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208)
〈 208화 〉 봉추(??)(3)
* * *
장각에게서 방덕공이 도착했다는 정보를 들은 다음 날.
나는 정말 아주 간소한 규모로 연회를 열 준비를 한 다음 방덕공에게 초대장과 사람을 같이 보냈다.
현재 방덕공의 일가는 꽤 거대한 저택에서 머물렀는데, 그 저택은 내가 호족들이 찾아올 것을 대비해 따로 마련해 놓은 대형 거주지였다.
내 말을 믿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례주까지 먼 발걸음을 옮기신 분들이다.
그들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기 전까지는 이 정도 대우를 해주는 게 맞겠지.
방덕공도 내 초대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준비를 마친 후 내게 찾아오겠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그리고 현재.
“…….”
“…….”
얘네들은 대체 왜 여기 있는 걸까.
나는 할 일이 없다는 이유로 내 저택까지 찾아온 두 어린아이를 바라보았다.
이 천하에서도 흔치 않은 보라색 머리카락과 흰색 머리카락.
말해 뭐하겠는가.
그 사마의와 제갈량이 이른 아침부터 내가 있는 곳에 행차하셨다.
─────────
아직 성인식도 치르지 못한 사마의와 제갈량은 아무런 관직도 받지 못한 상태였다.
그야 당연하지.
15살도 되지 못한 어린아이를 장군 같은 고위직에 임명하면 꼴이 좀 우습지 않겠는가.
내가 밀어붙이고자 하면 못할 것도 없었지만….
굳이 그럴 이유가 있나?
황제 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었음에도 어린아이를 높은 자리에 앉혀 논란거리를 만들 이유가 전혀 없었다.
제갈량과 사마의도 이러한 점을 알았기에 그 정도쯤은 감수해줄 수 있단 반응을 보였다.
생각이 깊은 아이들이라 다행이지.
하여튼 관직이 없는 그 둘에게 일거리가 찾아올 리 없었고, 그 둘을 보살펴줄 보호자들은 각자의 이유로 자리를 자주 비워야만 했다.
제갈량의 언니인 제갈근(???)은 정무를 처리하는 것과 동시에 그 온화한 성격을 바탕으로 관료들의 사이를 잘 조율하며 내부에서 갈등이 생기지 않게 최선을 다했다.
제갈근이 왜 본래 역사에서도 오나라를 다스리던 손권에게 중용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사마의의 언니인 사마랑(?馬?)은 관대한 정책을 펼치면서 백성들의 칭송을 한몸에 받았는데, 어찌나 마을을 잘 다스리는지 사마랑 휘하에 있는 백성들은 아예 아무런 범죄도 저지르지 않는다고 한다.
사마랑이 무언가를 하겠다고 나설 때마다 백성들도 두 팔 걷어붙이고 그녀를 돕는다 하니 과연 사마팔달(?馬??)이라 불릴 만했다.
제갈근(???)과 사마랑(?馬?).
현대에서는 동생들의 이름값이 워낙 높아 묻히는 감이 있지만 이 둘도 매우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인재들이었다.
하지만 너무 뛰어난 능력이 이번에는 독이 됐다.
능력이 좋으니까 자연스럽게 이곳저곳으로 많이 불려 나가고, 어딘가에 떠나는 일이 잦다 보니 정작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아이에게 소홀히 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러자 그 둘은 내게 건의를 올렸다.
‘의(?)가 혹여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곁에 두고 보살펴 주실 수 있을는지요?’
‘으음? 그게 무슨 소리지?’
내가 의문을 드러내자 사마랑은 살짝 부끄러운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대장군께서도 아시겠으나…. 제 동생이 워낙 까칠한 성격을 지녔다 보니 또래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편입니다.’
‘그렇군.’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로서는 그 틱틱거리는 성격이 귀여울 뿐이지만 사마의 또래 입장에서는 아주 밉상처럼 보일 테니까.
만약 누군가가 사마의를 도발하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대판 싸움이 나는 것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사이가 가깝다고 볼 수 있는 나한테도 늘 툴툴거리는데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을 도발하는 것을 가만히 참고 넘길 리가 있나.
물론 사마(?馬)씨 가문의 명성이 워낙 높기에 대놓고 괴롭히지는 않겠지.
하지만 상종하면 안 되는 사람 취급하면서 사마의에게 거리를 두기는 할 것이다.
심지어 사마의가 그런 인간관계에 신경 쓸 성격이 아니었으니 자연스럽게 홀로 남을 터.
다 큰 어른도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는데 한창 커야 할 어린아이는 어떻겠는가.
이미 웬만한 어른은 훌쩍 뛰어넘을 뛰어난 두뇌를 지녔다지만 그래도 어린아이는 어린아이였다.
아이의 성격이 안 좋다고 해서, 자신이 피곤하다고 해서 보살피는 것을 포기해 버리는 건 아니 될 일이었다.
그를 떠올린 나는 사마랑의 요청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다. 그렇다면 그대가 자리를 비운 동안 사마의를 데리고 다니면서 정무를 처리하는 방법이나 알려줘야겠군.’
‘대장군의 은혜에 감읍할 따름입니다.’
사마랑은 내게 예를 올렸고, 나는 그 이후로 사마의를 데리고 다니며 일 처리 방법을 알려줬다.
‘…왜 복잡하게 일을 처리하는 거예요?’
‘응?’
‘봐요. 이렇게 하면 더 손쉽잖아요.’
‘……??’
정작 내가 가르침을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있었지만 말이다.
제갈량의 상황도 딱히 다르지 않았다.
‘대장군, 부디 우리 량(?)을 부탁드립니다!’
뭔가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제갈근의 요청에 나는 잠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말하면 주변 사람이 이상한 의미로 생각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분위기가 살짝 달라진 서여를 뒤로한 채 서둘러 입을 열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봐라.’
‘아, 앗! 죄송합니다!’
뒤늦게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제갈근이 내게 사죄를 표했다.
제갈근은 유독 이상하게 내 앞에서만 긴장하는 느낌이란 말이지.
분명 낙양에 정착하고 시간도 꽤 지났을 텐데 어째서 이러는 걸까.
제갈량도 알게 모르게 그런 기색이 있다는 기분을 지우지 못했는데, 이건 제갈 가문의 특징인가?
내가 살짝 의문을 가질 무렵 제갈근이 눈치를 살피면서 말했다.
‘저희가 서주에 있던 시절 량(?)이 평소 어떻게 지냈는지 아십니까?’
‘아니, 모른다.’
‘간단합니다. 그저 방에 틀어박혀 온종일 서책과 죽간만 읽을 뿐이었지요.’
그 책벌레는 뭐냐.
제갈량도 만만치 않게 아웃사이더인 모양이었다.
내 반응을 본 제갈근이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같이 바깥으로 나가자는 권유도 전부 거절하고 저와 막내가 아니면 누구와 만나는 것 자체를 극히 꺼리더군요.’
‘…….’
‘제게 보이는 모습만 보면 장난꾸러기라 불러도 손색이 없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늘 거리를 두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거기까지 말한 제갈근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뭐지.
천재는 고독하다 뭐 그런 건가.
사마방도 제갈근도, 내게 이런 요청을 하는 것이 예의가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그를 무릅쓰고 몸을 낮추는 이유가 있었다.
‘대장군 근처에 있으면 의(?)가 평소보다 누그러지더군요.’
‘우리 량(?)이 대장군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것 같아요!’
성격에 조금씩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유독 내 앞에서만 얌전해진단다.
사마의와 제갈량의 가족이 하는 말이니 틀리지 않겠지.
사실 나에게는 육아의 재능이 있지 않았을까?
내가 병주에 있을 때도 아이들에게 엄청 인기가 많았다고.
이런 재능이 있을 줄 알았다면 유치원 교사가 돼서 돈을 잔뜩 버는 건데….
어쨌든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다 보니 보호자가 없는 동안에는 내가 제갈량과 사마의를 보살피는 꼴이 됐다.
…서류 업무 같은 걸 할 때는 저 둘이 나를 보살펴 주는 수준이었지만.
내가 서여와 여포를 데리고 시트콤을 찍는 동안 제갈량과 사마의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나를 도와 일을 처리해 나갔다.
저번에 형주에서 업무를 처리할 때도 그러지 않았는가.
이른 아침부터 난데없이 들이닥친 두 꼬꼬마는 여느 때와 비슷하게 자리를 잡고 시간을 보냈다.
“…….”
“…….”
제갈량과 사마의는 웬일로 서로를 마주했음에도 으르렁거리지 않았다.
그저 한 차례 눈빛을 주고받은 다음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습.
이걸 사이가 좋아졌다고 해야 하나. 나빠졌다고 해야 하나.
눈앞에 있는 광경이 특이하긴 했지만 한 가지 더 신경 쓰이는 점이 있던 나는 둘에게 물었다.
“오늘은 되게 일찍 찾아왔구나?”
내 질문을 들은 제갈량과 사마의는 각각 다른 반응을 보였다.
“신경 쓰이는 소식이 들려와서 한 번 확인해보려고요.”
이건 새침한 표정을 짓던 사마의가 내뱉은 말이었고,
“주군을 모시는 입장으로서 혹여나 있을 사태에 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건 백우선을 든 채 잔잔한 미소를 짓던 제갈량이 내뱉은 말이었다.
나는 저 둘의 말에 담겨 있는 속뜻을 눈치채고 쓴웃음을 지었다.
말은 그럴싸했으나 실상은 그냥 자신 같은 아이가 또 오지 않을까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모양새가 딱 부모의 사랑을 뺏길까 봐 전전긍긍하는 아이들이 아닌가.
저 둘의 이런 모습을 보면 확실히 어린아이가 맞았다.
근데 내 기억으로는 방통도 분명 사마의와 비슷한 나이였을 텐데?
……부디 저 둘을 마주하고 기가 죽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