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216)
〈 216화 〉 침입(5)
* * *
남흉노의 선우, 어부라는 현재 후방에서 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살피고 있었다.
그렇게 잠깐 주변 상황을 훑어본 어부라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쁘지 않군.”
아군은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능숙하게 적군들을 줄여나가고 있었고, 정면 전투에서도 이쪽이 앞서는지라 그렇게 큰 피해를 보는 상황이 아니었다.
물론 어부라로서도 등골이 서늘해졌던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곳 병주가 우리 집 안방과 다름없다는 걸 잊었느냐!’
‘으음?!’
‘허락도 없이 남의 마당으로 들어온 도둑놈에게 본때를 보여주자!’
자신의 부대가 본격적으로 적 부대와 맞붙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
나무나 언덕 위에서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흑산적이 자신의 병사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외쳤다.
‘전부 발사해라!’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적의 매복이 나타난 것은 어부라로서도 꽤 놀라웠다.
현재 전방에서 아군을 막아내는 적 병사들은 그저 시선 끌기였는가.
매복을 가한 흑산적은 마구잡이로 화살을 발사했고, 그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은 부하 여럿이 대지에 몸을 뉘었다.
허나 흉노족은 매복을 당했다고 해서 사기를 잃을 정도로 만만한 민족이 아니었다.
‘머리에 검은 보자기를 뒤집어쓴 얼간이들이 우리를 공격한다! 대응해라!’
‘예!’
부대를 이끌던 장수가 그리 외치자 휘하 병사들은 아주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말을 몰면서 화살을 발사했다.
‘컥!’
‘으악!’
흑산적들은 기세등등하게 모습을 드러냈으나 흉노족이 본격적으로 대응을 시작하자 우수수 죽어 나갔다.
기묘할 정도로 명중률이 높은 화살들.
드넓은 초원을 질주하며 늑대와 같은 맹수를 사냥하던 그 활 솜씨는 지금 사람끼리 맞붙는 전쟁터에서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었다.
‘버텨라─!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된다!’
하물며 정면에서 아군을 막아내던 적 장수조차 상황이 좋지 않은 듯 연신 고함을 질러댔다.
흉노족은 진형을 형성한 흑산적에게 가까이 붙지 않고 멀리서 화살만 날려댔다.
흑산적도 이러한 화살 공격에 똑같이 대응했지만, 숫자도 부족하고 기동력도 부족한 그들은 피해가 점점 더 누적될 뿐이었다.
자기들 딴에는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지만 조만간 진형이 무너지리란 것이 자명한 상황.
전장이 이렇게 돌아가니 어부라는 이 전투에서 패배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좋아. 이제 곧 승리하겠ㄱ….”
“큰일 났습니다!”
어부라가 확답을 내리려는 그때 부관이 다급한 음성으로 그를 찾았다.
숨을 몰아쉬는 부관을 바라보며 어부라가 물었다.
“이 좋은 순간에 대체 무슨 일이냐?”
“혀, 현재 혼자서 아군의 진형을 휩쓰는 적 장수가 있습니다!”
“뭐라?”
어부라는 부관의 보고를 듣고 눈을 잠깐 크게 뜨더니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했다.
잠깐 생각에 빠져있던 어부라가 툭 물었다.
“혹시 여포(??)가 전장에 나타났는가?”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뭐란 말이냐?”
못해도 수만 명이 뒤얽히는 전장이다.
제아무리 흉노 선우라 불리는 자신이라 한들 제 한몸 건사하기도 힘든 난장판.
근데 그 안에서 홀로 부대를 무너뜨리는 장수가 있다고?
어부라 입장에서 그게 가능한 장수는 천하무쌍이라 불리는 여포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를 직접 목격한 적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저, 저희도 처음 보는 인물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는 어부라의 물음에 부관도 여간 혼란스러운 듯 눈동자를 떨었다.
부관이 말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적 장수 하나에게 아군의 진형이 뚫리고 있습니다!”
“…하! 어이가 없군.”
어부라는 믿을 수 없다는 태도로 발걸음을 앞으로 옮겼다.
마치 전장에 뛰어들겠다는 어부라의 행동에 부관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이를 제지했다.
“위험합니다 선우!”
“됐다. 그 보고가 사실인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야 직성이 풀리겠다.”
어부라는 부관의 제지를 듣지 않고 말을 앞으로 몰았다.
“…….”
부관은 현재 어부라의 난폭한 성정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를 재차 만류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천천히 말을 몰자 어부라의 시야에 한 광경이 들어왔다.
“비켜라! 걸리적거린다!”
“으아악!”
은색 갑옷을 걸친 청색 머리카락의 여인이 전장을 질주하는 광경.
단기필마(???馬)로 달리면서 적을 마주치는 족족 참살하는 그 모습은 과연 부관이 말한 그대로였다.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여인이 올라탄 백마는 흉노족의 강인한 말들조차 가볍게 따라잡았으니, 급히 말머리를 돌려 도망치는 것도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저 정도 수준의 무장이라면 감히 비교할 인원조차 잘 떠오르지 않을 정도.
대장군의 온갖 휘하 장수들과 다퉈왔던 어부라는 알 수 있었다.
대장군과 한창 병주에서 투덕거리던 시절, 대장군의 두 번째 심복이라 불렸던 장료보다도 무예가 뛰어나 보였다.
그 광경을 목도한 어부라가 어이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째서 저곳에 여포와 비슷한 년이 있는 것이냐?”
구체적으로 여포보다는 약해 보였으나 지금 저 상황을 볼 때 떠오르는 인물은 여포밖에 없었다.
부관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끙끙거렸고, 어부라로서도 제대로 된 대답을 바라고 내뱉은 질문이 아니었으니 담담한 표정으로 넘어갔다.
“…쯧. 그래봤자 혼자다. 어찌 개인이 전투의 결과를 뒤바꿀 수 있겠느냐?”
순간 그 여포가 떠오를 정도로 압도적인 무예이긴 했으나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결국 저 장수는 혼자 날뛰는 것에 불과했다.
전투의 규모가 수백, 수천 명 수준이었다면 승패가 뒤집어졌을지도 모르지.
허나 지금은 무려 수만 명이 뒤얽히는 상황이었다.
병사가 그렇게 없는 건지 겨우 수백 단위로 쪼개져 화살을 날려대는 매복 부대는 이미 두 자릿수 이하로 떨어져 있었고, 중앙에서 필사적으로 아군의 공격을 저지하는 적의 본대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상황이었다.
물론 저들의 저항이 워낙 거셌기에 피해가 그리 적은 건 아니었지만 이 정도쯤은 예상 범위 내였다.
그때 돌발 상황이 일어났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아군을 쓰러트리던 적장이 자신에게 눈길을 돌린 것.
마치 뼛속까지 시려오는 듯한 차가운 눈동자.
적장의 눈빛을 마주한 어부라는 순간 자신의 몸이 움찔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어부라도 생각 없이 전장에 끼어든 게 아니었다.
현재 전장에서 날뛰는 장수와 어부라의 거리는 상당히 멀었고, 현재 흉노족의 최정예 병사들이 그를 주변에서 호위하고 있었다.
적장도 그런 점을 파악하고 있었는지 잠깐 어부라를 응시하다가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향했다.
당연하지만 적장은 시선을 돌린 그 순간에도 아군을 척살해 나갔다.
어부라는 어이가 없으면서도 또 한편으론 저 무시무시한 적장이 자신에게 오지 않았음을 감사했다.
그래. 어떤 멍청한 인물이 죽을 자리가 확실한 곳에 뛰어들겠는가.
아무리 담력이 좋다 해도 그건 불가능한 일이리라.
부관이 자신에게 올렸던 보고가 사실임을 깨달은 어부라는 주변 장수들에게 고했다.
“…병사를 저 여자에게 더 집중시켜라. 혼자서 얼마나 막아낼 수 있을지 시험해보도록.”
“예!”
명령을 전달받은 전령이 떠나는 것을 바라본 어부라가 서둘러 말머리를 돌렸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이제 다시 뒤로 물러나겠ㄷ….”
“끄아악!”
“……?”
어부라는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무언가 불안감을 느끼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정확히 적중했다.
분명 자신에게서 관심을 돌렸던 적장이 곧장 이쪽을 향하면서 돌진해오고 있었다!
어부라가 적장의 담력에 화들짝 놀라면서 외쳤다.
“저 미친년이 기어코 제 죽을 자리를 찾아오는구나!”
어부라 곁에 있던 부관도 당황한 건 마찬가지였기에 급박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것이냐! 당장 막아라!”
“예!”
어부라를 보좌하던 부관이 곡도를 빼 들었고 그를 확인한 주변 병사들도 동시에 자신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부관이 적장을 향해 곡도를 겨누면서 명령을 내렸다.
“저 여자를 죽여라!”
어부라를 지키던 흉노족들은 명령이 떨어지자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말에 올라탄 수백 명의 정예 기병과 그를 향해 돌진하는 한 명의 장수.
평범한 장수였다면 백이면 백 나가떨어질 상황이었으나 현재 어부라를 향해 달려드는 적장은 어지간한 인물이 아니었다.
“컥!”
창을 허공에서 한 바퀴 돌린 조운은 제일 먼저 달려들던 흉노족의 목을 꿰뚫었고,
“끄악!”
오른손으로 찔렀던 창을 그대로 고쳐잡더니 왼쪽을 향해 휘두르면서 흉노족 하나를 더 베어버렸다.
어떨 때는 창대로 후려치고, 또 어떨 때는 공격을 흘려내면서 시시각각 거리를 좁혀오는 모습.
“……어찌 저런 말도 안 되는….”
어부라는 그 광경을 바라보면서 어이없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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