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147)
EP.147 형주 남양군(6)
내 명을 받든 유비는 원술의 근거지를 돌면서 재물들을 먼지 한 톨 없이 싹 다 털어왔다.
자그마한 보석조차 빠짐없이 챙겨온 걸 보면 아주 작정하고 가져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눈앞에 쌓여있는 금은보화를 바라보며 유비에게 물었다.
“이게 전부인가?”
“예.”
유비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투항한 병사들의 증언을 토대로 발견한 것도 있고, 저희 병사들이 샅샅이 뒤져 찾아낸 것들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약탈을 벌이는 병사가 있었나?”
“휘하 장병들은 지휘관의 성격을 닮는 법이지요.”
그리 말한 유비는 내게 싱긋 웃어 보였다.
“대장군을 따르는 병사들이 어찌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어….”
내가 살짝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으나 유비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굶주림에 처한 백성에게 자신들의 먹을 것을 나눠주었습니다.”
“그…렇군.”
“이 또한 대장군의 인덕(仁德)이지요.”
내 부곡이 됐어도 유비는 여전히 갑자기 훅 들어오는 면모가 존재했다.
나는 얼떨떨한 표정을 짓다가 다시 시선을 돌려 원술의 것이었던 금은보화를 바라봤다.
보물이라 하면 연상되는 평범한 물건들부터 이걸 대체 어디다 쓰려고 쟁여둔 걸까 의문이 드는 이상한 것까지.
보나 마나 백성들을 약탈하고 얻은 거겠지.
그야말로 원술의 탐욕이 느껴지는 보물들이었다.
“이 재물들은 남양군을 복구할 때 사용할 금은보화다.”
나는 절대 적다 말할 수 없는 재물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니 그 누구도 개인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창고에 넣은 다음 문을 철저히 봉해두도록.”
“…….”
“물론 나라고 예외는 없다. 알겠나?”
내가 그리 말하자 유비는 내게 공손한 모습으로 읍을 올렸다.
“대장군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수고하도록.”
나는 몸을 돌려 완성의 치소로 향했다.
등 뒤로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유비의 시선을 느꼈을 때 내 근처에서 나를 호위하던 여포가 말을 걸었다.
“정릉.”
“왜?”
여포는 거의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런 말에 넘어가면 안 된다?”
“…….”
“저거 살살 눈웃음치는 거 봐. 쟤한테 홀리면 분명 나라 말아먹을걸?”
얘는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내가 어이없어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여포가 말을 이었다.
“옛날 누구더라…. 어쨌든 왕이 여자한테 홀려서 멸망한 나라 있잖아.”
여포의 말에 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아무래도 과거 나라를 기울게 한 여자들을 말하는 모양.
중국의 악녀 하면 제일 많이 언급될 여자가 한 명 있지.
상나라의 달기(妲己).
달기는 중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면 한 번이라도 들어봤을 유명한 이름이다.
주왕의 숙부가 성인(聖人, 지혜와 덕이 매우 뛰어나 길이 우러러 본받을 만한 사람.)이라 불리니까 성인의 심장은 구멍이 일곱 개라 들었다며 직접 확인해보자 부추겼던 무서운 여자.
근데 달기 같은 경우엔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이 워낙 미친놈이다 보니 달기가 없었어도 상나라는 망했을 거란 평이 대다수였다.
그러니 달기를 제외한다 치면….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툭 중얼거렸다.
“…포사(褒姒)나 서시(西施) 말하는 거야?”
“그래!”
포사(褒姒).
주나라 때 있었다고 전해지는 요녀.
포사는 경국지색의 미모를 지녔지만 도통 웃은 적이 없어 왕의 애간장을 녹였다는데, 어느 날 비단이 찢어지는 소리를 듣고 기분이 좋다 말한 적이 있다 한다.
왜 비단 찢는 소리가 기분 좋은 건지 모르겠는데 하여튼 그랬다고 한다.
그걸 들은 유왕은 온갖 비단을 엄청나게 찢어대며 포사를 웃게 했다.
근데 값비싼 비단을 계속해서 찢어댄 결과 주나라의 국고가 텅텅 비었다고 하지.
그 와중에 포사는 봉화가 울려 병사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고 또 웃었다.
그러면 유왕이 어떻게 하겠는가.
그 귀한 비단도 쫙쫙 찢어 국고를 탕진했는데 가짜 봉화 올리는 것 하나 못할까?
이후 가짜 봉화가 시도 때도 없이 울리자 제후들은 ‘저 새끼 또 저러네’ 하면서 봉화를 무시하기 시작했고, 결국 양치기 소년이 되어버린 유왕은 진짜 급한 상황에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이민족에게 죽어버렸다.
솔직히 꾸며낸 이야기가 아닐까 의심이 들지만 정사에 적혀있는 내용이니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야지.
진짜 비단 찢는 소리가 좋았던 특이한 사람일 수도 있잖아.
여포가 내게 말했다.
“조심해. 자칫 잘못하면 그대로….”
“…….”
나는 말을 이어나가는 여포의 볼을 붙잡고 쭈우욱 늘려댔다.
난데없는 내 행동에 여포가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왜 흐해?(왜 그래?)”
“여포.”
나는 여포의 이름을 부르면서 볼을 붙잡은 손을 위아래로 살짝 흔들었다.
“으브?”
여포가 살짝 벌려진 입술 사이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다른 사람 헐뜯는 말 내가 안 좋아한다고 했지?”
“……!!”
여포의 눈동자가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여포 성질이 성질이다 보니 가끔 이렇게 엇나갈 때가 있었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여포를 혼내며 다시 올바른 길로 돌려놨다.
그 천하무쌍 여포를 대체 어떻게 혼내냐 물을 수 있겠으나 적어도 내겐 아주 손쉬운 일이었다.
나는 여포에게 짐짓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꾸 그러면 얼굴 안 보는 수가 있어.”
“미, 미아내!”
내 말을 들은 여포가 자리에서 튀어 오를 듯 놀랐다.
그 모습은 마치 자신의 아내에게 꼼짝도 못하는 애처가의 모습이었다.
…공처가라고 해야 하나?
나는 아이를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억지로 사이좋게 지내라고는 안 하겠지만 적어도 나쁜 말은 하지 말자. 알겠지?”
“…….”
여포는 그런 내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를 짧게 여러 번 끄덕였다.
내가 손을 놓자 여포의 볼이 불그스름하게 변했다가 금방 원래 색깔을 되찾았다.
나는 살짝 고개를 돌려 서여를 바라보았다.
“…….”
“…….”
서여는 평소와 똑같은 무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음…. 이러다가 또 눈싸움하겠네.
서여를 잠깐 바라보다가 시선을 다시 정면으로 돌린 나는 멈췄던 발걸음을 옮겼다.
──────────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양양성 내부에서 휘하 인재들을 불러모은 남성이 분통을 터트렸다.
“피해는 우리가 봤거늘, 정작 남양군은 정릉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손에 넣었다!”
8척에 달하는 커다란 키와 준수한 외모를 지닌 남성은 계속 분노를 드러냈는데, 그가 바로 강하팔준(江夏八俊)의 일원이라 일컬어지는 형주자사 유표였다.
유표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내 그대들의 의견을 따라 완성을 공격했지만 손해만 봤구나.”
유표는 격앙된 어조로 그리 말하더니 이곳에 모인 인물들을 훑어보았다.
“어디 할 말이 있다면 해보거라.”
온갖 정치판에서 굴러왔던 노회한 구렁이가 서슬 퍼런 눈빛으로 제장들을 노려보았다.
유표의 눈빛을 마주한 제장들은 몸이 서늘해지는 걸 느끼며 식은땀을 흘렸다.
과거 형주는 이름 있는 호족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권력을 손에 쥐어보겠다며 이리저리 난립하는 상황이었다.
형주가 그렇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전임 형주자사 왕예가 장사태수 손견에게 살해당해 지도자가 비어있는 상태가 된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황건적의 난 이후 동탁이란 자가 조정을 장악하면서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미미해진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조정은 형주자사를 새롭게 임명했는데, 그 새롭게 임명된 형주자사가 바로 유표 경승(劉表 景升)이었다.
유표는 아무런 권력 기반도 없는 상태에서 형주로 입성하여 뛰어난 정치 감각을 활용, 천천히 세력을 늘려나가다가 자신에게 반대하는 세력들을 전부 일순간에 숙청했다.
결국 형주를 지배하는 인물은 유표가 되었고 숙청에서 살아남은 호족들은 전부 유표에게 납작 엎드렸다.
누가 감히 그런 그에게 대들 수 있을까.
모두가 눈치만을 살피는 그때 한 남성이 앞으로 나와 유표에게 진언을 올렸다.
그는 유표가 형주의 실권을 틀어잡을 수 있게 도움을 준 괴씨 가문 출신의 인물이었다.
“주군. 지금은 앞으로의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의논하는 게 우선입니다.”
“…….”
“책임은 그 후에 물어도 늦지 않으니, 부디 잠시만 분노를 가라앉혀주시옵소서.”
괴씨 가문 출신의 남성, 괴월의 말을 들은 유표가 한숨을 내뱉었다.
유표는 자신이 형주를 지배할 수 있게 도움을 줬던 괴씨 가문과 채씨 가문을 특히 총애했다.
“어쩔 수 없지. 그렇다면 지금은 넘어가겠다.”
“감사합니다.”
괴월이 읍을 올리며 다시 뒤로 물러났다.
유표는 그를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대책을….”
“주군. 급보입니다.”
유표가 회의를 재개하려는 그때 병사에게서 무언가를 전달받은 군사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표의 의아한 눈빛이 군사에게 향했고, 군사는 정말 말 그대로 화들짝 놀랄 만한 소식을 전달했다.
“황실의 칙사가 찾아왔다고 합니다.”
“…뭐라?”
유표로서는 황당한 소식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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