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191)
EP.191 형주 호족(8)
연회 장소에 다다르자 호족들은 나를 마중하기 위해 저택 앞까지 몸소 발걸음을 옮긴 상태였다.
대표로 추정되는 남성이 내게 다가와 세상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환영합니다. 대장군.”
“그래.”
그 인사를 대충 받아넘긴 나는 앞으로 나선 호족을 바라보았다.
남군 태수의 치소가 있는 강릉현을 제 손아귀에 넣은 인물.
나는 이놈 이름이 뭐였는지 아주 잠깐 고민했다.
이름이 아마도 유도(劉度)였었나?
진짜 유명하지 않은 인물이지만 알 사람들은 아는 이름이다.
무릉군(武陵郡), 장사군(長沙郡), 계양군(桂陽郡), 영릉군(零陵郡).
이 네 개의 지역을 통틀어 형남이라 부르는데, 유도는 본래 역사에서….
……정확히 어디였지? 기억이 안 나네.
하여튼 유도는 앞서 말한 네 개 군(郡) 중 한 곳의 태수로 부임하던 인물이었다.
적벽대전 이후 제갈량과 주유가 두뇌 싸움을 벌이며 형남 4군을 점령할 때 등장하는 인물인 유도(劉度).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이들이 저 둘의 군대를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 아주 그냥 줄줄이 박살 나면서 형주 남군을 유비에게 헌납해버린다.
이때부터 형주를 달라는 손권과 형주 주기 싫다는 유비의 자존심 싸움이 시작되지.
근데 왜 이 세계에서는 남군 태수가 되어있을까.
나중에 유표한테 부임지 변경이라도 당하나?
그런 내 생각을 알 리 없는 유도는 내게 계속 미소 짓고 있었다.
능글맞은 얼굴을 지닌 남성이 내게 입을 열었다.
“오늘 대장군을 위해 아주 호화스러운 연회를 준비했습니다.”
“그런가?”
나는 호언장담하는 유도를 바라보면서 똑같이 마주 웃었다.
분명 저놈 말마따나 호화스럽긴 하겠지.
그 호화스러운 잔치가 얼마 못 가서 다른 무언가로 변질하는 것이 문제지만.
“그렇다면 어디 한 번 기대해보도록 하지.”
“예.”
눈앞에 있는 남성은 과연 속내에 어떤 꿍꿍이를 감췄을까.
그건 조만간 알 수 있을 것이다.
──────────
연회의 규모는 확실히 작지 않았다.
장소부터 아주 꼼꼼히 따져봤는지 건물은 거대했고, 호족들을 시중드는 하인은 수없이 많았으며, 탁자 위에 놓여있는 음식은 엄청나게 고급스러웠다.
이렇게 큰 지출도 감당한 것을 보니 마음을 단단히 먹기는 한 모양.
나는 한 차례 방을 둘러본 다음 적당한 자리를 골라 그곳에 앉았다.
내가 아무런 자리에 앉자 나를 안내하던 유도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대장군.”
“왜 그러지?”
“이런 말씀을 드리기 외람되오나, 저희가 따로 마련한 상석에서 연회를 즐기시는 것이 어떠할지….”
“아니, 괜찮다.”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이 자리가 마음에 드는군.”
“…….”
그 자리에 무슨 장난질을 쳐놨을지 알고 내가 거기에 앉아?
내가 저번에 언급했던 적이 있지만 호족들의 노림수는 독살(毒殺)일 확률이 높았다.
나한테 전문적인 지식은 없어서 호족들이 어디다 독을 흩뿌려 놓았을지는 모르겠다만, 이제 그 걱정도 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힐끔 눈길을 돌려 곁에 있는 백발의 여성을 바라봤다.
화타 원화(華陀 元化).
사실 화타의 본래 이름은 화부(華旉)지만, 주변 사람들이 존중을 담아 그를 화타라 부르니 이 이름이 더 유명해져 버린 인물이다.
이 세계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화타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것 같았기에 별로 의미 없는 정보였다.
앞으로 천 년 이상 세월이 흘러도 중국의 신의(神醫)라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위인.
현대에서도 무언가를 고치는데 뛰어난 재주를 가진 인물이 나오면 주변 사람들이 그를 보고 장난삼아 화타라 부르지 않는가.
그런 인물이 내 곁에 있는 이상 뭔가 일이 잘못 흘러가도 내가 죽을 확률은 한없이 낮았다.
나는 이곳으로 오던 도중 화타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자신이 따로 신호를 보내면 그 음식은 먹지 말라 했던가.
즉 화타가 먼저 행동을 보이지 않는 이상 호족들이 내온 음식을 원 없이 먹어도 된다는 뜻이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날 낌새를 보이지 않자 유도는 잠시 눈치를 살피면서 예를 올렸다.
“대장군께서 그러하시다면 따르겠습니다.”
“그래.”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고 대답했다.
“음식이나 가져와 봐라. 먼 길을 걸어오니 배가 출출하군.”
“즉시 대령하지요.”
내 말을 들은 유도가 근처 사람들에게 눈짓하자 그를 보좌하던 하인은 서둘러 음식을 내왔다.
닭 한 마리를 통째로 잡아 왔네.
나는 화타에게 눈길을 돌렸고, 내 눈길을 마주한 화타는 담담한 몸짓으로 몸을 살짝 숙이며 예의를 갖췄다.
괜찮다는 몸짓이네.
나는 곧장 젓가락을 내뻗어 닭을 발라먹기 시작했다.
내가 머뭇거리지 않고 자신들이 내온 음식을 입에 집어넣자 유도가 아주 잠깐 몸을 움찔거렸다.
주의 깊게 보지 않았으면 눈치채지 못할 몸짓이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아무리 놀라도 그렇지 겉으로 티를 내면 어떻게 하냐.
그래서야 일을 성공할 수는 있겠어?
지금 연회장 내부에 있는 인물들은 대부분 나와 적대하는 입장이다.
나와 같이 자리에 앉아 연회를 즐기는 척하는 호족들은 물론, 그 호족들을 호위한다는 명목으로 뒤를 지키고 선 험상궂은 장수들까지.
저 험악한 인상을 보니 칼밥 좀 먹고 살아온 놈들인 건 확실했다.
…이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정보였지만 몇몇 호족과 장수는 성별이 여자더라고.
늙어 보이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해서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것도 아니었다.
서여와 여포, 그리고 화타를 제외한 나머지 호위들은 따로 뭉쳐 다니면서 건물 바깥을 경계했다.
관우와 장비는 너무 빠꾸없이 직진하는 성격 탓에 머리 아픈 정치 싸움과는 연이 멀었지만, 그래도 유비가 둘을 잘 이끌면서 주변을 경계할 테니 걱정 없었다.
유비는 그 뭐냐.
살짝 음습한 인상이 있어서 서로 속내를 숨기는 정치 싸움에 굉장히 강할 것 같거든.
유비 앞에서 이런 말을 하면 상처받겠지?
이 의견은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남겨두자.
지금 이 장소에는 분명 연회가 벌어지고 있었지만, 이걸 연회라 부르기에는 현재 분위기가 너무나 가라앉은 상태였다.
애초에 연회를 연 목적 자체가 하하 호호 웃으면서 친목이나 다지는 의미에서 연 게 아니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나를 적대하는 호족들은 지금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지 않을까.
그도 그럴 것이 서여와 여포가 내 곁에 서서 주변을 철통같이 감시하는데 오한이 안 들래야 안 들 수가 없었다.
몇몇 호족들이 열심히 대화를 나누면서 분위기를 띄워보려고 했으나 전부 의미 없는 짓이었다.
물론 그 행동에는 내 호위 장수를 근처에서 떼어놓으려는 시도도 있었다.
“늘 소문으로만 듣던 천하무쌍을 직접 보니 영광입니다! 어디 저와 한 번 술잔을 기울여 보심이….”
“꺼져.”
“…….”
단호한 거 봐라.
단호박인 줄 알았네.
여포는 여기 있는 호족들이 적이라는 것을 내게 전달받은 뒤로 신경이 한껏 예민해진 상태였다.
너무나도 칼 같은 여포의 대답에 술을 권한 호족은 몸을 움찔 떨었다.
호족이 잠깐 멈칫한 사이 여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꺼지라는 말 못 들었어?”
“히익!”
여포의 살기 어린 눈빛을 마주한 호족이 겁에 질린 몸짓으로 후다닥 달아났다.
“…….”
여포가 저런 반응을 보이니 다른 호족들은 아예 서여에게 접근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호족들의 뒷덜미에 소름이 돋아있던 것을 얼핏 볼 수 있었다.
가까이서 이 둘을 직접 마주하니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라도 든 모양.
당연히 연회의 분위기는 더더욱 가라앉았고, 그렇게 별다른 이변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오늘은 그냥 넘어갈 속셈인가?
이렇게 호화스러운 연회는 보통 며칠 동안 이어지는 법이었으니 이상할 건 없었다.
“이거 분위기가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그때 호족들의 대표로 짐작되는 유도가 직접 나섰다.
“이렇게 된 이상 제 비장의 술을 꺼내와야겠군요.”
무슨 술이길래 저렇게 관심을 끌지.
모두의 눈빛이 자신에게 향한 것을 확인한 유도는 내게 입을 열었다.
“대장군, 혹시 두강주(杜康酒)라고 아십니까?”
참 익숙한 술 이름이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다만.”
직접 마셔본 적도 있고.
과거 마등이 구해온 적이 있어서 딱 한 병만 마셔봤지.
술을 별로 즐기지 않던 나로서도 절로 넘어가던 맛이었다.
내 반응을 본 유도가 내게 씩 웃어 보였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제게 때마침 그 술이 있습니다!”
“…….”
“분위기도 띄울 겸 그 술을 대장군께 바치고자 하는데, 어떻습니까?”
뭔가 수상한데.
이거 두강주라 속이면서 다른 술 가져오는 거 아니야?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디 한 번 해보라는 태도를 보였다.
“원하는 대로 하도록.”
“예! 뭣들 하느냐! 어서 술을 내오거라!”
유도가 입을 열기 무섭게 하인들이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면서 술병과 술잔을 가져왔다.
나는 술잔들을 살펴보면서 말했다.
“재주도 좋군. 이건 유리가 아닌가?”
삼국지 시대의 유리라면 교역으로밖에 얻을 방법이 없어서 엄청나게 귀할 텐데.
내 앞에 놓인 술잔 두 개가 전부 반질반질한 것이 아주 새것 같았다.
아마도 포도주 같은 것을 마시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닐까.
“하하! 그렇습니다! 역시 대장군께서는 보는 눈이 있으시군요!”
유도는 기분이 좋은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자, 제가 먼저 한 잔 올리겠습니다! 쭉 들이키시지요!”
그리 말한 유도가 내 앞에 놓여있는 유리잔에 술을 따랐다.
술의 향을 맡아보니 확실히 두강주가 맞았다.
내가 저번에 마셔본 적이 있어서 잘 안다.
고급스러운 술잔. 아주 귀한 술. 맛있는 안주까지.
다 좋다.
다 좋은데….
아주 중요한 문제가 있단 말이지.
나는 유도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배려는 고맙지만 그대가 먼저 마셔보도록.”
“…알겠습니다.”
“…….”
유도는 순간 당황한 기색을 보였으나 내가 담담한 표정으로 침묵을 지키자 자신 앞에 놓인 술잔을 쭉 들이켰다.
뭐지? 너무 스스럼없이 마시는데.
두강주에 독을 넣은 게 아닌가?
유도가 내 눈치를 살피면서 말했다.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믿음이 가십니까?”
“…흠.”
나는 손을 뻗어 잔을 살살 흔들었다.
잔을 흔들자 그 안에 담긴 두강주가 맑은 색깔을 자랑하며 이리저리 찰랑거렸다.
…냄새도 이상하지 않고, 색깔이 이상한 것도 아니고.
진짜 독이 아닌가?
내가 의문에 잠길 무렵 불현듯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장군.”
“…….”
이 미려한 목소리는 분명 화타였다.
화타는 내 눈길이 자신에게 향하자 고개를 살살 흔들었다.
“……그런가.”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곤 다시 눈앞에 있는 유도를 바라봤다.
“이봐.”
“ㅇ, 예?”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유도의 목소리가 잠깐 떨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웃으면서 내가 들고 있던 잔을 유도에게 내밀었다.
“어디, 이것도 한 번 마셔보겠는가?”
“…….”
그러자 유도가 갑자기 이마에서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당첨이네.
너 술이 아니라 잔에다 독 묻혀놨구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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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ヽノ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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