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90
89화
‘나보다 큰 사람은 진짜 오랜만인데?’
그냥 키만 큰 것이 아니다.
무슨 프로 레슬러처럼 온몸이 근육으로 가득하고, 악수를 건네오는 손은 거의 솥뚜껑만 했다.
“더 밴드 코리아 잘 봤습니다. 실력들이 훌륭하시더군요.”
함박웃음을 지으며 악수를 건네는 그 거한은 스스로를 작곡가 강철현이라고 소개했다.
내 생각과 너무 달라 충격적이다.
그토록 섬세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짜아 낸 작곡가가 앙드레 더 자이언트 뺨칠 근육맨이라니.
‘상상도 못 했는데.’
전생에도 이름만 들었지 얼굴은 본 적이 없었기에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반갑습니다, 작가님. 노래 들어 보고 너무 좋아서 꼭 만나 뵙고 싶었어요.”
“하하. 고맙습니다.”
우리는 의례적인 인사와 덕담을 나누며 대화를 시작했다.
약속 장소는 소속사 주변의 카페.
여러 명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눠도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널따란 곳이다.
우리 멤버들이 워낙 떠들썩하고 요란스러운 놈들이기에 장소를 정할 때 매우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다.
“본선 무대의 전진은 특히 인상 깊게 들었습니다. 편곡의 특이점을 제대로 짚으셨더군요.”
“포인트는 역시 탭 댄스였겠죠?
“하하. 그렇죠. 물론 악기들 역시 제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고, 특이한 소리의 개입 탓에 소리가 뭉개지는 경우도 없어서 더 좋았습니다.”
서로 간의 칭찬이 오가고, 대화가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이후로 나오는 이야기 덕에 나는 깜짝 놀랐다.
‘이분 되게 똑똑하시네.’
강철현 작곡가는 겉모습과 달리 인텔리 그 자체인 사람이었다.
전생에 보컬 트레이너 생활을 하며 깊게 공부했던 음악 관련 지식은 물론, 자신의 전공이 아닌 악기 연주에도 폭넓은 이해도를 자랑한다.
세션의 구성, 편곡자의 집중 포인트, 하이라이트.
연주자의 연주만 듣고도 모든 것을 짚어 낸다.
우락부락한 외모에 너무나 지적인 내용이라니.
‘멋져…….’
호감이 절로 드는 사람이다.
“그리고 역시 최후까지 살아남아 나이에 대한 의문을 일소한 그 경험이야말로 럭키데이 여러분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할 수…….”
또한 매우 깍듯한 그의 태도 역시 놀랍고 기분 좋았다.
우리의 나이가 훨씬 어림에도 예의를 갖추는 것이 매우 호감이 간다.
어른과 소년의 만남이 아닌 프로 대 프로의 이야기를 나눌 준비가 되어있는 듯한, 더 프로페셔널한 느낌이라고 할까?
“그럼 슬슬 곡에 대한 얘기를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아아, 좋습니다.”
적당히 서로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진 후, 우리는 본격적인 주제로 넘어갔다.
“이야기는 들으셨겠지만, 작곡가님의 곡을 저희가 앨범에 수록하고 싶습니다.”
“네. 저야 영광이죠.”
“하하……. 아무튼, 곡에 완전히 푹 빠져서 몰입해 듣고 우리가 부르고 싶다는 생각은 가졌지만, 아무래도 잘 만들고 싶은 욕심이라는 게 있잖아요?”
“욕심이라면…….”
“더 잘 이해해서 표현하고 싶고, 멋들어진 가사를 부르면서도 공감대는 이끌어 내고 싶고……. 그런데 제목도 가사도 아직 없는 노래인지라 쉽지 않더라고요.”
“아하.”
나는 우리 밴드 모두의 의견을 대표해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혹시 이 곡을 만들게 된 배경이라든가……, 이 곡에 담아내고 싶었던 의도 같은 것이 있을까 여쭤보고 싶어서요.”
욕심이다.
음악가로서, 음악을 통해 무언가를 표현하는 사람으로서 더 완벽하게 곡을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싶은 욕심.
이 곡을 만들며 이 곡에 대해 가장 깊게 생각했을 작곡가의 의견을 들어 우리의 곡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싶다는 욕심이다.
그리고 강철현 작곡가는 그런 우리의 욕심에 흔쾌히 공감을 내주었다.
“만들게 된 배경이라……. 제가 세션맨 생활을 꽤 오래 했습니다.”
그는 그가 보고 겪었던 음악계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착취, 사기, 피라미드식 수익 구조……. 새로운 약자에게 한없이 험한 시장. 화가 나고 힘들다기보다는 안타까웠습니다.”
하청에 하청을 주는 세션 녹음, 차일피일 미뤄지는 경우가 허다한 임금 지불, 키워 준다는 미명 아래 제대로 된 보상 없이 부려지는 사람들까지.
말로만 들어왔던 악폐습의 세상.
“당하는 사람들이 한발 물러서서 포기하면 더 이상 당하지 않아도 될 텐데. 가해자들에게는 또 본인들이 착취해 빨아 대는 저 순수한 사람들이 사라진다면 자신들도 무너질 텐데. 여러 생각들이 교차했죠. 세상 모든 아이러니가 뭉쳐 탄생한 작품 같았습니다. 이 음악계가요.”
꿈과 열정이 넘치는 일부와, 더럽고 치사한, 자신들의 이익만 좇는 일부가 공존하는 음악계.
그런 이유로 그렇게 좋아하던 음악을 포기하게 된 사람들도 봤고, 경력이 쌓인 후 그들이 보아 왔던 일들을 답습하게 되는 사람들도 봤다고, 그는 씁쓸하게 말했다.
“이 곡은 제가 겪었던 이런 느낌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느낌을 확대해 사회라는 더 커다란 배경에 적용시켰고, 얼추 맞아떨어지더란다.
생존 경쟁. 열정의 분쇄. 재능의 이익화. 분열. 왜곡과 은닉.
강철현 작곡가는 본인이 쓴 곡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담담하게 이어 나갔다.
“모든 것은 결국 이익과 이익이 부딪히면서 나오는 결과물처럼 보였습니다. 내가 더 갖겠다. 이 정도는 양보해라. 그런데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죠. 사실 한 꺼풀 벗겨 놓고 보면 순수한 열정과 단단한 책임감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동력으로 삼아 한 세계가 돌아가거든요.”
그는 속이 시커먼 사람들이 주목을 받고 더 많은 것을 얻는다지만, 제대로 일하는 사람들, 정말 열정 넘치는 사람들이야말로 시장을 지탱하는 원동력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이익 실현만을 목적으로 사는 이들도 마찬가지로 순수하게 자신의 일을 사랑해 열중하는 그들이 없다면 제 것을 챙길 수 없음이 당연하다고.
‘생각보다 훨씬 깊다.’
상당히 무거운 주제였다.
동시에 이해가 되는 배경이기도 했다.
‘거세게 달리는 드럼 주위로 깨질 듯 깨지지 않는 조화.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기타와 베이스의 중간 솔로 교환 부분. 의도가 곳곳에 숨어 있었구나.’
말하자면 배경에 대한 지적과 나름대로 해석한 배경의 명암 구분을 주제로 삼고, 순수하게 연주 실력을 뽐내는 방식으로 그것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이다.
단순하고 중독성 있으며 화려한 음악으로 자신의 음악성을 빛냈던 미래와 달리, 지금의 강철현은 기교 넘치고 해석의 여지가 넓은 작곡을 하고 있는 듯하다.
어렵다.
‘이거 괜히 잘못 만졌다가 우리만 피똥 싸는 거 아니야?’
너무 어려웠다.
묵직한 함의, 난해한 표현, 너무 넓은 해석의 여지.
완벽하게 표현해 내기가 정말로 쉽지 않은 곡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좋아.”
“너무 좋아.”
“확실히 끌릴 수밖에 없는 배경이 있었네요.”
우리는 이 곡에 매료되었다.
“조금 어지러운 내용이 아닐까요? 가수들이 표현하기에는…….”
“그래서 좋은 거죠.”
함의가 너무 묵직해서 자칫 가볍게 들리면 노래에 담고자 했던 뜻이 흐려질 수 있다.
해석의 여지가 넓어 같은 노래를 듣고도 다른 생각을 품을 수 있다.
그 말인즉슨.
“그렇기 때문에 도전 가치가 있는 거고요.”
우리가 제대로 부른다면, 제대로 노래를 만들어 듣는 이들에게 같은 감정을 느끼게 만들 수만 있다면.
“이거 개쩔 것 같은데.”
“그니까.”
“라이브 분위기 장난 아닐 듯.”
그 쾌감이 얼마나 끝내줄까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 노래를 반드시 완벽하게 부르고야 말겠다는 열망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 * *
“하하하하.”
눈앞의 덩치 큰 소년을 보며 웃음을 터뜨린다.
‘역시 열정 넘치는 밴드……. 방송에서 보던 대로……, 오히려 방송보다 더 음악에 미쳐 있는 사람들인 것 같다.’
그저 재능 넘치는 소년들이 음악을 연주하는 장면을 몇 번 보고는, 어쩌면 이 아이들이 역사에 길이 남을 밴드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틀렸다.
‘이미 훌륭한 뮤지션이야. 이 친구들은.’
겨우 화면에 잡히는 몇 분의 짧은 시간으로는 이 밴드의 열정을 다 보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들이 보여 주는 모습은 어려운 과제일수록 타오르는 열정, 음악이라는 것에 대한 순수한 사랑.
내가 온갖 더러운 일을 겪고, 심지어 그 깊숙한 곳에 발을 담근 과거를 후회하면서도 음악을 만들고 소리를 다루는 일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던 그 모습, 그 마음 자체였다.
“순수하네요. 정말.”
“어, 칭찬이시죠?”
“물론입니다. 우리가 방금 이 곡을 주제로 얘기를 나눴던 만큼, 이보다 더한 칭찬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요.”
나는 가볍게 눈앞의 밴드, 럭키데이에게 칭찬을 건넸다.
이것이 칭찬인지, 찬사인지, 존경인지 스스로도 명확히 구분할 수 없었지만, 내가 나이가 더 많다는 이유로 아마 어린 사람에게 떨어지는 칭찬으로 보일 것 같아 조금은 슬펐다.
“감사합니다.”
다만 김루치아노라는 밴드 보컬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그는 시종일관 바른 자세를 유지한 채, 노래를 부르는 사람과 노래를 만든 사람의 관계에서만 이야기를 진행했다.
커다란 내 몸집은 아무런 관련 없다는 듯, 오로지 음악에 대해서만 관심을 보인다.
어쩌면 그 역시 큰 덩치를 가졌기 때문일지도.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역시 이글이글 타오르는 저 눈빛.
‘큰 거 한 방을 제대로 터뜨리겠다는 저 눈빛!’
이미 완성된 뮤지션임을 자랑하는 저 기세에 나 또한 뜨거워지는 기분이다.
그때, 김루치아노가 내게 물었다.
“혹시 곡의 제목은 생각해 두신 게 있을까요?”
“제목이라…….”
잠시 고민에 빠졌다.
‘후보군은 꽤 많이 있는데.’
곡의 배경과 소재를 이렇게까지 파고들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기에, 부를 사람이 정하라고 무제로 두었던 곡이다.
다만 내 생각과 깨달음에서 나온 작품이니만큼, 어떤 가사를 붙여야 좋을지, 어떤 제목이 어울릴지 정도는 상상해 본 적이 있었다.
알게 모르게 세상 전체를 메우고 있는 햇빛이 사라진 후, 진실한 모습이 드러난 세상.
어둡고 위험하지만 숨어 있던 진의와 순수한 마음들을 읽어 내기에 딱 좋은 밤 세계의 풍경.
“햇살 깨진 밤. 그 정도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질러 버렸다.
‘이걸 말하는 순간 내 해석에 매몰될 텐데…….’
걱정이 일었다.
작곡을 해서 넘긴 이상 이미 내 손을 떠난 노래가 된 것인데, 혹시 내 해석과 상상을 이 노래를 부를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건 아닐지.
“으음……. 음…….”
그러나 김루치아노는 내 말을 듣고는 눈을 반쯤 감은 채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음미하는 듯한 모습이다.
그리고 잠시 후.
그가 말했다.
“저희는 작곡가님의 해석이 너무 마음에 듭니다.”
“아, 감사합니다.”
“이런 뉘앙스를 그대로 이끌고 가서 청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을 정도로요.”
기분 좋은 말이다.
창작하는 사람에게 이 이상의 칭찬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말인데……. 이 곡의 가사를 작가님께 부탁드리면 어떨까요?”
과분한 제안이다.
“아…….”
그리고 받고 싶지 않은 제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