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18)
EP.18 동탁(2)
“흠흠.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한동안 조조와 내 대화를 재밌게 바라보던 원소는 표정을 가다듬었다.
“나는 아직 들어가지 않아도 상관없다.”
“…누가 보면 네가 초대받은 줄 알겠다.”
나는 여전히 다른 세상에서 노는 듯한 조조에게 질린 표정을 지었다.
쓴웃음을 지은 원소는 말을 이어갔다.
“정릉 님의 최근 행보를 보니 동탁에게 싸움을 걸고 계신 것 같은데 맞나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겁을 먹은 동탁이 싸움을 피하니 병량 문제로 곤란해지기 시작하셨죠.”
“그 또한 맞습니다.”
예상했지만 내가 동탁에게 싸움을 걸고 있다는 게 낙양 안에 쫙 퍼진 모양이다.
딱히 틀린 사실도 아니니 소문을 잡는다거나 그런 마음은 들지 않았다.
“만약 병량이 다 떨어지신다면 어쩔 계획이신지?”
“병사들을 굶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 병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슬슬 이쯤 되니까 원소가 어떤 목적으로 나를 초대했는지 알 것 같았다.
원소와 나는 동탁이라는 공공의 적을 두고 있는 상황.
근데 낙양 내에서 유일하게 동탁을 억제할 수 있을 만한 내가 병량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렇다면 사세삼공이라는 부유한 가문을 지닌 원소가 보일 행동은 뭘까?
“만약 어디선가 군량을 많이 보내준다면요?”
“…그럼 동탁과 끝장을 볼 수 있겠죠.”
내가 낙양에서 쫓겨나거나. 동탁이 낙양에서 쫓겨나거나.
반드시 둘 중 하나는 일어난다.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여쭤보고 싶습니다.”
원소는 표정을 굳히더니 진지한 어투로 말했다.
“당신은, 한나라의 신하인가요?”
“…….”
아주 중요한 질문.
만약 동탁을 물리치고 낙양에서 동탁을 내쫓는다면 다음 권력의 중심은 내가 되겠지.
원소는 그때 내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물어보고 있었다.
나는 그러한 원소의 물음에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 답을 말했다.
“저는 백성의 편입니다.”
“…….”
어떤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는 내 대답에 원소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
“원소 이 개 같은 년이──!!”
콰지직!
동탁이 흥분하며 탁자를 내려치자 힘을 이겨내지 못한 탁자가 결국 반으로 쪼개졌다.
이미 동탁의 주변에는 멀쩡한 가구가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도 전열에서 군을 이끌며 이민족을 토벌하던 맹장.
평범한 사람과는 비교도 안 될 힘에 짓눌린 애꿎은 가구들만 박살 나버렸다.
이래서 적이 너무 많으면 귀찮다.
무엇을 하든 꼭 방해하는 녀석이 생기니까.
“그래도 가진 미모가 아까워 나중에 따로 아껴주려고 했더니 이런 짓을 벌여?! 기필코 이 대가를 치르게 해줄 것이다!”
“…….”
원소가 가문의 자본을 이용해 정릉에게 병량을 지원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동탁은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곁에 있는 관리들은 동탁의 분노에 몸을 벌벌 떨며 눈치만 보고 있었다.
동탁의 서슬 퍼런 눈빛이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책사에게 향했다.
“이유! 그 빌어먹을 년 때문에 계획이 다 엉망이 됐다! 이제 어쩌면 좋지!”
“…주군. 이제 평화롭게 넘어갈 방법은 없습니다.”
이유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전투를 벌여 정릉이라는 작자를 강제로 내쫓는 수밖에요.”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내 마지막 자비를 베풀어 무사히 돌아갈 기회를 베풀었거늘!”
동탁이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깟 천하무쌍 하나 있다고 정말 날 이길 수 있다 생각하는 게 우스울 따름이구나!”
“그렇습니다 주군. 이제 주제를 모르는 놈에게 오만함의 대가를 치르게 해주시지요.”
대화를 듣던 관리들이 결국 눈을 질끈 감았다.
또 다시 낙양에서 많은 피가 흐르게 될 것이라 생각하며.
──────────
“효과 확실한데.”
원소가 병량을 지원해주고 이틀도 안 지났는데 동탁의 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근데 생각했던 것보다 동탁의 병사가 훨씬 많았다.
나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내 주변에 있던 조조에게 물었다.
“분명 동탁이 들어올 땐 4만 명이었다고 했지?”
“그렇다.”
“지금은 6만 명이네.”
“죽은 대장군의 병사를 거의 흡수했다더군.”
여기서 백정 놈이 트롤을 하네.
내가 한숨을 내뱉자 조조가 유쾌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나?”
“그건 아니고.”
현재 내가 데려온 병사의 수는 2만 5천.
동탁이 데리고 있는 6만 명에 비하면 엄청 초라한 숫자였다.
내 딴에는 최대한 많이 데려온 건데…….
땅을 개간하며 훨씬 경비에 집중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나는 병주에 병사를 좀 남겨놓고 왔다.
슬슬 겨울이 가고 따뜻해지니 이민족이 고개를 빼꼼 내밀더라고.
계속해서 약탈 각을 보는 괘씸한 모습에 흠씬 패줬는데도 자꾸 나타난다.
이쯤 되면 이민족들은 평범하게 태어나고 성장하는 게 아니라 분명 게임 몬스터처럼 어디선가 리스폰 되는 게 확실했다.
나는 조조에게 손을 휘휘 저었다.
“이제 가라. 슬슬 시작할 것 같으니까.”
“흠. 기대하지.”
조조는 씩 웃고는 자리에서 벗어나 도시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여.”
“네.”
“막 몸이 근질거린다거나 그러지 않아?”
“아니요.”
물어보는 사람 뻘쭘하게 만드네.
혹시나 해서 나설 마음이 있는지 살짝 돌려서 물어봤는데 서여는 언제나처럼 칼같이 거절했다.
이 치트키를 어떻게 해야 쓸 수 있을까.
동탁의 병사들과 내 병사들은 낙양 바로 앞에 있는 평지에서 진형을 형성하며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우리 군에 비하면 아주 초라한 병력이구나! 정말 무슨 자신감으로 싸움을 거는 건지 이해를 못하겠군!”
“하하하하!”
동탁의 장군이 크게 외치자 주변에 있던 병사들이 비웃으며 우리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아마 싸우기에 앞서 우리의 사기를 깎으려는 수작이겠지.
“지금이라도 얌전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다면 주군께서 네놈들의 무례를….”
무슨 말을 할까 궁금한 나는 큰소리로 외치는 장군의 말을 듣고 있었다.
“…용서하실 리가 있겠느냐! 너희는 이제 여기서 죽는 일밖에 안 남았다!!”
“푸하하하!”
이건 좀 신선한 도발인데.
내가 놀라워하든 말든 동탁의 장군은 여전히 자신의 입담을 자랑했다.
“이 역적놈들아! 얌전히 목이나 닦고…케헥──!!”
그때 화살 한 발이 우리를 도발하던 장군의 목을 꿰뚫었다.
“끄륵…. 끄르르륵…….”
털썩!
“…….”
장군이 자신의 목을 부여잡고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쓰러지자 주변에 있던 병사들이 입을 다물었다.
“싸우기 전에 꼭 저렇게 입을 터는 놈이 있어요.”
침묵이 가라앉은 전장에서 활을 쏜 장본인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
“그러다가 죽으면 아무도 책임 안 지는데 말이야.”
말해 뭐할까. 화살을 쏴 동탁의 장군을 죽여버린 인물은 바로 여포였다.
“더 말하고 싶은 놈?”
“…….”
여포의 말에 동탁군은 우물쭈물하며 눈치만 살폈다.
그런 동탁군을 여포가 차갑게 비웃었다.
“없으면 덤벼.”
“……돌격해라────!!”
와아아──!
2만 5천과 6만.
전투가 시작됐다.
──────────
멀리서 봐도 느껴지는 숫자의 차이에 원소가 분한 듯 이를 물었다.
“제가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이탈을 막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지만 결국 기존 대장군 쪽에 있던 인사들이 대부분 동탁을 선택했다.
동탁이 흘린 콩고물이라도 얻어먹기 위해 바짝 고개를 조아린 어리석은 자들.
명예를 버리고 탐욕만을 좇는 추악한 모습에 원소는 분노했다.
그런 원소를 바라보던 조조가 물었다.
“정릉이 패배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예. 이기지 못하겠죠.”
동탁의 병사들은 그저 그런 도적 떼들이 아니었다.
국경을 넘어오는 강족들을 소탕하고 한수와 변장이 일으킨 양주의 난조차 제압한 정예들이다.
거기에 마지막까지 한나라를 지탱하던 병사들을 대부분 흡수했으니 지금 천하에서 동탁에 맞설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원소는 이를 알면서도 정릉에게 군량을 지원했다.
조금이라도 동탁의 군을 줄여놓아 자신이 세력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
…결국 자신도 착한 인물은 아니었다.
“부디 무사히 도망치실 수 있으면 좋겠네요.”
정릉이 패배해 도망친다고 해도 동탁은 분명 이를 끝까지 쫓지 않고 군을 돌릴 것이다.
최근 흑산적을 흡수했다고 하던가.
산에서 날고 긴다는 흑산적들이 안 그래도 산이 많은 병주에서 버티고 있는데 얼간이가 아닌 이상에야 자신의 병사들을 병주에 억지로 밀어 넣지 않을 것이다.
동탁 본인도 병주에 남아있는 병사들이 꽤 많다는 걸 알고 있으니 더더욱.
원소의 말을 들은 조조가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보았다.
“글쎄. 내 생각은 다르다만.”
“…네?”
“일단 보고 있어라.”
“…….”
조조의 말대로 전투를 바라보던 원소가 자그마한 이변을 눈치챘다.
“…이건.”
자신들보다 2배는 될법한 병사들을 상대로 좌측과 우측이 굳건히 버티는 사이, 동탁군의 정면이 서서히 뚫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정면에는 당연하게도 말을 타고 있는 핏빛 머리의 장수가 있었다.
“……여포.”
여포가 지나갈 때마다 동탁군의 방진에 구멍이 뚫리더니 동탁군의 진형이 흔들렸다.
승부의 추가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