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172)
EP.172 유표(13)
대장군은 본격적으로 공성전을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성벽에 병사들을 돌진시키지는 않았다.
천혜의 요새라 불리는 양양성을 향해 억지로 병사들을 붙여봤자 개죽음밖에 더 되겠는가.
그렇기에 대장군은 유표군의 신경을 갉아 먹는 것에 초점을 두고 행동했다.
발석거를 통해 화살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 일방적으로 돌덩어리를 날려댔고, 해자를 메울 듯 말 듯 하면서 유표군의 화살 소모를 강요했다.
날이 어두워져 이제 한숨 돌리나 싶으면 시끄럽게 북을 울려대며 제대로 쉬지도 못하게 했으니 유표군으로서는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대장군의 군대에 맞서 양양성을 수비하는 유표군은 점차 지쳐갔다.
“발석거가 문제라고?”
전장의 상황을 보고 받은 유표는 장수들에게 의견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우리도 똑같이 발석거로 대응하면 되는 문제 아닌가!”
거대한 돌덩어리를 날려대는 발석거는 내용만 들어봤을 때 위협적으로 들린다만, 발석거는 사실 이런저런 문제점이 있는 병기였다.
돌을 주머니에 올려놓은 뒤 사람이 줄을 당겨 날리는 방식이라 생각보다 사정거리가 짧고 명중률도 엄청나게 낮았다.
“성벽 위에 있는 거점에 발석거를 조립하고 적의 병기를 부수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문제인데, 어째서 그리 쩔쩔매고 있느냐?”
발석거는 수성 측도 매우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병기였다.
당연한 얘기였지만 성벽 위에서 날아오는 바위가 땅에서 날려대는 바위보다 더 위협적이지 않겠는가.
유표가 그러한 뜻을 담아 제장들에게 묻자 성벽 위를 수비하던 장수, 장윤(張允)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현재 저희가 발석거를 조립하는 족족 파괴당하고 있어 손을 쓸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뭐라?”
상상도 못한 보고에 유표가 당혹스러운 감정을 드러냈다.
장윤이 말했다.
“천하무쌍이라 불리는 여포(呂布)가 직접 발석거를 이용해서 바위를 날려대는데, 명중률이 어찌나 뛰어난지 발석거를 계속해서 파괴하고 있습니다.”
“……장수가 그런 노동을 자처해서 한단 말이냐?”
바위를 주머니에 실은 다음, 줄을 끌어당겨 돌덩어리를 날린다.
사실상 노동과 다름없는 행동인데 그걸 장수가 자처해서 하다니.
군을 이끄는 장군으로서의 위엄은 신경 쓰지 않는 것인가?
유표로선 어이가 없는 소식이었다.
장윤이 그런 유표의 반응을 살펴보면서 말했다.
“그 천하무쌍이 앞장서서 돌을 날려대니, 적군의 공세도 자연스럽게 강해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으음….”
유표가 침음성을 흘렸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여포가 직접 나서는 경우가 드물단 것입니다만….”
장윤은 그리 말하면서 과거를 회상했다.
적어도 열 명 이상이 달라붙어야만 바위를 날릴 수 있는 병기를 혼자서 움직이던 천하무쌍의 모습.
발석거와 연결되어있는 줄을 가볍게 당겨대며 바위를 날려대는 그 모습은 지금 떠올려도 어안이 벙벙했다.
여포는 꽤 불규칙적으로 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모습을 드러낸 여포는 어떨 때는 화살로, 어떨 때는 병기로 유표군을 공격하는데 이를 견제할 수 없던 장윤은 그때마다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화살이 닿지 않는 곳에 자리 잡고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쏘아대는데 이걸 어떻게 견제한단 말인가.
여포가 거슬린다고 해서 성문을 열고 요격에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허구한 날 여포에게 괴롭힘을 당하자 현재 유표군 사이에서는 여포라는 이름이 거의 금기시 되고 있었다.
이제 여포의 붉은색 머리카락이 전장에 나타날 때마다 아군의 사기가 떨어지는 것이 눈에 보일 지경.
장윤도 그런 상황은 처음 겪어보았기에 계속 얼떨떨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거늘….”
장윤의 보고를 들은 유표가 한숨을 내뱉고 물었다.
“병사들의 상태는 어떻지?”
“…별로 좋지 않은 상황입니다.”
한 장수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대장군이 성벽 앞으로 다가와 항복을 종용할 때 화살을 쏘아 대장군의 신변을 위협했던 인물.
현재 유표 세력에서 제일 뛰어난 활 솜씨를 지닌 여인이 유표에게 예를 올렸다.
유표는 자신에게 예를 올리는 여인을 바라보며 반가운 기색을 보였다.
“황한승(黃漢升) 장군이 아닌가.”
황충 한승(黃忠 漢升).
노당익장(老當益壯)으로 유명한 촉한의 오호대장군 중 하나.
본래 역사에서 조운과 더불어 유비의 신임을 한몸에 받은 명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 내 목숨을 구해줬던 일은 고맙게 생각하고 있네.”
“그리 말씀해주시니 영광입니다.”
황충이 공손한 태도를 취했다.
그때 성벽 위에서 대장군을 쏘라는 명령만 내리지 않았다면 여포에게 목숨을 위협받는 일도 없었겠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그를 언급할 정도로 눈치 없는 인물은 없었다.
유표가 황충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건 무슨 뜻이지?”
“날이 지날수록 병사들의 사기가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
황충은 오늘도 어김없이 싸움을 걸어온 적군을 떠올렸다.
“현재 대장군의 군세는 양양성을 점령하는 것보다 저희의 사기를 꺾는 것에만 주력하고 있지요.”
굳이 무리해서 해자를 메우려 하지 않고 멀리서 바위만 날려대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한 가지 문제점이라면 그 공격에 밤낮이 없다는 것.
대장군의 군세는 낮이고 밤이고 할 것 없이 갑자기 북을 시끄럽게 울리면서 바위를 날려댔는데, 성벽 위에 있는 유표군은 언제 성벽이 무너질까 노심초사하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말씀을 드리기 송구하오나…. 최근 성벽을 넘어서 군영을 탈영하는 병사의 숫자가 눈에 띄게 늘어나는 상황입니다.”
“뭣이?!”
황충의 보고를 들은 유표가 눈을 크게 떴다.
“지금 대장군의 군대가 사방을 포위했는데 그들이 도망친다고 해서 어디로 갈 수 있단 말이더냐?!”
“…대장군은 탈영하는 병사들이 보이면 길을 열어준 채 이들을 붙잡지 않고 있다 합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유표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병사들도 바보가 아니니 이 상황을 방치했다간 탈영병의 숫자가 더욱 늘어나리라!
“대체 뭘 하길래 도망치는 병사 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는 건가!”
“…….”
주변 제장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유표의 타박을 들으면서 침묵을 지켰다.
“입이 있으면 어디 변명이라도 해보란 말이다!”
유표가 고함을 내지르자 황충이 대표로 나서서 말했다.
“면목 없습니다.”
“…쯧, 됐다! 이제부터라도 잘하면 불문에 부치도록 하지.”
그리 말한 유표는 더 이상 꼴도 보기 싫다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물러나라!”
유표가 신경질적으로 축객령을 내리자 주변에 있던 제장들은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 관청을 벗어났다.
황충의 뒤를 따르던 장수는 관청을 벗어나자 고개를 돌려 유표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유표 경승.
자신의 기억으로는 분명 이지적이고 현명한 판단을 할 줄 아는 학자였을 터.
하지만 요즘 유표에게서는 그러한 면모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지금 유표의 모습은…. 그래.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파멸로 몰아넣는 전형적인 소인배의 모습이었다.
“…….”
자신은 예법과 전통 같은 것에 대해 무지한 편이었으나 유표가 형주에서 무슨 행동을 하고 다니는지는 알았다.
검은색 복장을 걸치고, 천자(天子)만이 쓸 수 있다는 면류관을 사용하는 걸 볼 때 그가 무슨 야심을 품었는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좋은 조건을 약속하며 항복을 제안했던 대장군의 권유도 보란 듯이 차버리지 않았는가.
지금까지 손에 쥐고 누려왔던 그 수많은 권력을 포기하기엔 너무 아쉬우셨던 모양이었다.
권력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타락한 군주.
애초에 황제를 흉내 낸다는 것부터가 제정신이면 할 수 없는 일이니 유표는 이미 총명했던 과거의 모습을 잃었다 봐도 좋았다.
여포에게 목숨을 위협당한 이후 거리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조차 꺼리는 한심한 작자.
지금 유표가 하는 짓이라곤 안전한 곳에 숨어 휘하 장수들을 타박하는 것뿐이었다.
날이 지날수록 탈영하는 병사들은 점점 늘어만 가고, 굳이 내색하지 않았지만 장수들도 지친 분위기가 역력했다.
이대로 가면 전투다운 전투 한 번 벌이지 못하고 말라 죽으리란 것이 자명한 상황.
자신은 과연 어떠한 선택을 내려야 하는가.
이제 남은 길은 두 가지뿐이었다.
가라앉는 배 위에서 끝까지 버티다가 같이 수장당할 것이냐.
제 욕심에 눈이 먼 군주를 버리고 다른 인물에게 몸을 의탁할 것이냐.
잠깐 고민하던 장수는 선택을 내렸다.
최근 양양성 내부에서 수상한 행동을 보인다는 무리가 있다던가.
병사들의 사기가 곤두박질치고 내부가 어지러운 이런 상황에서 수상한 행동이라 하면 보통 한 가지밖에 없었다.
황충을 뒤따르던 장수는 그들을 수소문하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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