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99
98화
“같은 게스트의 노래로 섞어송을?”
“네. 저희가 사실 피넛버터 분들의 노래를 들어 봤는데, 섭외를 받고 나서 생각해 보니까 이런 식으로 엮어 볼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마치 미리 준비한 것처럼 운을 띄운다.
주변 사람들도 그에 맞춰 호응해 준다.
“오오. 이거 직접 듣는 거 처음이에요.”
“근데 음악 하시는 분들은 다들 한 번씩은 건드려 보는 거 아닌가요?”
“에이, 머니 코드가 뭔지, 어떻게 만들면 쉬운지 정도는 만져 봐도 이렇게 파고들어서 연주하는 건 특이한 일이죠.”
“확실히 럭키데이가 튀는 맛이 있다니까?”
“저희는 정상인데요!”
“저렇잖아! 절대 멀쩡한 사람들은 아니라니까?”
거기다가 연호랑이 중심이 되어 우리에게 비정상적인 녀석들이라는 이미지를 씌우고 있다.
‘캬, 좋고.’
나쁘지 않은 흐름이다.
‘어린 천재들 콘셉트 잡기에 딱 좋지.’
재능 있는 또라이들이라는 이미지 아래에서 우리 밴드 멤버들의 압도적인 재능을 보여 주고, 천재라는 무거운 이름값을 얹기에 딱 좋은 반응이다.
나중에 가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지만, 첫 예능 출연에서의 이미지 구축은 상당히 중요한 편.
꽤 훌륭한 지원 사격을 받고 시작하는 셈이다.
“그러면 럭키데이의 무대, 한번 감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MC의 진행과 함께 우리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끄덕.
평소처럼 서로 눈을 맞추고, 천천히 박자를 잡는다.
탁, 타다닥, 탁, 탁. 탁, 타다닥, 탁, 탁.
처음엔 라희의 퍼커션으로 4박을 정확하게 구분하고.
쟝 쟈쟝, 쟈쟈쟝, 쟝 쟈쟝, 쟈쟈쟝…….
기타 두 대와 베이스가 뒤를 이어 멜로디를 완전하게 구성한다.
그리고 입을 열어 천천히 노랫말을 뱉는다.
“울고 싶지 않아. 너와의 기억들을 묻어 두긴 싫어…….”
첫 노래는 피넛버터의 데뷔곡이자 첫 타이틀, xxx.
떠나간 연인을 원망하는 찌질한 가사가 청자에게 확 와닿는 노래다.
“오…….”
“잘해…….”
소리가 퍼지기 시작하자마자 사람들의 입에서 나직한 감탄사가 나온다.
‘좋아.’
좋은 현상이다.
원곡자가 바로 옆에 있는 와중에, 그들의 노래를 연주하고 있는 우리에게 환호를 보낸다?
우리가 아주 잘하고 있다는 신호 같은 것이다.
“울고 싶지 않아…….”
“울고 싶지 않아…….”
다음 마디로 넘어가며 기타에 집중하던 재우의 목소리가 끼어든다.
“오?”
“기타도 목소리 좋은데?”
노래 실력은 평범하지만 기본적으로 미성을 가지고 있어서 계속 깔아 둬도 질리지 않는 괜찮은 소리가 만들어진다.
원래의 멜로디를 부르던 내가 순간적으로 자리를 옮겨 윗줄의 화음을 만들었다.
“우리 노랫말을 잊어 가긴 싫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목소리.
꽤 듣기 좋은 하모니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은 그냥 한 노래를 멋지게 부르는 것이 아니다.
‘하나, 둘…….’
천천히 박자를 세고, 정확한 타이밍에 가사를 바꾸었다.
“떠나세요, 나를 두고, 다 가져가세요. 오오…….”
두 번째 노래, xxx와 같은 EP에 수록된 날 떠나요라는 곡의 후렴이다.
“이야!”
“자연스럽네.”
사실 조만 바꾸고 같은 진행의 머니 코드를 사용해 만든 곡이라고는 해도, 멜로디 진행에 굴곡을 조금 주고, 박자 조절로 강약과 장단을 조절하면 당연히 다른 노래가 된다.
하지만 즉석에서 같은 화음 안의 멜로디를 끌어내리거나 쳐올려서 곡의 굴곡이라는 것을 억지로 부드럽게 만들고, 박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고정해 아예 한 노래처럼 만들면…….
“울고 싶지 않아. 너와의 기억들을 묻어 두긴 싫어…….”
“마지못해 외쳐 봐요, 안녕, 어서 가세요…….”
이렇듯 자연스러운 섞어송이 완성된다.
마치 처음부터 한 노래였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노래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이거 똑같네!”
“다 같은 노래 아니야?”
“하하! 대박!”
빵 터지는 반응.
“이야, 화성 좀 팠나 본데?”
심지어 과묵함이 콘셉트인지 촬영 내내 조용히 있던 인디 밴드 데드록커스의 드럼도 말문이 트이는 기적이 일어났다.
“울고 싶지 않아. 우리 노랫말을 잊어 가긴…….”
“더 부드럽게, softy, softy…….”
네 마디의 반복 직후 이어지는 세 번째 곡 버터 트럭.
역시나 살짝 교정해 같은 박자로 부르니 찰떡같이 엉겨 붙어 자연스러웠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네 마디를 반복한 후, 다시 첫 곡의 후렴으로 아련하게 노래를 마무리 지었다.
“울고 싶지 않아…….”
“울고 싶지 않아…….”
자라라랑.
스트로크를 길게 죽 긁으며 소리를 천천히 줄였고, 꽤 격렬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 럭키데이! 럭키데이!”
“크아아! 오랜만에 장기자랑 진짜 제대로 살았네! 우리 데드록커스! 럭키데이! 이거 이거, 다음 주부터 나오는 출연자들 무서워서 어떡하란 거예요!”
괜찮은 환호였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동안 슬쩍 보이는 피넛버터 놈들의 확 구겨진 표정 덕에 더더욱 기분이 좋았다.
“이야, 이게 어떻게 이렇게 이어지지?”
“그러게요, 하하하. 완전히 한 곡인 것처럼 그냥 찰떡같이…….”
무대가 끝난 후에도 한동안 토크는 섞어송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그……. 노래에 사용된 코드가 다 비슷한 진행으로 이뤄져 있어서 되는 겁니다. 이게 아예 한 곡인 건 아닌데, 진행이 같으면 아무래도 연결해서 들었을 때 비슷하게 들릴 수밖에 없죠…….”
“아하, 그렇군요. 확실히 음악이라는 게,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이태균 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한정된 코드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노래가 다 비슷해서 가능한 것이라고 얼버무리는 현태섭과, 출연자의 면을 완전히 뭉갤 수는 없기에 대충 호응해 주는 연호랑.
“그렇죠, 그렇죠.”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하지만 공격이 여기서 끝나면 조금 섭섭하지 않겠어?’
물론 여기서 멈출 생각은 없었다.
나는 완전히 뭉개 버리고 싶다고.
저 녀석들을.
“아, 근데 편곡만 잘 만지면 비슷한 코드로 아예 다른 노래처럼 꾸밀 수도 있어요.”
“네?”
내 언급에 연호랑이 잠깐 멈칫하더니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냈다.
“그게 가능한가요?”
분량 한번 제대로 뽑을 수 있겠다는 듯, 피넛버터에 대한 실드는 잠시 접어 두고 우리에게 포커스를 맞추겠다는 것으로 보였다.
“당연히 가능하죠. 즉석 편곡으로도 돼요.”
“오오오. 그러면 저희가 또 안 보고 넘어갈 수는 없겠죠?”
멍석이 깔렸다.
“한번 해 보겠습니다.”
나는 순수한 척 미소를 지으며 다시금 멤버들과 합을 맞췄다.
끄덕.
잠깐 휴식 시간이 있었을 때 이미 맞춰 본 노래들이다.
편곡 역시 그때 끝낸 상태이지만, 즉석 편곡이라고 말해도 굳이 굳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울고 싶지 않아…….”
딱, 따닥, 딱에서 딱, 따다닥, 따닥으로.
“너와의 기억들을…….”
위에서 평이하게 진행되던 멜로디를 살짝 요동치게.
“우와, 진짜 아까랑 크게 다르게 만드네?”
“즉석에서 저게 된다고?”
여기서는 멜로디 연주자인 재우와 보컬인 내 순발력이 중요하다.
‘조금 더 튀게.’
주요한 멜로디 라인에 조금 더 튀는 음을 섞어 가며 개성을 과하게 강조한다.
세 곡을 한데 엮어 하나처럼 들리게 하려던 아까와는 정반대의 목적을 가진 연주이니, 아예 다른 곡처럼 들리는 것도 당연했다.
‘잘 보고 있나?’
현태섭이 입술을 깨물고 부들거리는 것이 보인다.
당연한 반응이다.
‘이 간단한 걸 너희는 왜 못 했냐고 놀리는 꼴이니까.’
사실 피넛버터 입장에선 억울할 노릇일 것이다.
곡을 받고 나름 잘 편곡해 꾸민 노래들인데, 코드 진행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한 조로 통일해서 앞뒤로 가져다 붙이니 자연스레 비슷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그래, 여기까지는 괜찮다.
‘아무리 토크 진행을 통해 밑밥을 깔아 놨다지만, 그냥 재밌다고만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을 테지.’
하지만 곡을 살짝살짝 건드려 조금 비슷하구나 싶은 이미지를 만들어 씌워 놓고, 직접 연주해 아예 다르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아니 이런 곡이었어?”
“원래는 조금 비슷하게 들렸던 것 같은데, 이렇게 들으니까 또 완전 다르네?”
대비 효과.
일부러 비슷하게 만들어 연주해 놓고, 그 이후 멜로디 라인을 곡의 일관성이나 메인 멜로디의 조화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위아래로 튀게 해 강제로 개성을 강조해 부르니 다르게 들리는 것이 당연하다.
까드득.
그러나 모두 같은 머니 코드를 차용해 만든 노래임은 엄연한 사실이고, 연주와 노래 자체를 워낙 잘해 놔서 모두 내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상황.
쉽게 말해 설득력을 강제로 부여해 버린 것이다.
‘화가 많이 난 모양이네?’
심지어 신기하고 재밌는 놀이인지라 분위기도 확 살아나서 어떻게 반박을 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 노래 실력이 좋다.
“이야…….”
“이 노래가 이렇게 바뀔 수가 있구나…….”
피넛버터의 이미지를 완전히 씻어 낼 정도로 말이다.
그들로서는 답답해 죽을 지경일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시비는 너희가 먼저 털었잖아? 달게 받아라.’
가만히 있는 우리에게 돌을 던진 대가는 치러야지.
편집 좀 당하고, PD와 MC에게 눈초리 좀 받는 정도는 모자라다.
시비의 대가는 너희의 위상을 깎아 내고, 우리가 흡수하는 방식으로 받아 가겠다.
좌자장!
“감사합니다.”
세 곡을 연달아 완주하고 무대를 마무리했다.
“와아아아!”
“노래 진짜 잘한다.”
“대박, 대박.”
이미 촬영장은 우리의 영역이 되었다.
* * *
장기자랑 코너에서 뺨이 얼얼할 정도의 강펀치를 피넛버터에게 선사한 후, 스포트라이트는 완전히 우리에게 몰렸다.
간간이 김희정 보컬에게 비트박스는 언제부터 했느냐, 다음 앨범 계획은 언제냐 등의 질문이 가기는 했지만, 피넛버터는 형식적인 토크 참여 빼고는 거의 투명인간 취급을 당했다.
‘분위기가 완전히 먹혀 버렸는데, 화면에 계속 비춰 주는 것도 좀 그렇지.’
이번 촬영에서 재밌는 장면을 뽑아낸 것은 우리와 데드록커스였으니, 피넛버터에게 후반 분량을 주려야 줄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제작진도 시청률 생각을 해야 할 테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 상황에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
“야! 이 자식들 어디 있어! 나와!”
특히나 우리 때문에 자기 몫을 온전히 챙기지 못한 이들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콰앙!
닫혀 있던 대기실 문을 거칠게 열고, 현태섭과 다른 피넛버터 멤버들이 들어왔다.
“너희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거냐? 응?”
그는 멱살이라도 잡으려는 기세로 우리에게 다가왔고, 입으로는 거친 말을 내뱉으며 우리를 위협하려 들었다.
하지만 가만히 눌려 있을 내가 아니다.
“시비는 그쪽이 먼저 걸지 않았나?”
우리 애들과 놈들의 사이를 가로막고, 내가 모든 시선을 받았다.
“선빵 쳤으면 맞을 생각도 했어야지? 안 그래?”
“이 자식이…….”
놈이 있는 힘껏 도발하는 나를 이를 갈며 노려봤지만 별로 두려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칠 생각도 없겠지만, 치면 더 좋고. 아니면 말고.’
애초에 이런 녀석에게 맞는다고 큰 문제 생기지 않는다.
육체적 충돌에 있어서 나는 프로 격투 선수와 대적하지 않는 이상 쉽게 밀리지 않으니까.
오히려 진짜 주먹질을 하려 든다면 대충 맞아 주고 그쪽 회사에 책임을 물릴 생각이었다.
‘안 싸우는 게 제일 좋겠지만, 맞아 주는 것도 나쁘진 않아.’
안 그래도 저쪽 회사의 일에 깊게 파고들 여지를 만들 방법이 요원했는데, 그렇게 된다면 쉽게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다툼은 비교적 싱겁게 끝나게 되었다.
“혹시 싸우는 겁니까?”
MC 연호랑 님께서 등판함으로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