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106)
EP.106 준동(8)
관정에게 병사 일부를 떼어주며 원소의 추격군을 막은 공손찬은 군을 서둘러 위로 물렸다.
그러고선 넓지 않은 다리를 건너 강 건너편에 군을 주둔시켰는데, 원소는 공손찬이 다리 건너편에서 방어를 굳힌 모습을 바라보곤 자기도 똑같이 강 끄트머리에서 진형을 굳혔다.
발목을 붙잡던 후속 부대를 무찌른 원소.
전예 등이 이끌고 온 지원군과 군대를 합친 공손찬.
서로 사이에 계교라는 넓지 않은 다리를 낀 형태로 두 세력은 계속해서 교전을 이어나갔다.
두 세력이 이끌고 온 병사 숫자는 엄청나게 많았으나, 그 병사들이 전투를 벌이기엔 사이에 낀 다리가 너무나도 협소했다.
자칫 잘못하면 미끄러질 수 있는 아슬아슬한 전장에 빽빽이 들어선 병사들은 기를 쓰며 서로를 밀어내려 했다.
어떤 병사는 멀리서 날아온 화살을 맞고 쓰러졌으며, 또 어떤 병사는 날카로운 창칼에 맞고 숨을 거뒀다.
발을 잘못 디뎌 깊은 강 속으로 떨어지는 인원도 있을 정도로 치열한 전투였다.
“저 원가 년에게 우리가 어떤 인물인지 톡톡히 보여줘라!”
공손찬이 휘하 정예 병사들을 독려하며 원소군을 무찌르기 위해 고함을 질렀다.
“저들은 기주를 약탈하고 짓밟으려 했던 도적떼입니다! 그대들의 가족을 위해 결코 물러나시면 안 됩니다!”
원소도 공손찬의 포악한 면을 계속 언급하면서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이거 참 골치아픈 상황인데!”
기주에서 이름난 맹장 중 하나인 문추는 손에 들고 있는 극을 휘둘러 앞에 있던 병사의 머리를 짜부라트렸다.
마음 같아서는 혼자 파고들어 진형을 붕괴시키고 싶었으나 저들이 저항이 너무나 격렬했다.
기껏 저들 사이를 파고들어봤자 얼마 가지도 못할 것이고, 그다음에는 겹겹이 둘러싸인 포위망을 상대하며 탈출도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 천하무쌍이라 불리는 여포라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거 생각할수록 아쉬워! 내가 패배하더라도 한 번 쯤은 붙어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문추 곁에서 전투를 이어나가던 안량이 의아한 기색을 보였다.
안량과 맞서던 공손찬의 병사는 안량이 찌른 창에 안면을 꿰뚫리고 피를 내뿜으며 쓰러졌다.
문추는 유쾌한 듯 입을 열었다.
“호로관 전투 말하는 거다! 천하무쌍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 늘 궁금했거든!”
완전히 전투의 열기에 휩싸인 문추를 바라보며 안량이 고개를 저었다.
“아서라 아서. 그러다가 죽는다.”
“그걸 붙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아나!”
문추는 대화를 이어나가면서 공손찬의 병사를 연이어 쓰러트렸다.
“소문대로라면 우리 둘이 동시에 덤벼도 상대가 안 될 테니까.”
안량은 그리 말하며 공손찬의 병사를 꿰뚫었다.
만인지적(萬人之敵).
모든 사람을 통틀어도 감히 감당할 자가 없다는 뜻으로, 모든 이가 경외와 존경을 담아 붙여주는 호칭.
역발산기개세라 불리는 초패왕 이후 그 호칭이 붙은 인물들은 모두가 공통점을 하나 지니고 있었다.
정말 같은 인간이 맞나 싶을 정도로 더럽게 강하다는 것.
안량이 혀를 쯧쯧 차면서 말했다.
“그런 놈들과 만나면 꾀를 써서 함정에 빠트릴 생각을 해야지 직접 무기를 맞대다간 단합에 목이 떨어질 거다.”
“하하! 자네는 너무 겁이 많은 게 탈이라니까!”
문추가 호탕하게 웃으며 안량의 말을 가볍게 넘겼다.
“어휴.”
그런 문추의 반응에 안량은 한숨을 내뱉었다.
안량은 문추가 저러다가 언젠가 전장에서 죽어버리지 않을지 살짝 걱정됐다.
공손찬의 병사들은 문추와 안량이 적을 쓰러트리기 무섭게 곧장 자리를 다시 채우며 반격해왔다.
안량은 수많은 적군이 다리 너머에서 바글바글 몰려있는 걸 바라보곤 눈가를 찌푸렸다.
이 지지부진한 싸움을 대체 언제까지 이어나가야 하는지 살짝 의문이 들었다.
──────────
나는 자택으로 돌아오는 길에 원소와 공손찬이 계교에서 한판 붙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공손찬은 내 예상대로 초전에 국의에게 허를 찔려 원소군에게 제대로 박살 났다.
자신이 자랑하는 백마의종과 기병들이 적지 않은 피해를 입자 공손찬은 군사 일부를 후방에 남겨놓고 허겁지겁 달아났다는데, 화가 꽤 많이 났겠지.
그렇게 군사 일부를 버림말로 쓰고 위쪽으로 달아나던 공손찬은 계교를 사이에 둔 채 원소와 대치를 이어나갔다.
내게 보고가 오는 시간을 생각하면 이미 붙어도 여러번 붙었을 테니 양측 모두 서서히 진이 빠져 헉헉거리고 있지 않을까.
그래도 아직 정말 지쳤는지 모호했으니 조금만 더 시간을 두고 칙사를 보내 둘의 전투를 중재하기로 했다.
‘이거 슬슬 힘든데?’보다는 ‘더이상 못해먹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야 싸움을 멈추지 않겠는가.
원소는 몰라도 공손찬은 그런 상황까지 몰려야 전투를 그만둘 놈이었다.
칙사가 빨리 갔다가 만약 거절이라도 당하면 본래 역사보다 계교 전투가 더 길어질 수 있었다.
그런 변수는 별로 달갑지 않은 일이니까 안전하게 가야지.
결정을 내린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제 슬슬 앉아있기도 귀찮아져 내가 자리에 누우려는 그때 바깥이 살짝 소란스러워졌다.
“……?”
우당탕 쿠당탕 까지는 아니었지만 뭔가 소란스럽다 느낄 정도는 되는 정도.
이에 내가 의문을 느끼며 바깥쪽을 바라보자 내 방문이 천천히 열리는 걸 볼 수 있었다.
“주인님.”
방문을 열고 내 방에 들어온 초선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호칭으로 나를 불렀다.
나는 반쯤 누워있던 몸을 다시 일으킨 다음 초선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지?”
“주인님을 뵙고자 하는 분이 찾아왔습니다.”
“손님?”
휴식을 취하고 있는 내게 굳이 초선이 찾아왔다는 건 꽤 귀한 사람이라는 뜻인데.
초선은 이제 내 집안의 대소사를 관장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흠….”
내가 살짝 고민에 빠지자 초선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묵묵히 내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잠깐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
서서히 해가 저물면서 세상이 주홍빛으로 물드는 시간.
굉장한 석양이라 말하면서 마치 끝을 맺어야 할 광경을 바라보던 나는 입을 열었다.
“여기로 데려와.”
“네. 주인님.”
들을 때마다 가슴 속이 간질간질해지는 호칭이었다.
나는 살짝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주인님?”
“…….”
그때 내 호위를 서며 나를 지켜보던 서여가 툭 중얼거렸다.
서여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단어가 나오자 나는 흠칫 놀라면서 서여를 바라보았다.
“…왜 그래?”
내 물음에 서여는 아주 살짝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걸 눈치챘는지 서여는 어렴풋이 미소지었다.
“주인님.”
“…….”
왠지 앞으로도 쭉 주인님이라 불릴 기분인데.
나야 좋으니 상관없다.
정릉 님 같은 딱딱한 호칭보단 남자의 로망을 자극하는 주인님이란 호칭이 훨씬 좋지 않겠는가.
그렇게 잠깐 기다리자 문 바깥에서 인기척을 내며 아직 소녀라 부를 수 있는 여인이 내 방으로 들어왔다.
방에 들어온 소녀는 연신 쭈뼛거리면서 입을 열지 못했는데, 나는 그런 소녀의 외모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비단결처럼 곱고 아름답게 늘어져 있는 청은색 머리카락.
마치 다이아몬드를 보는 것 같은 맑고 깨끗한 청은색 눈동자.
아름다운 여인이 많은 이 세계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아름다움.
내가 눈가를 살짝 좁히면서 정열적인 눈빛을 보내자 내 앞에 서 있는 소녀는 얼굴을 붉히곤 살짝 고개를 돌렸다.
분명 과거에 본 적 있는 외모인데.
어디서 봤더라.
청은색…. 청은색….
아하.
잠깐 고민에 빠져있던 나는 무릎을 탁 치면서 말했다.
“마초구나?”
“……네.”
내가 자신을 알아본 것에 기뻤는지 소녀는 부끄러운 표정 그대로 밝은 분위기를 드러냈다.
“이게 얼마 만이냐. 반갑다.”
성인식을 치르고 얼마 되지 않았는지 마초는 여전히 풋풋한 모습을 보였다.
마초 맹기.
마등이 말하길 조금만 더 준비가 필요하다며 나중에 올 것이라 말하던 아이.
“마음의 준비는 전부 했나 봐?”
“그, 그건….”
내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묻자 마초는 다시 얼굴을 붉히곤 슬금슬금 물러날 낌새를 보였다.
“다시 생각해보니 조금만 더 준비를….”
“어림없는 소리. 왔으면 이미 끝난 거야.”
어딜 도망가려고 해?
나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마초의 어깨를 붙잡았다.
“불편하게 서 있지 말고 일단 앉아. 우리 어디 한 번 밤이 될 때까지 천천히 대화를 나눠보자고.”
“밤이 될 때까지 천천히…?”
뭘 상상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마초는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초가 자리에 앉은 걸 확인한 나는 미소지으면서 방금 내가 앉았던 자리에 똑같이 앉았다.
나는 익숙한 자세로 마초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 그동안 뭐 하고 지냈어?”
“서량에서 불순분자 놈들을 손 봐주고 다녔어요.”
“…….”
깜빡이도 키지 않고 훅 들어오네.
이제 막 성인식을 치른 아름다운 소녀라 생각되지 않을 말을 마초가 내뱉었다.
방금까지 쭈뼛거리면서 부끄럼을 타던 소녀는 어디로 갔지?
나는 분명 가볍게 물어본 건데.
“대장군이 이렇다 저렇다 하면서 불평불만을 내뱉던데, 자기 주제도 모르는 놈들이 감히 누굴 보고….”
차가운 표정으로 읊조리던 마초의 말투가 딱딱하게 변했다.
“그래서 처리했습니다.”
뭘 처리해?
왠지 물으면 안 될 것만 같은 기분이라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사이에 마초는 나를 바라보곤 다시 환한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시대에서 오는 관점의 차이인가.
나는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초선의 주인공 호칭 문제로 소설을 아주 살짝 수정했습니다!
진짜 딱 한 줄밖에 없었네요!
이제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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