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131)
EP.131 강동의 호랑이(6)
최근 양양성의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에게 맡겨달라면서 당당히 군을 이끌고 출진한 장수가 별다른 전공도 세우지 못한 채 패전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양양성 바로 앞까지 손견군이 들이닥쳤을 무렵, 관청에서 문무관을 불러모은 유표가 한 인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언가 할 말이라도 있나?”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병사는 병사대로 잃고 사기는 사기대로 떨어트린 패장이 유표에게 무릎 꿇었다.
“허어….”
유표는 탄식을 감추지 못하고 한숨을 내뱉었다.
그때 문관 사이에서 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채모 장군이 좋은 계책을 듣지 않아 결국 크나큰 패배를 겪고 돌아왔으니 군법에 따라 마땅히 참수하여야 합니다.”
괴량이 유표에게 조언을 올리자 채모는 얼굴이 시퍼레졌다.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주군!”
채모가 유표에게 바짝 엎드리며 사죄하자 유표는 자신의 주름진 미간을 찡그렸다.
“…….”
“…….”
그렇게 유표가 생각에 잠기자 숨 막히는 침묵이 가라앉았고, 잠시 고민하던 유표는 결정을 내렸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사실상 용서와 다를 바 없는 말이 나오자 채모는 얼굴을 활짝 피고 유표에게 절을 올렸다.
괴월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하오나 주군….”
“그만하거라.”
괴월의 말을 끊은 유표가 말을 이었다.
“채모는 내 후처의 오라비다. 한 번 패배했다고 내가 그를 벌한다면 어떤 낯으로 가족을 봐야 한단 말인가?”
“…주군의 뜻이 그러하다면 따르겠습니다.”
유표가 자신의 후처를 아끼고 있음을 안 괴월은 순순히 자리에서 물러났다.
채모는 자신의 목이 달아나지 않았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표도 단지 후처를 아끼기 때문에 채모를 용서한 것이 아니었다.
유표가 형주자사에 부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형주의 실권을 틀어쥘 수 있었던 건 형주 호족들의 조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유표는 늘 호족들의 눈치를 살피며 행동해야 하는 문제점이 있었고, 형주 유력 가문인 채씨 일족과 혼인을 맺은 것도 그 일환이었다.
채모의 죄를 용서해주는 걸 계기 삼아 형주 출신 호족들의 입김을 줄이고 형주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더 확보할 수 있었으니, 유표로서도 채모의 죄를 용서해주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다 여겼다.
이렇듯 유표와 형주 호족들은 주도권을 둔 정쟁을 자주 벌였는데, 유표는 그럴 때마다 연주를 다스리고 있는 조조가 떠올랐다.
듣자 하니 조조는 호족이 아주 자그마한 틈이라도 보이는 순간 마구잡이로 그들을 쳐내버린다 하던가.
더 놀라운 건 조조가 그런 행동을 보임에도 연주 호족들이 조조에게 반항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
중앙 정부에서 나름대로 온갖 경험을 쌓아온 자신마저 호족들의 눈치를 살피는데, 조조는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 것이었다.
조조도 결국 그 이름 높은 조씨 가문의 양손녀라는 건가.
십상시의 숙부를 때려죽일 때부터 알아봤지만 결코 얕볼 수 없는 인물이었다.
유표가 말했다.
“앞으로도 채씨 가문은 형주의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명에 따르겠습니다.”
채모는 유표의 눈빛에서 자신을 용서해준 의도를 눈치채고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도 눈치가 있는 인물이었으니 알 수 있었다.
나중에 여동생에게 쓴소리 좀 듣겠구나.
그저 가문의 이름을 드높이겠다는 공명심에 빠져 상대의 역량을 잘못 판단하는 실수를 저질렀으니 채모로선 할 말이 없었다.
채모가 그리 생각하고 침울해할 때 유표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문관을 바라보았다.
“적들을 맞이할 준비는 끝났는가?”
“예. 주군.”
이번에는 괴량이 아닌 괴월이 대답했다.
“남은 병사들로 도랑을 더 깊게 파고 성벽을 최대한 높이 쌓아 올렸습니다. 아무리 강동의 호랑이라 불리는 손견이라한들 이 양양성을 쉽게 뚫을 수 없을 겁니다.”
“지원 요청은?”
“방금 문제없이 출발했습니다.”
조조는 도적을 토벌하기 위해서 직접 군을 이끌고 출진했다 들었으니 현재 유표에게 지원군을 보낼 수 있는 세력은 원소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버티는 일뿐이군.”
괴월의 말을 들은 유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 양양성이 최후의 보루라 생각하고 손견군과 맞서도록.”
“예!”
제장들은 유표의 말에 의문을 표하지 않고 순순히 명을 따랐다.
여러 가지 유리한 요소가 겹친 양양성에서 적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강하로 물러난다고 한들 금방 뚫릴 것이 자명했다.
──────────
손견은 양양성에 대한 포위망을 펼치다가 불현듯 찾아온 전령을 바라보았다.
“수상한 자를 붙잡았다고?”
“예! 그자의 품을 뒤져보니 이런 것이…”
전령은 서찰 한 장을 내밀었고, 손견을 그를 펼쳐 천천히 내용을 읽어보았다.
“그렇군. 머리를 좀 굴렸어.”
“뭐라 적혀 있죠?”
서찰을 읽던 손견이 고개를 끄덕이자 곁에 있던 손책이 물었다.
손견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원소에게 지원군을 요청하는 서신이군.”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요.”
내용을 꼼꼼히 읽은 손견이 서신을 버리면서 말했다.
원소에게 전달되지 못한 서신이 땅바닥을 구르면서 더러워졌다.
“이번에는 운이 좋았다.”
손견은 근처에 있던 부관을 불러 명령을 내렸다.
“지원 요청이 한 번으로 끝날 리가 없으니 경계를 더 철저히 하도록.”
“예!”
부관은 손견의 명을 받들며 자리를 나섰다.
손견군의 포위망이 서서히 완성되고 있었다.
──────────
포위망을 단단히 한 손견군이 드디어 공성전을 개시했다.
공성전이 늘 그렇듯이 수비 측의 병사들은 힘찬 함성을 내지르며 성벽 아래로 화살을 발사했다.
비록 도랑을 더 깊게 파고 성벽을 높게 쌓았다지만 손견도 온갖 전장을 진전한 장수였으니 이에 익숙하게 대응하며 유표군을 점차 압박해왔다.
유표군은 뜨거운 물을 붓고 돌을 떨어트리는 등 손견군에 맞서 최대한 대항했으나 날이 갈수록 점차 지쳐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에 유표가 제장들을 불러 상의했다.
“아직도 원군 요청에 대한 답이 오지 않았나?”
“예.”
유표의 질문에 괴량이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괴량의 대답에 유표가 의아한 기색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이상하군. 전령이 떠난 시간을 생각하면 원소 세력에서 진작 반응을 보일 터인데….”
원소와 원술의 관계를 생각했을 때 원술이 형주를 집어삼키는 걸 원소가 잠자코 지켜보고 있을 리 없었다.
아무리 공손찬의 공세가 거세다 한들 기주를 집어삼킨 원소가 아무런 여유도 없는 건 아닐 터.
심지어 자신과 척을 진 공손찬이 원술과 손을 잡았으니 원소는 이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지원군을 내려보내리라 생각했다.
이윽고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한 유표가 괴월에게 물었다.
“원소에게 보낸 전령이 도중에 붙잡힌 것 같나?”
“…예.”
괴월이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자 유표는 골이 아프다는 듯 한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허어. 일이 이렇게 흘러가다니. 정녕 하늘이 손견의 손을 들어주신단 말인가.”
“주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번 전령을 보내시지요.”
괴월의 제안에 유표가 물었다.
“조조는 아직도 도적떼를 토벌하고 있나?”
“예. 어떻게든 정보를 얻어보니 청주 지역 도적떼를 토벌한 조조는 직접 군을 지휘하면서 서주로 향했다 합니다.”
“서주라…. 그건 또 무슨 의도인지.”
도겸 그 늙은이는 자신의 경계가 침범당하는 걸 지켜보고만 있을 인물이 아니다.
백이면 백 조조를 내쫓아내기 위해 군대를 출진시킬 것이 분명한데, 조조도 그를 모르지 않을 터.
조조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서주로 향했는지 유표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유표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으니 생각을 되돌렸다.
“결국 지원군을 요청할 대상은 원소밖에 없는 건가.”
“그렇습니다.”
“어쩔 수 없군.”
유표는 주변 제장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손견군의 포위를 뚫고 서찰을 전달하러 갈 인물이 있는가?”
“소인에게 맡겨주십시오!”
유표의 물음에 한 맹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여공(呂公)이 앞길을 가로막는 손견군을 뚫어내고 원소에게 지원을 요청하겠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대에게 맡기지.”
유표로서도 더이상 방법이 없는지라 당당한 모습의 여공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중요한 임무를 맡은 여공이 손견군을 돌파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괴량이 슬그머니 다가와 입을 열었다.
“양양성을 빠져나가면서 제 계책을 하나 따라보시지 않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오?”
괴량의 제안에 여공은 의아한 듯 물었다.
괴량이 말했다.
“제가 어제 천문을 살펴보니 별 하나가 금방이라도 꺼질 듯 일렁거리는 걸 보았습니다.”
“흠….”
“그 별은 분명 손견의 것이 분명했으니 조만간 손견에게 큰일이 생길 터.”
괴량은 그리 말하더니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잘하면 여기서 호랑이를 사냥할 수 있겠습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최근 손견 파트가 길어지는 것에 대해 의견이 많이 나오시더라고요!
이 파트가 중요하냐고 여쭤보시면…. 네. 중요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지금까지 유비(촉나라)와 조조(위나라)에게 개인 파트를 하나씩 할당해주었죠!
유주자사 파트가 그랬고 조숭 파트가 그랬습니다!
이제는 손견(오나라) 차례가 된 것이죠!
본래 역사에서 손견은 조조와 동갑이었으나 무려 30여 년이나 일찍 죽어버렸습니다!
그러면 조조가 지금 몇 살이냐고요?
……ㅎ.
독자님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삼국지에서 훗날 오나라를 일으켜 세운 손씨 일가는 손견의 죽음으로 아주 큰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그렇기에 손견에 대해 다루는 파트를 보다 길게 다룰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대한 빨리 끝내보겠으니 독자님들의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2화 정도면 끝날 거예요!
유비 파트와 조조 파트는 반응이 괜찮았는데 유독 손견 파트만 이런 의견이….
이 작가, 오나라의 인기를 실감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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