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137)
EP.137 장성(將星)(4)
“미안하군. 아무리 백방으로 모집해도 의원이 찾아오지 않고 있어.”
원술이 눈앞에 있는 인물에게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적갈색 머리카락을 지닌 여인이 침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노력해주시는 것만 해도 감격할 따름입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말은 그렇게 했으나 원술은 오히려 이런 감사 인사를 듣는 게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 힘이 닿는 곳까지는 최선을 다해볼 터이니, 마음을 편히 먹고 낭보를 기다리도록.”
“…알겠습니다.”
손책은 원술에게 아주 간단히 예를 올리며 몸을 휙 돌렸다.
그런 행동을 본 원술의 문관이 기가 찬다는 듯 손책을 손가락질했다.
“저 무슨 무례한 년이…! 식량이 없어 굶어 죽을 뻔한 놈들을 원공께서 친히 거두어주었거늘, 감히 그 은혜도 모르고 예의 없이 구는 건가!”
“…….”
자리에 우뚝 멈춰선 손책은 고개를 돌려 문관을 바라보았다.
“부, 불만이라도 있느냐!”
손책의 서늘한 눈빛이 자신에게 향하자 문관은 그리 외쳤다.
비록 당당하게 외쳤으나 얼굴이 파랗게 질리며 몸을 덜덜 떠는 것이 꽤 안쓰러운 모양새였다.
그렇게 관청 안에서 싸늘한 분위기가 감돌 때, 원술이 불현듯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원윤, 최근 손장군의 심신이 어지러워 그러는 것이니 이해해주게!”
“아, 알겠습니다.”
원술을 모시던 문관, 원윤이 그 말에 서둘러 대답하며 손책의 눈빛을 피했다.
얼핏 살펴봐도 피로한 기색이 역력한 손책에게 원술이 말했다.
“손장군도 화를 거두게나. 내 사촌이 나에 대한 충심이 너무나도 커 자신도 모르게 실수를 저질렀을 뿐이니.”
“…예.”
여기서 이들과 대립해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달은 손책은 최대한 화를 삭였다.
그를 확인한 원술은 짐짓 자애로운 미소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이만 물러나 보게. 자식 된 도리로서 아픈 부모를 간호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 않나.”
“선처에 감사드립니다.”
손책은 방금과 달리 공손하게 예를 올리고 그곳에서 물러났다.
손책이 방을 나서고 문이 닫히자마자 원술의 문관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의견을 내뱉었다.
“주군, 손견도 이제 위독한 상태인데 이쯤에서 그들의 세력을 흡수해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손견 휘하에 있는 장수들이 저희에게 편입된다면 패권을 노려보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습니다.”
자기들 딴에는 손책이 이를 못 들을 거로 생각하는 모양.
하지만 뛰어난 신체 능력을 지닌 손책의 귀에는 그 의견들이 여지없이 들려왔다.
손책은 듣기만 해도 속에서 천불이 나는 말들이 등 뒤에서 오가는 걸 무시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손견의 병사들이 지키는 자택으로 돌아오자마자 딱딱하게 굳었던 손책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이 빌어먹을 새끼들이….”
원술은 그저 자애로운 모습을 연기할 뿐 실질적인 도움은 하나도 주지 못했다.
훗날 공을 세우면 자신을 태수의 자리에 앉히겠다 약속했으나 그게 말뿐이란 걸 모를 손책이 아니었다.
아버지 때부터 계속 이어져 왔던 푸대접, 알게 모르게 날아오는 원술 세력의 멸시 어린 시선들.
마음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검을 빼든 채 관청으로 쳐들어가고 싶었으나 그게 무모한 일이라는 건 손책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원술의 모략으로 인해 손견의 세력이 조금씩 깎여나간 지금, 한때 강동의 호랑이라 불렸던 강대한 위세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손견의 세력은 이 저택에 있는 인원이 전부였다.
“하아….”
손책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었다.
하다못해 무언가라도 때려 부수지 않으면 화가 안 풀릴 것 같았지만, 지금 이 건물에 아픈 아버지가 있다는 걸 떠올리니 손책으로선 차마 손이 나가지 않았다.
어떻게든 냉정을 되찾은 손책이 자조하듯 말했다.
“이러다가 화병 나겠네.”
“그게 무슨 소리야?”
손책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마중 나온 주유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꽤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냈음에도 손책은 놀라지 않고 담담히 말을 이었다.
“지금 우리 상황을 봐. 답답할 수밖에 없잖아.”
“흐음….”
주유는 손책의 말을 듣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
손가의 구심점이었던 손견이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그에 동요한 장병들이 하나둘 손견군을 이탈하는 상황.
비록 이탈하는 장병은 극소수였으나 현재 손견군 입장에서 그 극소수의 병사들조차 매우 아쉬운 상황이었다.
손견이 연합군에 호응해 자신의 본거지였던 장사를 벗어난 이후 손가를 따르는 병사들의 숫자는 점차 줄어가기만 했다.
원술에게 여러 지원을 받으면서 전투를 치르긴 했으나 전장에서 손가의 병사들이 아예 피해를 보지 않기란 불가능했다.
많은 전장을 진전하던 손견군은 점차 피해가 누적됐고, 세력이 작아질수록 원술 세력에서 손견의 입지는 조금씩 좁아졌다.
이에 손견이 원술에게서 독립할 마음을 먹었을 무렵 갑작스럽게 큰일을 당한 것.
곧 때가 머지않았다는 말을 손책이 직접 들었다 했으니 아마 확실할 것이다.
만약 원술이 배포가 큰 인물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과연 백부의 아버지가 원술에게서 독립할 마음을 먹었을까?
주유로서는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주유가 한 손으로 턱을 붙잡고 고개를 살짝 숙이며 고민에 빠져있을 때 그를 지켜보던 손책이 툭 말했다.
“이야. 한 폭의 그림이네 그림.”
“…또 그런 소리를.”
거의 탈색된 것과 가까운 백금발.
옆머리 일부를 살짝 기르고, 뒷머리는 단발로 짧게 친 머리 모양.
마치 맑은 하늘을 품은 듯한 연파랑색 눈동자까지.
눈과 귀에 즐거움을 준다는 아름다울 미(美).
주유의 성씨를 뜻하는 두루 주(周).
흔히 잘생긴 남자, 미남을 일컫는 사내 랑(郞).
합쳐서 미주랑(美周郞)이라 불리는 미남…. 아니 미녀가 바로 주유라는 인물의 별칭이었다.
주유라는 이름에 아름다울 유(瑜)가 들어가고, 공근이란 자(字)에도 아름다울 근(瑾)이 들어가는 독보적인 외모.
주유가 자신을 게슴츠레 노려봤음에도 손책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우리 공근이 미주랑(美周郞)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가 있다니까?”
“그러는 백부도 손랑(孫郞)이라 불리잖아.”
주유의 말대로 손책도 미(美)가 안 붙었을 뿐, 미남을 뜻하는 랑(郞)이 붙은 별칭이 존재했다.
그런 주유의 반격에도 손책은 아무렇지 않게 웃을 뿐이었다.
“내가 조금 말끔하게 생기긴 했지만 공근과 비빌 수준은 아니지.”
“…….”
주유는 허리 부근까지 내려오는 손책의 적갈색 장발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 그래. 마침 잘됐네. 우리 미주랑은 똑똑하니까 이 상황을 타개할 계책 같은 거 있지?”
“없어.”
주유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즉답했다.
자신의 기대를 칼같이 끊어버리는 대답에 손책이 살짝 시무룩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정말로?”
“그래.”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인 주유가 말을 이었다.
“전부 멀쩡한 상태였으면 야밤에 몰래 벗어나기라도 하지, 지금 우린 환자까지 있잖아.”
“으음….”
“여기 완에서 원술의 손아귀가 닿지 않는 곳까지 가려면 며칠은 달려야 하는데, 현재 네 아버지 상태로 그 강행군 절대 못 버텨.”
손책은 주유의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의술의 의자도 모르는 자신이 봐도 아버지의 상태는 심각했으니까.
화살을 맞은 상태에서 너무 격렬하게 움직인 것이 문제가 되었는지 상처가 크게 벌어졌고, 그 벌어진 상처가 가면 갈수록 흉하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앞으로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
“뭐가 됐든 백부, 네 아버지의 상처부터 치료해야 뭘 할 수 있어.”
주유의 말을 들은 손책은 짐짓 억지로 지어 보였던 유쾌한 표정을 다시 일그러트렸다.
손책은 최소한의 품위조차 내던지고 양반다리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손책이 한탄하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형주 남양군에서 아주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의원들을 거금을 주고 초청해봤으나 하나 같이 손견의 상처를 보고 전부 고개를 내저었다.
이미 자신의 실력을 떠난 일이라며 받았던 돈을 다시 돌려주고 떠나는데, 손책은 차마 그들에게 윽박지를 수 없었다.
손책은 문득 한 의원이 손견을 진단하고 한탄하듯 내뱉은 말을 떠올렸다.
‘그분이라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분이라니?’
‘저희 의원 사이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분입니다.’
그 정도의 인물이 있다니.
손책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인물이 어디 있는지 물었고, 의원은 곤란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거처가 자주 바뀌시는 분이시라 그분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뿐입니다.’
‘…….’
‘기대에 부응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니…. 중요한 정보 고맙다. 재물은 돌려줄 필요 없으니 가져가라.’
그만한 인물이 있다는 것 자체가 손책이 희망을 품기엔 충분했다.
의원은 살짝 예를 취하고 자신의 힘이 닿는 곳까지 손견을 치료한 다음 자리를 떴다.
손책은 천명이라는 둥 천운이라는 둥 그런 해괴한 단어는 믿지 않았지만 이런 상황에서만큼은 그 단어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천하에 널려있는 숱한 이들이 그리도 부르짖는 하늘은 과연 자신의 기도를 들어줄까.
아니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손씨 가문을 이끌며 천하에 우뚝 설 준비를 해야 하는가.
손책이 그렇게 갈피를 못 잡을 무렵, 근처에서 침묵을 지키던 주유가 병사에게 뭔가를 전달받고 입을 열었다.
“……백부.”
“무슨 일이야?”
“손님이 왔다는데.”
“또 원술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놈이지?”
그놈들은 질리지도 않나.
손책이 질색하는 표정으로 쫓아내라 하기 전, 주유가 먼저 말을 꺼냈다.
“무슨 의원이라 하더라고.”
“의원?”
그러면 거절할 이유가 없지.
손책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발걸음을 옮겼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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