 수가 없다.
애초에 CD에 담아 팔았을 뿐, 음원을 정식으로 등록해 판 적도 없고 말이다.
너튜브 채널에 올린 곡들 역시 있기는 있지만 다운로드를 할 수도 없고, 커버 곡의 수가 더 많을뿐더러 접근성도 떨어진다.
챙겨 듣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가볍게 접하고 우리 밴드에 관심을 갖게 만들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공연도 공연이지만, 음원 수익 구조를 탄탄하게 쌓아 놔야 나중에 활동하기에 편할 거라는 게 회사와 내 공통적인 의견이었어.”
그런 의미에서 회사와 나의 의견이 맞은 것은 참 다행인 일이다.
만일 JH가 전생의 내가 있었던 그 망할, 아니, 망한 회사처럼 당장 무대 뛰며 버는 수익에 목이 마른 곳이었다면, 우리가 지금 스튜디오에서 평화롭게 회의나 하고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대학 축제든 지역 축제든 돌아다니며 목이 터져라 노래하고 연주해야 했을 테니까.
“만일 당장 공연 뛰면서 라이브 경험을 쌓는다거나, 단기간에 뽑아낼 수 있는 수익을 원한다거나 하면 앨범 발매는 쉬엄쉬엄하고 공연을 다녀도 괜찮긴 해. 너희 의견은?”
다만 내 생각이 그렇다고 해서 혼자만의 의견을 무작정 밀어붙일 수는 없는 노릇.
나는 멤버들의 의견을 물었고, 녀석들의 생각은 똑같았다.
“앨범.”
“정규 앨범!”
“노, 녹음하고 싶어. 앨범……. 공연은 금방까지 많이 했으니까…….”
역시 앨범 제작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아니, 정확히는 앨범 제작을 하고 싶다는 의미였다.
“좋아. 그러면 음원 출시를 목적으로 다시 계획을 세워야 해.”
모두의 의견을 확인한 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A&R 팀장님 말로는 수록곡을 조금 추가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는 했지만, 나는 전에 만들었던 데모 앨범을 그대로 출시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거든? 너희는…….”
은근슬쩍 쉽게 쉽게 가자는 의향을 내비쳤으나…….
“새 곡!”
“신곡!”
“만들어 둔 노래들도 많은데……. 조금 더 늘려도…….”
그럼 그렇지.
신곡을 추가해 앨범을 새로 꾸미자는 의견이 절대다수였다.
“그래. 그럴 줄 알았어. 그러면 두어 곡만 추가해서 하기보다는 제대로 1집을 완성하는 방향으로 추진해 보자.”
음악이 취미이고 적성이자, 놀이인 동시에 공부면서 직업인 녀석들이다.
그냥 편하게 가는 것보다는 도전에 도전을 거듭하는 쪽을 선호하는 성향이기도 하고, 쉽게 가자는 말에 동조하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새 앨범. 제대로 엮어서 내 보자고.”
나 역시 그 마음은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오예!”
아무래도 예전에 만들어 발표했던 곡들만으로는 부족하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한 우리 곡까지 대중에게 보이는 쪽이 반응은 훨씬 좋을 것이다.
당연히 그쪽이 더 재밌기도 하고 말이다.
“단, 유명한 곡 리메이크 같은 건 없이 오리지널로만 채우는 걸로 가자. 곡을 쓰든, 받아 오든. 괜찮지?”
“당연.”
“리메이크 질려!”
새 노래 만들어 녹음하자는 말에 반색하는 멤버들.
경연 때문에 한참 동안이나 남의 노래만 해야 했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음악이란 하나의 표현 방식이며 대화 수단.
‘가슴속에 할 말이 잔뜩 쌓여 있을 텐데, 표출을 못 하고 있었으니…….’
남이 만들어 둔 남의 생각, 남의 감정만을 전달하는 것은 우리의 열정 넘치는 음악 생활에 좋지 않았다.
“목표는 여덟 곡짜리 풀 패키지. 콘셉트 단일화부터 아예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느낌으로 가는 게 좋겠지? 1년 안에 완성하려면 고생 좀 해야 할 거야.”
“좋지! 달리면 돼!”
“콘셉트 맞춰서 가는 거면 데모곡들은 뺄 수도 있지 않음?”
“그렇겠지. 앨범 자체의 퀄리티를 생각해야 할 테니.”
“조금 아쉽다.”
“어지간하면 다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기획을 해 보면…….”
천천히 의견과 상상력들이 세 천재들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매일 하는 음악이 저렇게 좋을까 싶으면서도 나 역시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보면 참 죽이 잘 맞는 놈들끼리 어떻게 잘 모였다 싶기도 했다.
다만 지금은 앨범 기획에 전력을 다하는 회의 자리가 아니었으니.
“그리고 두 번째. 잠깐 얘기들 좀 멈추시고.”
“응?”
“뭐임.”
“사실 이게 더 중요해.”
“애, 앨범보다 중요한 안건이 있어?”
나는 손을 들어 열정적인 토론을 제지하며 멤버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 중 중간고사 대체 수행평가 제출한 사람, 손 들어 봐.”
“…….”
“…….”
“…….”
“없어?”
“…….”
“…….”
“…….”
길게 이어지는 침묵.
나는 이마를 부여잡고 말했다.
“하나도 안 했다, 그거지?”
나는 어제 뜻밖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
“루치야, 혹시 너희 많이 바쁘니?”
“예? 아뇨, 이제 계약도 다 끝마쳤고…….”
“너희 애들……. 그러니까 너 빼고 재우, 라희, 수현이 전부 중간고사 대체 과제를 안 내서 전화했거든. 이대로 가면 전부 빵점 처리인데…….”
윤영현 선생님과 김하선 선생님에게서 온 눈앞의 셋이 중간고사 대체 수행평가 과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연락.
“미친놈들아……. 졸업은 해야 할 것 아니야…….”
오늘 회의의 두 번째 안건.
이 음악에 미친 놈들의 낙제를 막는 것.
럭키데이 밴드 결성 이후 최악의 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