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162)
EP.162 유표(3)
유표가 내 세력에 어떻게 대응할지 물어보자 가후와 순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합종책밖에 없습니다.”
“합종책?”
“예.”
내가 되묻자 가후는 담담하게 수긍했다.
“유표는 틀림없이 다른 세력과 연합하여 저희를 사방에서 압박하려 들 것입니다.”
“음….”
“그리고 그 다른 세력들은 높은 확률로 조조와 원소가 되겠지요.”
나는 그럴듯하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여기서 또 본의 아니게 나와 대립할 거냐며 묻는 상황이 찾아왔다.
만약 가후와 순유가 예상한 상황처럼 흘러간다면 일이 귀찮게 될 가능성이 컸다.
내가 의견을 물었다.
“그렇다면 어찌 하는 것이 좋겠나?”
“일단 원소 세력은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후가 그리 주장한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대충 짐작이 갔다.
“공손찬 때문이겠군.”
“예.”
원소와 공손찬은 내가 저번에 칙사를 보내 전쟁을 그만두라 중재한 이후 잠깐 평화 상태를 유지했다.
그 잠깐의 평화 동안 둘은 너나 할 것 없이 전쟁을 준비했다.
원소는 공손찬에게 호응해 내분을 일으킨 호족들을 정리했고, 공손찬은 또 자신의 백성을 쥐어 짜내며 군사 물자를 최대한 비축해놓았다.
유주라 하면 보통 허구한 날 이민족이 쳐들어오는 안 좋은 땅이란 인식이 있는데 유주는 생각보다 그렇게 안 좋은 땅이 아니었다.
서주나 청주처럼 중원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피해 대거 이민해온 유민들이 있었고, 기주처럼 땅이 평탄해 교통 상황도 나쁘지 않았다.
현대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이 유주에 있는 것만 봐도 지리적 요소가 그리 나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지.
하북 지방을 지배하면 천하를 통일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얘기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병주도 그 하북 근처에 있으니 괜찮지 않냐고?
병주는 쓰레기다.
애초에 병주는 어지간한 곳보다도 인구가 적은 지역이다.
황건적의 난 당시 병주의 인구수가 어떻느냐.
호구 11만 호에 인구 숫자는 70만 명이다.
병주가 세 개 있어도 형주 남양군 하나(호구 50만 호, 인구 숫자 250만 명)를 못 이기네?
이 쓰레기 같은 땅….
이민족과 잦은 전투로 군사력이 꽤 강하다는 걸 빼면 좋은 점이 하나도 없어.
고위 관리도 어어 하는 순간 죽어 나가는 미친 동네에서 뭘 바라느냐마는….
하여튼 유주를 지배하는 공손찬은 봄이 되고 날이 풀리자마자 원소에게 전쟁을 선포한 뒤 또 쳐들어갔다.
원소도 가만히 당해줄 인물이 아니니 반격을 시작했고.
지금 기주와 유주는 허구한 날 공손찬군과 원소군이 맞붙는 전쟁터였다.
나는 턱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공손찬은 원소에게 이를 박박 갈고 있으니까 화친할 가능성은 없겠고….”
공손찬이 이를 박박 가는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원소가 한복 세력을 흡수한 이후 본격적으로 그 둘의 사이가 틀어졌으니 아마 그와 관련된 일일 것이다.
원소가 공손찬에게 보냈다던 밀서의 내용이 대체 뭘까.
기록에 남아있지를 않으니 궁금증만 늘어나네.
내 혼잣말을 들은 순유가 말했다.
“현재 원소와 공손찬은 우열을 가리지 못하고 둘 다 일진일퇴를 거듭하고 있으니 유표에게 지원군을 보낸다 한들 매우 작은 규모겠지요.”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공손찬은 일전 국의와의 전투에서 무언가 배운 점이 있었는지 자기 한 대 맞고 상대 한 대 때리는 상남자식 교환을 이어나갔다.
본래 역사를 떠올리던 나는 문득 궁금한 점이 생겨 순유에게 물었다.
“지금 공손찬과 맞붙는 세력은 원소밖에 없나?”
“그게 무슨 말씀…. 아하.”
순유가 의아하게 묻다가 무언가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유우의 잔당들은 저희 세력이 흡수했고,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이민족들도 내부가 어지럽다고 합니다.”
“음? 이민족들이?”
유주 방면에 걸쳐져 있는 놈들이라면 오환족이랑 선비족인데.
본래 역사에서 원소가 유우의 잔당들을 끌어들이고 이민족들을 끌어들여 공손찬을 공격했다는 걸 생각해 볼 때 이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원소 세력과 유우의 잔당, 거기에 원소가 끌어들인 이민족까지.
이 셋이 힘을 합쳐 세 곳을 동시에 두들기니까 그 공손찬도 계속 정신을 못 차렸던 건데 이리되면 전쟁이 어떻게 되는 거지?
순유가 말을 이었다.
“최근 이민족들끼리 부딪치는 상황이 잦아졌다 하더군요.”
“…….”
나는 침묵을 지켰다.
흔히 이민족이라 하면 드넓은 평야에서 뛰어노는 기마병들을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그놈들은 산에서도 말을 타고 다니는 미친놈들이었다.
선비족과 오환족의 유래부터가 선비산과 오환산을 근거지로 뒀다 하여 붙은 이름인데 이상할 건 아니지.
사실 이놈들은 본래 동호(東胡)라고 불리는 하나의 민족이었는데, 옆집에서 살던 흉노족에게 처맞고 개같이 멸망한 이후 그게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갈래로 흩어진 거다.
흉노족도 참 깡패야.
그리고 그런 놈들이 걸핏하면 약탈을 벌이는 게 문제고.
한나라는 저 덜떨어진 흉노 놈들에게 자비를 베푼다는 명목으로 매년 하사품을 보냈는데, 사실 말이 하사품이지 그냥 조공을 바치는 거나 다름없었다.
애초에 하사품이라면서 거기에 공주를 끼워 넣어 시집 보내는 게 말이 되냐?
근데 한나라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아서 결국 흉노를 북흉노와 남흉노로 분열시키고 세력을 대폭 약화하는데 성공한다.
지금 흉노족은 과거 날아다녔던 시절에 비하면 조족지혈 수준.
중국이 저 멀리 유럽 지역과 대규모로 교역을 하기 위해서는 이민족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서량과 연결된 교역로는 선비족 같은 놈들이 가로막은 상태였고, 익주와 연결된 교역로는 칠종칠금으로 유명한 남만족이 가로막은 상태였다.
나는 침음을 흘렸다.
“으음….”
“무언가 고민이라도 있으신지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그 이민족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는 데 여념이 없다면 분명 기뻐해야 할 소식이건만, 왜 불안한 예감이 들까.
괜한 걱정이라는 생각으로 애써 잡념을 떨쳐낸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원소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 조조는 어떻지?”
“그건 제가 말해도 될까요?”
내 질문을 들은 사마의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나야 상관없다만….”
나는 얼떨떨한 기색으로 말하며 살짝 가후와 순유를 바라봤다.
“저는 주군의 의견을 따를 뿐입니다.”
“우리 꼬마 책사님의 의견이 어떨지 저도 궁금하네요.”
가후는 눈을 감으며 살짝 허리를 숙였고, 순유는 눈가에 호선을 그리며 살포시 미소지었다.
나쁘지 않은 반응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다면 어디 한번 말해 봐라.”
“흠흠, 그러면 잘 들어요.”
사마의는 잠깐 헛기침을 하고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유감스럽지만 조조는 원소처럼 여유가 없는 상황이 아니에요.”
“그래?”
“네.”
사마의가 말을 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공손찬이 싸우는 건 잘해서 원소를 제대로 붙잡고 있는데 조조 주변에는 그렇다 할 만한 적이 없는 게 문제죠.”
“…….”
“세력을 전부 잃고 강동으로 쫓겨난 원술은 언급할 필요도 없고, 그나마 있는 적이라면 예주자사 공주와 서주자사 도겸이 끝인데 둘 다 조조 세력을 공격할 엄두도 못 내고 있어요.”
그렇다.
예주자사 공주는 현재 자신의 부임지인 예주도 제대로 안정시키지 못한 상황이었다.
황건군이라 불리는 장각의 잔당이 자신의 발목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겠지.
황건군은 거의 절대적이라 할 정도로 한결같은 모습을 보이는 때가 있는데, 그게 바로 이런 경우였다.
관군은 무슨 일이 있어도 못살게 군다.
예주를 지나다니다 보면 불쑥 튀어나와서 갑자기 한 대 후리고 사라지는데, 어찌나 신출귀몰한지 예주자사도 별다른 수를 쓰지 못한다고 들었다.
그들의 규모가 그렇게 큰 수준은 아니라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많지 않았지만 예주자사의 행동에 제동을 걸기에는 충분한 수였다.
서주자사 도겸?
그놈도 이따금 조조의 영토를 침범하기는 하는데 번번이 조인에게 가로막혀 별다른 수확은 얻지 못했다.
애초에 서주대효도가 일어날 때 아무것도 못하고 밀리기만 했으니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공손찬으로선 엄청나게 답답한 상황이겠지.
동맹국이란 놈들이 조조 하나를 뚫어내지 못한 채 계속 패배하고 있으니….
이렇게 정리해보니까 조조를 견제할 만한 세력이 진짜 없네.
본래 역사에선 유비와 여포가 있었는데 그 둘은 지금 내 휘하에 있었다.
“만약을 대비해서 조조 방향에 따로 별동대를 배치하란 건가?”
“예. 그 방법밖에 없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리해야겠군.”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나는 아직 조조가 어떻게 나올지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
“주군.”
그때 제갈량이 나를 불렀다.
나는 살짝 눈동자를 돌려 제갈량의 흰색 눈동자를 마주했다.
“왜 그러지?”
“제가 계속 지켜봤는데 주군께서는 조조에 대한 확신을 내리지 못하시는 것 같더군요.”
“…….”
그걸 정확하게 집어내네.
맞다.
조조가 지금까지 내게 우호적인 행동을 보였다지만 정말 뒤를 믿고 맡길 수 있냐면 고개를 살짝 갸웃하게 되니까.
내가 자신의 의견을 부정하지 못하자 제갈량이 말을 이었다.
“조조에게 밀서를 하나 보내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밀서?”
내가 되물었다.
“그들의 마음속에 한나라를 따를 마음이 있다면 대장군의 제안을 수락할 겁니다.”
“음….”
“하지만, 만약 조조가 이를 따르지 않고 대장군을 공격한다면 적이겠지요.”
제갈량은 그리 말하더니 백우선으로 입가를 살짝 가리곤 미소지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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