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121)
EP.121 조숭(6)
“이것들 봐라.”
도적들이 저택에 들어왔단 보고를 받자마자 기병을 이끌고 돌아온 하후돈은 조숭의 저택 앞에 북적북적 몰려있는 도적들을 보고 감탄사를 흘렸다.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은데?”
맹덕의 아버지가 아무리 부자라지만 저렇게 많은 인원이 나누면 떨어지는 건 별로 없지 않을까.
재물의 값어치가 각각 얼마나 될지 모르는 하후돈으로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렇다고 한들 지금 자신이 집중해야 하는 일은 그게 아니었다.
하후돈은 방금 조조와 조숭의 저택에서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동탁이 장안에 대화재를 일으킨 건 알고 있나?
맹덕은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기에 앞서 한 가지 사건을 언급했다.
──지금 이 천하에서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어?
동탁의 장안 대화재.
낙양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을 대도시를 하루 만에 초토화한 동탁의 어마어마한 악행.
그 잔악무도한 행위에 눈이 돌아간 대장군이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서량까지 도망간 동탁을 잡아 죽인 건 유명한 이야기였다.
자신이 그리 반응하자 맹덕은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동탁이 어째서 장안에 불을 질렀는지 아나?
──…….
그런 것까지는 몰랐다.
자신도 동탁이 장안을 초토화했단 소식을 들었을 때 ‘와…. 미친놈이네.’라 반응했을 뿐이었다.
자신이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자 조조는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열었다.
──굳이 이유를 붙이자면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결국 그리 행동한 이유는 별거 아니다.
──그게 뭔데?
──그냥 저 얄미운 놈에게 좋은 걸 주기 싫다는 어린아이 같은 이유지.
──세상에.
하후돈은 조조의 의견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 말이 맞다면 동탁은 그냥 대장군에게 멀쩡한 도시를 주기 싫다는 이유로 장안의 무고한 백성 수십만을 태워 죽였다는 게 아닌가.
이건 상상보다 더한 미친놈이었다.
──내가 지금 이러려는 이유도 그때 동탁과 비슷하겠군.
──…….
──원양. 부탁 하나만 하지.
조조의 눈길이 자신에게 향하자 무언가를 직감한 하후돈이 골치 아픈 표정을 지었다.
하후돈 그녀도 그렇게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편은 아니었다.
──…이야기가 이렇게 흐르면 대충 무슨 부탁이 나올지 예상 가는데.
──그렇다면 설명할 걱정을 덜겠군.
조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이곳에 있는 것들, 전부 불태워버리도록.
조조의 계획을 떠올린 하후돈이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가끔 보면 맹덕도 이상하단 말이야.”
자신의 아버지가 그렇게 아까워하는 수많은 재산을 조조는 망설임 없이 태워버리라 명령했다.
조숭이 어여삐 여기는 자식이 직접 설득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조숭은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됐다면 꽤 많은 사상자를 냈을 터.
부모와 자식 간의 끈끈한 정은 이런 시대일수록 더욱 빛을 발했다.
자신들을 눈치챈 도적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걸 바라보며 하후돈이 크게 외쳤다.
“가자──! 전부 불 질러버려──!!”
“와아아아아──!”
선두에 선 하후돈이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는 도적들에게 대도를 휘두르며 짓쳐들었다.
──────────
“…이게 무슨 소리지?”
하후돈이 바깥에서 기병들을 이끌고 공격을 시작했을 무렵, 장개는 여전히 조숭의 저택 안에서 물품들을 약탈하고 있었다.
“두, 두목! 큰일 났소!”
장개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부하 하나가 급한 표정으로 헐레벌떡 달려왔다.
근처까지 다가온 부하에게 장개가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리 소란스럽나?”
“조, 조조! 조조군이 다시 군을 돌려 쳐들어왔소!”
“뭣이라?”
부하의 보고를 들은 장개가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서둘러 도망가야 하오! 지금 우리 애들이 기병들한테 우수수 죽어 나가고 있…!”
“하하하하!”
그때 장개가 난데없이 웃기 시작했다.
장개에게 보고를 올리던 도적이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두목? 갑자기 왜 그러는 거요?”
“기껏 살려줬더니 굳이 죽으러 온 게 우스워서 그렇다.”
이놈이 드디어 실성해버렸나?
도적이 의문스럽게 바라보자 장개는 전부 이해한다는 듯 아이를 달래는 듯한 어조로 자신감의 이유를 설명했다.
“생각해 봐라. 우리 숫자가 얼마나 되느냐?”
“…….”
“저들은 지금 기세를 탔을 뿐, 우리가 혼란을 수습해서 수적 우위를 살려 공격한다면 물리칠 수 있다!”
…그런가?
병법에 무지한 도적은 그런 장개의 말에 그저 그런가 보다 하며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장개가 명령을 내렸다.
“일단 공격당하고 있는 놈들은 포기하고 주변에 있는 놈들을 수습해서 진형을 유지해라.”
“…알았소.”
자신의 동료가 죽든 말든 신경 쓰지 말라는 계획이었으나 애초에 동료애라곤 쥐뿔도 없는 도적 무리였기에 부하는 장개의 명령을 순순히 따랐다.
“감히 겁도 없이 공격하다니, 이 어르신이 본때를 보여주지.”
장개가 소름 끼치게 웃으며 그리 말하기 무섭게 저택 곳곳에서 불길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불이 번지며 매캐한 연기가 내부를 뒤덮자 장개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 이게 뭐냐?!”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개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불이 번지는 속도가 너무나도 이상했다. 마치 기름이라도 발라놓은 듯한….
…묘하게 이상한 냄새가 나더라니, 그게 설마 기름 냄새였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장개는 불에 타죽기 전에 허겁지겁 저택 바깥으로 달아났다.
장개가 바깥으로 빠져나올 때는 이미 저택 주변 곳곳에서 살육이 벌어지고 있었다.
“으아아악!”
“뜨, 뜨거워! 아무나 좀 꺼줘!”
이미 조숭의 저택들은 모두 불이 붙은 채 검은 연기를 사방으로 피워올리고 있었다.
저택 근처를 둘러싸던 담장도 이미 반쯤 무너져 내렸고, 장개의 부하들은 혼란에 빠진 채로 비명을 지르며 조조군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 다녔다.
장개는 자신이 방금 내보냈던 부하가 머지않은 곳에 눈을 부릅뜨며 죽어있는 걸 발견했다.
“이런 씹…!”
지금 어떤 상황인지 파악한 장개는 욕지거리를 내뱉곤 자리에서 달아났다.
이놈들은 여기 있는 재물들이 아깝지도 않은 건가?
어떻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불을 지를 수 있는 거지?!
장개는 기병이 쉽게 날뛸 수 없는 시가지라는 점을 살리려 했으나 조조군은 이에 불을 지르면서 아예 전장 자체를 뒤바꿔버렸다.
사방에서 불길이 피어오르는 걸 보면 이미 군을 수습하긴 글렀다.
막대한 숫적 우위를 살려 적과 맞붙는 것도 아군이 싸울 의지가 있을 때 이야기지, 이래서야 영 가망이 없었다.
지금도 온몸에 불이 붙은 채 뛰쳐나오는 놈이 있는데 뭘 어떻게 하겠는가.
저택 주변에서 대기하던 놈들도 슬금슬금 물러나는 것을 보니 이젠 여기서 어떻게 달아날지 고민해야 했다.
몇몇 인원은 달아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무기를 들고 조조군에 저항했으나 전부 헛된 반항이었다.
기수가 위에서 무기를 휘두르는 동안 말이 놀고만 있겠는가.
그 육중한 덩치로 사람을 들이받고 걷어차고 하면서 엄청나게 날뛰어대는데 평범한 사람으로선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너 어디 가냐?”
그때 자리에서 벗어나는 장개의 귀로 자신을 부르는 듯한 젊은 미성이 들려왔다.
장개가 시선을 돌려보니 담청색 머리카락의 여인이 어깨에 대도를 걸친 채 말 위에서 장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미 여러 명을 벤 모양인지 여인의 어깨에 걸친 대도에서 핏방울이 뚝뚝 흘렀다.
장개는 불안한 마음을 애써 숨기고 눈앞의 여인에게 고함을 질렀다.
“비켜라! 비키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
“오, 그거 좀 기대되는데.”
여인은 장개의 위협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넘겼다.
“근데 가능하겠어? 날 죽이겠다니.”
“…얕보지 마라!”
여인의 대도가 자신에게 겨눠지자 장개는 전투를 피할 수 없음을 느꼈다.
장개는 허리춤에서 여인과 비슷한 사이즈의 대도를 꺼내 들었다.
“감히 주제도 모르고 죽음을 재촉해?! 좋다! 덤벼라!”
“그래.”
장개가 그리 말하기 무섭게 여인은 곧장 말을 몰며 장개에게 순식간에 다가왔다.
“그러면 어디 한번 막아봐.”
“!!”
장개는 눈을 크게 뜨며 여인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팔을 들어 올렸다.
까앙!
여인과 장개의 무기가 맞부딪치자 고막이 얼얼해질 정도의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윽!”
그대로 자신의 무기를 놓쳐버린 장개는 팔이 얼얼한 걸 느끼며 인상을 찌푸렸다.
장개가 들고 있던 대도는 잠시 허공을 부유하곤 땡그랑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졌다.
“뭐야, 이게 끝이야?”
여인은 싱겁다는 표정을 짓곤 말을 이었다.
무기를 주우러 가면 저 여인이 단번에 목을 날려버릴 걸 알기에 장개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결국 장개는 자리에 넙죽 엎드리며 소중히 품던 보석들을 여인에게 내밀었다.
“워, 원하는 건 전부 드릴 테니 살려주십시오!”
“그 와중에 챙길 건 또 챙겼네?”
여인은 감탄하면서 장개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여인이 장개에게 물었다.
“원하는 건 전부 준다고?”
“그렇습니다! 말씀만 해주신다면 뭐든지…!”
장개의 말을 듣던 여인은 갑작스럽게 자신의 무기를 휘둘렀다.
몸을 잃은 목이 데구르르 굴러가는 걸 보며 하후돈은 툭 중얼거렸다.
“어떻게 도적놈들은 행동하는 게 늘 똑같냐.”
평소에는 범죄를 일삼다가 형세가 불리해지면 냅다 투항하며 목숨을 구걸한다.
척 봐도 대장인 것 같아 자신이 직접 상대해주러 왔건만….
도적은 결국 도적이란 건가.
구역질 나오는 놈들이 손맛도 영 별로라 하후돈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후돈은 장개의 시체를 무시하고 주변을 쭉 둘러보았다.
전의를 완전히 상실한 도적들은 무기도 내버려 둔 채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무방비한 상태로 달아나는 도적들.
하후돈은 그런 도적들을 놓아줄 정도로 자비로운 인물이 아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독자 여러분 메리 크리스마스!
작가는 추우니까 집에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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