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16)
EP.16 십상시의 난(3)
황제의 신변을 확보한 동탁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군대를 이끌고 낙양 황궁에 입성했다.
얼마 전에 있었던 혼란스러운 상황을 증명하듯 여전히 피비린내를 풍기는 황궁의 모습에 동탁은 얼굴을 왈칵 찌푸렸다.
“황제님께서 머무르실 공간이 이리 더러워서야 쓰겠느냐? 어서 시체를 치우고 황궁을 깨끗하게 만들어라!”
“예──!”
권력으로 향한 동탁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
동탁은 황제를 모신다는 명목하에 황제를 휘황찬란한 방에 가둬놓고 감시를 철저히 하기 시작했다.
몇몇 용기 있는 관료가 이를 따지고 들었으나 대부분이 동탁에게 심한 매질을 당했고, 몇몇은 아예 목이 잘려 저잣거리에 매달렸다.
이런 동탁의 몰상식한 행동에 낙양에 있던 모두가 동탁이 가지고 있는 야망이 무엇인지 눈치챘다.
그렇지만 이러한 야망을 알고 있으면서도 동탁을 막으려 하는 자는 나오지 않았다.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동탁의 군대.
낙양에 있는 모두가 동탁의 눈치만을 살피고 있었다.
몸을 숙이고 때를 기다리는 자도 있었으며 콩고물이라도 받아먹기 위해 순종한 자들도 있었다.
아직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는지 동탁도 황제를 방에 가둬놓기만 할 뿐,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예상했다.
압도적인 권력을 손에 넣은 동탁이 조만간 온갖 패악질을 부리기 시작할 거라고.
──────────
동탁이 낙양에 있는 모든 관리들을 궁으로 불러모았다.
관직에 든 사람이라면 동탁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전부 불러모았고, 당연하지만 그 안에는 나도 끼어있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상당한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마치 다른 세력들에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듯 호위를 여러 명 데려온 이도 있었기에 좀 북적북적한 기분도 들었다.
서여와 여포를 대동한 내가 안으로 들어서자 방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내 쪽으로 집중됐다.
“저자가 여포인가….”
“천하무쌍….”
대부분의 눈길이 여포에게 향해있었다.
나는 여포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 엄청 유명해졌네.”
“흥. 당연한 일이지.”
자신만만하게 콧방귀를 뀐 여포는 수많은 시선에도 기죽지 않고 당당히 서 있었다.
“…….”
근데 저 사람은 아까부터 왜 나만 쳐다보고 있지.
유독 눈에 띄는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한 은발 소녀가 내게 강렬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나와 시선이 마주쳐도 아무렇지 않게 계속 응시해오는데 많이 부담스럽다.
나는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소녀를 억지로 무시하며 자리를 잡았다.
내가 들어오고 나서도 수많은 사람이 궁에 들어왔지만 그 중에서 제일 인상 깊은 사람을 말하자면 마지막에 나타난 금발 여인이었다.
금발 머리를 뒤로 땋은 여인은 걸음걸이에서부터 고귀한 기품이 느껴졌다.
오늘 처음 보았지만 나는 왠지 저 여인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전부 도착한 것 같군.”
모두의 시선이 금발 여인에게 집중되어 있을 무렵, 성 안쪽에서 거만하고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계속 쿡쿡 쑤셔오던 소녀의 눈길이 사라졌다.
거대한 풍채를 자랑하는 동탁이 이 방에 있는 누구보다도 많은 수행원을 거느리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설마 동탁도 여자일까 생각했는데 남자였다.
동탁의 눈길이 한곳으로 향했다.
“원소 네년은 맨날 늦는군. 그러다가 정말 내게 죽을 수도 있어.”
“…….”
“오늘은 웬일로 말을 하지 않는구나. 겁이라도 먹었나?”
대놓고 자신을 무시하는 동탁의 말에도 원소는 눈을 감고 침묵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한동안 원소를 비꼬던 동탁은 표정을 굳히며 차갑게 말했다.
“앞으로 나와 눈도 마주치지 마라. 건방진 년.”
최근 동탁과 사사건건 대립하던 원소가 동탁에게 반항하지 못하고 있었다.
힘의 우위가 정해진 그 광경에 몇몇 사람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 원소조차 동탁의 힘에 기가 눌려버렸으니 이제 정말 낙양에서 동탁을 막을 자는 사라진 듯했다.
원소에서 눈을 뗀 동탁은 마치 앞으로의 반응이 기대된다는 듯 무섭게 웃었다.
“오늘 자네들을 여기 불러모은 이유는 별거 아니네.”
나는 동탁이 무슨 말을 할지 예상이 갔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들었다.
이제 이 발언으로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어버린 동탁은 적을 엄청나게 만들겠지.
“내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천하가 이리도 어지러운 이유가 바로 무능한 황제 때문인 것 같더군.”
동탁의 발언에 소수나마 남아있던 황제파 관료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마치 그 반응을 즐기듯이 동탁은 낄낄 소리를 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는 무능하고 심약한 황제를 폐위한 다음 총명한 진류왕을 새 황제에 올릴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황제를 바꾸자는 동탁의 말에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얼어붙은 분위기 속에서 나는 눈을 감고 생각에 빠졌다.
연의에서는 정원이 이에 반발하며 동탁과 한 판 붙게 된다.
그럼 나는 어찌 해야 할까. 똑같이 행동해야 하나. 아니면 침묵을 지켜야 하나?
그렇게 한동안 고민하고 있던 내게 동탁이 다가왔다.
“네놈은 어떻게 생각하지?”
“…?”
왜 내게 말을 거는 걸까.
내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자 동탁이 비웃었다.
“멍청하기는.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됐나?”
“…….”
원소와 똑같이 내 기를 죽이려는 동탁의 모습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병사를 데려오긴 했지만 어마어마한 군을 이끌고 있는 동탁에게 비할 바는 아니었다.
최근 대장군의 병력도 흡수했다 들었으니 거기서 더 늘어나지 않았을까.
“어영부영 넘어갈 생각 말고 빨리 대답해라.”
즉 동탁은 지금 나를 시험하고 있었다.
자신의 편이 될 것이냐. 아니면 나와 대적할 것이냐.
생각을 정리하던 나는 입을 열었다.
“그전에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음? 좋다. 오늘 기분이 좋으니 특별히 들어주도록 하지.”
기분 안 좋았으면 묵살했을 거란 뜻인가?
이놈 밑에서 일하면 엄청나게 피곤하겠네.
“최근 서량에서 온 병사들이 백성들을 수탈하고 있는데, 이를 알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나도 실제로 몇 번 목격했다.
자기가 누구인지 아냐며 낙양 백성에게 온갖 짓을 일삼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
동탁은 그런 내 질문에 웃었다.
“황제 폐하를 위해 먼 곳에서부터 달려온 내 병사들인데 그 정도쯤은 눈 감아줘야 하지 않겠나?”
“…….”
“상을 내려야 할 때는 확실하게 내려야지.”
확실히 자신의 병사들과 휘하 장수에게 인기가 많을법한 놈이었다.
제 딴에는 자기편이 되면 백성에게 무엇을 해도 된다는 뜻이겠지만 그래서 난 더욱 마음에 안 들었다.
“…그렇다면 그에 고통받는 백성들은 어찌하시려는 겁니까?”
“……하하하하!”
내 질문에 침묵한 동탁은 불현듯 웃기 시작했다.
유쾌한 듯하지만 전혀 유쾌하지 않은 그 웃음에 주변의 분위기가 더더욱 얼어붙었다.
“그렇군. 네놈이 어떤 놈인지 대충 알겠다.”
“…….”
“걸핏하면 백성이 어떻다는 둥 날 귀찮게 구는 놈들과 똑같구나.”
동탁은 상체를 숙이더니 비열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난 그런 놈들만 보면 구역질이 나오더군.”
“…….”
“자. 이제 마지막으로 묻겠다.”
동탁은 이제 숨길 생각도 없는지 대놓고 질문을 던졌다.
“내게 복종할 것이냐. 죽을 것이냐?”
“…….”
내가 말을 꺼내지 않자 동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비웃으며 등을 돌렸다.
“그렇다면 이제 황제를 폐위하는데 이견은 없….”
“저 같은 놈을 보면 구역질이 나온다고 하셨지요?”
“음?”
동탁이 의문스러운 시선을 내게 향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
곧 심상치 않을 말이 나올 걸 눈치챘는지 동탁의 표정이 굳었다.
나 또한 표정을 굳히며 동탁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네놈같이 욕심으로 가득한 짐승을 보고 있자면 구역질을 멈출 수가 없다.”
완전한 적대 선언.
마음 같아서는 욕이라도 한 사발 날리고 싶은데 자리가 자리인지라 최대한 자제했다.
“나라를 위해 총명한 진류왕을 새 황제로 모셔? 헛소리 마라. 말만 나라를 위한다 하지 멍청이도 아니고 네놈이 이익만 좇는다는 걸 여기 있는 사람들이 모르겠느냐?”
“네 이놈───!!”
스릉!
최대한 욕을 자제했는데도 동탁을 화나게 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솟은 동탁이 검을 뽑아 들자 동탁의 뒤를 따르고 있던 수행원들도 무기를 뽑아 나를 적대했다.
“어쭈. 니들 지금 잘 생각해라?”
뒤에 있던 여포가 한 발짝 걸어 나오자 뒤늦게 여포의 존재를 눈치챈 동탁 무리가 흠칫 놀랐다.
“손에 든 거 휘두르는 순간 너희 다 이곳에서 죽어.”
“…….”
서여도 방금부터 검집에 손을 얹고 동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젠장! 기분만 나빠졌군!”
그렇게 대치하기를 잠깐. 이윽고 동탁이 씩씩거리며 검을 바닥에 패대기쳤다.
마치 물러날 듯한 동탁의 모습에 내가 비아냥거렸다.
“이야. 이걸 참네. 겁이라도 먹은 건가?”
“……!”
이에 동탁의 얼굴이 다시 붉어졌지만 동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발걸음을 쿵쿵 울리며 방을 벗어났다.
“…….”
동탁이 떠나고 방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자 나도 등을 돌려 궁을 떠났다.
결국 본래 역사처럼 동탁과 싸우게 생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