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181)
EP.181 양양성(7)
유표가 죽은 이후 양양성에 있던 제장들은 모두 항복했고, 번성을 지키던 황조마저 머리를 숙였다.
이제는 단 한 명만이 내 처우를 기다리는 상황.
나는 내게 존댓말을 하는 감녕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본격적인 대화를 나누기 전에 궁금한 점부터 묻지.”
“말씀하시지요.”
내 말을 들은 감녕이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방금 나와 대화를 나눴던 황조와 사뭇 대비되는 태도였다.
나는 감녕에게 물었다.
“황조 휘하에 있기 전, 익주와 형주를 오가며 수적질을 벌였다는데 그게 사실인가?”
“…예.”
감녕은 자신이 도적이었다는 것을 곧바로 인정했다.
“…….”
나는 감녕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감녕 흥패(甘寧 興覇).
무려 그 장료와 비빌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장수인 건 확실하나, 딱 한 가지 신경 쓰이는 점이 있다면 바로 인성이다.
감녕이 어떤 인물인지 정리해주는 일화가 하나 있지.
그 일화를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이렇다.
자기 주방에서 일하던 어린아이가 문제를 일으키고 뒷일을 두려워하며 여몽에게 도망쳤는데, 여몽은 그래도 아이를 해치는 건 안 된다면서 그 아이를 보호해준다.
그러자 감녕은 여몽의 모친을 잘 꼬드겨 여몽에게 아이를 해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후 아이를 다시 데려온다.
그 이후 감녕이 데려온 어린아이가 어떻게 됐느냐?
나무에 꽁꽁 묶인 다음 감녕이 쏜 화살에 맞아서 죽었다.
이에 여몽이 분노하면서 감녕과 다투려 하다가 다시 화해하는 등 뒷이야기가 있지만 그건 넘어가자.
어린아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있지 않지만 어린아이도 가차 없이 죽여버리는 걸 볼 때 자비심이 없다는 것은 알 수 있을 터.
사실 궁금하기는 해.
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여몽과 한 약속도 어기고 데려오자마자 화살로 쏴 죽였는지 말이야.
어린아이를 죽여버리는 일화가 정사에 버젓이 기록된 인물.
그것 말고도 문제를 많이 일으켜서 손권의 심기를 종종 건드렸다는 내용이 있었던 거로 기억한다.
장비의 성격이 암흑 진화하면 딱 감녕처럼 된다고 볼 수 있었다.
감녕도 장비처럼 자신이 인정한 인물에게는 친근하게 대하며 예우했다는 기록이 있거든.
감녕을 받아들여야 할까. 말아야 할까.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수적을 그만두고 유표 휘하에 소속된 이유는 뭐지?”
내 질문을 들은 감녕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거야…. 도적질도 질렸으니 이름 한 번 크게 날려보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지요.”
진짜 솔직한 대답인데.
적어도 감녕의 성격이 호탕하다는 건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꽤 거리낌 없는 대답이구나. 믿는 구석이라도 있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
본래 역사에도 겁을 먹은 적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듯 감녕은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대장군의 질문에 정직하게 답할 뿐입니다.”
저 정도는 되어야 100명으로 수십만을 공격하고 그러는 건가.
담소자약(談笑自若) 사자성어의 주인공답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해야겠군.”
감녕의 성격이 어떤지 대충 파악한 나는 적갈색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대는 앞으로도 죄 없는 백성들을 수탈할 마음이 있는가?”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감녕의 처우가 달라질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을 보면 아마도 본인 말마따나 정직하게 대답할 터.
나는 감녕의 대답을 기다렸고, 감녕은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방금 말했다시피 건달처럼 행패 부리는 것도 이제 질렸습니다.”
“…….”
“지금 제 목표는 후세에 화자 될 정도로 드높은 전공을 세우는 것. 그뿐입니다.”
“흠….”
내가 기대한 백 점짜리 대답은 아니다만, 이 정도라면 조금 여지가 있지.
난 담담하게 결정을 내리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가 항복하라면 항복할 의사가 있나?”
“이미 갈 곳 없는 몸. 대장군께서 받아들여 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능력을 증명하겠습니다.”
그리 말하는 감녕의 겉모습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좋다. 그렇다면 자네의 귀순 요청을 받아들이지.”
“어떠한 노력도 아끼지 않겠습니다.”
“단, 이것 하나 만큼은 명심하도록.”
나는 잊지 말라는 목소리로 감녕에게 주의를 줬다.
“그대가 백성을 상대로 무의미한 살생을 즐긴다면 다음 기회는 없을 것이다.”
“…….”
손권은 인재가 부족하니까 감녕이 여러 결점을 보였음에도 그를 안고 간 것이지, 나는 하등 그럴 이유가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지.
지금 휘하에 있는 쟁쟁한 무장들만 몇 명인데.
감녕의 능력은 분명 눈여겨볼 만했지만 그렇다고 내부에서 분란을 일으키는 것까지 참아줄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본래 세계의 감녕과 이쪽 세계의 감녕은 성격이 다를지도 모르지.
원래라면 뒤통수를 쳐도 진작 쳐야 했을 여포가 얌전히 내 아래에 남아있는 것처럼 말이야.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런 내 뜻이 잘 전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감녕은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제가 다른 건 몰라도 보은 하나는 확실합니다.”
“…….”
“수적 출신에 불과한 저를 거둬주신 대장군의 은혜. 기필코 보답해 보이지요.”
“그래.”
나는 감녕 곁에 서 있던 장비에게 고개를 끄덕였고, 내 뜻을 알아들은 장비는 곧바로 자신이 든 장팔사모를 휘둘렀다.
자신을 포박하던 밧줄이 땅에 떨어져 내리면서 자유의 몸이 된 감녕은 얼떨떨한 기색을 드러냈다.
“아니, 그냥 풀어주는 방법도 있는데 왜 굳이 그 살벌한 무기로…….”
“시끄러워 이 도적년아. 대장군 명령만 아니었으면 넌 이미 죽었어.”
장비는 불만스럽게 감녕을 노려보았다.
“내가 눈 부릅뜨고 감시할 테니 허튼짓 할 생각은 하지 말라고.”
“…이거 아무래도 행동거지를 더 조심해야겠네.”
장비가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음에도 감녕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확실히 자신이 인정한 인물에 대해서는 뒤끝 없는 인물이 확실했다.
──────────
유표가 비록 군사적 측면에서는 무능했다지만 행정적 측면에서는 유능한 인물이었는지 형주에 쌓인 물자 숫자는 풍족했다.
가후가 괜히 유표를 치세에는 유능하지만 난세에는 무능한 인물이라 평한 것이 아니었다.
그놈의 권력욕에 잡아먹히지만 않았더라도 평안한 인생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나도 유표처럼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겠지.
초반은 잘 나가다가 말년에 훼까닥 돌아버린 유형이 얼마나 많은데.
지금은 대장군도 부담스럽다 이러고 있지만 아차 하는 사이 타락해 버릴 줄 누가 알겠는가.
막말로 저기 지나가는 손책의 동생, 손권만 하더라도….
“무슨 용무라도 있으십니까?”
“…….”
손책은 내가 자신을 바라본다는 걸 귀신같이 눈치채고 말을 걸어왔다.
흔히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하지.
괜히 혼자 속으로 뜨끔한 나는 죄인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어 살짝 작아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다.”
“……?”
손책은 내 반응을 보고 의아한 기색을 드러냈다.
나는 손책이 무어라 말하기 전 먼저 입을 열었다.
“그냥 아까부터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 같아서 말이다.”
“아, 그것 말씀이십니까.”
내 얘기를 들은 손책이 곧바로 수긍했다.
손책은 내가 언급했던 대로 조금 전부터 관청 내부를 왔다 갔다 하며 바쁜 모습을 보였다.
잠깐 쉴 요량으로 적당한 곳에 자리 잡았던 나로서는 눈에 띄는 광경이었지.
손책이 대답했다.
“공근(주유의 자)이 정리할 것이 있다며 잠깐만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정리할 것?”
“예.”
내가 그리 되묻자 손책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최근 투항한 병사들을 한 번 살펴보더니 수군을 비롯한 다른 부대들을 따로 창설하는 게 좋을 것 같다면서 자기 혼자 사색에 잠기더군요.”
“…….”
“이건 그냥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공근이 일벌레 기질이 있어서 말이죠. 살짝 피곤합니다.”
저 스스럼 없는 말투를 보니 둘이 매우 친밀하긴 한 모양.
손책이 말했다.
“물론 본격적인 시행에 앞서 대장군께 보고서가 올라갈 겁니다.”
“그런가.”
나는 담담하게 말을 받아준 다음 손책과 대화를 이어나갔다.
“웬만하면 승인해줄 터이니 걱정하지 말고 그에 집중하라 전해주도록.”
“알겠습니다.”
손책은 내게 한 차례 예를 올리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확실히 조만간 주유가 언급한 것처럼 군을 대대적으로 개편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게 항복한 형주 병사들의 규모가 꽤 거대했으니까.
아무리 병사가 많아도 부대가 전부 따로 노는 이상 오합지졸에 불과할 뿐이다.
일단 감녕과 함께 투항한 수적들도 아예 별동대 개념으로 빼내야겠지.
수적 출신의 병사들이 다른 평범한 병사들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부대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병사들을 감녕에게 맡기면 어련히 잘 조련하지 않을까.
보통 범죄자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건 자신보다 더 강한 범죄자니까.
…역시 세력이 커질수록 할 일은 늘어나는구나.
그렇다고 일을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나는 한숨을 내뱉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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