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95
94화
띠링!
폰이 울렸다.
수정본 보내놧다,,, 확인 후 연락요망,,, 아니 문자만 보내놔라,,, 형 잔다,,,
스트릿뮤지커의 상만 아저씨다.
지난 며칠 연이은 곡 수정 마라톤에 다소 지친 것인지, 문자에서 피곤해 죽겠다는 뉘앙스가 강하게 느껴졌다.
“오. 개굴개굴 수정본 들어왔다.”
“와! 빨리 들어 보자!”
“이따가. 일단 지금 하던 것부터 마쳐야지.”
“힝.”
우리는 현재 첫 앨범의 트랙리스트를 완성하고 열심히 녹음에 임하고 있다.
‘태호 녀석이 던져 준 조언 덕에 구성이 쉬워졌어.’
디밴드의 창희 형님에게서 1번 트랙인 burn it all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손 닿는 범위 곳곳에서 곡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았고, 내가 만든 곡 둘을 포함해 다섯 곡을 더 확보했다.
꽤 많은 곡들을 듣고, 받고, 수정하였고, 그중 앨범의 분위기를 구성하기에 좋은 곡들과 배치 순서를 철저히 계산했다.
결국 우리의 데모 앨범에서 썼던 기존의 세 곡, 회사를 통해 받아 둔 두 곡, 창희 형님과 상만 아저씨에게 각각 한 곡씩 두 곡, 내가 만든 곡 한 곡을 골라 앨범을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태호의 조언처럼, 닥치는 대로 쓸 만한 곡들을 주워 모은 후 하나씩 골라내니 구성이 매우 쉬워지더라.
‘내 입으로 하기엔 부끄러운 말이지만, 구성 자체는 참 옹골차단 말이지.’
딱 여덟 곡으로 앨범이라고 불릴 수 있는 최소만 맞추게 되어 조금 모자란 감이 있긴 했지만, 곡들의 퀄리티와 구성 자체는 다른 풀 패키지에 비교해 봐도 풍성함이 밀리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출중하다.
그야말로 만든 사람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훌륭한 창작물!
‘뭐, 그 고생을 해서 만들었으니 애틋하게 느껴지는 것도 당연한가.’
아무튼 이제 잘 녹음하고 잘 꾸며서 발매하는 일만 남았다.
두둥, 두두두둥! 채애애앵!
“오, 이번에는 대박 잘된 것 같은데? 쌤! 쌤!”
혼신의 드럼 파트를 녹음하고 나온 라희가 괴성을 지르며 뛰어다니자, 회사 녹음실의 엔지니어 동하 쌤이 웃으며 물었다.
“믹싱해서 들려주랴?”
“넹!”
지금 진행 중인 것은 라희의 드럼 파트 재녹음.
신동하 엔지니어가 화면에 입력된 사운드를 손보기 시작했다.
프리셋을 먼저 먹이고 소리를 들어가며 세심하게 믹싱을 하는데, 그 속도가 아마추어인 나나 재석 형 등과는 확실히 달랐다.
엔지니어링만 따지면 제우스 형님과 누가 우위인지 고민이 되었다.
아마 특히 볼륨을 잘 만진다거나, 소리를 비교적 매끄럽게 뽑아 낸다거나 하는 개성들이 있을 테니 우열을 가리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래도 전문가가 있으니 참 좋아. 아마추어끼리 믹싱 안 만져도 되고.”
아무튼 즉석에서 우리 녹음물의 믹싱본을 빠르게 들어 볼 수 있고, 여타 귀찮은 작업의 무게를 덜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너무나 편한 환경이었다.
자체 스튜디오에서 비전공자들끼리 만지는 데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으니까.
“루치, 루치! 들었어? 방금 나 되게 잘한 것 같아!”
“응, 잘했다. 대박. 와.”
“영혼 좀 챙기지?”
잠깐 생각에 빠진 사이 부스 밖으로 나온 라희가 엉겨 붙는다.
“이따가 녹음 끝나고 합주하러 가자. 응?”
“합주?”
요 며칠 동안 개인 녹음만 했더니 좀이 쑤시는 모양이다.
하긴, 메트로놈 소리만 틀어 두고 혼자 연주를 해야 하는데, 공연 좋아하는 이 녀석들이 얼마나 질리고 힘들었을지를 생각하면 이런 행동도 이해가 되긴 한다.
“녹음 다 끝나면 집에 가야지. 시간도 늦었는데.”
“아, 혼자 치는 건 재미없단 말이야! 벽 보고 대화하는 느낌이라고.”
“흠……. 애들 시간 되는지 물어보고.”
시간이 늦을 것 같아 만류하려 했지만, 고집이 황소고집이다.
어쩔 수 없이 시간을 조금 살핀 후, 잠시 자리를 비운 재우와 수현이가 돌아오면 물어보고 괜찮다면 녹음 끝나고 합주 몇 번 하고 나서 해산하기로 했다.
곧 음료수를 가지러 휴게실에 갔던 애들이 돌아왔다.
“라희 끝남?”
“그, 그럼 벌써 내 차롄가?”
“응. 근데 잠깐만. 우리 이따가 녹음 끝나고…….”
재우가 건네는 솔잎 향 음료를 받아 들며 녹음 끝나면 스튜디오 들러서 합주나 하고 가자고 제안하려던 그때.
범범범버! 뻠범범버!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
“응? 뭐지? 연락 올 데가 없는데?”
이제 상만 아저씨한테 곡 수정본도 받았겠다, 이 시간에 전화가 올 곳이 없어 의문이 들었다.
“일단 받으셈. 시끄러움.”
“맞아, 맞아. 녹음실에서 매너 없게 말이야.”
“에라이……. 잠깐 통화하고 올게. 여보세요?”
기회는 이때다 비난을 퍼붓는 녀석들을 피해 녹음실에서 나가며 전화를 받았다.
“아, 루치 군. 김 대표입니다.”
“앗, 네. 대표님.”
소속사 대표님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
그는 회사로 들어온 스케줄이 있다며 통화할 시간이 있냐 물었고, 나는 여유롭다 답했다.
“좋군요. 럭키데이 쪽으로 예능 섭외가 들어왔는데…….”
김주헌 대표는 우리에게 들어온 예능 프로그램을 대략적으로 소개했다.
연호랑의 싱 앤 톡.
신인 여럿이 출연해 토크도 하고 노래도 하는 방송인데, 대중들에게 주목받는 얼굴들이 많이 나오는 편이라 우리에게 잘 맞을 것 같았다.
“호오오……. 예능…….”
“앨범 발매 전에 얼굴을 비춰 두는 쪽이 아무래도 활동에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인데……. 어떻습니까?”
확실히 김 대표님의 말처럼 대중의 관심이 식기 전에 장작을 넣어 두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오디션 직후 물밀듯 들어오던 공연 행사 섭외도 그 빈도가 잦아지고 있는데, 다시 한번 눈도장 정도는 찍어 둬야 앨범 나왔을 때 클릭 한 번이라도 더 받을 수 있겠지.
‘나쁘지 않아.’
들어 보니 방송 시기도 좋다.
일정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녹음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을 때쯤.
방송 출연으로 부스터를 달고 앨범 발매를 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잠깐 생각을 하고 답했다.
“저는 일단 긍정적이에요.”
“다른 멤버들 의견이 필요하겠군요.”
“네. 얘기 좀 해 보고, 의견도 좀 나눈 후에 결정해도 될까요?”
“가능하면 지금 대화 나누시고 빠른 회신을 부탁드릴게요. 나름 좋은 기회라 저희도 빠르게 일감을 받아 챌 필요가 있거든요.”
“네, 알겠습니다. 금방 전화 드릴게요.”
“네.”
대표님과의 통화를 짧게 정리하고 나는 다시 녹음실로 들어갔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림?”
“리더가 자리를 오래 비우면 쓰나!”
“지, 직무유기!”
“자, 진정들 하시고. 중요한 얘기 있으니까 와 봐.”
이빨을 드러내며 물어뜯으려 드는 것을 말리고 다들 모여 앉게 한 후, 대강 섭외에 대해 공지했다.
프로그램 제목, 대략의 내용 등등.
설명을 다 끝내자마자 재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 프로그램 나가면 노래는 함?”
나는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다.
“방금 설명 안 들었냐?”
“그래서 노래함, 안 함?”
“하겠지.”
“그럼 난 찬성.”
“아.”
결국 중요한 건 그거구나 싶었다.
“나, 나도 괜찮을 것 같아.”
“나도!”
조금의 의견 충돌도 없는 만장일치.
시청률이 얼마나 나오는지, 프로그램 MC가 누구인지 따위는 애초에 애들의 고려 요인이 아니었다.
애초에 묻지도 않고 있다.
‘괜히 검색해 보고 들어왔네.’
통화 마치고 잠시 연호랑의 싱 앤 톡이라는 그 프로그램에 대해 찾아보고 온 것이 무색하게도 말이다.
“노래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거구나, 너희는.”
“당연한 거 아님?”
“밴드가 그럼 연주를 해야지, 토크만 하면 못 쓰지!”
“마, 맞아, 맞아!”
“그래도 일단은 토크쇼인데.”
“토크가 하고 싶으면 예능인으로 전업하셈. 보컬 따로 구해야겠네.”
“맞아, 맞아!”
“하……. 일단 알았다. 일 받는다고 할게.”
오랜만에 돌아온 루치 놀리기 타이밍에 정신을 못 차리고 떠드는 녀석들을 뒤로하고, 다시 녹음실을 나와 김주헌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대표님. 다들 나가고 싶어 하네요.”
나의 빠른 답변에 김주헌 대표는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좋군요. 그러면 참여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일정과 준비해야 할 점은 유성 매니저가 잘 정리해서 알려 드릴 거니까, 너무 긴장하지 말고 다녀오시면 됩니다.”
“네,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녹음 파이팅입니다.”
“넵!”
‘하긴 그동안 행사 몇 번 외에는 앨범에만 집중하긴 했지.’
앨범 제작한다고 바빠서 음악 프로그램을 포함한 몇 번의 예능 출연 제의를 모두 거절해 왔기 때문인지, 흔쾌히 수락한 이번 건수가 꽤 반가웠던 모양이다.
삐롱! 삐롱!
매니저 유성 형에게 메신저를 통해 일정과 인터뷰 예상 질문 같은 방대한 분량의 자료와, 곧 녹음실로 오겠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직접 만나서 자잘한 설명들을 해 줄 모양이었다.
잠시 집중력을 작업에만 쏟고 있자니 어느새 한 시간여가 지났고, 유성 형의 입장과 함께 녹음을 마무리 지었다.
“드디어, 드디어 매니저다운 일을 할 수 있게 됐어!”
그는 우리의 예능 출연 소식을 듣고 이제야 매니저다운 일을 하게 되었다며 기뻐했다.
“음……. 운전이 그렇게 좋아요?”
“우리를 실어 나르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는 건가!”
“무, 무서운 오빠였어…….”
“아니, 운전이 좋은 게 아니라……. 끙……. 어느 정도는 비슷하긴 한데, 그게 아니야.”
지금껏 자잘한 행사 몇 회를 제외하면 앨범 제작 작업에만 열중했기에, 곡 픽스나 작곡가 혹은 작사가 컨택, 장소 섭외 같은 잡무만 했던 유성 형이다.
그렇게 매니저로서 자신이 잘 도와주고 있는 것이 맞는지 회의감이 들고 있던 차에, 프로그램 섭외나 출연 대비 같은 보통 로드가 챙기는 일감이 생겼으니 적극적으로 일할 맛이 난다고.
“더 유명해져서 일감 많이 만들어 드릴게요.”
“하루에 두 시간만 자고 일해야 할 정도로 많이!”
“그, 그건 좀 심하지 않아?”
“그래? 그럼 세 시간!”
“아니, 얘들아…….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야…….”
유성 형의 등장으로 놀림의 타깃이 나에서 유성 형으로 바뀌었다.
‘이때다.’
나는 조용히 발걸음을 문밖으로 옮겼다.
‘살 사람은 살아야지.’
어쩐지 요즘 이상한 곳에 불이 붙은 애들을 누군가에게 맡겨 놓고 도망치는 일이 잦아진 것 같은데, 아마 기분 탓이려니 하면서.
* * *
“안녕하세요, 럭키데이입니다.”
인사성 모자라고 붙임성 없는 녀석들을 대표해 내가 인사를 건넨다.
“반가워요. 어이구, 우리 럭키데이. 오느라 고생 많았어요.”
“아닙니다. 회사에서 차로 금방이더라고요.”
“그럼 자주 와도 되겠네?”
“하하하. 불러만 주신다면 언제든지요.”
“어휴, 말도 참 예뻐. 대기실에 잠깐 있어요. 준비하고 현장 둘러볼 때 되면 부를게.”
“넵. 감사합니다.”
럭키데이로서는 처음 발을 들인 공중파 방송국.
스태프들도, 작가들도 예의 바른 고등학생 가수를 보고 기뻐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터.
낯가리는 두 놈을 대신해 나와 라희의 안면 근육이 열일하는 중이다.
“루치야, 꼭 이렇게 방긋방긋 웃어야 돼?”
“어른들한테는 그저 웃는 얼굴이 짱이야. 밝게. 활기차게. 학생답게.”
“으으. 안녕하세요! 럭키데이입니다!”
“옳지. 잘한다.”
우리는 다시 한번 공중파 예능이라는 전장을 우리의 어린 나이를 무기로 삼아 쉽게 헤쳐 나가고자 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다면 세상에 락스타 못 될 가수가 없었을 것이다.
“흠……. 여기 어린 친구들은 긴장도 안 하나 봐요?”
살짝 날 선 목소리가 귀에 꽂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