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149)
EP.149 형주 남양군(8)
형주 남양군에 자리 잡던 원술도 쫓아냈고, 남은 형주 지방을 차지한 유표에게는 칙사를 통해 항복 제안을 보냈다.
이제 남은 건 대답을 기다리는 일뿐이었으니 나는 그동안 내정에나 주력하기로 했다.
완을 비롯한 남양군 근방 일대는 원술이 온갖 횡포를 부렸던 흔적이 역력히 남아있었다.
유표는 적어도 개인적으로 재산을 축재하지 않았는데, 원술 이놈은 뭐가 그리 욕심이 많은지 까마귀도 아니고 자신의 거처에 온갖 반짝거리는 걸 쌓아뒀다.
재물이 많은 건 좋다만, 그 많은 재물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생각하면 오히려 한숨밖에 안 나왔다.
원래 무언가를 망치는 것보다 무언가를 쌓아 올리는 것이 더 힘이 드는 법이었다.
남양군을 복구하려면 재산은 재산대로 더 들어가고, 시간은 또 시간대로 축내겠지.
앞으로의 계획을 구상하던 나는 이 이상의 고민을 끝내고 행동에 나섰다.
“폐하.”
“그래. 오늘은 무슨 일이더냐.”
주변 사람들을 물린 황제는 익숙한 모습으로 나를 환영했다.
꼬마 황제 폐하는 세월이 흐르면서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처음 마주했을 때보다 신체가 성장한 상태였다.
처음 만났을 때 초등학생 수준이었던 우리 유변 폐하께서 무럭무럭 자라신 것.
유비가 완전히 성장한 성인 여성의 모습이었다면 황제 폐하는 현재 청소년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진류왕 유협께선 여전히 작달막한 모습이었다.
나이가 워낙 어려야지.
유협은 아직 10대 초반이었으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나는 황제에게 의견을 올렸다.
“지방에 있는 호족 가문들을 초대하여 장안 인근에 자리 잡게 해도 되겠습니까?”
“으음?”
내 건의를 들은 황제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사람이 아니라 가문들을 말이더냐?”
“그렇습니다.”
나는 공손하게 예의를 보였다.
황제와 내 친분을 생각하면 굳이 보고할 필요가 있는 내용인가 싶지만 자칫 잘못하면 뒷말이 나올 수도 있는 행동이었기에 의견을 올렸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일을 저질렀다면 어쩔 수 없지만 웬만하면 책잡힐 일은 만들지 않는 게 좋지 않겠는가.
시대가 어지럽다지만 그래도 지금 한나라를 다스리는 최고 권력자는 황제다.
황제를 받드는 인물은 무언가 눈에 띄는 행동을 할 때마다 황제에게 표문(表文, 마음에 품은 생각을 적어서 임금에게 올리는 글)을 올려야만 했다.
협천자가 좋은 점이 많기는 한데 이것만큼은 정말 귀찮았다.
본래 역사의 조조도 협천자 이후 전쟁을 일으킬 때 표문을 올리고 황제의 승인을 받은 다음에야 군을 움직였다.
…말이 승인이지 사실상 일방적인 통보와 다를 게 없었겠지만.
어쨌든 이러한 요소 때문에 황제에게 아무런 건의도 없이 내가 독단적으로 움직이는 건 황실의 권위를 무시한다고 여겨질 수 있는 행동이었다.
좀 더 속되게 표현하자면 이상한 놈들이 나쁜 의도를 품고 저놈 역시 역적 아니냐며 뒤에서 수군거릴 수도 있다는 것.
물론 대놓고 나를 욕하면 누군가에게 무언가가 뎅겅 잘려 나갈 수 있으니 눈이 닿지 않는 구석진 곳에 모여 음침하게 뒷담화를 하지 않을까.
황제가 잔잔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장안 근처의 땅을 지방에 있는 호족에게 내어준다라….”
현재 장안 근처는 과거 동탁이 장안에 불을 질러 초토화하면서 주인 없는 땅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진 상태였다.
그리고 그런 주인 없는 땅 일부는 나라가 다시 회수하여 직접 관리하는 형편이었다.
“장안 근처 땅이라면 역시 삼보(三輔)를 말하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과연.”
내 생각을 들은 황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전한 시대 때 수도로 삼았던 장안 일대 근처를 일컫는 단어.
좌풍익(左馮翊), 경조윤(京兆尹), 우부풍(右扶風).
이 세 가지 지역을 통틀어 삼보(三輔)라 부른다.
실제로 사마의의 아버지인 사마방은 경조윤이란 관직을 역임한 적이 있었다.
관직을 부르는 말이 다를 뿐 사실상 그곳을 다스리는 태수라 봐도 좋았다.
본래 역사에서 삼보 지역은 동탁이 죽은 이후 여포를 쫓아낸 이각과 곽사가 제대로 망쳐놓는데, 그게 바로 삼보의 난이다.
삼보의 난을 겪은 저 세 지역은 동탁이 불을 지른 낙양처럼 황폐화된다.
거기에 강족과 선비족이 끊임없이 침입하니 한때 삼보라 불렸던 지역은 나라가 여러 개 망하고나서야 옛날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 세계에서는 그나마 사정이 낫…지는 않았다.
그 이각 곽사가 진화하면 동탁이 된다고 봐도 무방한데, 방화범 동탁이 과연 삼보 지역을 가만히 내버려 뒀을까?
약탈도 벌이고 불도 지르고 무고한 백성도 죽이고 별의별 짓을 다했다.
장안 복구가 늦어지는 것도 이러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장안이라는 도시만 되살리면 될 것이 아니라 그 근처 일대를 전부 되살려야 했으니.
잠깐 고개를 주억거리던 황제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삼보 지역을 다스리는 관직이 비어있었군.”
“예. 장안 일대를 수복하면서 상황이 어지러워지는 틈을 타 비리를 저지르는 관료가 있었습니다.”
내가 직접 끌어내렸던 놈이라 잘 기억하고 있다.
분명 복숭아 자매가 내 부곡에 들어오고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지.
‘이거 뭔가 이상한데요?’
‘응? 뭐가 말이야?’
‘숫자가 안 맞잖아요.’
사마의가 말했다.
그 당시 좌풍익은 무슨 자신감이었는지는 몰라도 자신의 가문까지 끌어들여 재물을 빼돌리다가 사마의에게 딱 걸린 것이었다.
나를 도와 서류를 정리하던 사마의는 머리로 숫자를 계산하더니 내가 알아듣기 쉽게 근처에 남아돌던 죽간과 붓을 가져와 풀어서 설명해줬다.
‘어때요. 이상하죠?’
‘그러네.’
나는 담담하게 사마의의 의견을 수긍했다.
계산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컴퓨터 계산기인 줄 알았다.
‘장부에 적혀있는 대로라면 세금이 분명 더 남아야 하는데, 나머지 이 할이 어디론가 사라졌네요.’
그리 말한 사마의는 죽간에서 시선을 떼고 나를 바라보았다.
‘세금한테 발이 달려서 혼자 도망쳤을까요?’
‘그건 아닐 것 같은데.’
만약 그렇다면 웃기기 이전에 무섭지 않을까.
내 말을 들은 사마의가 악동처럼 웃었다.
‘그렇다면 범인은 누구겠어요?’
‘…….’
나는 곧바로 부곡을 이끌고 쳐들어갔다.
‘부디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끌고 가라.’
‘대장군, 대장군───!’
반항하는 이들이 피치 시스터즈에게 전부 때려 눕혀지고 병사에게 붙잡힌 남성은 끌려가면서 그렇게 외쳤다.
그놈이 바로 과거 좌풍익을 맡았던 인물이었다.
방금도 말했다시피 좌풍익은 자신의 가문까지 끌어들여 비리를 저질렀기에 그 근방을 지배하던 사대부를 아예 통째로 들어냈다.
사대부는 또 다른 사대부끼리 얽혀있는 경우가 많아서, 그 사대부와 손을 잡았던 다른 놈들이 줄줄이 엮여 들어갔다.
현재 장안 일대는 이렇다 할 관리가 없는 상태로 황실에 귀속되어 있었다.
지금은 관리들을 임시로 임명하여 좌풍익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조만간 그곳을 맡을 새로운 인재를 구하긴 해야 했다.
아마 황제도 내가 어째서 이러한 행동을 보이는지 눈치챘을 터.
황제가 물었다.
“눈여겨본 인재라도 있느냐?”
“그렇습니다.”
내가 지방 호족 가문들을 아예 장안 근처에 자리 잡게 해준다는 건 그 가문의 인물들을 천거(薦擧, 어떤 일을 맡아 할 수 있는 사람을 그 자리에 쓰도록 소개하거나 추천함)하겠다는 뜻이었다.
지방 호족들이 나름대로 잘나간다지만, 그들이 과연 장안에 올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까?
한나라의 수도, 낙양이 바로 근처에 있는 그 장안을?
지방에 있는 호족 입장으로선 합법적으로 사례주에 상경할 수 있는 로또 같은 기회였다.
이 시대의 선비들은 몇몇 특이한 인물을 제외하면 모두가 입신양명의 꿈을 품고 있으니 이러한 은혜를 베푼 나를 크게 지지할 터였다.
처음은 그저 거주지를 옮길 뿐이지만 나는 조만간 이들을 관직에 오르도록 할 계획이었다.
낙하산 아니냐고? 맞다.
근데 원래 이 시대에서 인재를 등용하는 방식이 대부분 천거라는 탈을 쓴 낙하산이다.
아니면 잘 나가는 가문의 자녀가 관직을 물려받는 세습 방식이었지.
사세삼공이라 불리는 원소와 원술의 가문이 그런 경우였다.
흔히 사극에서 나오는 것처럼 시험을 치르고 관직에 오르는 과거 제도는 수나라가 들어서야 시행하는 제도다.
그리고 그 수나라는 삼국지가 지나고, 오호십육국이 지난 다음, 남북조 시대가 지나고서야 세워지는 나라.
과거 제도가 시행되기 위해선 아직 한참 남았다.
…한번 지금 만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내가 그런 잡생각에 빠져있을 때 황제는 왜인지 모르겠으나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무언가를 생각하던 황제가 갑작스럽게 툭 내뱉었다.
“혹시 그 생각하는 인재가 여자들은 아니겠지?”
“……폐하?”
나도 모르게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인데.
“대답해 보거라.”
나는 대답을 종용하는 황제의 눈치를 살며시 살폈다.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흐음…….”
내 대답을 들은 황제가 게슴츠레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진짜 모르는 걸 어떻게 하라고.
그렇게 잠깐 숨 막힐 것만 같은 시간이 지났다.
“거짓은 아닌 것 같군.”
나를 향해 의도를 알 수 없던 눈빛을 보내던 황제는 이윽고 눈길을 거둬들였다.
“그대 마음대로 하거라.”
“감사합니다.”
나는 살짝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끼면서 예를 표했다.
“대장군.”
그때 황제가 다시 나를 불렀다.
내가 이에 대답하면서 몸을 숙이자 황제는 잔잔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대가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는 건 짐도 알고 있다.”
“…….”
“그리고 짐은 그대의 그러한 점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지.”
그리 말한 황제는 옥좌에서 몸을 일으키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과거보다 성장했다지만 여전히 나와 비교하면 자그마한 몸집을 지닌 황제는 나를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대장군 그대는 다른 여인에게 한눈 팔려 짐을 소홀히 대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폐하?”
“이건 황명이다.”
다른 의견은 받지 않겠다는 단호한 태도에 나는 공손히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이럴 때만큼은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게 참으로 다행이었다.
하여튼 일이 잘 풀렸으니 이제 내가 할 일은 하나뿐이지.
이름난 호족들에게 싹 다 편지를 돌려야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대장군의 무지성 등용 폭격….
비공개 님! 2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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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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川 폴-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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