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213)
〈 213화 〉 침입(2)
* * *
거칠고 메마른 대지와 쌀쌀맞게 속을 파고드는 바람.
보이는 것이라곤 억센 잡초밖에 없는 황폐한 땅에서 일련의 무리가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선우, 곧 산맥에 도착합니다.”
“아직 눈에 띄는 움직임은 없겠지?”
“그렇습니다. 짐승 새끼 한 마리도 안 보인다는군요.”
휘하 병사에게 보고를 들은 남성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좋아. 최대한 빨리 움직인 보람이 있군.”
최근 북쪽에 있는 놈들과 걸핏하면 부딪치는지라 물자가 도통 남아나지를 않았다.
한 번이라도 크게 이기면 기세를 몰아 밀어붙이는 것을, 북쪽의 겁쟁이들은 정면 승부를 피하면서 끊임없이 소규모 부대만 보내 영토를 침입했다.
비록 세력의 규모는 자신이 더 거대했지만 이 넓은 초원에 있는 모든 동포를 지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놈들은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방비가 약한 곳만을 골라 약탈해가는데, 어부라로선 그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아주 환장할 노릇이었다.
북쪽 놈들의 본거지? 그런 것이 있을 턱이 있나.
말발굽을 내디딜 수 있는 땅이 있다면 그곳이 곧 길이요, 천막을 필 공간이 있다면 그곳이 곧 집이었다.
그 장소가 더운지 추운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자신이 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들은 대륙을 횡단할 기세로 도망치고, 그 도망치는 놈들을 추격하자니 오환족과 선비족이 신경 쓰인다.
그들을 추격하다가 너무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버린 자신을 오환족과 선비족이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지.
과거, 흉노족이 아주 강성한 세력을 자랑할 때 근처 지역에 있던 거대한 부족을 멸망시킨 적이 있다.
아래에 있는 샌님들은 그들을 동쪽 오랑캐란 뜻의 동호(??)라 부르던가.
그들의 자존심이 높았던 것도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으니 어부라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그리고 샌님 말마따나 동호(??)라 불린 멸망한 부족의 생존자가 다름 아닌 그들.
그 무리는 각각 다른 곳으로 갈라진 다음 지금 머무르는 산의 이름을 따서 자신들을 호칭했는데, 그게 바로 오환족(???)과 선비족(???)이었다.
이렇듯 지독한 악연으로 묶여있는 민족이 서로 사이좋게 지내리란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화친을 맺어보려고 해봤자 비웃음만 당하고 자신의 권위만 실추될 뿐이다.
굴종 아니면 죽음.
흉노족과 동호의 생존자들은 그렇게 끝을 볼 수밖에 없었다.
남흉노의 선우, 어부라가 말했다.
“적당히 필요한 것들만 챙기고 빠진다. 알았나?”
어부라의 명령을 들은 부관이 슬며시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그…. 노예를 원하는 병사들도 있던데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흠, 그건 좀 애매하군.”
그 물음에 어부라는 살짝 고민했다.
현재 자신의 부대에는 장가나 시집을 못 간 연놈들이 좀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노예라도 붙잡아서 홀몸 신세를 탈출하려는 모양이었다.
문제는 노예를 데리고 다니면 필연적으로 기동력이 줄어든다는 것.
현재 병주를 지배하는 인물은 자신의 영토를 지키는 데 아주 필사적이었다.
지금은 아직 소식이 전달되지 않아서 잠잠했지만, 자신이 움직였다는 정보가 전해지면 아주 튀어 오를 듯이 놀라면서 군대를 이끌고 출진하겠지.
지금 한나라의 권력을 쥔 대장군과 자신들은 충분한 원한 관계로 얽혀있는 사이였다.
병주자사의 아들로 태어나면서부터 쭉 외부의 침입에 맞서온 인물.
그 외부의 침입에는 오환족도 선비족도 있었지만 병주를 제일 괴롭혀 왔던 건 누가 뭐라 해도 흉노족, 자신들이었다.
병주가 공격받는다는 보고를 받으면 대장군은 성가신 놈들이 쳐들어왔다는 말과 함께 망설임 없이 움직일 터.
어부라는 과거 대장군의 군세에 맞서본 적이 있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자그마한 틈이라도 보이는 순간 대장군은 그 틈새를 파고들어 자신들에게 큰 손실을 강요할 것이다.
───이 버러지들아! 너희는 질리지도 않냐?!
───끄아아악─!
───도망치지 마! 전부 저승으로 보내줄 테니까─!!
대장군이 있는 군세에 꼭 껴있던 적발 머리의 소녀를 떠올리며 어부라는 식은땀을 흘렸다.
거리를 벌리려 해도 귀신같이 좁혀 들어와 병사들을 가볍게 썰어 재끼던 장수.
핏물을 잔뜩 뒤집어쓴 채 전장에서 날뛰는 천하무쌍의 모습은 이민족에게 악몽과도 같았다.
───…….
───이년은 또 무슨…! 컥!
천하무쌍을 보좌하면서 묵묵히 병사를 베어 넘기는 장수도 빼놓을 수 없었다.
진형을 대놓고 박살 내며 들어오는 적발의 귀신이 워낙 존재감이 넘칠 뿐, 휘하 기병들을 이끌면서 취약한 부분만 골라 공격하는 갈색 머리의 여인도 결코 얕볼 상대가 아니었다.
어떨 때는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면서 경로를 우회해 대장군의 본진을 치는 방법을 택했지만….
슈슈슈슝──!!
───화살?!
───어, 어떻게 알았지?!
마치 한몸처럼 움직이는 진형을 뚫어내지 못하고 큰 피해를 면치 못했다.
수많은 기마병이 일시에 들이닥쳤음에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던 청녹색 눈동자가 생생히 떠올렸다.
어부라는 대장군의 장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면 전장이 뒤집어지던 광경을 떠올렸다.
저기 오환족들이 백마장군(白馬??)이라 부르며 두려워하는 공 뭐시기도 대장군의 군세에 비할 바는 아니리라.
그렇고 말고, 오환족 놈들은 우리에 비하면 그냥 산책하러 다니는 것과 다름없지.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어부라는 결국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어쩔 수 없지만 노예는 포기한다. 물자를 챙기는 것에만 집중하도록.”
“알겠습니다.”
대장군의 군세와 숱하게 부딪쳐왔던 부관도 어부라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다행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잘 들어라! 이번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속도다! 값비싼 것들을 챙기면 후딱 달아날 준비나 하도록!”
“예!”
흉노족은 노예를 포기하라는 어부라의 말에도 별다른 반발을 보이지 않았다.
오랜 세월 동안 살아남은 정예병들은 대장군의 군세가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었고, 최근 군에 합류한 신병들은 전리품이 줄어든다고 해서 불만을 드러낼 처지가 아니었다.
“알아들었으면 서둘러 움직여! 일찍 도착할 수록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몫이 더 늘어나는 걸 모르겠나!”
슬슬 한나라와 맞닿는 위치까지 왔으니, 저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자신이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왔다는 것을 눈치챘을 터.
“속도를 내라─! 움직이면서 눈에 띄는 마을은 전부 털어버려라──!!”
와아아아───!!
어부라가 외치자 흉노족이 그에 호응하면서 함성을 내질렀다.
한평생을 말 위에서 살아오기에 그 누구보다도 말을 타는 것에 익숙한 이민족 무리.
과거 한나라조차 손을 쓰지 못했던 강인한 기마 민족들이 능숙하게 말을 몰면서 돌격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시간 싸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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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대장군에게 전령을 보내기 전, 정원의 뒤를 이어 병주자사에 부임한 장양(??)은 주변을 정찰하던 흑산적에게 이민족이 쳐들어온다는 보고를 듣고 화들짝 놀랐다.
“뭐, 뭣이라?! 몇 명?!”
“그…. 뭐냐. 적어도 이만 명은 됩니다.”
“이만?!”
눈이 아득해지는 규모에 장양은 순간 의식을 잃을 뻔했다.
“평소에는 기껏해야 수백 명이던 놈들이 대체 어디서 그만한 병사를 끌어온 것이냐?!”
“흉노 선우라 하지 않았습니까.”
보고를 올리던 흑산적, 수고(??)가 어깨를 으쓱이면서 말했다.
“이 나라로 치면 황제 폐하께서 직접 나선 것과 다름없는데 적어도 그 정도는 되야 모양이 살죠.”
“끄으음…. 그건 그렇지….”
장양은 수긍하는 듯하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니, 이민족은 전원이 궁기병이라 하지 않았나? 그런데 이만이라고?”
“그놈들은 노약자와 어린아이를 제외하면 전원이 싸울 줄 아는 민족입니다. 저희처럼 농사에만 전념하는 백성이 없단 뜻이지요.”
병주에서 오랜 세월을 지내오며 이민족을 수없이 막아냈던 인물답게 흑산적은 이민족의 문화에 대해서도 조금 빠삭했다.
수고가 장난스럽게 말을 이었다.
“좋게 생각합시다. 이것만 막아내면 당분간 흉노족은 이 근처에 얼씬도 안 하지 않겠습니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오환족과 선비족은 또 어찌하고?”
“…….”
장양의 질문을 들은 수고는 살짝 눈길을 피하면서 대답하지 못했다.
상급자에게 보이는 행동이라 볼 수 없을 정도로 무례했지만 현재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이를 트집 잡지 않았다.
병주 출신이라면 모두가 이랬고, 장양조차도 병주 출신이었으니까.
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중년의 남성, 장양이 곤란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으음…. 이를 대체 어떻게 해야….”
“자사님! 자사님을 만나 뵙고자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뭐라?”
휘하 장수의 보고에 장양은 의아함을 드러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런 때일수록 귀인이 찾아오는 법이지. 모셔오거라!”
“예!”
명을 받는 장수는 자리에서 물러났고, 그로부터 잠깐 시간이 지나자 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인물을 본 장양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아, 아니…. 저 사람은?”
최근 혜성처럼 나타나 이민족이 침범해오는 족족 처죽이던 인물이 아닌가.
모습을 드러낸 인물은 맑은 호수와도 같은 눈빛으로 장양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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