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123)
EP.123 부곡(2)
대장군(大將軍).
군사의 통수권을 관장하는 한나라 최고의 무관직.
한나라 시절 대장군은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자신의 군사 행동 시 부곡(部曲, 중국 후한 말기에 지방의 치안이 문란해질 것에 대비하여 장군이나 지방의 호족이 거느리도록 인정받은 군부대.)을 만들어 활동할 수 있다는 것.
이러한 부곡(部曲)을 만들고 거기에 속관(屬官, 장관에게 속한 관원.)을 임명할 수 있는 권리는 승상, 대장군과 같은 최고위 관직에만 부여된 막강한 권력이다.
쉽게 말해 개인 사병 조직을 만들고 거기에 장수까지 따로 임명할 수 있도록 나라에서 허락을 내렸다 보면 된다.
부사관과 병사를 말하는 사병(士兵)이 아니라 다른 의미의 사병(私兵)이다.
사병(私兵)이 어떠한 뜻을 가진 단어인가.
권세를 가진 개인이 사사로이 길러서 모집한 군대를 뜻하는 단어다.
한나라 군대라는 틀 안에 대장군의 군대라는 또다른 군대가 독립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것.
부곡에 속한 이들은 죽을 때까지 주인을 따르는 게 보통이고, 그렇기에 부곡은 말 그대로 온전히 그 주인만을 위한 부대였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부곡을 이끄는 장수인 속관에 임명해줄 수 있냐 물어보는 인물과 마주하고 있었다.
“내 부곡의 속관이 되고 싶다고?”
“예.”
나는 유비의 말에 얼떨떨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고, 유비 곁에서 잠자코 대화를 듣던 관우와 장비도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혹시 말리려는 걸까.
관우와 장비가 어느 선택을 고르든 나는 상관없었다.
“…….”
“…….”
나는 잠깐 그 둘을 지켜봤으나 관우와 장비는 금방 차분해진 듯 원래의 표정을 되찾았다.
마치 유비의 제안을 이해한 듯한 기색이라 나는 더 얼떨떨한 모습을 보였다.
대장군의 부곡은 보통 교위가 지휘하는데, 모두가 생각하는 그 교위가 맞다.
금군을 지휘하던 서원팔교위 중 하나, 전군교위를 맡았던 조조가 아주 대표적인 인물이지.
그래봤자 금군을 지휘할 수 있던 실질적인 권력은 상군교위 건석이 전부 쥐고 있어 의미는 없었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뱉고 말했다.
“……내 부곡의 속관이 되어봤자 기껏해야 교위 관직에서 끝날 텐데?”
“상관없습니다.”
왜 이렇게 단호하지.
나는 유비의 태도에 의문을 느끼다가 한 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유비는 아마도 더 높은 관직을 위한 디딤돌로 교위 관직을 이용하려는 게 아닐까.
삼국지 연의에서 반골의 상이라며 외모 비하당하던 위연도 본래 역사에서는 부곡장을 시작으로 정서대장군까지 아주 파격적인 승진을 거듭한다.
나는 내 부곡에 속할 필요가 없다는 의도를 담아 말을 이었다.
“그대의 공을 생각해서 부곡을 이끄는 교위직이 아니라 지금 당장이라도 장군직을 내려줄 수 있다.”
비록 좌장군, 우장군과 같은 사방장군보다 급이 낮은 잡호장군이었지만….
그래도 더 높은 관직을 향해 도약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기엔 충분했다.
애초에 교위보다 더 급이 높은, 무관의 최고 단계를 바로 장군이라 불렀다.
이를 보면 잡호장군이라 해도 무시할 관직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겠지.
겉모습은 순해 보이나 유비도 분명 권력욕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이런 의도로 내 부곡에 들어오려 하는 거겠지.
삼국지 연의에서 황건적의 난 때 수많은 공을 세웠음에도 고작 현령직에서 그치자 유비 일행이 상심했단 표현이 나오더라고.
애초에 아득바득 바닥에서 기어 올라 황제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권력욕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말을 이었다.
“더 높은 관직을 위해 내 부곡에 들어오려는 것이라면 굳이 그럴 필요 없으니 다른 원하는 걸 말해봐라.”
“아니요.”
그러나 내 예상과 달리 유비는 단호하게 내 제안을 부정했다.
“저는 곁에서 대장군을 보좌하기 위해 이런 요청을 한 겁니다.”
“…….”
과거부터 유비를 볼 때마다 느낀 거였지만 유비도 은근 마구잡이로 행동하는 기질이 보였다.
뒷일 같은 건 생각 안 하고 단신으로 낙양에 들어와 경비병에게 붙잡힌 일이라든가, 내가 얼떨떨한 표정을 짓든 말든 시킬 일이 있으면 자신에 맡겨달라 부탁하는 저돌적인 모습.
유비는 조금 더 속되게 말하자면 흔히 말하는 막가파라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지금도 원하는 게 있느냐는 말에 무작정 내 속관이 되고 싶다 주장하고 있지 않나.
이유는 모르겠으나 지금 속관이 되고자 하는 유비의 모습이 진심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내가 잠깐 침묵을 지키자 유비가 살짝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혹여 제 요청이 폐가 되었는지요.”
“아니, 그런 게 아니다.”
나는 서둘러 유비의 물음을 부정했다.
그 유비가 내 속관이 되어 수족처럼 행동해준다면 나야 좋지.
심지어 유비가 오면 행사 기념품처럼 그 만인지적 관우와 장비가 같이 딸려온다.
이거 완전 사장님이 미쳤어요 수준의 이벤트가 아닌가.
“그대가 내 속관이 되어준다면 나야 환영할 일이지. 허나 정말 그래도 되겠는가?”
“예.”
다시 한번 괜찮은지 묻는 내 질문에 유비는 수긍하는 태도를 보였다.
나는 살짝 시선을 돌려 유비와 같이 내게 예를 취하는 관우와 장비를 바라보았다.
“그대들도 이에 만족하나?”
내가 둘에게 묻자 관우와 장비는 각자 개성이 있는 대답을 했다.
“저는 현덕 님의 결정을 따를 뿐입니다.”
관우는 자신의 외모와 어울리는 차분한 어조로 내게 답했다.
“그게 언니의 선택이라면야 뭐….”
장비도 얼떨떨한 기색이 남아있었으나 유비의 선택에 수긍했다.
관우와 장비의 이런 반응을 보니 내가 유비를 정말 속관으로 임명한다 한들 반감을 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래. 유비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으니 이런 부탁을 하는 거겠지.
나는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이 남아있었으나 고민을 멈추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다면 유비 현덕.”
“네.”
“그대는 이제 대장군부의 속관이다.”
유비는 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감사를 표했다.
“대장군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은혜라고 할 것까지 없다.”
나로서는 오히려 유비가 장군직을 마다한 게 의문이니까.
정말 나를 곁에서 보좌하기 위해서일까.
그건 앞으로 쭉 지켜보면 천천히 알 수 있겠지.
결정을 내린 나는 유비 일행에게 나중에 따로 부르겠다 이르고 이만 자리에서 물러나라 했다.
──────────
대장군과의 만남이 끝나고 자택으로 돌아가던 유비는 문득 뒤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고마워.”
“…?”
유비의 갑작스러운 감사 인사에 관우와 장비는 무슨 소리냐는 듯 의문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유비는 자신의 의자매를 바라보며 싱긋 미소지었다.
“내 결정에 질문도 하지 않고 담담히 따라줬잖니. 그걸 말하는 거야.”
“…방금 제가 대장군께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현덕 님의 선택을 따를 뿐입니다.”
유비의 설명에 관우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현덕 님의 안목이 틀릴 리도 없고, 저 자신도 개인적으로 대장군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응? 그건 처음 듣는데.”
이번에는 관우의 의견을 들은 유비가 의아한 기색을 드러냈다.
“저희가 낙양에 온 뒤 오랜 시간이 지났지요.”
그런 유비의 반응에 관우는 여느 때와 같은 모습으로 말을 이었다.
“그 시간 동안 저는 대장군이 어떤 인물인지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
“이 시대에 흔하지 않은 인(仁)과 의(義)를 아는 인물.”
관우는 거기까지 말하더니 정말 흔치 않게도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런 어진 군주를 제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이유가 있겠습니까?”
유비는 관우의 말을 듣고 관우를 마주 보았다.
관우의 청명한 파란색 눈동자 안에는 대장군에 대한 한점의 미혹조차 담겨있지 않았다.
“…….”
관우가 드물게도 사대부(士大夫, 벼슬이나 문벌이 높은 집안의 사람.)에 속하는 인물과 충돌을 일으키지 않았다.
잠깐 침묵을 지키던 유비는 장비를 바라보며 자그마하게 물었다.
“…익덕도 운장과 마찬가지니?”
“응? 나?”
유비의 질문에 장비는 자신을 가리켰다.
“나는 운장 언니처럼 인(仁)이라든가 의(義)라든가 어려운 말은 잘 모르는데, 하여튼 낙양에서 불합리하게 핍박받는 사람은 없었잖아.”
장비는 거기까지 말하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난 그것만 봐도 현덕 언니가 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를 알겠던데?”
“그렇구나.”
말을 잇던 장비는 이윽고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볼을 긁적였다.
“…그리고 뭐, 사람 자체도 꽤 마음에 들고 말이야.”
“…….”
장비의 말을 들은 유비는 살짝 다른 쪽으로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자신의 의동생들은 무언가 계기가 생기면 그대로 넘어가 버릴 듯한 모양새였다.
어쩌면 계기가 없어도 그냥 넘어가 버릴 수 있었고.
유비는 이를 지적해줄까 잠깐 고민하다가 말을 아끼기로 했다.
만약 자신의 예상대로 된다면 그 또한 재밌고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대장군이 안다면 부들부들 떨만한 일을 떠올리던 유비가 살짝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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