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125)
EP.125 부곡(4)
나는 내게 아부를 떨어대던 관리의 비리를 우연히 발견했고, 기록을 잠깐 살펴보며 전후 사정을 따져본 다음, 이놈이 탐관오리라는 판단이 들자마자 부곡을 이끌고 곧장 쳐들어갔다.
탐관오리는 내가 쳐들어오자 당황한 기색을 보이면서도 침착한 표정으로 날 응대했는데, 왜인지 그 모습이 아주 익숙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 탐관오리는 아주 호화스러운 대접을 해주며 뇌물을 바치곤 내게 용서를 구했다.
자신은 이미 비리에서 손을 턴 지 오래되었으니, 이걸 받고 눈감아주시면 안 되겠냐며 간절히 부탁하더라고.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이놈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았는지 잘 알 수 있었다.
‘비리에서 손을 털었다고?’
‘그렇습니다 대장군.’
‘그런 것치곤 최근 장부가 이상하던데.’
‘…….’
내가 과장된 몸짓으로 장부를 바라보는 시늉을 취하자 바로 합죽이가 되는 꼴이 볼만했다.
이런 놈들은 저번 낙양 물갈이할 때 싹 다 처리한 줄 알았는데 아직도 남아있는 놈이 있을 줄이야.
장부가 아주 교묘하게 조작되어 있어서 눈치채는 게 늦었다.
지금 발견하게 된 것도 이놈이 최근 비리를 저지르면서 우연히 덜미가 붙잡힌 게 컸으니까.
확실히 능력 하나는 인정할 만한 놈이야.
만약 덜미를 붙잡지 못했다면 이놈이 과거에 저질렀을 수많은 비리도 결국 묻혔을 거다.
지금 생각하니 좀 괘씸하네.
운 좋게 안 걸렸으면 그냥 감사합니다 하면서 마음 고쳐먹고 평생 착하게 살아야지, 또 사고를 쳐?
하긴, 그게 자기 의지대로 조절되는 거였으면 아예 시작부터 하지 않았겠지.
그러니까 나는 새사람이 될 수 있게 친히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나라의 재산을 빼돌리고 백성을 수탈한 죄를 지금 한나라에서 어떻게 처리하는지 아나?’
‘…….’
탐관오리는 열심히 대책을 강구하고 있었는지 내가 질문을 던졌음에도 침묵을 지켰다.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
얼마나 두뇌를 필사적으로 굴리고 있으면 내 말도 못 듣는 걸까?
그러다가 머리에서 연기 나오겠다.
나는 정신 좀 차리라는 뜻을 담아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아무리 운이 좋다 한들 전 재산 몰수는 기본이다.’
내 말을 들은 탐관오리는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었고, 나는 전혀 개의치 않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관계자는 전원 노비가 되지.’
‘…….’
‘이제 상황 파악이 좀 되나?’
나는 그리 말하면서 탐관오리에게 미소지었다.
이놈이 비록 능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능력 하나만 보고 봐주기에는 이미 선을 한참이나 넘어버렸다.
애초에 부정부패 때문에 한나라가 지금 이런 꼴이 됐거늘, 능력이 좋다고 봐줘?
어림도 없는 소리지.
이제 이놈에게 남은 건 죗값을 치르는 일밖에 없었다.
내 말을 들은 탐관오리가 눈을 감으면서 말했다.
‘…제게 남은 길은 하나뿐이군요.’
‘그래. 얌전히 구속되면 이것 이상 죄가 더 늘어나지는 않을….’
‘멀리 도망쳐서 새 출발을 하는 수밖에요.’
‘…응?’
그리 말한 탐관오리는 내게서 거리를 확 벌리곤 주변에 외쳤다.
‘뭐 하느냐! 빨리 나와서 저놈을 막아라!’
‘예!’
탐관오리가 말을 꺼내기 무섭게 험상궂게 생긴 남성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과연 뒤가 구린 놈답게 자신이 궁지에 몰리자 질 나쁜 무리가 거대한 저택 곳곳에서 튀어나왔지.
나는 대수롭지 않은 모습으로 말했다.
‘이놈들은 또 누구지?’
‘제 하인들입니다!’
아무리 봐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척 봐도 이런저런 트집 잘 잡을 것 같은 악질 사채업자처럼 생겼는데 하인이라고?
너무 외모 차별적인 발언이 아닌가 싶지만 그들이 그때 지어 보였던 험악한 표정을 생각하면 확실히 단순한 하인은 아니었다.
애초에 돈으로 장난질을 치는 놈이었으니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내게서 거리를 둔 탐관오리가 외쳤다.
‘대장군이라도 제가 이러는 이유를 이해하실 겁니다!’
얌전히 잡혀가서 재산 다 잃고 노비가 될 거냐, 위험 부담은 크지만 재산 일부를 챙기고 달아나서 새 출발 할 거냐.
그를 떠올린 나는 탐관오리의 행동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이해한다.’
‘그렇다면….’
‘근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이해가 간다고 해서 지금 이 행동을 봐줄 수 있겠냐.
나는 냉정한 태도로 탐관오리와 거리를 뒀다.
‘공무 집행에 저항하는 모습까지 보였으니 이제 더 이상 여지가 없군.’
‘큭….’
난 곁에 있는 관우에게 명령을 내렸다.
‘나중에 본보기를 보여야 하니 목숨은 붙여놔라.’
‘예.’
잠깐 바라보니 관우의 사파이어 같은 파란색 눈동자가 마치 차갑게 얼어붙은 것 같았다.
떳떳한 삶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관우 입장에서 부정부패를 저지른 탐관오리란 용서할 수 없는 존재겠지.
그 뭐냐. 관우는 한 마디로 강강약약이니까.
부러질지언정 결코 숙이지 않는 자존심 덩어리.
상황을 확인한 서여는 나를 호위하기 위해 내 주변에 바짝 자리 잡았다.
‘뭐, 뭐 하는 거냐! 어서 막아라!’
탐관오리는 관우에게서 슬금슬금 멀어지며 거리를 뒀고, 그 사이에 탐관오리가 부른 하인들이 관우의 앞을 가로막았다.
모든 게 들통났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냥 이판사판으로 달려든 건데, 정말로 의미 없는 반항이었다.
‘…….’
관우는 보기만 해도 살벌한 청룡언월도를 든 채 척척 걸어 나갔고,
‘꾸웩!’
‘꽥!’
앞을 가로막은 험악한 인상의 하인들을 굵은 자루나 옆면으로 하나씩 후려치며 차근차근 때려눕혔다.
죽이지 말라니까 정말 죽이지만 않네.
앞을 가로막던 탐관오리의 하인들은 전부 무언가가 부러지는 소리를 내며 의식을 잃었다.
이게 그 박쥐맨식 불살인가.
저 엄청나게 무겁고 두꺼운 무기로 얻어맞는데 멀쩡한 게 더 이상한 거겠지.
이윽고 관우가 하인들을 전부 때려눕히자 탐관오리의 안색이 겁에 질린 듯 새하얘졌고, 관우는 아주 절묘한 힘 조절로 어디 하나 부러지는 곳 없이 탐관오리를 기절시켰다.
역시 관우는 관우였다.
──────────
“운장과 사이가 데면데면해서 걱정이라고요?”
“그래.”
탐관오리를 포박하고 조정으로 돌아가는 길.
관우와 장비가 서로 대화를 나누느라 여념이 없을 때 나는 슬쩍 유비에게 다가가 고민을 털어놓았다.
“내가 무슨 말을 걸어도 늘 단답만 나오니 분위기가 자꾸 어색해지더군.”
“흐음….”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관우는 날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건가?”
내 걱정스러운 질문에 다시 사근사근한 말투로 돌아온 유비가 대답했다.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정말로?”
“네.”
그리 말한 유비는 날 바라보며 싱긋 웃어 보였다.
“운장은 운장 나름대로 대장군께 최대한 살갑게 다가가는 거니까요.”
“…….”
“저도 운장에게 언니라 불려본 적이 한 번도 없답니다.”
유비는 관우가 부끄럼을 너무 많이 타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진짜 얼마나 말재주가 없으면 그럴까….
“운장이 평소 사대부와 어떤 마찰을 빚는지 알면 깜짝 놀라실 거예요.”
“…그렇군.”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가 방금 말했다시피 관우는 전형적인 강강약약 스타일이었다.
병졸과 백성 같은 아랫사람들에는 관대한 면모를 보였으나 이름 높은 인물들과는 늘 다툼을 벌이는 인물.
그에 반해 장비는 사람들을 군자와 소인으로 나누어 군자를 예우하고 소인에게 가혹한 모습을 보였다.
얘는 강약약강 스타일이구만.
생각할수록 신기하네.
어떻게 행동이 이렇게 극과 극으로 나뉠 수 있지.
관우의 성격을 아주 잘 드러내는 일화가 하나 있다.
관우가 번성 부근을 공격하자 위나라는 이에 방덕과 우금을 출진시켜 관우에게 맞서게 하는데, 하필 그때 비가 엄청나게 내려 위나라 병사는 졸지에 워터파크를 즐기게 되고 관우에게 죄다 붙잡히게 된다.
방덕이 처형되고 우금이 항복하면서 포로가 된 위나라 병졸 수만 명.
출진 전에 미방이 군량을 날려 먹어서 가뜩이나 먹을 게 부족한 상황인데, 포로로 붙잡힌 위나라 병졸이 수많은 병량을 먹어 치우자 관우군은 병량 부족에 시달렸다.
이에 관우는 한 가지 해결책을 생각해낸다.
그 해결책이 바로 무엇이냐?
바로 동맹국이었던 손권의 군량을 멋대로 가져다 쓰는 것이었다.
손권 입장에서 머리 위에 물음표 수십 개는 띄울 행동이지.
소인을 아끼고 사대부를 무시하는 게 바로 느껴지지 않는가.
보통이라면 적국의 포로를 쳐내고 말지 동맹국의 군량을 멋대로 가져다 쓰진 않는다.
자신의 의동생인 장비와 달리 관우는 소인에게 매우 관대한 인물이었다.
본래 역사의 관우는 언행이 서로 완전하게 일치한 빠꾸 없는 상남자였다.
그러니까 손권보고 쥐새끼 같은 썅욕도 내뱉지.
결국 그런 태도 때문에 손권과의 사이가 틀어져 명을 달리한 걸 보면 너무 솔직한 것도 생각해볼 일이었다.
유비는 날 바라보더니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비록 말재주 없는 부끄럼쟁이 동생이지만 잘 부탁드릴게요.”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관우는 자부심이 너무 커 교만한 게 문제고, 장비는 소인을 돌보지 않는 것이 문제니 이것들을 어떻게든 고쳐야겠지.
근데 그것들을 대체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사람 성격이라는 건 그리 쉽게 바뀌는 게 아니니까….
고민이 참 깊어지는 날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롱다이트 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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