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176)
EP.176 양양성(2)
나는 양양성에 있던 수많은 병사가 위연의 인도를 따라 바깥으로 우르르 몰려나오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위연이 유표의 목을 가져온 이후 우두머리를 잃은 유표군은 기다렸다는 듯이 무기를 버리고 항복했다.
사기가 저하되자 양양성 내부에서 탈영병이 꽤 많이 속출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런데도 양양성에 남아있는 병사 수는 상당히 많았다.
정말 힘 대 힘 싸움으로 갔다면 시간은 절약했어도 피해는 어마어마했겠지.
성을 점령하는 공성전이라는 것은 원래 그런 전투였다.
이쪽에 여포와 서황 등 쟁쟁한 장수들이 있기는 한데….
그렇다고 해서 성벽에 병사들을 붙일 이유는 없다.
쉽고 편한 길을 내버려 둔 채 어렵고 위험한 길을 고를 필요가 있나.
게임이라면 몰라도 사람 목숨이 실제로 오고 가는 전쟁터에서 그런 선택을 할 이유는 없었다.
황조가 지키는 번성도 양양성이 함락됐다는 소식을 알면 조만간 항복해올 터.
제일 신경쓰이던 유표가 죽었으니 이제 남은 일은 항복한 인원들의 처우를 결정하고 민심을 수습하는 것뿐이었다.
양양성의 치소로 향한 나는 내 앞에 무릎을 꿇은 인물들을 바라보았다.
유표가 아예 무능한 인물은 아니었던지라 유표 휘하에 있던 인재들의 라인업이 꽤 화려했다.
문빙 중업(文聘 仲業).
유종이 조조에게 항복한 이후 강하 태수를 맡은 인물이자, 그 이후 황조가 그래왔던 것처럼 손권의 침입을 수십 년간 막아낸 장수.
괴월 이도(蒯越 異度).
조조가 형주를 얻은 것보다 괴월을 얻은 게 더 기쁘다는 평을 내린 문관.
그 외에도 채모라든가 왕위라든가 이런저런 장수가 많이 포진해 있었으나 지금 일일이 정리하기에는 귀찮았으니 나중에 기회가 오면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지금 제일 신경 쓰이는 건 따로 있었다.
“…….”
다른 무장들처럼 내게 공손하게 예를 올리며 자리에 있는 여인.
나는 저항할 의사가 없다는 듯 모든 무기를 내려놓고 온 여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자네의 이름은 뭐지?”
“황충, 자는 한승입니다.”
내 질문을 받은 황충이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나는 내가 예상했던 이름이 나오자 고개를 주억거렸다.
황충 한승(黃忠 漢升).
그 관우, 장비, 조운, 마초와 함께 오호대장군으로 임명된 장수다.
유비 휘하로 들어간 황충은 유비를 따라 종군하며 수많은 공을 세웠는데,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업적이라면 하나밖에 없지.
조조의 심복 중 하나였던 귀속장군 하후연(夏侯淵)을 정군산 전투에서 참살한 것.
유비가 주인공인 게임으로 치자면 조조 휘하에 있는 중간보스 중 하나를 무찔러버린 것이다.
유비를 도와 영토를 확장하며 조조의 네임드 장수조차 참살한 야전 지휘관.
인품도 능력도 흠잡을 만한 곳이 없는 이 장수는 훗날 유비가 이릉에서 뜨거운 밤을 보내기 1년 전 세상을 떠나고 만다.
관우가 219년, 황충이 220년, 장비가 221년.
그때 입장이 애매한 처지였던 마초도 222년에 죽어버린다.
거기에 223년, 화룡점정으로 유비까지 죽어버리니 촉나라가 안 휘청거리고 배기냐.
이걸 보면 그냥 하늘이 촉을 망하게 하려고 작정한 것 같기도 해.
어떻게 이리 줄초상을 치를 수가 있지?
잡생각을 마친 나는 황충에게 말을 걸었다.
“그때 자네가 날렸던 화살은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서늘하더군.”
“…….”
황충은 내 말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한 채 침묵을 지켰다.
내가 말을 이었다.
“그대에게 단 한 가지만 묻도록 하지.”
“말씀하시옵소서.”
지금 내 근처에는 호위를 명목으로 붙은 서여와 여포가 있었는데, 자신의 목숨을 여러 번 위협했던 두 장수가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았음에도 황충은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과연 본래 역사에서 오호대장군에 임명될 수 있을 만한 담력이었다.
나는 몸을 살짝 앞으로 낮추며 말했다.
“과거는 잊고 이제 내게 충성하라고 하면 따를 수 있겠느냐?”
내 말을 들은 여포가 반응을 보였다.
“…어, 정릉?”
“왜.”
“쟤가 너 죽이려 한 건 알지?”
“알고말고.”
내가 바보도 아닌데 그걸 모르겠는가.
유표의 명을 따라 나에게 화살을 발사했던 황충은 그때 나를 죽이려고 한 게 분명했다.
하지만 전장에서 만난 적을 모두 죽인다면 황충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나와 대적한 사람 모두를 죽여야 할걸.
유표 이놈은 내가 회유를 여러 번 했는데도 끝까지 거절한 놈이라 여지가 없었다.
여포가 말했다.
“그런데도 살려주겠다는 거야?”
“그래.”
“……진짜로?”
“진짜로.”
여포는 뭐가 그리 아쉬운지 내게 계속 질문을 던졌다.
“…그래. 그렇다면 내가 참아야지.”
태도를 바꾸지 않는 내 모습에 여포가 한숨을 내뱉었다.
“…….”
서여도 말은 안 했지만 살짝 아쉬운 기색을 보였다.
서여와 여포.
내가 만약 황충의 목을 베라 했으면 자신이 직접 베어버릴 듯한 모습이었다.
…진짜 제대로 찍혔네.
내가 밀어주지 않으면 황충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지 않을까.
“그래서, 결정은 내렸나?”
여포와 잠깐 대화를 나누는 사이 결정을 내렸으리라 생각한 나는 황충의 대답을 종용했다.
황충은 고개를 들어 나를 마주 보았다.
“이 황충, 견마지로를 다해 대장군을 섬길 것을 맹세합니다.”
“잘 생각했다.”
나는 생각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황충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 가지 궁금증이 들었다.
…지금 몇 살이지?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 번 물어봐야겠다.
──────────
대충 예상했지만 이번 유표에게 일어난 반란은 위연의 단독 행동이 아니었다.
유표에게 불만을 품은 호족들이 위연과 협력하며 일으킨 반란인데, 아무리 그렇다 쳐도 꽤 맥없이 무너진 감이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막상 양양성을 점령하니 무너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많이 나오더라고.
나는 내 앞에 있는 장수에게 말을 걸었다.
“유표가 이상해진 걸 눈치채고 식솔들을 몰래 빼돌렸다?”
“그, 그렇습니다.”
형주 호족 채씨 가문의 장수, 채모가 내 눈치를 살피면서 대답했다.
“걸핏하면 혼잣말을 하면서 하인들의 목을 날려대는 데 제가 어디 불안해서 살 수가 있습니까.”
“…….”
“제 작은 누이도 벌벌 떨면서 살려달라 하길래 어쩔 수 없이 몸을 빼준 것입니다.”
“흐음….”
나는 채모의 설명을 들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형주의 채씨 가문과 괴씨 가문은 본래 역사에서 유표가 죽은 이후 조조에게 항복할 것을 유종에게 적극적으로 권유한 가문이다.
그때 당시 채씨 가문의 힘이 어마어마했던지라 유종은 순순히 그 제안을 따라 조조에게 항복했지.
아마도 유표 세력의 군권을 쥔 채씨 가문이 뒤에서 은밀하게 위연을 지원한 것이 아닐까.
황충과 문빙 같은 장수가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병사를 지휘할 수 있는 군권이 없으면 의미가 없었다.
유표와 채씨 가문이 서로 혼인 관계를 맺었다지만 그것도 결국 권력을 위한 정략혼인이었다.
즉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배신할 수 있는 사이라는 것.
그리고 그건 내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
“…….”
나는 채모를 지그시 바라봤고 채모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런 내 눈길을 받으면서 식은땀을 흘려댔다.
배신 같은 걸 두려워할 시기는 진작 지났으니 나는 아무렇지 않게 채모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앞으로 별일 없이 잘 지냈으면 좋겠군.”
“무, 물론입니다!”
왜 이렇게 말을 떨어.
누가 보면 내가 잡아먹는 줄 알겠다.
“그래서 유표의 자녀는 어디 있지?”
“그것은….”
“모든 제장들이 부름에 응했는데, 정작 후계자란 인물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니.”
내가 짐짓 불쾌한 목소리를 연기하자 채모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장남인 유기는 유표 손에 죽음을 맞이했고, 차남인 유종은 아직 나이가 너무 어려 대장군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뭐라고?”
상상도 못했던 소식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채씨 가문의 미움을 받았다는 유기가 유표를 갈아치우는 과정을 거치며 살아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설마 유표 손에 죽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나는 채모에게 물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봐라. 유기가 유표 손에 죽었다니?”
“예! 결국 광증(狂症)을 일으킨 유표가 가문의 하인을 죽이면서 덩달아 자신의 장남까지 베어버렸습니다!”
“…….”
“제가 누이와 함께 조카를 몰래 빼내지 않았더라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자기 자식을 직접 죽여버릴 줄이야.
믿지 못할 이야기였다.
…너무 괴롭혔나 싶기도 하고.
아니 그러면 항복을 했어야지.
그놈의 권력이 뭐라고 그렇게 붙들고 늘어지는 거냐.
가후가 능히 삼공(三公)에 오를 수 있다 평한 인물이라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추한 최후였다.
“알았으니 이제 물러나 봐라.”
“예!”
내가 그리 말하자 채모는 기다렸다는 듯 서둘러서 자취를 감췄다.
대체 나를 어떻게 생각하길래 저렇게도 몸을 사릴까.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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