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88
87화
“우선 실용음악과 공통 과제. 뮤지컬 감상문……. 이건 수현이만 했네. 너희 둘 혹시 시작이라도…….”
“안 했지. 하핫!”
“그런 게 있었음?”
“하……. 그리고 개인 과제……. 이건 전부 안 했네.”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했다.
아예 성적 관리가 되지 않은 수준.
“야, 안 되겠다. 일단 같이할 수 있는 것부터 빠르게 끝내자.”
이대로 두면 큰일 나게 생겼다.
나는 애들을 모아 두고 급한 것부터 차근차근 쳐 내기로 했다.
“감상문은 잠깐 미뤄 두고, 개인 과제 중에 악보 카피부터 시작하자. 이건 겹치는 곡으로 정해서 여러 명이 같이할 수 있으니까.”
“예아…….”
“연습하고 싶은데.”
녀석들이 기운이 떨어진 듯한 모습으로 칭얼거리기 시작한다.
나는 힘들게 어르고 달래기 스킬을 시전했다.
“어쩔 수 없어. 너희 유급할 거야? 나 2학년 되고, 3학년 올라가고, 졸업할 때까지 1학년으로 남으려고?”
“아, 그건 좀.”
“그건 더 별로임.”
“그러면 얼른 모여 앉아. 숙제 빨리 끝내고 연습해야지.”
어째 럭키데이라는 밴드로 활동을 하면서 노래 실력보다 애들 어르고 달래는 능력이 더 성장한 것 같지만, 기분 탓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주제곡 목록 있으니까 보자. 한 번에 같이할 수 있는 곡이 의외로 많은데…….”
“어? 이거 괜찮겠다.”
“이것도.”
어떻게든 애들을 붙잡아 두고, 목록에 있는 주제곡들을 살펴 겹치는 곡 하나를 빠르게 골랐다.
“카피는 어차피 다들 잘하니까 바로 진행해도 되겠지?”
“이응.”
“고고!”
전공자라면 죽어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곡 카피였다.
사실 악보를 보고 베끼거나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도 있는 거지만, 수기 제출의 특성상 노력이 필요하긴 하다.
‘경력 많은 선생님들은 딱 보고 알아차릴 확률도 높고 말이지.’
간혹 치팅을 하는 학생들의 악보를 음표 다루는 습관이나 필적 따위를 통해 기가 막히게 알아채는 선생님들도 있으니, 어지간하면 시간 잠깐 들여서 청음을 하는 쪽이 좋다.
그러나 과제를 시작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
“두두두두, 푸스프 투두두두둥……. 푸푸푸푸…….”
“님. 비트박스 좀 안 하면 안 됨?”
“아, 미안. 버릇이라. 크흠!”
“루, 루치야. 방금 부분 다시 들으면 안 될까? 아밍인지 손브라토인지 헷갈려서…….”
“어차피 악보에 옮기는 건데?”
“앗, 미안…….”
원래 각자 해결해야 하는 개인 과제를 다 같이 모여 함께 하려니 서로 거슬리는 부분이 자꾸 생긴다.
하지만 불편해도 어쩔 수 없었다.
“조금 힘들어도 이렇게나마 빨리빨리 끝내야 돼. 안 그러면 너희 또 미루고 미루다가 안 할 거잖아.”
“읭…….”
“그건 그럼.”
“그렇긴 뭐가 그래. 거짓말로라도 알아서 잘한다고 해 주면 안 되냐?”
“오키. 알아서 잘할 거임.”
“어휴…….”
나처럼 바쁘지 않을 때 시간 좀 내서 미리 끝냈으면 모를까, 지금까지 미루고 또 미루며 결국 선생님 전화까지 받게 한 놈들의 사정을 봐줄 수는 없었다.
불만 있으면 처음부터 잘하든가.
“집중해서 계속하자. 비트박스는 최대한 작게. 중간에 멈추는 거 없고. 개인 이어폰 쓰게 하면 또 다른 음악 들을 게 뻔해서 안 돼.”
“쳇.”
“아 들킴.”
“간다. 준비해.”
나는 소란을 진정시킨 후, 다시 음악을 틀었다.
다소 구시렁대기는 하지만 그래도 녀석들은 빠르게 악보를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어, 공간이 모자란다. 간격 너무 넓혔나?”
“천천히 해. 시간 많으니까. 종이 더 줘?”
“응. 한 장만.”
악보 작성에 익숙하지 않은 라희만 다소 고생할 뿐, 다들 빠르게 끝낼 수 있었다.
애초에 어지간한 작곡과 학생들 못지않게 청음이 좋은 녀석들인지라 별반 어려운 숙제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질질 끌다가 제출 시기를 놓치냐고.’
아무리 연습 시간이 많았고, 더 밴드 코리아 경연 준비 탓에 다른 활동을 할 시간이 모자라긴 했다지만, 적당히 짬을 내서 했으면 금방 끝냈을 터.
이건 녀석들의 잘못이 맞았다.
실제로도 나는 그렇기에 미리 끝내 놓았고 말이다.
“카피는 끝. 그러면 다음 과제…….”
“아……. 좀 쉬고 하자.”
“안 돼. 마저 끝내고 쉬어.”
늘어지려는 놈들을 재차 일으켜 세우고 남은 과제를 처리했다.
몇 시간 동안 반란 진압하듯 도망치려는 놈 붙잡아 앉히고, 몸부림치는 것 막아 내며 과제만 열심히 시켰다.
‘숙제 밀린 건 이놈들인데 왜 내가 더 힘들지?’
어째서인지 급한 놈들은 설렁설렁 시키는 일만 하고 있고, 정작 미리 끝내 둔 나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매우 고통스럽다.
이게 맞나 싶은 현자 타임이 엄습할 때쯤.
“끝!”
“드디어! 해방이다!”
결국 곡 카피, 감상문 작성 등. 밀린 과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었다.
“고생 많았어.”
정말 고생이 많았던 건 나지만, 아무튼 위무가 필요한 시점.
“그런 너희에게 준비된 선물이 있지.”
열심히 채찍을 쳐서 과제를 다 끝내 놨으니, 이제 당근도 줄 차례였다.
“치킨?”
“치킨?”
“치킨?”
“……아니.”
나는 잠시 침을 질질 흘리는 하이에나 놈들을 바라보다가 주섬주섬 품에서 USB 디스크 하나를 꺼냈다.
“뭐임?”
“이것은 무려 JH A&R 팀에서 받아 온 파일들이지. 뭔지 알겠지?”
“오오!”
“신곡임?”
A&R 팀장님과 앨범 준비를 위해 상의를 하고 받아 온 곡 다섯 개.
멤버들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부를 거라고 확정된 건 아니고, 회사에서 킵해 둔 노래들 중에서 우리한테 어울릴 만한 것만 골라서 주셨어.”
“그, 그럼 들어 보고 결정하면 되는 건가?”
“그렇지. 곡의 멜로디만 마음에 든다거나, 비트만 좋다거나 하는 것들은 따로 편곡을 진행할 수도 있고. 근데 회사에 이야기는 미리 해 놔야겠지.”
본래는 데모에 사용했던 것들만 모아 미니 앨범을 발매하는 쪽도 생각을 해 뒀지만, 역시 완전한 1집을 원하는 멤버들이다.
그럴 줄 알고 조금이라도 진척도를 좁혀 놓고 시작하기 위해 회사에서 미리 곡을 받아 온 것이다.
“와. 우리끼리 머리 싸매고 고생할 필요는 없어서 좋네.”
“그렇지. 곡 받고 싶으면 매니저님 통해서 루트를 알아볼 수도 있고.”
쓰고 싶은 노래가 있으면 받아서 앨범에 사용할 수도 있고, 원하는 작가가 있으면 회사에서 접촉을 도와주기도 한단다.
제대로 된 회사와 협업을 하니 세상 편한 활동이 보장된다.
‘앨범 작업이 이렇게 쉬운 거였나?’
혼자 편곡한다고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고, 제발 곡 좀 달라고 아는 작곡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던 전생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 전의 회사 역시 행사만 바쁘게 뛰게 만들었지, 앨범 제작 도움은 개뿔 아는 것도 없어서 온갖 고생을 다 해야 했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일은 역시 일할 줄 아는 사람들이랑 하는 게 옳은 것 같다.
“아무튼. 다섯 곡 전부 같이 들어 보고…….”
“마음에 드는 곡 픽업!”
“테잌 잇!”
“그렇지. 빠르게 정하면 정할수록 좋으니까, 한번 챙겨 보자고.”
“고고!”
나는 스튜디오 컴퓨터에 USB를 꽂고 곡들을 재생시켰다.
첫 곡의 제목은 눈꽃.
“흐음…….”
“가을의 향기랑 비슷한 분위기네?”
“계절은 바뀌었음.”
“나도 알아.”
살짝 발라드의 느낌이 짙은 부드럽고 잔잔한 곡이다.
멜로디 라인이 고음역대에 위치해서 너무 무난하지만은 않고 하이라이트도 잘 잡혀 있지만, 그 흐르는 느낌이 우리 곡 가을의 향기와 꽤 비슷해서 겹치는 포인트가 많았다.
한 앨범에 몰아넣기에는 조금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면 다음 곡.”
두 번째 곡의 제목은 달이 뜨는 낮.
반주와 메인 멜로디가 가이드 없이 흘러나오는데, 이게 상당히 미묘한 맛이다.
“아……. 난해하다…….”
“어렵나?”
“난 괜찮음.”
의견이 꽤나 갈린다.
수현이는 곡의 해석이 난해하다며 난색을 표했고, 라희와 재우는 그런가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도 수현이 의견에 동의.”
나 역시 난해한 곡이라는 쪽에 한 표를 던졌다.
“왜?”
“도대체 어떤 가사를 붙여야 할지도 모르겠고, 진행도 중구난방이야.”
“우, 우리 밴드에는 어울리지 않는 느낌……. 사이키델릭으로 풀어야 하나, 아예 단순하게 만들어서 프로그레시브 느낌을 살려야 하나 감이 안 잡혀.”
곡의 멜로디 진행 자체는 퍽 나쁘지 않다.
하지만 아름답게 살리기 위해 거칠 것이 많아 보였다.
“구성이 복잡하기도 하고, 연주에 기교를 너무 많이 요구해서 정신없이 뻗어 나가는 게, 합이 중요한 우리 밴드의 연주에는 잘 안 맞는 것 같다.”
“음……. 그건 그럼.”
나와 수현이의 설명을 들은 재우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기교에는 자신이 있는 재우였기에 딱히 큰 문제라고 여기지 않았지만, 결국 밴드 전체의 그림을 보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 모양.
“그럼 다음 곡!”
딱히 이해를 한 것 같지는 않지만 어서 다음 곡을 듣고 싶은 모습의 라희.
“그래. 다음 곡.”
나는 마우스를 움직여 다음 곡을 재생했다.
“오. 펑크.”
“이런 곡도 회사에 파나?”
“그러게.”
가제로 조선 펑크라는 이름이 붙은 세 번째 곡.
기억하기 쉬운 멜로디가 인상적이면서도 리드미컬하고 빠른 진행이 시원시원한 노래였다.
“별빛 계단이랑은 조금 다르지?”
“엉. 미친 듯이 달리는 거랑, 제자리에서 방방 뛰는 거랑 다른 만큼.”
“어……. 다른 건가, 그거?”
“내가 다르다면 다른 거야.”
이번에는 유난히 라희가 관심을 기울였다.
“마음에 들어?”
“그냥 드럼이 좋네. 시원하게 두드려 패는 느낌?”
“확실히 신나긴 한다.”
킥과 탐탐의 간격이 짧아서 박자를 제대로 쪼개 버리는 드럼 라인이 라희의 마음에 쏙 든 것 같았다.
“나도 나쁘진 않음.”
“나, 나도.”
“오케이. 그러면 이건 킵.”
모두의 의견이 모여 세 번째 곡은 품 안에 고이 모셔 두기로 했다.
이후에 작사는 전문 작사가에게 맡길지 우리가 쓸지, 편곡은 어떻게 건드릴지 등등을 정해야 하겠지만, 당장은 곡을 받아 챙기는 것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다음 곡.”
네 번째 곡은 잊지 말아요라는 제목이 붙은 락 발라드.
다만 가을의 향기나 첫 번째 후보곡이었던 눈꽃과는 다른 맛이다.
“되게 격정적이다.”
“고저 차이를 잘 둬서 그런 것 같은데?”
“절절하네.”
잔잔한 파트와 격정적인 파트의 분위기 차이가 확 나도록 완급 조절이 잘된 곡이다.
“이건 편곡 없이 써도 괜찮겠는데?”
“응.”
“근데 조금 올드하지 않아?”
“어? 그런가?”
“왜, 있잖아. 옛날에 킹스크로스 같은 느낌.”
“아하.”
조금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노래 자체가 90년대 후반이나 2000년대 초반에 유행하던 분위기를 그대로 답습하는 락 발라드라는 점.
확실히 최근에 자주 불리는 느낌은 아니었다.
“스으읍……. 고민이 좀 되는데.”
노래 자체는 확실히 좋다.
제목이 주는 느낌이 곡 설계를 통해 그대로 전해지고, 옛날에 자주 듣던 노래들의 향수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 노래를 우리 앨범에 추가해도 좋을까를 논하자면 글쎄.
“잠깐 생각 좀 해 보자.”
우리는 곡을 두고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