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93
92화
지징, 지지징, 징징! 징징, 지지징, 징징!
거친 기타 리프로 시작되는 전주.
착! 착! 착! 착! 부우웅! 두둥 둥두둥 둥둥!
즉각적으로 달라붙는 드럼과 베이스가 이루는 빠른 템포가 인상적이다.
가만히 있다가도 저절로 고개를 까딱이고 발을 구르게 만드는 하드락 곡.
“오오…….”
“깔끔하게 뜨거운 노래네.”
“보컬은 위에서 살짝 아랫줄에 놓여야 될 것 같지?”
“딱 힘든 영역에 걸칠 것 같은데.”
흔히 말하는 빡센 노래.
열기가 한껏 느껴지는 그 강렬한 진행이 참 본격적인 락 음악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곡이다.
날카롭고 거친 리프, 빠르고 경쾌한 리듬, 딱딱 정확하게 맞아떨어져 금방 익숙해지는 박자. 아무리 무너진 분위기라도 한 곡으로 다시 살릴 수 있는 힘.
이외에도 곡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수많은 매력 포인트가 있지만 무엇보다 좋은 점은…….
“내가 악기 연주에 그렇게 뛰어난 편은 아니라서 말이지. 이거 일일이 손으로 찍는다고 고생 좀 했다.”
“음표 찍느라 손가락 좀 아프셨겠는데요?”
“하하하. 진짜로.”
오로지 멜로디와 박자만을 신경 쓰며 작곡을 한 박창희 베이시스트 덕에 톤이나 볼륨 등, 우리가 손을 댈 구석이 많다는 것.
‘원래부터 잘 꾸며져 있는데 심지어 우리가 직접 만질 여지도 충분해? 이건 못 참지.’
벌써부터 어떤 이펙트를 넣으면 좋을지, 보컬 멜로디를 어떻게 만들어야 이 강렬한 진행의 밸런스를 망가뜨리지 않고 신나게 달릴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된다.
구미가 확 당기는 곡이다.
퀄리티도 퀄리티고, 음악가로서의 도전 의식이 고취되는 느낌.
“이거 좋네요. 헤드뱅잉 하기 딱 좋은 노래인 것 같아요.”
“그렇지? 섬세함은 조금 치워 두고 일단 와일드하게 달리는 맛을 노렸거든?”
“그냥 생각 없이 팍팍팍팍 하면서. 응? 그렇지, 재우?”
“이응.”
아이들 역시 단 한 번 듣고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열정적이고 거친 느낌이 인상적이기에 벌써부터 푹 빠진 것 같았다.
‘하긴, 한 번 들으면 무조건 몸이 먼저 반응할 만한 노래긴 해.’
나 역시 당장이라도 손으로 직접 연주하는 소리를 듣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이런 말을 하면 너희에게 어떻게 들릴지 잘 모르겠다만…….”
잠시 감상에 젖어 있는데, 박창희 베이시스트가 말을 꺼냈다.
우리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되었고, 그가 곡을 만든 의도를 설명했다.
“이게 사실 너희의 미국 진출을 염두에 두고, 정확히는 그러길 희망하며 만든 노래야. 미국에서도 부담 없이 부를 수 있는 최우선 트랙.”
미국 진출.
참 허황된 얘기다.
박창희 베이시스트가 소속된 밴드, 국민밴드로 이름 높은 그 디밴드.
한참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그들의 노래를 듣고 자란, 나와 같은 이들이 수도 없이 많을 그런 디밴드.
그들도 실패한 해외 진출을 실패한 당사자가 까마득하게 어린 후배들에게 논하고 있었다.
“미국요?”
“그래.”
“저희가요?”
“그래, 그래.”
“어……. 그게 되나?”
이 이상 가는 칭찬이 있을까 싶은 말을 들어 놓고도 우리는 그저 멍할 뿐이었다.
현실성이 없어도 너무 없었으니까.
하지만 박창희 베이시스트는 고개를 저으며 우리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당연히 아니지.”
지금이야 그냥 이름 좀 알리기 시작한 허접한 밴드일지 모르지만, 럭키데이라는 이름을 가진 밴드가 천천히 경험을 쌓고 모두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하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그는 그런 생각을 품었다고 한다.
“포텐셜. 그래, 포텐셜이지. 너희 정도 재능이면 분명 외국에서도 먹힌다. 뭐, 우리가 재능이 없어서 실패하고 돌아온 건 아니다만, 너희에겐 아직 시간이 많으니까.”
그들이 실패한 것은 시간 때문이라고. 인종 차별 때문도, 든든하지 못한 회사 때문도 아니고, 한국 밖의 시장에 적응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박창희 베이시스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음악은 한 길이야. 진짜배기는 어딜 가든 시선을 받지. 적어도 그것만큼은 변함없는 진실이야.”
“아아…….”
“가난한 집안의 흑인 꼬마는 기타 한 대로 전설이 되었고, 어머니에게 우쿨렐레를 배우던 소년은 죽어서도 대중음악 그 자체라고 추앙받았지. 가정 폭력에 사회적 약자 비하는 물론, 야스쿠니 신사 참배까지 했지만, 그가 노래했던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 그 자체는 위대했다고.”
조금은 씁쓸한 듯한 목소리.
그러나 그 속에서 기묘한 열망이 느껴졌다.
위대한 음악가들의 일대기.
그런 그들과 자기 자신의 비교, 그 간극, 어쩌면 좁힐 수 없는 그 거리에 대한 인식, 그리고 그들과는 다른 결과를 얻지 않을까 싶은 후배들을 보며 태우는 열망.
눈앞의 훌륭한 뮤지션이자 나의 우상은, 자신이 되고 싶었던 거대한 꿈을 우리에게 투영하고 있었다.
앞으로 계속 자신의 음악을 이어 나갈 음악가 박창희가 아닌, 까마득한 후배 밴드 럭키데이에게.
“국민밴드 소리를 듣고는 있다만, 형들도 이미 알고 있어. 우리에겐 더 이상 더 나아갈 연료가 없다. 잠깐씩 불태우며 지금까지 이뤄 낸 것들을 이리저리 포장해 낼 수는 있어도 그 이상은 무리야. 우리는 분명 좋은 가수, 좋은 밴드지만 위대한 음악가냐고 묻는다면 글쎄다.”
“그래도 디밴드인데요. 전에 나왔던 앨범도 꽤 잘나갔고…….”
“아니, 아니야. 더 나은 작업물을 낼 수 있느냐, 더 많은 판매고를 올릴 수 있느냐 따위의 문제가 아니야.”
그의 말이 너무 자신감 없게 들려 그들이 한국에서 손꼽히는 밴드라는 것을 상기시키려 말을 꺼냈지만, 박창희 베이시스트는 단박에 부정했다.
이건 명성, 실력 같은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라면서.
“원동력이지. 도약할 수 있는 원동력. 너희에게 남은 그 시간들은 험한 들판에 나가도 적응하게끔 도와주는 내면의 연료 같은 거야.”
분명 우리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데 어째서인지 그는 더 먼 곳을 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잘하는 연주자, 잘 부르는 가수가 아니라 진짜 락스타가 될 원동력. 발전 가능성과 재능, 지금 당장의 실력, 눈빛에서 환하게 보이는 열정. 우리와는 달리 너희 스스로 너희의 음악을 숨김없이 보여 주기 위한 그 고난의 여정에서 지치지 않는 원동력.”
예컨대 이런 말이다.
자신들은 미국 진출에 실패했다.
그것은 실력이 모자라서도, 재능이 없어서도 아니다.
은연중 있는 인종 차별을 극복하지 못한 탓도, 그들 사이에서 크게 힘을 쓰지 못했던 회사 탓도 아니다.
“욕심도 있었고 능력도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안 되더라고. 목적지가 눈앞에 보이는데 보폭이 안 맞아 닿지 않는 기분? 이제 와서는 알지. 첫 발자국부터 결승점을 바라봤어야 했다는걸. 그런데 그때는 몰랐어. 그냥 왜 안 되냐며 소리 지르고 발버둥 칠 뿐이었지.”
힘든 환경은 언어, 문화, 분위기에 익숙해지고 적응하도록 그들을 이끌어 주는 원동력을 잃게 했고, 너무나 부족했던 시간은 뿌리박고 내려서 당당히 맞서 싸울 기회를 주지 않았다.
험난한 타지에서 외롭게 싸우기에는 그들이 가진 것이, 그들이 굳건히 지킬 것이 너무나 많았다.
가족, 회사 동료들, 그들이 최고라 믿는 고국의 팬들.
“지금부터 더 큰 무대를, 세상에 나아가 맞서 싸울 준비를 한다면……. 너희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다.”
그러나 실패했기 때문에 갈망은 더욱 거대하다.
지금에 와서는 도전이라는 말을 쉽게 입에 올릴 수도 없을 나이가 되었지만, 그들 역시 피 끓는 열정을 갖고 전장을 향해 달려가던 돈키호테였으니.
“우리는 여러 이유로 포기하고 돌아와야 했지만, 우리 후배님들은 양코배기 놈들한테 한 방 먹여 줄 수 있을 테니, 그때를 위한 곡을 미리 만들어 두고 싶었어.”
그 꿈을 우리에게 맡겨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었을지도.
‘부담이…….’
뛰어난 선배에게 칭찬을 들어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는 동시에 부담감이 그것을 짓누르는 느낌이다.
과연 우리가 그 기대감을 충족시킬 수 있을까?
이렇게 대단한 사람들도 포기해야만 했던 해외 진출의 염원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끄덕.
나와 눈을 마주친 모두. 재우, 수현, 라희, 그리고 나까지 믿어 의심치 않는 단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카네기 홀.”
“매디슨 스퀘어……. 뭐였지?”
“가든.”
“아무튼 그거.”
“웸블리.”
우스갯소리처럼 하던 그 말.
카네기 홀, 매디슨 스퀘어 가든,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콘서트를 열겠다는 그 말.
“적어도 거기까진 가 줘야 얘네가 노래 좀 하는구나 하는 거지.”
“그렇지.”
“동감.”
공연 예술인들에게 성지처럼 받들어지는 그 공간을 우리의 음악으로 장식하겠다는 그 말을 언젠가 이루고 말겠다는 것.
“어쩔 수 없네요. 첫 곡은 무조건 이 노래로 시작하는 걸로.”
“결정!”
“좋아!”
“신나고 괜찮을 듯.”
우리는 당당하게 선배의 기대감을 물려받았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며 박창희 베이시스트는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그래. 그래야지. 그 정도는 돼야 미국도 가고, 영국도 가는 거지! 암!”
곡을 준다며 불러 놓고는 무언의 압박이나 다름없는 부담을 팍팍 줬던 게 무색하다는 듯, 언젠가 위대한 성과를 이룰 것을 자신하는 우리의 모습이 꽤 마음에 든 듯했다.
우리는 그의 꿈을 이어받기로 마음먹었다.
“근데 그러면 가사도 영어로 써야 되겠네?”
그때, 라희가 손을 번쩍 들더니 말했다
“음?”
“미국에서 불러야 되니까. 아닌가?”
맞는 말이다.
해외 진출을 겨냥하고 만든 노래이니, 가사 역시 외국인 청자들에 맞추어 만들어야 옳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한국어 버전이랑 영어 버전을 따로 만들면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만, 한국어 가사만으로도 충분히 나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그것만 해도 괜찮겠지. 물론 형 생각이야.”
박창희 베이시스트는 우리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말했지만, 역시 영어 가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당연히 내 생각도 같았다.
“관객들도 같이 따라 부르면서 뛰어야 하는데 말이 안 통하면 답답하겠지.”
상호 소통은 언제나 공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불리는 노래는 공연자와 청자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서로 감정을 공유하는 것에 있어 큰 장벽이 되고는 한다.
“형님 말처럼 한국어 가사랑 영어 가사를 모두 준비하는 쪽이 좋을 것 같아. 여기서도 부르고, 저 멀리서도 불러야 하니까.”
“좋지!”
“그, 그렇지……. 가사 뜻이 들려야 좋기도 하고…….”
라희와 수현이가 내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의 의사를 표했다.
라이브 공연을 좋아하는 녀석들인 만큼 즐거운 공연을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또 없을 것이다.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무대야말로 우리가 준비해야 할 과제였다.
그런데 그때.
“님들.”
재우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근데 영어 가사 쓸 수 있음?”
“앗.”
“어…….”
“어라.”
생각지 못한 난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